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87
* * *
콰릉, 쾅-!
시끄러운 소리가 귀를 울렸다.
서서히 눈을 뜨자, 시야에 가장 처음 판도라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녀가 입을 벌려 무어라 묻는 게 보였다. 귀는 물이라도 잔뜩 들어간 듯 먹먹했다.
흐려진 시야가 천천히 돌아오며 판도라의 어깨 너머로 보라색의 하늘이 보였다.
분명 자신은 우보 사틀라의 속에 있었을 터.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모르겠다.
“괜찮아?”
희미하던 판도라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어쩐지 아까부터 입모양이 계속 똑같더라니.
그녀는 계속 자신의 상태를 물었던 모양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 걸 보면 몸 상태는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뭘 그리 힘들게 싸웠다고 몸이 힘들까. 문제는 몸이 아닌 정신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나 여기 있다.”
휘익-.
무언가 유원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유원은 양 손을 뻗어 급하게 그것을 받았다.
두 개의 석판.
우보 사틀라의 석판 세 개 중, 두 개가 이곳에 모였다.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그걸 부수기 전까지 저 녀석은 멈추지 않을 모양이니까.”
투쾅-!
구우우웅-.
손오공, 그리고 손오공의 분신들이 쏘아낸 여의봉이 하늘에 뜬 거대한 고래를 밀어냈다.
경로를 방해 받았기 때문인지 하늘의 고래, 우보 사틀라는 거대한 입을 쩍 벌리며 울음을 토해냈다.
-우오오오오오-!
지이잉-.
하늘을 울리고 고막이 흔들릴 정도로 큰 울음소리였다.
녀석의 울음소리에 몇몇 상처를 입고 체력이 떨어진 랭커들은 아예 정신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우보 사틀라.
녀석은 유원이 손에 쥔 석판을 다시 빼앗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외부의 충격으로는 죽이지 못하는 건가.’
불사(不死)의 존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우보 사틀라를 죽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석판의 파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아우터에 관한 비밀이 적혀 있을지도 모르는데다, 유원의 본능은 절대 석판을 부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유원이 하나 남은 석판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때.
스윽-.
판도라가 석판 하나를 더 건넸다.
제일 처음 구한 석판.
세 개가 한 자리에 모이는 건 처음이었다. 불규칙한 모양의 석판이 한 자리에 모이니, 원형의 꽤 반듯한 모양 만들어졌다.
“진짜로 다 모았군.”
유원이 힐끔, 헤라클레스를 보았다.
군데군데 판도라의 손처럼 화상이라도 입은 듯 상처를 입긴 했지만 격전을 치른 것치고 그는 꽤 멀쩡해 보였다.
눈이 마주친 헤라클레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도 지치긴 한 듯, 땀을 흘리며 헤라클레스가 유원의 의문에 답했다.
“위치는 대충 네가 알려줬으니 말이다. 판도라에게는 고맙다고 해라. 내내 널 업고 다닌 게 그녀니까.”
“그래?”
유원이 판도라를 돌아보았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유원은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쉽지 않았을 건데.’
말로는 업고 다녔다지만 아마 그냥 업고 다니기만 한 건 아닐 것이다.
우보 사틀라의 몸속에는 수많은 아우터들이 기생충처럼 살아갔다. 헤라클레스가 제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석판을 구하는 동안 그것들까지 다 신경 쓸 수는 없었다.
아마 놈들을 막으며 자신을 지키던 건 판도라의 역할일 터.
그리고 세 개의 석판을 모두 모은 건 아마-.
‘헤라클레스, 이 녀석이 한 일이겠지.’
우보 사틀라의 공략은 팀 단위로 이루어졌었다. 다행히 지금은 우보 사틀라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석판의 위치를 알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 어찌할 만한 공략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라클레스는 그 안에서 자신을 보호하며 세 개의 석판을 모두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전부터 느끼긴 했던 거지만.
‘차라리 제우스가 돌아오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헤라클레스의 힘을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있던 미래에 제우스가 살아 있었더라면.
그리고 자신이 아닌 그가 과거로 왔었더라면, 조금 더 일이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헤라클레스는 아까부터 조금 의아한 눈으로 유원을 바라보았다.
유원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어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 괜찮은 거냐?”
확실히 갑자기 기절했으니 걱정이 될 만도 했다.
“몸은 멀쩡해. 걱정할 것 없다.”
“아니, 몸 말고.”
툭, 툭-.
헤라클레스가 머리를 가리켰다.
“여기 말이다.”
“머리?”
“아까부터 정신은 없는데 알아듣지 못할 말을 계속 중얼거리던데.”
“내가 그랬나?”
“이쪽은 물론, 시스템도 알아듣지 못할 종류의 말이었다.”
콰릉-!
천둥소리가 들려온 건 그 때였다.
제법 먼 곳. 소리가 들려온 거리는 짐작하건데 근두운을 타고도 몇 분은 걸릴 만한 거리였다.
그 소리와 동시였다.
헤라클레스가 급해진 것이.
“정신 차렸으면 난 이만 가 보마.”
그렇게 말한 헤라클레스는 몸을 휙 돌렸다.
그렇게 하라고 대답한 유원의 눈에 헤라클레스의 등이 보였다.
반쯤 녹아 내려 살에 달라붙은 가죽옷.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앞쪽뿐이었다.
‘하긴. 멀쩡할 리가 없지.’
제 아무리 헤라클레스라 하더라도 우보 사틀라와의 싸움이었다.
휴식이 필요하지 않을 리 없었다. 아마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는 와중에도 그는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며 싸웠을 것이다.
뿌득-.
‘한심하다.’
입술이 으깨지며 핏물이 흘렀다.
기껏 우보 사틀라를 잡겠노라 움직였으면서 한심하게 정신을 잃고 짐만 되다니.
이래서는 자신이 뭘 얻었든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판도라.”
“응.”
“이거, 읽을 수 있다고 했지?”
유원이 글자가 적힌 석판의 앞면을 판도라에게 내보였다.
다시금 글씨를 확인한 판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틈틈이 해석은 해 뒀어.”
“그럼 부탁해. 한 시라도 빨리.”
이 안에 무슨 기록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무정형의 혼돈’이 ‘???의 기록’에 관심을 보입니다.]단풍이 가지고 있던 이름.
아우터의 천적과도 같은 이름이, 눈앞에 있는 석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 *
콰우웅-!
한 줄기 벼락이 위로 솟아올랐다.
하늘이 온통 보라색으로 변한 가운데. 벼락이 치는 저 땅 위에만 유일하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
저 멀리, 헤라클레스의 눈에 보이는 장소는 온통 황금빛의 전격으로 가득했다.
벼락을 몸에 심은 만큼, 헤라클레스는 저 힘이 어느 정도로 대단한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이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속으로 제우스를 아버지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
제우스에 대한 유원의 이야기만이 맴돌고 있었다.
“제우스는 아마 오래 버티기 힘들 거다.”
“……힘들다니?”
“죽을 거라는 말이다.”
식사를 하던 중, 헤라클레스는 유원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제우스가 죽기는 갑자기 왜 죽는다는 말이냐면서.
빠직, 손에 들고 있던 수저를 부러뜨리며 헤라클레스가 물었다.
“제대로 설명해 봐라.”
“아우터의 힘은 마력과 섞이지 않는다. 두 개의 힘은 섞이지 않고 오히려 다른 한쪽을 잡아먹지. 쉽게 말해, 독이 된다는 거다.”
“그렇다는 건, 마력이 이길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내가 아는 그 녀석이 제우스에게 득이 되는 짓을 했을 것 같지는 않아. 아마도 제우스로서는 버틸 수 없는 상위 개체의 힘을 주입했겠지.”
생각나는 게 있었는지 유원은 ‘아마도…….’라 중얼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물론, 헤라클레스에겐 그게 누구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부분의 아우터는 이름을 들어도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시간이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는 거냐?”
“오래 버티면 십 년. 짧으면 1년 정도.”
“그 안에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건가?”
“녀석을 죽일 방법은 아직 나도 몰라. 죽인다 하더라도 제우스가 살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애초에 유원이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어떻게 하면 제우스를 살릴 수 있는지 같은 걸 의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이다.”
만약 제우스의 죽음에 무던할 수 있다면 모를까.
유원이 아는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에게 증오만큼이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미래의 헤라클레스는 몇 번이나 자신의 손으로 제우스를 몰아냈던 걸 후회하고, 또 과거로 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다짐했던 녀석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결코 제우스의 죽음에 덤덤해질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의 제우스는, 미래의 헤라클레스가 알던 제우스와는 달랐으니 더더욱.
꽈악-.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의식하지는 못했다.
심장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벼락이 터져 나온 건 그 때였다.
콰우우웅-!
화아아악-!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른 벼락이 순간 거대한 돌풍을 일으켰다.
같은 벼락의 힘이라 해도 이건 차원이 달랐다.
양 팔을 교차해 제우스의 벼락으로부터 몸을 보호한 헤라클레스의 발걸음이 뒤로 조금씩 밀려 나갔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런 위력이라니.
대체 저 중심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버지는…….’
살아있는 걸까.
저벅-.
헤라클레스는 천천히 벼락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느새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눈으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치직, 치지-.
벼락이 휘몰아친 곳.
서서히 황금색으로 번진 전격이 걷히며 그 가운데 제우스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미동은 없었다.
한 손은 앞으로 뻗은 채,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서 있었다.
상대는 어디 있는 걸까.
“…….”
헤라클레스는 제우스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덩치가 큰 만큼 헤라클레스의 발소리는 꽤나 큰 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일부러 발소리를 낮춰 걷는 데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치 제발 듣고 이쪽을 봐 달라는 듯.
헤라클레스는 평소보다 더 큰 발소리를 내며 제우스를 향해 다가갔다.
“늦었다.”
조금 지친 듯한 목소리.
제우스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헤라클레스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제우스의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황금색으로 반짝이던 눈은 어디로 가고, 그는 회색빛의 탁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바로 앞을 헤라클레스의 몸이 가로막았음에도 제우스는 미동이 없었다.
‘키가…… 이렇게 작았었나.’
어쩐지 오늘따라 아버지가 작게 느껴졌다.
키도, 등도.
모두 자신이 더 컸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올려다보는 기분이었는데.
‘나는 아버지를 증오합니다.’
선 채로 숨이 끊긴 제우스를 보며, 헤라클레스는 참으로 그답다 싶었다.
“화가 나느냐?”
제우스를 죽인 자.
어리석은 혼돈이 물어왔다.
“……아니.”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제우스는 아레스를 시켜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런 아버지이기에 죽어서도 슬프지는 않았다.
조금도.
아주 조금도.
“그럼 여긴 왜 달려왔지?”
“달려오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분명 걸어왔다.
분명 그의 발은 조금도 급하지 않았다. 그러니 제우스의 목숨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왜 왔냐고?”
파짓, 파지지-.
헤라클레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황금빛의 전격.
곤봉을 움켜잡으며 그가 어리석은 혼돈을 향해 소리쳤다.
“싸우러 왔다, 이 개자식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