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92
“저 얼굴은 뭔가 사연이 많은 얼굴인데.”
손오공이 또다시 이름 모를 과일을 꺼내 입에 물었다.
그는 유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아니면 뭔가 숨기는 얼굴인가?”
분명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유원이 손오공, 그리고 헤라클레스와 눈이 마주쳤다. 화안금정을 천 년이 넘게 달고 다니더니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녀석의 눈썰미는 제법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쓸데없는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
“내가 뭘?”
뻔뻔한 유원의 되물음에 손오공은 게슴츠레 눈을 뜨더니 물었다.
“아까 그거.”
다행히도 손오공이 묻는 건 제우스와 관련된 게 아니었다.
“대체 뭐였냐? 아니, 누구였어?”
“아, 그거.”
그거라면 그렇지 않아도 말하려고 했었다.
“내가 데리고 다니던 꼬마 있지?”
“단풍인가? 이름 이상하던 걔?”
“어.”
“……설마 걔라고 해라?”
손오공의 머릿속에 유원의 옆에 달라붙어 있던 단풍의 모습이 떠올랐다.
헤라클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인형 같던 녀석. 조금 더 자랐다지만 고작해야 세 살에서 네 살 정도로 보이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방금 전 유원의 몸에 깃들었던 녀석이라니.
“내가 본 건 좀 다른 녀석이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좀 다르지. 생긴 것도, 힘도, 이름도.”
“그런데 왜?”
“단풍이 그 녀석의 일부인 건 사실이니까.”
아자토스에 관해서는 말해 줄 게 많지 않았다.
그에 대해서는 유원도 아직 좀 더 알아가야 할 문제였으니까.
다만, 그의 존재가 폭탄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괜찮은 거냐?”
“뭘?”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라며.”
유원은 몇 번,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에서. 그리고 툴차와의 싸움에서 유원의 몸에는 다른 누군가가 깃들이었다.
단풍은 분명하게 말했다.
위험할 거라고.
아마도 녀석이 말한 ‘위험’이란 게 이거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녀석의 이름을 알았어.”
그래도 달라진 건 있었다.
“전이랑 똑같지는 않을 거다.”
이름.
지금까지 유원은 그것의 중요성을 그리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름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그것이 어디에서, 누구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그걸 알게 된 이상, 분명 다르다.
‘아자토스.’
처음 판도라를 통해 이 이름을 들었을 때, 유원은 그것이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은 분명 이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아자토스는, 단풍이 중얼거리던 바로 그 이름이었다.
‘이 이름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아자토스.
아자토스.
아자토스…….
몇 번이고 그 이름을 속으로 반복해서 새겼다. 마치, 단풍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유원의 머릿속에서 처음으로, 이기는 싸움이 그려졌다.
* * *
타닥, 타다닥-.
모두가 잠이 든 시각.
헤라클레스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손오공은 배를 한껏 채우더니 곧장 잠에 들었다. 코를 어찌나 고는지, 그 소리를 듣던 판도라가 손오공의 콧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아 버릴 정도였다.
휴식이 필요한 건 헤라클레스 역시 마찬가지.
이렇게까지 방전이 된 기분은 처음이었다. 온몸의 마력이 바닥을 보인 것을 넘어, 몸이 물을 잔뜩 먹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다 잔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모닥불을 내려다보던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들었다.
유원이었다.
“할 말 있으면 해라.
“무슨 할 말?”
“제우스 말이다.”
죽은 사람처럼 생기가 없던 헤라클레스의 눈이 흔들렸다.
제우스.
그 이름이 헤라클레스의 속을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할 말 없다.”
어리석은 혼돈에게 그랬던 것처럼 헤라클레스는 이번에도 자신의 속을 감췄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유원은 짧게 혀를 찼다.
그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던 건 아니었다.
“있을 텐데.”
“없다니-.”
“어차피 한 번 들었던 말인데, 또 들어 주마.”
할 말이 없어지는 말이었다.
이미 유원은 제우스에 대한 헤라클레스의 감정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속이려고 해도 속일 수 없는 상대였다.
헤라클레스는 길게 한숨을 뱉었다.
“난 아버지가 증오스럽다.”
“난 아버지가 증오스러웠다.”
시간이 다를 뿐, 역시 같은 사람이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말도 마찬가지였다.
“내 어머니가 죽은 게 그 자식의 계획 때문인데. 좋아할 수가 있나.”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알크메네.
제우스는 단 한순간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어. 어머니도, 나도.”
“그래. 그래서 너도 제우스를 버렸지. 아들로서, 아버지를.”
“젠장. 잘 아네.”
어색한 욕설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로서 헤라클레스의 욕을 듣는 건 두 번째.
아마 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욕을 하게 된 이유는 그것만큼 헤라클레스의 심정을 잘 대변할 만한 말이 없어서일 것이다.
“맞다. 난 그때 아버지를 버렸다. 용서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싸웠다.”
헤라클레스의 머릿속에 제우스와 처음 싸우던 날이 떠올랐다.
올림포스 부수기.
포세이돈, 하데스, 그리고 유원과 함께 힘을 합쳐 제우스와 싸우던 그날.
어떤 심정으로 그 싸움에 임했었는지를 생각하면 지금 이 기분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분이었다.
그날, 헤라클레스는 진심으로 제우스를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스가르드의 개입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내 손으로 아버지를 끌어내렸으니, 이제 멈추자고. 남이 되자고 생각했다.”
헤라클레스는 어느새 제우스를 자연스럽게 아버지라 부르고 있었다.
다시 예전처럼 말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계속 나를 보더군. 난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졌다. 태생부터 시작해 기간토마키아에서 빌어먹게도 영웅으로 불렸고, 이 힘까지 이어받았지.”
치지, 치지지-.
헤라클레스의 손에서 전격이 튀었다.
본래 거인화 외에는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지 않던 그였다. 마력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어떤 속성도 가지지 않아, 헤라클레스는 탑에서 대표적인 괴력사로 통했다.
그런 그에게 제우스의 벼락이 전해졌다.
제우스는 그것으로 비로소 헤라클레스를 완성시켰다.
“어이없지 않으냐? 이딴 것도 아버지라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들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제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어떠한 배려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로서 당연히 주어야 할 애정도. 한 명의 사람으로서 받아야 할 존중도.
하지만 제우스와 헤라클레스는 달랐다.
“아버지는 나도, 어머니도 사랑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말끝을 흐리던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떨궜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던 모양이다. 기분이 이런 걸 보면.”
핏줄. 가족. 아들. 아버지.
탄생과 함께 시작된 관계에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 마법이 걸려 있다.
헤라클레스는 그것을 끊어 내려 했었다.
결국 끊어 내지는 못했지만.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세간에 알려진 제우스는 분명 위대한 왕이었다.
그는 하데스, 포세이돈과 함께 올림포스를 세웠으며 탑의 여러 지역을 개척해 플레이어와 거주민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훌륭한 왕이되 결코 훌륭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헤라클레스만은 제우스의 죽음에 슬퍼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말하고 나니 좀 낫군. 한결 나아.”
“그렇다면야.”
“…….”
타닥, 탁-.
헤라클레스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두 사람은 다시 한동안 모닥불을 내려다보았다. 아마 복잡한 기분을 달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유원은 헤라클레스의 옆에 있어 줄 생각이었다.
드르렁-.
멀리까지도 들리는 손오공의 코골이 소리.
저 멀리서 하르간이 잠에서 깨어나 손오공의 코골이에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지한 대화에 이어진 그 웃긴 상황에 유원은 픽 웃고 말았다. 헤라클레스 역시 헛웃음을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문득.
‘그런데 이상하군.’
유원은 지금껏 잊고 있던 사실을 하나 떠올렸다.
고개를 돌려 손오공을 돌아보았다. 손오공은 판도라의 멱살에 잡히고도 여전히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여기서 제우스가 죽었다면, 그 녀석이 저쪽에는 왜 있는 거지?’
* * *
보라색으로 뒤덮인 하늘.
그 아래 검게 물든 땅 위, 작은 연못에 오딘의 얼굴이 흐리게 비춰졌다.
“미미르, 그 녀석…….”
머리가 하얗게 변한 그는 낚싯대를 손에 잡고는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대체 뭐 한다고 나 보고 여기서 이러고 있으라는 건지.”
오딘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낚싯대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어리석은 혼돈과의 싸움에서 돌아오지 못한 비슈누의 유품이었다.
김유원이 과거로 돌아가고 한 달 후.
돌연 잠에서 깨어났던 미미르가 오딘에게 물었다.
“비슈누 녀석의 낚싯대는 어디 있지?”
“낚싯대? 그건 왜 찾는 거냐?”
“그거 가지고 얼른 가까운 연못으로 가라. 가서 낚시를 해.”
“갑자기 무슨 소리냐?”
“잔말 말고…….”
억지로 잠에서 깨어났던 건지 미미르는 다시 잠에 들었다.
이렇게 녀석이 억지로 깨어난 적이 있었나?
무리를 해서까지 지식의 저주에 저항해 잠시나마 깨어난 거라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비슈누가 남긴 낚싯대를 가지고 연못에 온 지도 벌써 몇 달째.
“지루하군.”
“그래 보인다.”
저벅-.
오딘의 뒤로 인기척 하나가 다가왔다.
제법 큰 발소리였다. 그는 오딘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헤라클레스였다.
“낚시는 잘돼 가나?”
“잘 모르겠군. 물고기 하나 살지 않는 연못에서 대체 뭘 낚으라는 건지.”
“그래도 다른 녀석들은 네가 부러운 모양이다. 이런 세상에서 한가하게 낚시나 하는 게 쉽나?”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야.”
“그런가?”
헤라클레스는 아무 돌멩이나 주워 연못에 던졌다.
가볍게 던진 것이건만 돌멩이는 제법 멀리까지 날아가 수십 번씩 수면 위에 튕겨졌다.
“김유원이 돌아간 지 벌써 반 년 정도 됐나.”
“반 년? 내가 여기서 낚시만 한 지도 벌써 그렇게 됐나?”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니 시간 가는 줄 모르나 보군.”
“그런가?”
그리 재밌는 대화는 아니었다. 애초에 헤라클레스가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런데도 워낙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탓인지 오딘은 이런 대화조차도 퍽 재밌게 느껴졌다.
“다음은 손오공이 가기로 했다.”
헤라클레스의 말에 오딘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아니라?”
“그렇게 됐다.”
“그 원숭이 녀석은 영 불안한데.”
김유원 다음으로 과거로 돌려보낼 녀석.
그 후보는 당연히 손오공과 헤라클레스 중 한 명으로 거론되었다. 애초에 후보가 셋이었다가 둘로 줄어들었으니 이제 남은 게 둘뿐이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딘은 헤라클레스를 추천했다. 하지만 정작 그 헤라클레스는 손오공을 추천해, 다음 주자는 손오공으로 정해졌다.
“나보다는 그 녀석이 나을 거다.”
“돌아가면 제우스와 싸울 자신이 없어서 그렇겠지.”
“부정은 않지.”
“물러 터져 가지고는. 쯧.”
여전히 손오공을 보내는 게 불만인 듯, 오딘은 헤라클레스에게서 고개를 휙 돌렸다.
확실히 손오공은 분명 강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 같은 구석이 있었다. 헤라클레스 역시 그걸 알지만 그는 먼저 가 있는 유원을 믿었다.
“아무튼 미미르가 깨어나는 대로 손오공을 보낼 예정이다. 한 달 정도 후가 될 거니, 그 전에 너도 작별 인사 정도는 해 둬라.”
“그렇지 않아도 이 지긋지긋한 낚시질도 슬슬 멈춰야 하나 생각하던 참이다. 뭐가 걸리긴…….”
팽-.
그때였다.
몇 달 동안 내내 반응이 없던 비슈누의 낚싯대에 무언가가 걸린 신호가 온 것이.
“걸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