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97
* * *
유원은 손오공을 제외하면 탑에서 가장 많은 양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했다.
당연했다.
미래에서 함께했던 동료들과 함께 세운 계획 중, 꽤 많은 부분에서 마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했다.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스탯이란 곧 힘을 수치화한 것이었으니까.
그 스탯을, 그리고 그 스탯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마력을 높이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원이 지닌 스탯 중 가장 높은 스탯이 마력인 건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럴 예정이었지만.
[신력 : 197]예상치 못한 스탯 하나가 끼어들었다.
처음 그 스탯을 얻었을 때만 해도 들었던 의문 하나.
‘이건 대체 어디에 쓰는 건지.’
당시에는 신력이라는 게 어떤 스탯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름을 쓰는 데 필요한 스탯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유원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이게 만약 마력이면…….’
197.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수치의 스탯.
‘그 천둥벌거숭이 녀석도 이겨 볼 수 있겠는데.’
그리고 오늘.
그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 *
화아악-!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늑대가 손오공을 향해 달려 들어왔다. 전보다 훨씬 빠르고, 강한 치악력을 가진 늑대였다.
콰드드-.
애초부터 목표는 몸을 물어뜯는 게 아니었다는 듯, 자연스레 여의봉을 물어뜯는 늑대.
손오공의 몸이 뒤로 밀려 나갔다.
늑대는 어느새 몸집을 불려, 작은 바위산만 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끄으으으…….”
팔을 부들부들 떨며 버텨 낸다.
몸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 거대한 이빨을 막아서며, 작지만 공포를 느꼈다.
저 이빨에 물어뜯기면.
욱씬-.
가슴의 상처가 아파 왔다. 유원의 칼에 베인 상처였다.
““커져라.””
손오공의 분신들.
투콰과광-!
열 명에 달하는 분신들이 쏘아 낸 여의봉이 늑대의 몸을 밀어냈다.
틈이 생겨났다고 숨을 돌릴 새는 없었다.
바닥에 납작 깔려 있던 손오공이 튕기듯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슈카악-.
콰가가각-!
어디선가 날아온 몇 가닥의 검은 날붙이가 방금 전, 손오공이 누워 있던 곳을 베어 냈다.
아주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오싹, 소름이 돋았다. 긴장감이 한층 더해졌다.
‘베였으면…… 죽었나?’
죽음.
꽤 오래 잊고 있던 단어를 자꾸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설마하니 그 단어를 누구도 아닌 가장 가까운 동료인 유원과 싸우면서 생각하게 되다니.
스으으-.
불길한 예감에 손오공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깜깜해진 주변.
지하에 가까운 땅속은 그렇다 쳐도 해가 쨍쨍하던 하늘까지 검게 변했다.
‘언제 이렇게 된 거지?’
깨달았을 때는 늦었다.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맹수가 자신을 향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은 혼돈 속에 들어왔다.
저벅-.
그 껌껌한 어둠 속, 유원이 손오공을 향해 걸어왔다.
꿀꺽-.
“너…… 누구냐?”
손오공의 질문에 유원이 멈칫하며 다가오던 걸음을 멈췄다.
“누구긴.”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나다.”
나.
그리 명쾌한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의 눈이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씨익-.
손오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맞네, 김유원.”
표정이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그만큼 오랫동안 함께했고, 손오공은 눈썰미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났으니깐.
메에에-.
메에에에-.
그때였다.
손오공의 주위로 수많은 양 떼 무리가 나타난 것이.
‘슈브 니구라스?’
산양들의 존재감.
그것은 손오공뿐만이 아니라 그의 동료들 여럿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은 트라우마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슈브 니구라스는 죽었고, 지금은 그 이름 중 하나가 유원에게 넘어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유원이 사용해야 할 이름은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가 아니었다.
“야, 이걸로 싸우려고 한 게 아닌…….”
말을 잇던 손오공의 붉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르다.
이곳에 나타난 산양들은 슈브 니구라스가 거느리던 산양들이 아니었다. 보라색의 털을 가진 산양들과는 달리, 이들은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뭐냐, 이거?”
“혹시나 했는데, 되네.”
혹시나 했다니.
어쨌거나 이게 슈브 니구라스가 지니고 있던 이름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딱 그거만 확실했다.
‘뭔 일이 일어난 거야, 지금?’
손오공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수십 개의 물음표들.
메에에-.
주위의 산양들은 그런 손오공을 향해 다가와 얼굴을 비볐다. 순간, 그것들을 향해 여의봉을 휘두를 뻔했던 손오공은 그것을 꾹 참았다.
“잘 참았다.”
메에에에-.
유원이 가까이 있는 산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나도 잘 제어는 안 돼.”
“이것들, 진짜 괜찮은 거냐?”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
그것은 본래 슈브 니구라스를 대표하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두려운 점은 막강한 본체의 힘뿐만 아니라 하이랭커급의 산양들을 천 마리씩이나 거느리고 다닌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힘을 유원은 다른 이름을 이용해 만들어 냈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뭘 얻은 거야, 대체.’
스윽-.
손오공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이런 거랑은 대체 어떻게 싸워야 하나…….’
쩌어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거대한 혼돈 속에 숨어 있는 거대한 괴물.
우보 사틀라를 집어삼켰던 괴물이 자신의 발밑에 있었다.
이건 도무지 이길 수가 없다. 싸워 보기도 전부터 패배를 확신한 건 이번으로 두 번째였다.
두근-.
심장이 거세게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릴 지경이었다.
눈동자의 동공이 쭉 찢어진다. 저런 걸 상대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공포나 긴장감을 뛰어넘는 즐거움이 몸을 떨게 한다.
스윽-.
산양을 쓰다듬던 손오공이 손을 치웠다.
“역시 아무래도 상관없어.”
“상관없다니?”
“내가 언제 그리 깊게 생각하면서 싸웠다고.”
척-.
손오공이 다시 여의봉을 유원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일단 부딪치고 보는 거지.”
유원은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고 불타고 있는 손오공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역시 바보였다.
분명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었다. 싸우다 보니 이기는 것뿐이지.
패배도, 그리고 죽음도.
손오공에게는 걸림돌이 될 만한 게 아니었다.
“가끔은 이런 무식한 점이 도움이 될 때도 있네.”
스윽-.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는다. 유원이 싸움을 포기하자 덩달아 손오공 역시 여의봉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엥? 뭐야?”
얼른 칼을 들지 않고 뭐 하느냐는 표정.
어림도 없다는 걸 보여 주려는지 유원은 아예 칼을 집어넣어 버렸다.
“덕분이다.”
“뭐가?”
“네가 미친개마냥 날뛰어 준 덕분에 나도 연습이 됐으니까.”
“칭찬이냐, 욕이냐?”
“욕 같은 칭찬이다.”
빠직, 손오공의 이마에 굵은 힘줄 하나가 생겨났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머리로는 칭찬이라고 받아 들면서도 기분은 나쁘고, 알쏭달쏭한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이 웃긴 듯, 픽 웃던 유원이 돌연 듯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오공아.”
손오공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소름이 돋는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떤다.
“뭐야, 오글거리게?”
오공아라니.
천둥벌거숭이도.
원숭이도.
손오공도 아닌, 오공아라니.
언제 이렇게 유원이 자신을 다정하게 부른 적이 있었던가?
“야, 인마. 너 언제 그딴 식으로 불렀-.”
말을 하던 중.
손오공의 머릿속에 지금의 상황과 겹쳐 보이는 상황이 하나 떠올랐다.
“오공아.”
그때가 언제였더라.
아마, 어리석은 혼돈과의 싸움을 위해 전장에 나설 때쯤이었던 것 같았다.
“우리에게 승산이 얼마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 던져졌다.
질문을 듣는 순간부터 머리가 복잡해졌다.
승산?
손오공은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에 대해 유원과 미미르, 오딘이 나누는 이야기는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숫자놀음이나 예상 따위는 역시 손오공의 관심사 밖의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누구도 손오공에게 그런 걸 물어 온 적이 없었다.
그러니 막상 질문을 받으니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그, 그, 글쎄? 반반인가?”
이기거나, 지거나.
역시 손오공의 머릿속에는 그것밖에 없었다.
유원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애초에 질문을 한 게 잘못이지.
“반반은 무슨. 반이나 됐으면 이렇게 걱정은 안 하지.”
“엥? 너도 나도, 고생한 게 있는데 그것도 안 돼?”
“1할…… 정도는 될지 모르겠다.”
“1할이 얼마냐?”
“10퍼센트. 이것도 역시 많이 쳐서 생각한 거다.”
“그거밖에 안 돼?”
“벌써 까먹었냐? 그때 같이 봤던 그거.”
손오공의 몸이 움찔 떨렸다. 머리는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애초에 미래의 동료들이 함께 시계태엽을 생각하게 된 게 무엇 때문이던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세 명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중 하나는 미래에서, 그리고 하나는 과거인 이곳에서 쓰러뜨렸다지만…….
“그걸 넘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겠더라고.”
“또 사지로 가려고?”
“내가 언제 거기 들어가서 죽어서 돌아온 적 있냐?”
“그래서? 어디 가는 건데?”
“길 잃어버린 애 찾으러.”
유원은 스스로가 만들어 낸 혼돈 속을 둘러보았다.
아자토스.
그가 지니고 있던 이름.
그 속을 거닐다 보면 사라졌던 단풍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녀석을 찾으면, 아자토스라는 녀석의 힘에 대해서도 더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고.
지금은 잠시 모험을 해야 했다.
“혹시-.”
손오공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녀석들처럼 될 생각이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넘어가 줬으면 좋았으련만. 손오공은 매번 이런 불편한 때에는 눈치가 귀신같았다.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이름을 쓰면 쓸수록 느껴지는 게 있었다.
이건 결국 녀석들의 힘이었다. 어쩌면 쓰면 쓸수록 녀석들에게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크로노스.
바로 그처럼.
“판도라는 어쩌고?”
가는 길을 붙잡으려는 걸까.
손오공의 질문이 몸을 돌리던 유원을 잠시 멈추게 했다.
이상하게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목이 턱 걸렸다.
그렇다고 사랑, 애정. 그런 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동료애 같은 게 조금씩 생기고는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자신에게 집착을 보이는 그녀를 생각하니 발이 잠시 멈추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네가 잘 좀 부탁한다.”
지금부터 자신이 갈 곳이 안전할지 어떨지, 그건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데려갈 필요는 없겠지.’
저벅-.
말이 너무 길어졌다.
더 지체할 이유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간다.
유원은 자신의 걸음이 향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예지안도, 화안금정도 통하지 않는 깊은 혼돈 속.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에 입장합니다.]이름을 사용할수록, 더 깊은 곳을 볼수록 점점 더 뚜렷하게 보였다.
녀석은 분명 이곳에 있다. 아자토스, 그 이름을 계속해서 중얼거리면서 어울리지도 않는 어떤 옥좌에 앉은 채로.
단풍이.
그 녀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