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0
유원은 헤파이스토스가 건넨 칼을 받아 들었다.
탁한 검신.
무게는 적당했다. 모양과 무게 중심 역시 잘 잡혀 있었다.
부족한 게 있다면 하나, 헤파이스토스가 말한 것처럼 마나 전도율이 최악이라는 것뿐.
[이름 없는 칼]# 여러 재질을 섞어 만든 칼이다. 마나 전도율은 최악이지만 날은 잘 벼려져 있다. 도축용으로 쓰면 될 듯하다.
이건 아이템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물건이었다.
평범한 쇠로 만든 검만 하더라도 웬만큼 마나를 받아들인다. 아니, 헤파이스토스가 작정하고 만든다면 평범한 쇠로 만든 검이라 해도 보통 검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유원의 손에 있는 검은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거기 들어간 것들은 무기보다는 방어구를 만들 때 쓰는 것들이다. 마나 전도율이 나쁘다는 건, 마나에 대한 저항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하자면 작정하고 마나 전도율을 낮추기 위해 만든 무기라는 뜻.
“뛰어난 실패작을 만드는 게 성공이라면, 그건 꽤 뛰어난 성공작이다. 내 장담하지.”
최고의 실패작.
그렇기에 헤파이스토스가 성공작이라 자신할 수 있는 물건.
유원은 시범으로 검에 마나를 흘려 보았다.
[마력검이 활성화됩니다.] [마력검의 활성화에 실패합니다.] [알 수 없는 힘이 마나를 차단합니다.]이이잉-.
검이 잘게 흔들렸다.
유원이 주입한 마나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속에 갇혀 있었다. 곧이어 검은 스펀지처럼 유원이 뿜어낸 마나를 빨아들였다.
스킬이 실패했다.
확실했다.
이건 실패작이었다.
그것도 최고의.
“마음에 드네요.”
착-.
유원은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나았다.
스킬의 효과가 극단적으로 줄어들 거라고 기대했는데, 아예 스킬 자체가 실패해 버릴 정도라니.
이런 걸 갑옷으로 만들었다면 마나에 대한 저항력이 상당히 강한 갑옷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페일, 타르, 흑요석, 현철. 정말로 방어구에 쓰는 광물들을 섞어 만들었군.’
유원은 대장장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랭커가 되고 아우터 갓들과 싸우며 무수히 많은 아이템을 만져 보고 그것들을 다뤄 보았다.
그만큼 대충이나마 어떤 종류의 물질을 섞어 어떤 아이템들을 만드는지 알고 있었다.
이 아이템은, 검이라기보다는 검의 모양을 한 갑옷에 더 가까웠다.
“덕분에 나도 재밌는 도전이었다. 이런 걸 만들어 볼 생각은 못했거든.”
당연했다.
헤파이스토스는 늘 완벽한 아이템만을 만들어 왔으니까.
이런 뛰어난 재료로 최악의 성능을 가진 검을 만드는 건, 그가 처음 망치를 잡았을 때에도 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유원은 헤파이스토스에게 아스가르드표 수표로 총 10,000포인트를 지불했다.
성능은 둘째치더라도 아이템에 들어간 재료들의 가격은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헤파이스토스의 작품이었다.
헤파이스토스는 거절했지만 유원은 기어이 그에게 값을 치르고 나왔다. 계속 공짜에 익숙해질 수는 없었다.
‘대충 준비는 끝났나.’
10층.
튜토리얼을 끝마치고 올라온 플레이어들을 가로막는 첫 번째 벽.
탑의 시험은 각 10층 구간마다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때문에 각 10층, 20층과 같은 구간을 두고 플레이어들은 ‘벽’이라고 불렀다.
물론 유원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고작 그 정도를 벽이라 느끼기에 유원의 키는 보통의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높았다.
유원은 공방의 근방에 위치한 포탈을 찾았다.
10포인트와 시험을 통과한 자격만 있다면 포탈을 이용해 다른 층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목적지를 설정하십시오.]“10층.”
이제 막 올라갈 자격을 획득한 세계.
“무림계(武林界)로 간다.”
[자격이 확인되었습니다.] [10층으로 이동합니다.]화아악-!
유원의 눈앞에 무림이 펼쳐졌다.
* * *
무림계(武林界).
그것은 10층의 세계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또한, 무수히 많은 탑의 층들 중에서도 유원이 좋아하는 세계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바다로 둘러싸인 거대한 대륙.
그곳은 강자존(强者存)에 의해 만들어진 무림(武林)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10층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험을 시작합니다.] [문파를 선택해 입문하십시오.] [선택한 문파의 시험을 통과하십시오.]10층의 시험은 다른 층과는 달리 층을 오르면서 바로 시작된다.
수천 개에 달하는 무수히 많은 문파들.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무술을 익히고, 문파의 시험을 통과하는 게 바로 이번 시험의 과제였다.
말하자면 수행의 시험.
이곳에서의 시험은 단순히 적을 쓰러뜨리거나 특별한 미션을 수행하는 걸로 해결할 수 없었다.
오직, 선택한 문파의 무공을 익히는 수밖에는.
물론…….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이 꼭 그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10층에 도착한 유원의 주위는 북적했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넓은 공터로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용검문(龍劍門)에서 사람을 모집합니다! 오직 열정만 있다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합니다!”
“낭검방(郞劍房)의 사람을 모집하오! 검을 쓰는 자라면 낭검방으로 오시오!”
“철중문(鐵重門)은 강철처럼 강인한 몸을 키우는 곳이오! 탑을 올라가는데 우리 철중문의 무학보다 뛰어난 무공은 없소이다!”
정말이지 시장판이 따로 없었다.
아직까지 문파를 고르지 못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서성이고, 그런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움직인 여러 중소 규모의 문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정작 진짜배기들은 이곳에 오지도 않거나 있더라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애초에 견식이 있는 플레이어들은 진짜배기를 알아서 찾아가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이보시오, 소협.”
누군가 유원에게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혹시 무림계는 처음이시오?”
딱 봐도 목적이 뭔지는 알 법했다.
유원은 등에 칼을 찬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는 10층에 정착한 무림계의 플레이어인 모양이었다.
무림계는 다른 층계에 비해 꽤 많은 플레이어들이 정착했다.
이유는 별 게 없었다.
단지, 살기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만.”
“오, 복장을 보아하니 실력 꽤 있는 모양이군. 혹시 검을 쓰나?”
자신의 질문에 유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었다.
“이런 우연…… 아니, 운명이라 해야 하나? 검을 쓴다면 필히 우리 창검문(蒼劍門)으로 와야 하네. 우리 문파는 말이야…….”
문파에 속한 무인이라기엔 말하는 어투가 장사꾼에 가깝다. 하긴, 요즘 무림계는 여러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유입되어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유원은 남자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렸다.
창검문.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문파였다. 제아무리 유원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하나, 수천 개에 달하는 무림계의 문파를 다 알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대 문파에서는 아마 이런 자리에 관심이 없겠지.’
아니, 있다고 해도 아마 직접 이렇게 발로 뛰지는 않을 것이다.
뛰어난 무공과 스킬, 높은 랭킹의 랭커를 배출해 낸 문파라면 굳이 장사꾼처럼 제 발로 움직이지 않아도 알아서 사람이 찾아오기 마련.
때문에 거대 문파에서 유원을 직접 찾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 세가(世家)급의 문파도 몇 군데 있군.’
유원은 창검문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너는 계속 떠들라 내버려 두고, 장내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 몇몇 거대 문파 소속의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무당파와 청성파, 제갈세가.
유원이 기억하는 거대 규모의 문파들도 몇몇 보였다.
정작 원하는 곳은 없었지만.
“창검문의 시초는 이 탑보다도 오래전…….”
주절주절 떠드는 남자의 목소리.
유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일단 당연하게도 창검문인지 뭔지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중간에 문파를 바꿀 수도 있다지만 이런 문파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쪽에서는…… 역시 이런 데에 관심이 없나.’
무공.
그것의 지금껏 시험과 보상, 레벨 업을 통해 강해지던 플레이어들이 겪는 첫 번째 난항이었다.
몸을 움직이고, 강철처럼 몸을 두드려 단련하고, 수행하여 강해져야 하는 시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시험에 영영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10층에서 멈춰 있는 플레이어도 꽤 많았다.
“그렇기에 창검문은…… 이보게, 듣고 있나?”
신나게 창검문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던 남자는 눈살을 구기며 유원을 노려보았다.
어느 순간부턴가 유원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니. 안 듣고 있었다.”
급격히 굳어진 얼굴.
“말귀를 못 알아듣는 모양이군.”
“미안하지만 그쪽에 입문할 생각은 없어서 말이야. 돌아가라.”
유원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지금 날 무시한 겐가? 나를? 우리 창검문을?”
남자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유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대단한 문제는 없는데, 왜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구는 건지.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잠시 생각하던 유원은 귀찮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변명할 생각은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군.”
“이익!”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는지 그는 유원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그는 유원을 향해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해 댔다.
“딱 봐도 비실비실해 보이는 게, 운 좋게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기고만장해 함부로 입을 놀려?”
비실비실이라니.
하긴.
남자의 덩치는 큰 편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그렇지 않아도 큰 편인 유원보다 반 뼘은 더 컸다.
10층 이상까지 올라간 플레이어인 데다 무공까지 익혔다면 싸움을 덩치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감히 우리 창검문이 어떤 곳인 줄 알고!”
남자는 유원에게 성큼 걸어오며 위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래도 완전 피라미는 아닌 모양이었다.
남자는 은연중 기운을 뿜어내 유원에게 살기를 내비추고 있었다. 진짜 죽이려는 건 아니더라도 확실히 겁을 주어 시비를 걸려는 모양새였다.
‘고작 이 정도로 진짜 화가 난 건 아닐 거고…….’
고전적인 수법이다.
‘이제 막 10층에 올라온 플레이어에게 시비를 걸고 힘을 보여 준다. 약소 문파가 실력을 과시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
아무래도 꽤 얕잡아 보인 모양이었다.
귀찮은 일에 휘말린 기분이었다.
원하던 곳이 없으니 서둘러 움직여야 하는데, 듣도 보도 못한 문파에서 시비를 걸어오다니.
“몇 층까지 올라간 놈인지는 모르지만, 패널티가 두렵지 않나? 게다가 이 일이 알려지면 문파에 좋을 것도 없고.”
10층의 세계에 소속된 여러 문파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이제 막 10층에 올라온 탑의 플레이어들을 건드리지 말 것.
그것은 무림계가 탑에 정착하고,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관습이었다. 그리고 그 관습을 어긴 문파는 반드시 징계에 처해졌다.
그것이 무림맹(武林盟)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민심을 잃어 추가적인 플레이어의 영입이 어려워지든.
어느 쪽이든, 무림계의 문파가 플레이어를 건드는 건 일종의 금기나 다름없었다.
“흥! 제아무리 그렇다 해도 강호의 법도가 있는 법이다. 몸담고 있는 문파를 욕보이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이제 와서 그리 빌어 봤자…….”
“아니, 됐다.”
저벅-.
남자는 유원이 자신을 향해 한 걸음을 다가오자 중간에 말을 멈췄다.
“말로 해결할 생각 없으면 됐고.”
좋게 말로 타이르는 건 한 번이면 족했다.
유원의 눈빛이 바뀌었다.
좁혀진 거리만큼 오싹, 한기가 느껴졌다.
눈을 마주한 남자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을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무슨 놈의 눈빛이…….’
분명 이제 막 10층에 올라온 플레이어일 터다.
그런데 마주 보고 있는 눈빛은, 과거 먼발치에서 한 번 본 적 있던 랭커의 것과 같았다.
“뭐 하고 있어?”
유원을 바라보는 남자의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유원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들어와.”
저벅-.
유원이 한 걸음, 남자를 향해 더 바짝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가 이젠 한 뼘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순간.
“헉-!”
화악-!
창검문의 남자가 깜짝 놀라 유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