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82
* * *
보글-.
의식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작은 소리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의식이 돌아온 순간 우연히 소리가 들려온 걸지도 모르겠다.
지크프리트는 눈을 떴다. 그의 눈앞으로 작은 기포가 생겨 올라가는 게 보였다.
물속이라도 되는 걸까.
‘여긴 어디…….’
눈을 떠봤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검은 바다.
그게 바로 지크프리트가 볼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어디론가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꿈뻑-.
꿈뻑, 꿈뻑-.
검은 바닷속.
수많은 눈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오싹-.
그 시선에 한기가 느껴졌다. 절로 몸에 힘이 들어가며, 지크프리트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발뭉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행히도 발뭉은 그대로 있었다. 습관처럼 칼을 손에 쥐자 그래도 그런대로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참 신기하단 말이지.
지크프리트의 귓가로 목소리가 속삭였다.
-‘죽은 자들의 왕’이 없이도 죽은 자들을 부릴 수 있다니.
처음 듣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어디선가 한 번 들어 본 듯한.
그리고 잊기 어려운 목소리였다.
아마도…….
‘스사노오인가.’
-기억력은 좋네.
스사노오의 이죽거림에 지크프리트의 눈살이 구겨졌다.
그와는 처음 만나는 게 아니었다. 스사노오가 유원의 소환수로 붙어 있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지크프리트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검을 사용하는, 같은 검사로서.
니벨룽겐이 지금과 같은 거대한 길드가 되기 전, 두 사람은 칼을 겨눈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제대로 못 끝냈었지? 난 츠쿠요미가, 넌 따르던 기사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화륵-.
바닷속에 검은 불씨가 떠올랐다.
스사노오의 영혼.
그것이 눈앞에 보이더니, 곧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화르륵-.
칼을 찬 무인.
손에 붉은 칼을 쥔 그는 확실히 스사노오였다.
쿠사나기의 검. 거기에 달린 팔척경곡옥. 그리고 야타의 거울까지.
삼신기를 모두 갖춘 스사노오를 보며, 지크프리트가 눈을 좁혔다.
‘그때 결판을-’
“지금 낼 생각인가?”
목소리가 밖으로 나왔다.
조금씩 그 역시 이 세계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리 급할 필요는 없다. 여긴 타르타로스니까.
“타르타로스?”
그게 뭐냐는 표정에 스사노오는 그들을 감싼 바다를 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
죽음과 삶의 경계, 그 어딘가에 속해 있는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보였다.
-죽지 않고 영원히 싸울 수 있는 곳. 죽은 자들의 안식처. 죽음과 삶의 경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빠져나갈 방법은?”
-주인이 꺼내 주는 수밖에 없을 거다.
“주인?”
설마, 하는 생각.
하지만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김유원 말이냐?”
-그 말고 달리 누가 있나?
“천하의 스사노오가 누굴 주인으로 섬길 줄도 알고. 지나가던 개가 비웃을 일이군.”
-아무렇게나 지껄여라. 그런데 지금, 네 상태가 그리 여유롭지는 않을 텐데.
꿈뻑-.
수많은 시선들이 느껴졌다. 지크프리트의 시선이 힐끗, 곳곳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눈들로 향했다.
저들은 다 누구일까.
살아는 있는 걸까. 아니면 스사노오처럼 죽은 것일까.
그 생각들이 복잡하게 이어지던 중.
피잇-.
지크프리트의 몸 위로 붉은 선이 그어졌다.
흐릿해지는 몸.
다짜고짜 칼을 휘두른 스사노오를 피해, 지크프리트가 옆으로 한 발 이동한 것이다.
“급할 필요 없다며?”
-더 말이 없으니 이제 시작하는 거라 생각했다.
스사노오가 쿠사나기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가 싸움을 시작하자, 타르타로스 속의 다른 영혼들 역시 움직임을 시작했다.
스으으으-.
[‘타르타로스’가 당신을 적으로 간주합니다.]지크프리트에게 떠오른 메시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화아아악-!
타르타로스의 어둠이 지크프리트의 몸을 덮쳤다.
-이 맛있는 걸 나눠먹어야 하는 건가.
기이이잉-.
지크프리트의 검에서 환한 빛이 뿜어졌다. 발뭉이 십자가 형태로 움직이는 순간, 타르타로스의 바다를 베어 냈다.
쫘아악-!
발뭉이 뿜어낸 빛이 타르타로스의 어둠을 갈라 냈다.
산 자를 잡아먹기 위해 달려들던 영혼들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고, 그 사이에서 스사노오의 쿠사나기와 발뭉이 부딪쳤다.
쩌엉-!
그렇게 니벨룽겐의 왕, 지크프르트가 타르타로스 속에서 싸움을 시작했다.
* * *
니벨룽겐에 때 아닌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땅을 비우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기사들.
바그너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지크프리트를 구하고자 날뛰기 시작하는 기사들을 제지한 게 바로 그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제천대성의 분신에 의해 모조리 제압되었다.
그런데 쓰러진 기사들을 돌보는 도중.
바그너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기사들 중에 사망자는 없었다. 모두 기절하거나 제압되었다.
이런 경우,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뿐.
저들의 목적이 니벨룽겐을 강제로 빼앗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목적이 뭐-.’
쿵-.
지축을 울리는 발걸음 소리.
바그너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유원과 손오공, 헤라클레스의 시선이 자신의 뒤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뒤를 돌아본 바그너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허업-!”
놀라 숨을 멈춘다. 다음 순간, 바그너의 하늘이 가려졌다.
두꺼운 비늘로 뒤덮인 몸체. 여의주를 한 손에 쥐고, 붉은 눈동자를 빛내는 용.
거인과 용이 반반 섞인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저런 모습의 용족은 이 탑에 단 한 명뿐이었다.
“파, 파프…… 니르…….”
용족을 대표하는 왕 중 하나.
용왕, 파프니르.
그가 이곳 니벨룽겐에 온 것이다.
저벅-.
그리고 그런 파프니르의 앞으로는 두 사람.
그의 안내를 맡은 사람이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어.”
두 사람은 손오공의 분신과 함께 용족을 데려온 판도라와 하르간이었다. 손을 흔들어 보이는 하르간과 여전히 무표정한 판도라를 보며 바그너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하르간도 함께였다. 올림포스가 움직였던 건가?’
판도라는 알아보지 못했다만, 하르간은 몰라보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그는 최근 랭커는 물론 하위 층계의 젊은 플레이어들에게까지 인기가 급증한 미남이었다. 더군다나 랭킹에는 얼굴까지 포함되는 건지, 그는 최근 급속도로 랭킹을 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의 직계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그는 어지간한 하이랭커보다 더한 유명인이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그르르르-.
파프니르가 입을 벌리자 짐승의 것과 같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깜짝 놀란 바그너가 급히 옆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인 건 바그너뿐만이 아니었다.
주위의 다른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
파프니르의 위로는 수백에 달하는 용들이 날개를 펼치고 비행했다. 그 모습은 썩 위협적이라, 하르간은 얼굴을 팍 구겼다.
“그 소리 좀 안 낼 수 없습니까? 다들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시끄러워.”
하르간의 말에 판도라가 한 마디를 보탰다.
파프니르가 입을 다시 꾹 다물었다. 수십만 마리에 달하는 용들을 거느리는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맞아. 애들 놀래잖아.”
“싸울 게 아니라면 조금 조용히 해 줬으면 하는군.”
“벌써부터 힘 빼지 마라.”
차례대로 손오공, 헤라클레스, 그리고 유원까지.
한 마디씩을 건네는 세 사람.
유원은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두 사람 모두 파프니르에게는 부담이 되는 존재들이었다.
파프니르는 최대한 이빨을 보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미안하군.
어쩔 수 없이 말이 곱게 나올 수밖에.
“…….”
“…….”
긴장하고 있던 기사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김유원과 손오공, 헤라클레스.
그들의 힘에 굴복한 니벨룽겐의 기사들.
그리고 용왕을 비롯한 용족까지.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전력만 하더라도 탑의 역사를 쓸 전쟁을 치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싸울 생각을 않으니, 원.’
심지어는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한가로이 대화나 나누니.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확실한 것이냐?
“너희도 귀가 있으니 알 거 아니냐?”
-여기까지 벌써 손을 뻗어 와 있을 줄은 몰랐다.
“‘벌써’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 된 일이지.”
대답은 긍정이었다.
파프니르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깔렸다. 분노한 것이라도 되는지, 그는 소리 없이 이빨을 드러냈다.
유원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간이 꽤 지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물러난 상태였다.
이만하면 왕성을 비롯한 니벨룽겐의 수도 중심부에 남아 있는 거주민은 없었다.
남은 사람은 대부분 니벨룽겐 소속의 기사나 마법사들.
즉, 91층 이상의 플레이어나 랭커들뿐이라는 뜻이었다.
“시작하자고.”
유원이 힐끔, 헤라클레스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친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잠시, 세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돌았다.
그 장난스럽던 손오공도 이번에는 마찬가지였다.
유원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오공과 그의 분신들, 헤라클레스.
파프니르를 비롯한 용족들.
그리고 뭣 모르는 니벨룽겐의 기사와 마법사들까지.
아마 저 하늘 위의 용들은 어느 정도 소식을 들어서 알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니벨룽겐의 기사와 마법사들은 달랐다.
“너희들에게는 생소한 싸움이 될 거다.”
유원은 그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어야 했다.
지금부터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
어째서 지크프리트가 원한 용인전쟁 따위는 벌어져선 안 되는 건지.
“그래도 겁을 먹거나, 물러나진 마라. 그렇게 되면 죽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없는 더 많은 사람이 될 거니까.”
“무슨 소리야, 이게?”
“뭐랑 싸우려는 건가?”
잠깐의 웅성거림.
연설처럼 길지는 않았어도 유원의 말에는 꽤 비장함이 느껴졌다. 덕분에 그들 중 절반 정도는 유원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곧 있을 싸움에 대비하라는 것.
그리고 그 중에 또 절반 정도는 곧 일어날 일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최근 탑을 뒤흔드는 사건이라고 한다면 하나뿐일 테니.
“끝난 거냐?”
헤라클레스의 물음.
꾸욱, 어느새 그는 이그드라실을 깎아 만든 곤봉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래.”
유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끝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이제 시작일 뿐.
“그렇다면야-.”
파지짓-.
헤라클레스가 손에 쥔 곤봉에 황금빛의 전격이 휘감겼다. 벼락이 힘이 깃든 곤봉을 높게 들어 올리자, 하늘의 용들이 울부짖었다.
콰릉! 쿠구궁-.
곤봉을 중심으로 땅에서 몰아치는 천둥소리.
그 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니벨룽겐의 기사들이 물러섰다.
물론, 그런다고 어떻게 휘말리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어차피 거주민들은 다 물러났다.’
거주민도 아닌 91층 이상의 플레이어.
그리고 랭커쯤 되는 실력자라면야, 제 몸 하나 정도는 알아서 지키겠지.
‘그럼 이제-.’
부웅-.
그렇게 헤라클레스의 곤봉이 땅에 떨어지고.
‘우보 사틀라를 끌어낸다.’
콰아아앙-!
니벨룽겐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