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76
* * *
타닥, 타닥-.
유원의 시선은 내내 모닥불로 향해 있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누구 한 명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질문이라도 할 법한데 하르간과 헤라클레스, 판도라는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모든 이야기의 마침표가 찍힐 때까지. 느리지만 밤은 길었고, 결국 유원의 말은 끝이 났다.
비록 모든 이야기를 다 한 건 아니지만.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처음 입을 연 건 하르간이었다.
헤라클레스와 판도라보다도 먼저 유원을 만난 게 바로 그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넌 다른 녀석들과 다른 느낌이었다. 그게 난, 네가 다른 놈들보다 더 앞서 가기 때문에 돋보이는 거라 생각했지.”
“틀린 말은 아니지.”
“맞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해는 안 되더라고. 어떻게 순혈도 아닌 녀석이 이럴 수 있는 건지. 이게 단순히 재능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건지.”
하르간은 순혈이었다. 그것도 거대 길드 올림포스 출신의.
그는 우물이 아닌 바다, 그곳에서 고래의 새끼로 태어나 온 바다를 누비며 자랐다. 그런 그에게 튜토리얼에서 만난 유원의 존재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바다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우물 안에 괴물이 있더라고.”
튜토리얼은 하르간에게 있어서 우물이었다.
탑의 곳곳에서 모여든 여러 순혈들조차 하르간의 눈에는 아직 ‘플레이어’라는 이름조차 얻지 못한 풋내기일 뿐.
하물며 탑의 존재조차 모르는 녀석들이야 오죽할까.
그런데 바로 그 튜토리얼에서 하르간은 유원을 만났다.
“사실 놀랍지는 않다.”
반면, 헤라클레스의 반응은 사뭇 담담했다.
“그 정도쯤은 반전도 아니다. 오히려 이제야 조금 납득이 될 것 같군.”
“뭐야, 이렇게 쉽게 넘어가?”
“그럼 뭘 얼마나 대단한 반응을 기대한 거냐? 이 정도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만하다. 이 탑에 오죽 이상한 놈들이 많냐? 회귀자가 아니라 환생자가 있다고 해도 믿을 판에.”
농인지 진담인지.
평소 헤라클레스답지 않게 꽤 웃긴 말에 유원은 결국 픽 웃고 말았다. 사실, 웃겨서라기 보단 홀가분해서 나온 웃음에 더 가까웠다.
‘말하고 나니 확실히 편하긴 하네.’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는 건 불편한 일이다.
시계태엽의 존재. 그로 인한 시간의 다름.
그것을 이야기하고 나자, 유원은 눈앞에 있는 헤라클레스와 하르간과 자신의 사이에 세워져 있던 벽 하나가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두 사람과는 달리 유독 판도라는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래서? 그 우, 뭐시기 그놈을 잡으면 뭔가를 알 수 있다 이거냐?”
유원의 이야기가 끝나고, 하르간이 핵심을 짚어 물었다.
우보 사틀라의 이름을 다 듣지 못해 줄여 말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요약하자면 그러긴 했다.
“일단, 그럴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그런데 네 말대로라면 그 녀석의 저 밖에 있는 게 아니었나?”
분명 그랬다.
아우터란 탑 밖에서 온 존재들. 그들과 싸울 방법은 놈들이 벽을 허물거나 어떤 경로를 넘어 탑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저 먼 미래에서도 결국, 벽을 부수는 데에는 실패한 모양이니 말이다.
“보통은 그렇지.”
“보통은?”
“녀석은 예외야.”
“예외라니? 설명 좀 자세히 해 봐라.”
“우보 사틀라…….”
녀석의 진명을 말하던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차피 이렇게 말해 봤자 그 이름을 다 알지 못하는 세 사람은 제대로 듣지도 못한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게 낫겠지.
“형태가 없는 백치 조물주. 그 녀석은 탑 안에 있으니까.”
* * *
잘 싸우기 위해서는 잘 쉬어야 한다. 또한, 지금 당장은 움직일 것도 아니었다.
절그럭-.
이른 새벽.
모두가 잠든 틈을 타 밖으로 나온 유원은 검을 검집에서 뺐다 다시 넣기를 반복했다.
이 칼을 손에 쥐고 있으면, 이렇게 평화로운데도 괜히 싸우는 느낌이 들었다.
칼에는 흑야검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결과물이 나온 건, 유원의 요청으로 인해서였다.
“네놈 말대로 흑야검의 흔적은 지웠다. 그 좋은 걸 강화 재료 정도로 쓰게 될 줄이야. 참나.”
싸움이 끝나고, 유원은 헤파이스토스를 만나 남은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유원은 그에게 이계검의 출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웬일로, 헤파이스토스는 어울리지도 않게 곰방대 하나를 꺼내 들더니 담배를 뻑뻑 피우기 시작했다.
“미래의 내가 만든 거라고?”
한참 만에 입을 연 헤파이스토스.
유원은 그에게 미래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세계가 얼마나 처참한지. 그리고 그 세계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을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검이라는 것까지도.
“환장하겠군.”
몇백 년 만에 꺼내든 담배였지만, 어지러운 머리를 정리하는 데 티끌만큼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결국 손안에 쥔 곰방대를 아귀힘으로 부숴 버린 그는, 손을 휙휙 저으며 유원을 내쫓았다.
‘충격을 받은 건지.’
받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망치를 녹여 사용할 만큼 상황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니까.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이 만든 작품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곧 일어날 미래를 떠올리며 절망했다.
그렇게 유원은 두 명의 헤파이스토스가 함께 만든 작품을 손에 쥐었다.
[이계검(2차)]# 헤파이스토스가 미래에서 온 검을 재료로 만든 검이다. 이계(異界)의 양분이 담겨져 있다.
# 이계의 존재에게 강한 살상력을 지닌다.
# 신력(神力)이 최대 50% 증폭된다.
# 신력(神力)을 자동 축적한다.
아이템의 설명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이계에서 온 검이 아닌 미래에서 온 검을 재료로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흑야검과 같은 증폭률을 기반으로 한 옵션이 붙었다는 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 설명을 보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 헤맸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원은 신력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이것도 이름과 관련되어 있는 건가.’
지금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신력(神力).
두루뭉술하게만 느껴졌던 이 힘은, 아우터들이 사용하는 이름의 힘을 사용할 때 필요한 힘이라는 것을.
‘이건 마력과는 분명 다른 개념이다. 플레이어가 아닌, 아우터가 사용하는…….’
“뭐 하냐?”
예고도 없이 불쑥 끼어든 목소리.
유원의 눈앞으로 손오공의 얼굴이 위아래가 뒤집혀 보였다.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는 유원의 뒤에서 손오공이 몸을 거꾸로 숙여 얼굴을 들이민 것이다.
유원은 파리를 잡듯 손을 휙휙 저어 손오공을 쫓아냈다.
“에라이. 재미없는 놈.”
“넌 싸우는 것 말고는 다 재미없잖아. 괜히 시끄럽게 하지 말고 가서 잠이나 더 자라.”
“잠 안 온다. 그런데 무슨 생각?”
“……됐다. 사실, 더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
헤파이스토스에 대한 생각이든, 아니면 이계검에 대한 생각이든 마찬가지였다.
둘 모두 여기서 아무리 고민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헤파이스토스가 이후 어떻게 움직일지는 그만이 알 것이고, 이계검은 사용하기 전까지는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다.
해가 뜨기 시작했다. 잠시 끊어진 대화 속에서 손오공이 은근한 기대를 품고 물었다.
“당분간은 여기서 머물 생각이지?”
“그래야지. 합은 맞춰야 하니까.”
“하긴.”
힐끗, 손오공의 시선이 헤라클레스와 하르간, 판도라가 잠들어 있는 오두막으로 향했다.
“저 녀석은 아직 좀.”
손오공이 말하는 ‘저 녀석’이란 헤라클레스를 의미했다.
유원과 손오공, 그리고 헤라클레스. 그들 세 사람은 미래에서 함께 싸우며 수없이 많은 합을 맞춰왔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헤라클레스는 달랐다. 그에게는 두 사람과 함께 싸운 경험이 없었다.
서로를 잘 알아야 그만큼 합을 맞추기가 쉽다.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에서도 만약, 세 사람이 미리 합을 맞춰 움직였더라면 과정이 조금 더 수월했을지도 몰랐다.
“칼도 새로 얻었고, 마침 둘 다 잠은 안 오는 것 같고.”
뚜둑-.
손오공이 손가락 마디를 풀며 스멀스멀 투기를 끌어올렸다.
“오랜만에 한 판 붙자?”
* * *
구우웅-.
엎드려 자던 땅이 흔들리자, 곤히 잠들어 있던 판도라가 눈을 떴다.
천천히 일어나 주변을 보자, 어느새 창이 다 깨져 있었다.
궁-.
또였다.
땅이 진동하는 소리.
다 깨진 창 옆으로는 먼저 잠에서 깨어 있던 헤라클레스가 등판을 보인 채 앉아 있었다.
“깼냐?”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돌려 판도라를 바라보았다.
소란을 느낀 건 마찬가지였는지 하르간 역시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며 일어나고 있었다.
“별일 아니다. 더 자도 돼.”
“무슨 일?”
짧은 질문에 헤라클레스는 턱짓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보다시피.”
투쾅-!
창밖 너머, 여의봉이 구름을 뚫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판도라의 눈동자 속.
여의봉 위를 내달려 뛰어올라가는 유원의 모습이 비춰졌다.
“유원?”
“철없는 두 녀석이 아침부터 요란이라 말이지.”
두 사람의 싸움은 주위에 꽤 많은 해를 끼쳤다. 여의봉 한 번이 휘둘러질 때마다 산 하나가 날아갈 지경이었고, 유원의 불꽃은 그 여의봉을 휘감고 손오공을 위협했다.
이제 와 보니 알겠다.
두 사람은 제법 멀리 있었다. 눈에 담을 수 있단 사실이 신기할 정도로 아주 멀리.
“유원? 저기 김유원이 있어?”
하르간은 눈을 비비며 가늘게 좁힌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의 표정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판도라와는 달리 그의 눈에는 유원의 모습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안 보이는데.”
“당연하지. 너무 멀어서 안 보일 거다.”
“형님이랑 판도라는 보이지 않습니까?”
“네가 정상이다. 그녀가 대단한 거고.”
유원과 손오공이 싸우는 장소는 이곳에서부터 수십 킬로는 떨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유원은 지금, 손오공과 싸우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러니 못 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헤라클레스나 판도라 정도 되는 하이랭커가 아니라면 말이다.
‘딱히 둘이 다투거나 한 것 같지는 않고.’
이런 종류의 싸움이라면 목적이 뻔히 보였다.
‘합을 맞추자는 건가.’
그렇게 잠시 싸움을 지켜보던 헤라클레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두막을 향해 날아오는 여의봉.
그것을 향해 헤라클레스가 주먹을 올려쳤다.
떠어엉-!
투확-!
날아오던 여의봉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여의봉을 쳐 낸 주먹이 저릿하게 느껴질 즈음, 저 멀리서 손오공과 유원이 말싸움을 하는 게 들렸다.
쿵-.
여의봉을 쳐 낸 헤라클레스가 땅에 착지했다. 순간 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정신없이 싸우는군.”
아마도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기에 저리 안심하고 싸우는 걸 테지만.
“하르간.”
“예?”
“판도라를 데리고 더 멀리 떨어져 있거라. 아주. 아주 멀리 말이야.”
그래도 괘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능하면 그녀 옆에서 떨어지지 말고. 죽고 싶지 않거든 말이다.”
꽈아악-.
주먹을 불끈 쥐고 유원과 손오공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는 헤라클레스.
본능적으로 하르간은 그가 저 싸움에 끼어들기로 마음먹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유원과 손오공, 두 사람만 하더라도 무서운데 거기에 헤라클레스까지.
파지짓-.
그렇게 헤라클레스의 몸에서 벼락의 힘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자.
“파, 판도라.”
하르간은 서둘러 판도라를 불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자, 얼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