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78
* * *
니벨룽겐은 한 거대 길드의 이름이며, 나라이자 도시의 이름이었다.
25층에 위치한 도시. 캐멀롯.
니벨룽겐은 원탁이 다스리는 그 도시의 확장판과 같았다.
애초에 두 길드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황금색의 머리카락. 얇은 허리와 넓은 등판.
콜로세움처럼 넓은 연무장 가운데 서서, 그는 자신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다음.”
그의 명령에 니벨룽겐의 기사들이 각자 칼을 뽑아 휘둘렀다. 그들이 휘두르는 검은 모두 같은 궤적을 그렸다.
그들을 가르치는 왕, 지크프리트는 흐트러진 기사들의 자세를 고치며 시범을 보였다.
“검지와 약지에 힘을 주고. 검날이 아닌 조금 더 검끝으로 휘두른다는 느낌으로…….”
지크프리트의 교육.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모인 열 명의 기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이 니벨룽겐의 왕이자 최강의 기사.
가르침 한마디, 한마디는 기사들에게 있어서 수십, 수백만 포인트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훈련이 이어지던 중.
“폐하!”
척, 척, 척-.
뛰지는 않지만 척 듣기에도 다급해 보이는 발걸음 소리로 다가오는 기사가 있었다.
오늘은 중요한 훈련이 있던 날.
무려 니벨룽겐의 하이랭커들의 훈련이었다. 어중간한 기사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다.
분명,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훈련에 끼어들었다는 건.
그만큼 급한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니벨룽겐에 손님이 방문했습니다.”
“손님?”
“지금 고작 그딴 일로-! 읍…….”
훈련을 방해 받은 기사가 소리치자, 옆의 동료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딜 감히 지크프리트의 일에 끼어드느냐는 듯이.
급한 성격의 기사와는 달리 지크프리트는 계속해 보라는 듯 팔짱을 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리 호들갑을 떠는 걸 보면, 보통 손님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손님이 김유원입니다.”
“김유원?”
“예. 지금 도시에서…….”
기사의 말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은 어디서, 누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렇게 요약된 이야기는 지크프리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누가’라는 부분에서.
“그래?”
펄럭-.
이어진 기사의 말에 지크프리트는 갑옷 위에 겉옷을 걸쳤다.
“훈련은 다음에 이어서 하지. 이만 해산하도록.”
* * *
니벨룽겐은 인간과 난쟁이족이 모여 사는 나라였다. 분명 도시는 일 년 중 절반이 안개로 뒤덮여 있어 도시의 외향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힘이 없던 난쟁이들은 그들 스스로가 핍박받는다 여겼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키가 작고 약한 종족은 탑에서 도태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몰라도 난쟁이족 가운데에서는 플레이어들도 그리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
난쟁이족 가운데에서는 드물게 플레이어로 선택받아 영광되게도 랭커가 되어 돌아온 자.
로빈 왯지는 고개를 들어 키가 아주 큰 손님을 올려다보았다.
“당신이 김유원이오?”
다른 이들과는 달리 로빈 왯지는 유원의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다.
허리까지도 오지 않는 작은 키. 손에 든 어울리지 않는 큰 창.
그는 니벨룽겐의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떡하니 버티고 서서는 유원을 막아섰다.
“여기서부터는 왕의 허락이 떨어져야 들어갈 수 있소.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그 즉시 적으로 간주…….”
텁-.
그때, 누군가 로빗 왯지의 입을 틀어막으며 그의 몸을 휙 낚아챘다.
한 명이 아니었다.
그들은 로빗 왯지와 함께 성문을 지키던 랭커들이었다.
유원은 잠시 조금 떨어져 소리를 죽여 아우성치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야 이 미친놈아, 지금 나라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어?’
‘넌 랭킹도 확인 안 하냐? 어? 몇 년 전 사람이야?’
‘이래서 난쟁이족들은…….’
여러 명의 랭커들에게 둘러싸여 혼나는 난쟁이.
유원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다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기다리지.”
우뚝-.
난쟁이를 둘러싸 욕과 비난을 퍼붓던 랭커들이 행동을 멈췄다.
기다린다니.
너무 순순히 받아들여서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는 반응들.
“그 녀석이야 자기소임을 다하는 것뿐이야. 뭐가 문제지?”
“그거야…….”
“무, 문젠 없지요.”
성 앞을 지키던 기사들이 유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유원은 방금 말한 대로 자리에서 기다리겠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자리에 섰다.
분주히 움직이는 기사들.
아마 소식은 진작 전해졌을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하는 건지, 경계하는 건지 모를 눈으로 유원을 바라보았다.
서로를 보고 있는 건 유원도 마찬가지였다.
저들 사이에 끼어 있는 난쟁이 하나.
로빈 왯지.
애초에 난쟁이족은 개체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100층에 달하는 넓은 탑에서 그들이 사는 공간은 고작 2개 층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직 확실한 건 없다.’
유원이 아는 미래에서,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아직은 말이지만.’
저 멀리.
지크프리트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한, 왕은 그 어떤 경우에도 뛰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는 유원이 기억하는 대로 고고히 걸었다.
그렇게 와서.
절그럭-.
“처음 보는군.”
무거운 갑옷으로 가면을 쓴 채, 지크프리트가 인사했다.
“이 나라의 왕. 지크프리트라고 한다.”
우보 사틀라에 의해 조종당할 숙주가 될 자.
그가 이 니벨룽겐을 지배하고 있었다.
* * *
쪼르르르르-.
찻물이 채워져 유원의 얼굴을 비췄다. 맑고 향이 진한, 니벨룽겐에서 가장 비싼 차였다.
한 잔에 무려 1,000포인트는 하는 그 차를. 지크프리트는 유원에게 대접했다.
“마시게. 입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입이 워낙 저렴해서. 입에 맞을진 모르겠네.”
유원은 찻잔을 들었다. 주위에는 지크프리트의 기사들이 십여 명. 그들은 유원이 차를 마시는 걸 긴장된 얼굴로 지켜보았다.
“이 멀리까진 왜 왔지?”
차 한 모금을 마시길 기다렸던 듯, 지크프리트가 곧장 물었다.
다 마셨다는 듯 찻잔을 내려놓고.
유원은 주위의 기사들을 훑어보았다.
“아직 다 안 온 것 같은데.”
“보는 눈이 많았군.”
지크프리트가 손을 저었다.
축객령이 떨어지자, 그를 호위하는 기사들이 멈칫거렸다.
제아무리 왕명이라 해도 상대는 한 자릿수의 랭킹을 가진 하이랭커.
더군다나 그는 니벨룽겐의 사람도 아니었다.
“꼭 말로 해야겠느냐? 다 물러나 있어라.”
“하지만 폐하…….”
“너희가 있더라도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
할 말이 없는 이야기였다.
지크프리트가 니벨룽겐의 왕이 된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가 제일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더군다나 상대는 김유원.
어중간한 실력의 상위 랭커 열 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끼이이-.
쿵-.
그렇게 호위기사들이 모두 나가고, 유원과 지크프리트가 마주 보고 있는 접견실의 문이 닫혔다.
접견실의 방음은 완벽했다. 대화가 새어 나갈 일은 없었다.
그래서였다.
“용인전쟁.”
바로 남들이 들어선 안 될 이름을 언급한 게.
“계획하고 있지?”
찻잔을 들던 지크프리트의 손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그는 유원과 눈을 마주하지 않고 찻잔을 들어 눈빛을 감췄다.
저 감춰진 눈은 어떻게 빛나고 있을까.
미끼는 던졌고, 이제 남은 건 그가 미끼를 무느냐 마느냐였다.
“그게 뭐지?”
역시나 이런 반응인가.
“용과 인간, 난쟁이들의 전쟁. 용을 말살하려는 목적을 가진 싸움.”
“처음, 듣는 이야기군.”
“너 지금 목소리 떨려.”
“…….”
그는 다시 차를 마셨다. 이번에는 아예 눈을 감았다.
반응을 보니 알겠다.
용인전쟁.
그건 예고치 않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모두 계획 아래에서 진행된, 지크프리트의 주도하게 만들어진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니벨룽겐의 멸망.
그걸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지크프리트 스스로였다.
“용인전쟁은 니벨룽겐을 멸망으로 이끌 거다.”
“그만해라.”
“돌이킬 방법은 있어.”
“쓸데없는 참견이다.”
“이제 부정도 안 하네.”
화아악-!
지크프리트의 살기가 유원을 덮쳤다. 평범한 랭커였다면 그대로 정신을 잃었을 것이고, 어중간한 플레이어는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럴 때 보면 그는 정말 검(劍)이었다.
한 자루의 큰 검.
그는 자신의 속내를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살벌한 분위기를 풍겼다.
“참견하지 마라.”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냐?”
“적당히 하라는 말이다.”
스읏-.
유원의 목 아래로 칼이 들어왔다.
어느새 칼을 뽑아 든 지크프리트. 그가 눈을 새하얗게 번뜩이며 물었다.
“못 알아듣나?”
“확실히 이쪽이 역린이네.”
유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적으로 두고 싶으면 더 찔러 넣어라.”
달리 말하자면 그 말은, 더 칼을 들이밀면 적이 되겠다는 소리였다.
지크프리트의 검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주 작은 차이였지만 거리가 거리인지라 유원의 눈에는 분명하게 보였다.
녀석은 자신을 적으로 돌릴 수 없다.
용인전쟁.
그 싸움에서 유원이 적이 된다면, 니벨룽겐은 필시 멸망하고 그의 목적도 이룰 수 없게 될 테니.
“……머리가 좋다더니.”
스윽-.
지크프리트는 뽑았던 검을 다시 검집에 돌려놓았다.
기습도 먹히지 않고, 협박도 먹히지 않는다. 유원은 이미 자신이 용인전쟁을 계획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미 적이 있는 그는 또 다른 적을 만들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원하는 게 뭐지? 일단 들어는 보지.”
이 판은 그가 끌려갈 수밖에 없는 판이었다.
황당한 일이었다.
니벨룽겐. 거대 길드이자 한 층을 지배하는 왕국의 왕인 자신이, 그 심장부에서 협박을 다 당하다니.
자존심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크프리트는 자존심보다는 목적을 이루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그의 다른 목적은.
“날 회유할 생각이라면 그 태도는 나쁘지 않아. 근데, 살기는 치우고.”
“귀신이네 아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유원이 바로 알아채자 지크프리트는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야 점점 더 자신이 유원에게 끌려가는 모양새였다.
“바라는 게 포인트나 권력 같은 건 아닐 거고. 뭘 주면 우리에게 힘을 빌려 줄 거지?”
“글쎄.”
“글쎄?”
“아직은 없다.”
“지금 바라는 것도 없이 여기까지 와서 그 소리를 하는 거냐?”
“그러게. 좀 더 생각해 볼까.”
“뭐 이런…….”
중요한 기사들의 훈련까지 뒤로 미루고 왔건만 이런 대답이라니.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한 지크프리트를 보며, 유원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일단은 여기까지.’
지크프리트가 용인전쟁을 미리 계획했다는 건 확인했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첫 번째 만남에서 얻을 건 대충 얻은 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서 할 일이 다 끝난 건 아니었다.
용인전쟁.
니벨룽겐을 멸망으로 이끌고 용족의 절반을 날려 버린 그 싸움도 중요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용건은 따로 있었다.
‘니벨룽겐은 우보 사틀라의 위에 세워졌다.’
지크프리트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이 나라.
유원은 눈앞에 있는 지크프리트를 바라보며 이번에는 그 자신이 눈빛을 감추기 위해 찻잔을 들었다.
‘너는 그걸 알고 있는 거냐, 지크프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