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77
* * *
콰릉-!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그 아래에서 세상이 부서졌다. 헤라클레스의 주먹이 애꿎은 땅 위를 내리쳤다.
쾅-!
쩍, 쩌저저저-!
땅이 갈라지며 순간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착각이 인다. 그런 헤라클레스의 뒤로, 무수히 많은 손오공들이 나타났다.
““커져라-.””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런 손오공들을 향해.
파지지짓-!
벼락을 머금은 헤라클레스의 다른 한쪽 주먹이 뻗어 나갔다.
콰웅-!
손오공들이 휩쓸려 사라진다. 갈기갈기 찢겨지는 손오공들의 잔해가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그 가운데 온몸이 숯처럼 까매진 손오공이 여의봉을 든 채 튀어나왔다.
이 녀석은 분신이 아니었다.
콱-.
부우우웅-.
여의봉이 헤라클레스의 목젖을 노리고 찔러 왔다. 피하기엔 늦어, 헤라클레스는 주먹을 뻗었다.
그러자.
“그만.”
쉬이잇-.
화르르륵-!
위에서 수직으로 그어진 검선.
그 선을 따라 불꽃이 솟구치고, 부딪치려던 두 사람이 멈췄다.
“여기까지.”
“아, 왜!”
“아직 더 할 수 있다.”
한참 타오르던 불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힘들어서 그렇다. 내가.”
유원은 여기서 멈춰야겠다고 판단했다.
자칫 더 태우다간 걷잡을 수 없는 산불이 되고 만다. 헤라클레스 역시 한 번 싸움이 시작되면 물러섬이 없고, 손오공이야 먼저 싸움을 멈출 성격이 아니었다.
셋 중 싸움을 중재할 만한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쳇.”
“……마음에 안 드는군.”
아쉽다는 듯, 아직 한참 더 싸울 수 있다는 듯이 굴었지만 이미 두 사람의 몸 상태는 그렇지 않았다.
조금이지만 휘청거리는 손오공. 그리고 이미 온몸이 땀범벅인 헤라클레스.
둘은 분명 한계에 오고 있었다. 지난 한 달가량, 두 사람은 무수히 많이 싸웠고 한 번도 제대로 된 결판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유원은 실로 오래간만에 누군가를 쫓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제일 뒤처져 있었네, 둘은 엄청 괴물이 됐고.’
벼락의 힘을 얻어, 이제는 그 힘에 거의 적응을 마친 헤라클레스.
천축에서 여래가 걸어 놓은 긴고아의 봉인을 풀어 요괴 본연의 힘을 되찾은 손오공.
두 사람은 유원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충분히 따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그게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대충 이 정도면…….’
기억하는 것만큼은 아니어도 기대한 것만큼은 충분히 합이 맞아떨어졌다.
한 달.
세 사람이 쉬지 않고 싸워 온 시간이었다.
그 기간 동안 워낙 많이 싸운 탓에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도 다 예상이 될 지경이었고, 그건 함께 싸울 때에도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최소한 손발이 뒤엉킬 일은 없을 것이고.
뿐만 아니라 헤라클레스와 손오공. 두 사람은 모두 유원이 쉽게 싸워 볼 수 없는 강적이었다.
그들과의 싸움은 단순히 합을 맞추는 것만이 아닌, 새로운 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헤라클레스도 많이 달라졌으니 말이야.’
유원의 시선이 어딘가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헤라클레스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어느새 그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더, 벼락의 힘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처음에는 벼락을 쓰고 나면 한동안 몸에 전격이 둘러져 있었던데 비해, 이제는 그의 의지대로 전격이 금세 사라졌다.
손오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긴고아가 처음 풀린 그는 헤라클레스에 버금가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그렇게 넘쳐 나는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아직 다 쓰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슬슬…….”
손오공과 헤라클레스의 싸움을 지켜보던 유원이 입을 열자,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던 두 사람이 멈춰 섰다.
“움직일까?”
씨익-.
몸을 반대로 돌리고 있던 손오공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슬슬 이렇게 싸우던 것도 따분했던 걸까. 아니면 우보 사틀라와의 싸움이 기대가 됐던 걸까.
“넌 다 싫은데 그 신중한 성격이 특히 싫단 말이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손오공이 잠시 멈췄던 투기를 다시 끌어올렸다.
* * *
하르간의 몸에서 땀이 흘렀다.
온몸에서 황금빛의 전격이 줄줄 새어 나왔다. 아낌없이 마력을 개방해 싸웠지만, 눈앞에 있는 판도라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뭐가 이렇게 강해?’
벼락의 힘도 거의 되찾았다. 또한, 그 힘을 이용해 싸우는 법도 제법 숙련되었다.
지난 1년은 하르간에게 가장 값진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하르간은 스스로가 많이 성장했다 여겼다.
그런데.
“끝났어?”
판도라에게는 그런 게 전혀 통하질 않았다.
벼락의 힘도, 헤라클레스에게 배웠던 주먹도.
아무것도 판도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럼 이번엔-.”
팟-.
판도라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가슴이 두근거려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내가 들어갈게.”
떠엉-!
“……!”
판도라의 주먹이 하르간의 가슴을 때렸다. 가슴 흉곽의 뼈가 산산이 조각나 부서지는 느낌에 하르간의 정신이 순간 아득히 먼 곳으로 날아갔다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까드득-.
하르간은 이를 악물며 겨우 정신을 붙잡았다. 이어지는 판도라의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해, 하르간은 벼락의 힘을 온몸에 둘렀다.
파지지지-!
쾅, 쿠구궁-.
주먹 한방 한방에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겨우겨우 버티며 전격 사이로 드러난 판도라와 눈을 마주할 때면 등골이 절로 서늘해졌다.
오싹-.
알 수 없는 살기.
평상시의 판도라는 흡사 순한 양과 같았다. 하르간 역시 그녀와 그리 나쁘지 않은 관계로 지냈다.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하지만 이렇게 싸울 때면 그녀는 갑자기 맹수로 변했다.
그것도 이빨을 드러내며 자신의 목덜미를 노리는.
빠드득-.
이를 악물며 하르간이 주먹을 쥐었다.
막기만 하는 건 역시 성미에 맞지 않았다. 한 달째, 자신은 판도라의 공격을 막기에만 급급했다.
아무래도 한 대라도 때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선.
쩌어억-!
“……?”
판도라의 주먹이 하르간의 이마에 꽂혔다. 순간 흠칫하는 판도라를 향해, 하르간이 주먹을 뻗었다.
콰릉-!
그렇게 앞으로 뻗어진 주먹이 판도라의 얼굴에 맞닿으려는 순간.
콱-.
“진정해라.”
누군가의 손이 하르간의 손목을 낚아챘다.
꽈아아악-.
“끄윽…….”
“아, 미안하군.”
하르간을 멈춰 세운 건 헤라클레스였다.
다시 잡았던 손목을 놓아 주자 하르간은 급히 한 손으로 제 손목을 감싸쥐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겨우 한 대 때릴 기회였는데, 왜 말립니까?”
“기회이긴 했지. 그래도 멈춰야 했다.”
“왜입니까?”
“그랬으면 그녀도 멈추지 않았을 테니까.”
“……판도라가요?”
하르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헤라클레스 뒤에 가려진 판도라를 힐끗거렸다.
지금까지 그녀가 봐 주고 있기라도 했단 말일까.
분명,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살기는 매번 진심이었다. 하르간은 그 살기의 정체가 자신과 제우스가 꼭 닮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얼굴의 생김새하며. 다루는 벼락의 힘까지.
하르간은 세간에서 ‘어린 제우스’라 불릴 정도였으니, 판도라가 그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것도 어찌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잘한 거다.”
툭, 툭-.
헤라클레스는 하르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잠깐이나마 그녀가 진심이 되 수 있게 만들었다. 사실, 기대하지도 않았을 만큼의 성과였다.
“판도라.”
“응?”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라. 곧 다들 모일 거다.”
헤라클레스의 설명에 한참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하르간이 눈을 빛냈다.
“목적지는 어딥니까?”
지금껏 유원은 목표를 말해 줬을 뿐, 언제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은 단지 지금은 기량을 높이고 합을 맞추는데 집중하라는 것뿐이었다.
“91층.”
“91층이면…… 니벨룽겐?”
거대 길드에 속한 랭커와 플레이어들은 각 층을 대표하는 길드를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중 91층을 대표하는 길드는 니벨룽겐.
아스가르드나 올림포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탑을 대표하는 거대 길드였다.
“맞다. 그 니벨룽겐으로 갈 거다.”
“니벨룽겐으로?”
니벨룽겐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문제가 없었다.
그곳은 어쩌면 탑에서 가장 평화로운 도시일지도 모르니.
그래서였다.
“거긴, 지크프리트가 왕으로 있는 곳 아닙니까?”
그 목적지에 대해, 하르간이 의문을 품은 이유가.
* * *
헤파이스토스는 한동안 자신의 공방에 틀어박혔다.
처음에는 아주 잠시일 거라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어색해, 그는 평소처럼 망치를 손에 쥐었다.
쇠를 녹이고. 굳히고. 모양을 잡고, 두드리고.
그렇게 헤파이스토스는 다시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저벅-.
그때였다.
분명 잠겨 있었을 터인데, 헤파이스토스의 공방으로 누군가 들어온 것이.
“장사 안 한다.”
깡-!
기척을 느낀 헤파이스토스가 망치질을 하며 입을 열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온 버르장머리 없는 손님을 향해 망치를 집어던졌을 테지만, 오늘은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제법 질이 괜찮구나.”
잘그락-.
옆에 쌓아둔 자신의 새끼들을 들어 올리는 소리에 헤파이스토스는 결국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언놈이…….”
그렇게 휙, 뒤를 돌아본 헤파이스토스의 입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귀에 익었던 것 같았다.
어지간히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 끔찍한 목소리도 못 알아들은 걸 보면.
“놈이라.”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창 하나를 집어들며, 제우스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욕이로고.”
“……아버지가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오면 안 되는 곳이라도 왔느냐?”
질문에 돌아온 질문.
헤파이스토스는 의문 섞인 얼굴로 제우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 와서 화해라도 하자는 걸까?
아니면 새로운 공방의 구경이라도 하자는 걸까.
그런데.
“부탁이 있어서 왔다.”
부탁이라니.
헤파이스토스가 아는 제우스는 ‘부탁’이라는 말 대신 ‘명령’이라 말했을 것이고, 직접 오는 대신 사람을 시켜 끌고 왔을 사람이었다.
“무슨 부탁입니까?”
“이젠 다시 무기를 만들 생각을 하는 모양이더구나.”
제우스의 시선은 여전히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창으로 향해 있었다.
재료는 형편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만들어진 창이다. 단순히 손이 심심해 만든 것치고 창끝은 어린아이가 찔러도 강철을 꿰뚫을 수 있을 만큼 날카로웠다.
“그건…….”
“내게 무기를 만들어 다오. 가능하면 빨리.”
헤파이스토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단순히 ‘무기를 만들어라’는 부탁이 아니었다. 제우스는 자신이 직접 사용할 무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 옛날.
벼락을 만들기 위해 천신석을 구해다 주었을 때처럼.
꽈악-.
헤파이스토스는 망치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번에도 같은 대답을 하고 싶었다. 더 이상 당신들을 위해 무기를 만들지 않겠노라고. 난 전쟁을 위해 무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나 빨리 말입니까?”
어쩌면 운명의 장난일지도 몰랐다.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이 흔들릴 시기에, 제우스가 공방을 찾아온 것은.
“내겐 시간이 없다.”
승낙이 떨어지자, 제우스는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가능한 빨리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