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85
* * *
꿈틀-.
몇 번을 봐도 역겹기는 마찬가지였다.
석판을 둘러싸고 있는 점액질. 생명과 마력을 갈취하는 힘을 가진, 우보 사틀라의 조각.
녀석에게 어중간한 마력은 통하지 않았다.
다만.
[‘이계의 대적자’가 ‘부정확한 형태의 백치 조각’에 대적합니다.] [타르타로스가 소환됩니다.] [‘이계검’이 ‘부정확한 형태의 백치 조각’에게 강한 상처를 입힙니다.]푸화악-!
우보 사틀라의 조각이 갈기갈기 베어졌다. 꿈틀거리며 다시 엉거 붙으려는 점액질을 향해 헤라클레스가 주먹을 뻗었다.
“후웁-!”
부우웅-.
투확-!
점액들이 폭발하며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석판이 드러났다. 그렇게 점액질이 다시 들러붙으려는 순간, 판도라가 움직였다.
콱-.
석판을 움켜잡는 판도라.
그렇게 그녀가 손아귀에 힘을 주어 석판을 파괴하려는 순간.
“부수지 마!”
“……?”
판도라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그 짧은 틈은 어느새 흩어졌던 우보 사틀라의 조각이 다시 합쳐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꽈아악-.
다행히도 그녀는 그저 유원의 뒤를 졸졸 따라오기만 하는, 짐이 아니었다.
함께 있는 유원이나 헤라클레스에는 미치지 못할 테지만 그녀 역시 가진 힘만 놓고 보면 두 자릿수의 하이랭커와 비견될 정도.
판도라는 석판을 다시 감싸기 시작한 점액질을 다른 한 손으로 찢어 내고, 결국 석판을 가지고 뒤로 뛰어올랐다.
치이이-.
“윽.”
판도라가 눈살을 찌푸리며 작게 신음했다. 내려다보니 손 가죽에 뜨거운 열에 녹기라도 한 듯한 자국이 생겨 있었다.
“그러게 조심하라니까.”
스윽-.
유원이 판도라의 앞으로 다가와 손을 살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다. 유원은 안도하며 물었다.
“괜찮아?”
“응, 으응.”
어딘가 서투른 대답.
먼저 판도라의 상처를 살핀 유원은 곧 그녀가 손에 쥐어 온 석판을 확인했다.
어쨌거나 석판의 회수는 완료되었다. 헤라클레스는 약속한 대로 앞장서 석판을 되찾으려는 점액질을 막아 내고 있었다.
‘저쪽은 녀석에게 맡겨 두고-.’
유원은 판도라의 손에 쥐어진 석판을 확인했다.
이 탑에는 무수히 많은 언어와 문자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언어들은 대부분 시스템에 의해 해석되어 읽혀지거나 귀로 들려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읽을 수 없습니다.] [해석이 필요합니다.] [해석이 불가능해 정보에 접근할 수 없…….]시스템이 해석할 수 없는 언어.
당황할 건 없었다.
어차피 읽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왔으니까.
“판도라.”
스윽-.
유원은 판도라에게 받았던 석판을 다시 그녀에게 건넸다.
“읽을 수 있겠어?”
“이거?”
석판 위의 글자를 확인한 판도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못 읽어?”
왜 이런 것도 못 읽느냐는 되물음.
유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읽을 수 있는 거야?”
“응. 있어. 조금 해석이 어렵긴 하지만.”
석판 위의 글자를 따라 판도라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확실히 그녀는 우보 사틀라가 지켜오던 이 글자를 읽고 있었다.
‘정말이었네.’
가능성은 반 이하.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일 할은 될까 싶었다.
당연했다.
그녀가 이 글씨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어디까지나 확신 없는 가설일 뿐이었으니까.
랭커가 된 직후부터 줄곧 아우터로 살아온 판도라. 비록 지금은 아우터의 힘이 사라졌다지만 그녀는 탑 안의 랭커와 아우터, 그 경계 어딘가에 위치한 존재였다.
만약 이 석판의 글씨를 읽을 수 있는 권한이 아우터에게만 있는 거라면.
그 경계 어딘가에 걸쳐 있는 판도라라면 혹시나 글씨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해석이라고 하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모르겠어. 얼마나 걸릴지는.”
“금방 할 수는 없나 보네.”
가능하다면 여기서 다 알고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었다.
“부서지지 않게, 잘 가지고 있어.”
“응!”
“아니, 아니! 그렇게 세게 안지는 말고. 금방 부서지니까.”
유원은 석판을 꽉 안는 판도라를 급히 제지하고는 헤라클레스와 막아 내고 있는 우보 사틀라의 조각을 돌아보았다.
쩌어억-!
투확-!
벼락을 손에 두른 헤라클레스의 주먹에 산산이 흩어지는 점액질.
그것으로부터 벼락은 헤라클레스의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뿐, 제대로 된 충격을 가할 수는 없었다.
툭, 투두둑-.
시간이 흘러 금세 다시 합쳐지는 조각을 보며 헤라클레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석판을 부서야 하는 건가.”
잠깐 시간을 끌어 달라던 유원은 대체 뭘 하는 건지.
그렇게 힐끗, 헤라클레스가 유원과 판도라가 있는 곳을 돌아보자.
‘어디로 간 거지?’
그곳에는 판도라가 석판을 손에 든 채 혼자 서 있었다.
저벅-.
그때, 헤라클레스의 옆으로 유원이 스쳐 지나갔다.
뭘 하려는 걸까.
녀석은 분명 자신이 맡기로 했건만, 유원은 마치 한 발 물러나 있으라는 듯 자신의 앞으로 나섰다.
꿈틀거리며 합쳐지는 우보 사틀라의 조각을 향해 걸어가는 유원의 뒷모습에 헤라클레스는 잠시 숨을 골랐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척-.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유원은 걸음을 멈추었다.
녀석도 무언가 낌새를 느낀 건지 석판을 향해 집착에 가깝게 움직이던 걸 멈추었다.
우보 사틀라가 말을 걸어온 건 그때였다.
-당신이 왜, 여기에?
한 번 들어 본 질문이었다.
아마도 ‘이계의 대적자’를 얻을 때 치렀던 시험에서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우보 사틀라가 보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니었다.
“그러게. 왜일까.”
저 질문을 들으니 얼마 전의 일이 떠올랐다.
유원에게 그것은 불과 한 달 남짓한 시간밖에 되지 않은, 그리 멀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것이, 1년 이상으로 상대적으로 제법 긴 시간이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
그것은 아주 짧은 꿈 같았다.
처음에는 많이도 헷갈렸다.
그게 진짜였는지, 아니면 정말 오랜만에 꿈을 꾼 건지.
그 꿈속에서 유원은 단풍을 만났다.
-나는-.
무릎 정도 높이에 불과했던 작은 꼬마는 유원에게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
타르타로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깊고 어두운 곳에 혼자 앉아, 단풍은 등을 돌린 채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다.
마치.
그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애쓰기라도 하는 듯이.
쏴아아아-.
길지 않은 꿈 끝에서 단풍은 흩어졌다.
마치 그 어둠 속에 녹아 사라지듯.
녀석은 무정형(無定形)의 존재로 변했다.
‘대체 어디로 간 건지.’
어렴풋이 짐작 가는 건 있었다.
정신을 잃고 툴카의 이름을 빼앗거나, 우보 사틀라가 자신을 통해 다른 누군가를 보는 것을 보면 모를 수가 없었다.
단풍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어쩌면 녀석은.
‘그 녀석이 중얼거린 이름일지도 모르지.’
스으으으-.
유원의 주위에 나타난 그림자.
그 속에 감춰진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이빨들.
유원은 그것을 힐끔거렸다.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이빨을 드러냅니다.] [신력이 소모됩니다.]화아아악-!
그림자가 거대한 둥지를 가득 채울 듯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둥지를 가득 메운 그림자.
유원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지켜보려던 헤라클레스가 당황해 다시 주먹을 쥐었다.
“또 대체 뭐가…….”
턱-.
까닭 모를 위협에 벼락의 힘을 끌어올리며 들어 올린 주먹 위로, 작고 얇은 손이 얹어졌다.
고개를 돌린 헤라클레스의 눈에 판도라가 들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확신하듯 말했다.
“괜찮을 거야.”
“…….”
그녀는 뭘 또 아는 걸까.
보물이라도 되듯 석판을 꼭 끌어안은 채로 유원을 바라보았다.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부정확한 형태의 백치 조각’을 향해 이빨을 드러냅니다.]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낯선 이름에 의문을 품습니다.]신력이 급격하게 소모되는 게 느껴졌다.
이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이렇게 컸다.
무정형의 혼돈.
처음에는 포식자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던 그것이 누군가의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름의 크기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덩치를 불려 나갔다.
신력은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힘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속도면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터였다.
유원은 눈앞에서 불명확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우보 사틀라, ‘부정확한 형태의 백치 조각’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일까.
‘별로 탐이 나질 않는다.’
유원은 여러 이름을 볼 수 있게 됐고 그 이름들을 취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그 후부터 유원은 여러 이름을 보고는 그 이름을 탐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히 더 큰 힘을 원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원이 사용하고 있는 이름.
무정형의 혼돈이 녀석들의 이름을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저건…… 내게 필요한 이름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존재.
우보 사틀라라는 진명을 가진 아우터가 가지고 있는 이름, ‘부정확한 형태의 백치’는 조금도 탐이 나지 않는 걸까.
남들보다야 잘 안다지만, 유원이 아우터에 대해 아는 건 채 반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감에 맡기는 게, 최선이었다.
“부숴 버려.”
슈아아악-.
유원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둥지를 가득 메웠던 시커먼 어둠이 우보 사틀라의 조각을 덮쳐 갔다.
콰득, 콰드득-.
석판을 감싸고 있던 우보 사틀라의 육신이 이빨이 씹혀져 나갔다.
처음 유원은 저 이빨이 단지 살아 있는 생명의 육신을 꿰뚫고 짓이기는 것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육신이 아닌 이름을 씹고 뜯는다.’
무정형의 혼돈이 가지고 있는 이빨이 단순한 스킬이 아닌 이름의 힘이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일까.
이빨은 ‘부정확한 형태의 백치 조각’이라는 이름을 뜯고, 파괴하며 한껏 녀석을 짓밟았다.
이름을 잡아먹는 이름.
아우터의 천적.
그것이 유원이 처음으로 가진 이름의 정체였다.
‘저게 단풍이 그 녀석의 본체였나? 아니면…….’
콰드드드-.
이름을 씹어 짓이기는 무정형의 혼돈을 통해, 유원은 단풍을 보고자 했다.
그 기묘한 꿈과 함께 갑작스레 사라졌던 녀석.
그 녀석을 찾을 단서가 어쩌면 저것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꿀꺽-.
이렇게까지 저것을 집중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깊게 보면 볼수록 유원은 점점 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만 하더라도 ‘무정형의 혼돈’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데 들어가는 신력이 어마어마했다.
진즉에 ‘부정확한 형태의 백치 조각’은 더 이상 이름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지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원은 이름을 사용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스으으-.
이름을 물어뜯는 혼돈 속.
흐릿하게나마 유원의 눈에는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를 인지한 순간.
‘보여.’
흐릿했던 무언가는 언제부터였는지 의식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또렷해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혼돈 너머.
크기를 다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어둠 속.
그 안에서 단풍은 하나의 거대한 옥좌에 앉아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아주 천진한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