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93
* * *
“네 녀석도 거래를 했나 보군.”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이 끝나고 어느 날, 제우스를 찾아온 미미르가 했던 말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알고 찾아왔던 건지.
“나와도 하지 않겠느냐? 거래.”
“거래라는 말만 들어도 열불이 난다. 썩 꺼져라.”
“손해는 아닐 거다. 일단 들어나 보는 게 어떻더냐?”
안 그래도 몸 안에 들어온 기운이 육체와 마력 기관을 갉아먹는 중이라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 뻗어 온 미미르의 손은 제우스의 신경을 더 민감하게 만들었다.
“아마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거다.”
파짓-.
하마터면 그 말에 제우스는 미미르의 몸 위로 벼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하지만 오딘과의 관계, 그리고 미미르의 능력을 떠올리며 가까스로 참아 냈다.
그는 현자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 뛰어난 능력 탓에, 지식의 저주에 갇혀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할 정도일까.
제우스는 냉정을 되찾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무슨 거래를 말하는 거지?”
“살 방법을 알려 주겠다.”
“아까는 없을 거라고 하더니.”
“거기가 여기는 아닐 테니까 말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거기는 어디고 여기는 어디며 장소와 죽고 살고는 또 무슨 상관인지.
“네가 할 건 없다. 그냥, 이걸 가지고 있어라.”
콱-.
그 의문을 풀기도 전.
미미르는 대뜸, 하나 남아 있는 자신의 눈을 손으로 뽑았다.
다소 흉측한 짓거리에도 불구하고 제우스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왜 이런 걸 자신에게 주느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가지고만 있으라는 건가?”
“그래. 그냥 가지고만 있어라.”
제우스는 미미르의 눈을 받아 손에 쥐었다.
촉감은 생각보다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눈알이라기보다는 눈알 모양의 구슬을 손에 쥔 느낌이었다.
묘한 느낌도 들었다.
현자 미미르의 눈동자.
세간에 도는 소문이 생각났다.
미미르가 가진 지혜는 그의 머리가 아닌 눈에 깃들어 있다고.
제우스 역시 그 소문을 얼핏 들은 적이 있지만 그리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근거가 부실한 소문의 경우, 헛소문일 확률이 열에 아홉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 눈만 있으면 네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건가?”
“그 소문을 믿으냐?”
“믿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막상 손에 들어오니 기대는 되는군.”
“쓸데없는데 쓰지 말고 가만히 가지고 있어라. 그리 어리석은 놈으로는 보이지 않다만.”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건 딱히 거래라고 할 것도 없군.”
“그 대신.”
아니나 다를까, 역시 원하는 게 있는 모양.
한쪽 눈이라면 미미르 역시 제법 큰 걸 내놓은 셈이다. 제우스는 그 대가로 적잖은 걸 내놓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 좀 되라, 이것아.”
“……싸우자는 건가?”
미미르의 말에 제우스가 쌍심지를 치켜세웠다.
사람이 되라니. 그 말이 귀에 영 거슬렸던 탓이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제우스의 마력에 미미르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잃어버린 두 눈을 감으며 몸을 돌렸다.
저 상태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눈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어리석은 혼돈과의 싸움이 끝난 후.
제우스는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하게도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고, 머릿속에 생각들만 나열되었다.
그러던 중.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생각나는 건 역시 미미르가 손에 쥐어 줬던 눈이었다.
‘쓸모가 없을 리 없다.’
미미르는 이 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였다.
오죽하면 아스가르드가 탑 최강의 길드가 될 수 있었던 건 오딘의 힘보다는 미미르의 지혜 덕분이라는 말이 있을까.
제우스 역시 미미르의 그런 능력은 인정했다.
그랬기에 더더욱 제우스는 이 눈의 쓸모가 자신의 기대대로이기를 바랐다.
‘거기가 여기는 아닐 테니까, 라.’
그 말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실마리를 잡은 건 아마 조금 시간이 지나서였을 것이다.
보글-.
조금씩 정신이 뚜렷해지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이런 느낌을 언제 받았었더라.
떠오르는 얼굴이 한 명 있었다.
‘……작은 형님인가.’
포세이돈과 한참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절.
그가 자신을 몇 번 물에 가둔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빈번히 그 속에서 빠져나왔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분명 남아 있었다.
스으으-.
시야가 서서히 돌아왔다.
분명 자신은 죽었다.
어리석은 혼돈이 가진 이름을 하나라도 더 파괴하기 위해 육체를 걸레처럼 쥐어짜 힘을 쏟아부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
숨은 막혔지만 딱히 괴롭다거나, 물에 빠져 있는 게 두렵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역시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더 많은 관심이 갔다.
‘어디냐, 여긴.’
팽-.
무언가 자신을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몸에 힘은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제우스의 시선이 불순물이 섞여 잔뜩 탁해진 물속에 있는 얇은 실로 향했다.
‘실?’
쏴아아아-.
깨닫는 순간, 물살을 가르며 제우스의 몸이 위로 당겨져 올라갔다.
서서히 희미한 빛이 보였다. 누군가 실을 당겨 제우스의 몸을 위로 끌어올렸다.
첨벙-.
“낚았다!”
“……사람인데?”
제일 먼저 들린 두 사람의 목소리.
털썩-.
낚싯바늘에 건져진 제우스가 땅에 떨어졌다. 바닥에 얼굴부터 떨어진 탓인지 제법 충격이 있었다.
“쿨럭!”
물을 많이 먹었는지 기침이 나왔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여전히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몸까지 물을 먹은 것일까. 온몸이 무겁고 마력은 바닥을 드러내 텅 빈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고통은 없었다.
‘살아 있기는 한 건가.’
살았다는 확신.
다른 무엇보다도 몸속에 들어와 사라지지 않던 그 빌어먹을 기운이 사라져 있었다.
‘살았군.’
잃어버린 마력이야 차차 회복될 터.
어떻게든 몸에 힘을 주자, 그래도 팔에 힘이 들어가 몸을 일으킬 정도는 됐다.
저벅-.
그때.
제우스를 향해 두 사람이 가까이 걸어왔다. 목소리는 들었지만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물속에서 빠져나온, 아니.
물속에서 건져 올려진 제우스는 그 두 사람의 생김새를 먼저 훑었다.
“진짜였군.”
“…….”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물론,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었다.
오딘은 제우스가 기억하는 것보다 흰머리와 주름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뿐이지 넓은 등과 떡대는 여전했다. 무엇보다 자신 외에 저런 위엄을 가진 왕은 이 탑에 달리 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옆에 있는 헤라클레스는, 한쪽 팔을 잃어버린 데다 눈매가 제법 사나워져 있었다.
“여긴…….”
설마 싶긴 했지만 진짜였다니.
잠시 말끝을 흐리던 제우스는 완전히 보라색으로 변해 버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확신하듯 말을 이었다.
“미래로군.”
* * *
오딘과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존재를 의심했다.
갑작스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왔으니 당연했다. 믿기 힘든 일인 건 제우스도 공감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부분은 제법 쉽게 해결되었다.
“미미르가, 눈을?”
완전히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납득까지 안 될 건 아니었다.
미미르라면.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로노스를 희생해 유원을 과거로 보냈고, 그 연구의 성과를 통해 미미르가 눈을 사용해 다음 주자인 손오공을 이어 과거로 돌려보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손오공을 통해 과거의 미미르가 알게 됐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가능할 터.
‘하필이면 왜 이 녀석인가가 문젠데…….’
오딘은 제우스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살아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얼마 전의 싸움으로 죽은 비슈누, 아수라는 물론이고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우마왕도 그쪽에는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대체 왜.
‘미미르가 이 녀석을 보냈다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텐데.’
미미르는 깨어 있는 시간이 짧을 뿐, 깨어 있기만 하면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아군이었다.
적어도 오딘은 지금껏 그가 해 온 일 중 틀린 일을 본 적이 없었다.
의심할 생각은 없었다.
그 산 증인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힐끗-.
헤라클레스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안다.”
말을 하며 조금 쉰 덕분인지 제우스의 안색은 처음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래도 나와 싸우는 건 나중으로 미뤄라. 지금은 다른 적이 있으니.”
“싸울 생각 없습니다. 당신은 제게 아무것도 아니니.”
“그럼 더 좋구나.”
제우스의 대답에 헤라클레스의 표정이 잠시간 흔들렸다.
그래. 역시 이런 사람이었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아버지이지만 가족은 아닌.
애초에 기대한 게 잘못이었다.
“미안하다.”
툭, 내뱉어진 한 마디.
헤라클레스의 눈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누구 입에서 나온 소리지 이게.
‘제우스가…… 아닌 건가.’
그가 아는 제우스는 절대 사과 따위를 할 위인이 아니었다.
가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헤라클레스는 다시 제우스의 눈을 보았다.
틀림없다.
그는 진짜다.
“……됐습니다.”
대답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전 여기서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아버지는 저로 인해 왕좌에서 내려왔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복수라면 이미 했다.
그때 이미 화는 모두 날려 버렸다.
남은 건 죽이지는 말 걸 그랬다는 후회였다.
“아버지와 전, 그걸로 끝났습니다.”
“……그러냐.”
제우스 역시 사과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죽고 나서야 들었던 생각이었다.
자신의 계획에 따라 그리 원치 않는 삶을 살게 된 헤라클레스. 그리고 그런 헤라클레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에게 해 온 몹쓸 짓들.
그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한 마디 정도는 할 걸 그랬다고,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시기는 이미 많이 늦었다. 여긴 자신이 살던 현재가 아닌 미래. 눈앞에 있는 헤라클레스는 그로부터 대체 몇 년이 더 지난 헤라클레스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후련하긴 하구나.”
자존심을 조금 굽히고 속이 개운해졌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사람 좀 되라는 미미르의 말이 이런 거였나.’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야, 오딘!”
어디선가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뭐야, 헤라클레스도 있었네?”
손오공이 오딘을 찾아왔다.
그는 오딘과 헤라클레스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그 역시 나름대로 다른 동료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저벅-.
손오공이 가까이 다가왔다.
제우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렇게 벌써 그를 마주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자연스레 손오공의 시선이 제우스에게로 향했다.
“이 녀석은 누구냐?”
“이 녀석은…….”
질문을 받은 오딘은 잠시 말끝을 흐리며 머리를 싸맸다.
자신들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이 멍청한 원숭이에게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하나 벌써부터 막막했다.
그렇게 잠시 대답을 못하던 때.
“제우스다.”
제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당연히 손오공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우스? 저 녀석 아빠 말이냐?”
“그래.”
“죽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잘못 알았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대답.
제우스가 헤라클레스를 돌아보았다.
“내가 죽었다니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그렇지 않으냐?”
“……?”
“……?”
이번에는 헤라클레스와 오딘의 표정이 달라졌다.
뭐 어쩌란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