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01
* * *
[포인트를 모두 소진하였습니다.]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 축 늘어진 기분.
어리석은 혼돈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편안한 느낌에 솔솔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서둘렀으면 좋았을 뻔했나.”
기간토마키아. 라그나로크. 천마대전과 니벨룽겐…….
계획했던 것들이 대부분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좀 더 일찍 벽을 허물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츠츠츠-.
화아아악-!
머리맡에서 느껴진 기척에 어리석은 혼돈이 상체를 일으켜 뒤쪽을 돌아보았다.
기를 쓰며 어떻게든 이쪽으로 넘어오려는 아우터들.
그중 절반가량이 경계를 통과하지 못하고 몸이 잘려 나가거나 반대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벽이 허물어졌으나, 완전히 경계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쯧.”
어리석은 혼돈은 바닥난 걸 알면서도 괜히 또다시 남아 있는 포인트를 확인했다.
역시나 포인트는 0.
그간 탑에 있는 수많은 랭커와 플레이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얻은 포인트가 이제는 전부 소진되어 사라져 있었다.
“역시 부족했군.”
과연 저들 중 더 넘어올 수 있는 건 얼마나 될까.
예상하기로는 아마 반절 정도 될 것 같았다.
“뭐…….”
잠시 쉬었다 싶어 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은 경계를 넘어오고, 반은 넘어오지 못하는 아우터들.
그들을 잠시 지켜보던 어리석은 혼돈은 잠시 생각하다 중얼거렸다.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구웅-.
때마침 멀리서 들려오는 진동 소리.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여의봉.
거기에 더해, 오딘의 궁니르가 날아드는 소리까지.
어리석은 혼돈이 고개를 들었다.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나의 아버지. 거기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예견되어 있던 그날이 왔다.
그리고 그날은 누군가에 의해 달라진 형태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달랐다.
아자토스.
그가 돌아왔으니까.
그 사실을 다시 떠올리며 어리석은 혼돈.
그 이름을 가진 아자토스의 어린 꼬마, 니알라 토텝이 말을 이었다.
“제가 곧 당신이 되겠습니다.”
모자로 뒤덮여 있는 암영 사이로 흉흉한 붉은 안광이 흘러나왔다.
* * *
달로스.
‘베일을 가르는 자’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고철 덩어리.
녀석의 몸이 무거운 여의봉에 짓눌려 묶인 순간.
콰우우웅-!
강렬한 참격이 그 거대한 덩어리의 가슴에 바람구멍을 만들어 냈다.
휘청-.
“어, 어어?”
한껏 들떠서 소리를 지르던 손오공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만약, 급히 여의봉을 줄이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
어느새 여의봉은 손오공의 손안에 감길 정도로 줄어들었다. 근두운이 아래로 떨어지는 손오공의 몸을 띄워, 오딘에게로 태워 보냈다.
“야, 인마! 거기서 궁니르를 던지면 어떡해?”
“시동도 다 되지 않은 상태였다. 위험할 정도는 아닐 텐데? 어차피 넌 불사이기도 하고.”
오딘이 안심하고 궁니르를 던질 수 있었던 건 손오공의 특성 때문이었다.
불사(不死).
옥황을 비롯한 천계의 랭커들이 그를 붙잡아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죽이지 못했던 건 꽤나 유명한 일화였다.
“그래도 맞으면 아프잖아!”
“지금 그런 걸 따질 때냐? 한참 늦어 놓고는.”
이 싸움이 시작되기 전, 오딘은 자신이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랭커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63층. 아스가르드의 하늘이 완전히 보라색으로 변했다고.
예고한 그때가 왔다고.
예상한 대로, 가장 먼저 달려온 건 손오공이었다.
그는 혼자였고 움직이는 데 거리낄 게 없었으며 근두운이라는 최고의 이동 수단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오딘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불만을 토해 내는 손오공을 무시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잔말 말고 집중하거라.”
쿵-.
분명 몸이 꿰뚫렸을 텐데.
“저놈, 아직 쓰러진 게 아니다.”
달로스는 금세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딘은 다시 궁니르를 준비했다. 손오공이 합류했으니 근접전은 그가 맡고, 자신은 멀리서 창을 던져야 포지션이 겹치지 않았다.
그런데.
“넌 저게 뭐로 보이냐?”
난데없이 근두운을 타고 내려온 손오공이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뭐라니?”
“그냥, 말 그대로. 어떻게 생긴 것 같냐고.”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손오공의 질문에 깊은 생각은 필요하지 않았다.
“거인이다.”
“거인?”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거인. 바위산이 기지개를 켜고 나니, 그렇게 변했다.”
쿵-.
거인이 다시 한 발을 내딛었다.
오딘의 눈에 달로스는 영락없는 거인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당연한 걸 괜히 묻지는 않았을 터.
“네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것이냐?”
“눈치 한번 빠르네.”
“그게 아니었다면 내게 이딴 질문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손오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녀석은 손오공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언뜻 고대의 생물로 알려진 매머드를 닮기도 했고, 또 어느 때에는 아수라보다 훨씬 더 많은 머리를 가진 괴물로 보이기도 했다.
공통점은 하나.
여러 모습일지언정 그걸 외견을 구성하는 요소는 모두 바위였다.
화륵-.
하지만 이내, 손오공의 눈동자가 붉게 변하자.
[‘화안금정’이 ‘베일을 가르는 자’의 본질을 꿰뚫어 봅니다.]그의 눈동자 속에는 달로스의 본질이 비춰 보였다.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
“저놈이랑은 내가 싸워.”
“혼자 말이냐?”
“못 할 것 같아?”
손오공은 방금 도착해서 그런지 쌩쌩해 보였다.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투기가 가득했다.
대체 저 눈에는 뭐가 보이는 걸까.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거라.”
“좋았어-!”
투화악-!
근두운을 타고 날아가는 손오공.
그의 손에서 휘둘러진 여의봉이 바위 거인의 머리를 후려쳤다.
꽈앙-!
이내, 주먹과 여의봉이 몇 번씩 충돌하며 그로 인한 충격파가 주위로 퍼져 나갔다.
인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는 그 행동에 오딘이 짧게 혀를 찼다.
“쯧…… 물어볼 게 있었는데.”
김유원은 어디로 갔느냐고.
이런 일에서는 가장 먼저 달려올 것 같더니만, 왜 답장조차 하지 않느냐고.
그 질문을 하기도 전에 손오공은 바로 움직였다.
하긴.
이 큰 전장에서 싸움광으로 알려진 그가 이만큼 참은 것도 충분히 칭찬해 줄 만한 일이었다.
‘일단 멈추긴 했나.’
쾅-!
싸우는 걸 보면 참 시끄럽게도 싸운다 싶었다.
다행히도 손오공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달로스가 전장에 끼치던 영향력이 서서히 줄어들어 갔다. 브룬힐데 역시 조금씩 체력을 회복하고 집중력이 돌아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던 전장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것만으로도 손오공은 자신의 역할을 다한 셈이었다.
다만.
‘저게 끝이면 좋으련만…….’
몰려오는 아우터들 가운데.
과연 저만한 격을 가진 아우터가 달로스 하나뿐일까 하는 생각이 들자, 고개가 저어졌다.
‘그럴 일은 없겠지.’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반격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웅-.
오딘의 손바닥이 땅을 짚었다.
구웅-.
우득, 우드드-.
위로 솟아오르는 땅.
작은 산만 한 크기로 솟아오른 지면이 구겨지고 압축되었다.
주위의 사물을 이용해 창을 만들어 내는, 단순한 마법.
하지만 오딘의 손에서 펼쳐지는 순간부터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마법이 아니게 됐다.
고오오오-.
아스가르드의 왕성을 뒤덮는 그림자.
“창이-.”
“어스 스피어(Earth Spear)?”
“서, 설마? 저게?”
떨어진 사기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위엄과 실력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 오딘은 가장 단순하고 쉬운 마법으로 최고의 위력을 보였다.
‘이 싸움은 한 번 결말을 보았던 싸움이다.’
꾸득, 꽈드드-.
창에 가해지는 강한 압력.
‘그러니까 더 처절하게.’
그것을 눈앞으로 다가오는 아우터들을 향해 내던질 준비를 하며, 오딘은 눈을 빛냈다.
‘우리는 싸워야 한다.’
투확-!
오딘의 손끝을 따라 창이, 전장을 갈랐다.
* * *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을 주었다.
아자토스는 더 이상 이름을 나눠 주지 않았다. 이미 세상의 모든 것에는 이름이 깃들었고, 차고 넘치는 존재들이 생겨났다.
저벅-.
아자토스.
아니, 그 아자토스의 몸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난 유원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어디 가십니까?
“…….”
유원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창백한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랬기에 더 놀랐었다.
‘처음에는 깜짝깜짝 놀랐지.’
고개를 들이민 슈브 니구라스의 물음에 유원은 하마터면 반사적으로 칼을 휘두를 뻔했다.
처음에는 정말 허리춤에 칼이 있었더라면 정말로 그녀에게 칼을 휘둘렀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이제는 태연한 척 대답했다.
“누가 나를 부르는 모양이구나.”
이제는 이 말투가 적응이 되다 못해, 원래 말투가 기억이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낡은 오두막.
유원은 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끼이이-.
문이 녹슬고 힘든 소리를 내며 열렸다. 예전에는 이런 것 따위에게까지 이름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었으니, 어쩌면 그건 병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그럴 만한 계기가 있었다.
“역시…….”
지금, 바로 눈앞에 말이다.
“모여들 있었느냐?”
세상을 아우르는 거대한 보라색 물결의 향연.
그것은 유원이 겪었던 종말의 확장과도 같았다. 그 긴 싸움에서도 보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아우터들이 아자토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이 광경을 전에 봤었더라면 분명 절망했을 것이다.
수없이 거대한 보라색의 물결. 하늘에 펼쳐진 무수히 많은 별들.
그것들에 짓눌리고 압도되어, 싸울 생각은커녕 주저앉아 버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랐다.
정말 놀랍게도.
‘잊었나 보구나.’
가소로워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너희 이름은 나로부터 나왔다.’
짧지 않은 시간.
유원은 아자토스의 길을 걸었다.
저들 하나하나에게 이름을 나눠 주었고 그들에게 힘을 주었다.
모든 이름은 아자토스로부터 나왔다.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이름의 총체, 그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아니, 잠깐.
‘……나라고?’
유원은 눈을 번쩍 떴다.
뒤늦게 자신이 떠올린 의식의 흐름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헷갈려서는 안 된다.
자신은 아자토스가 아닌 김유원이다. 그걸 명심해야 한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다잡았다.
일단, 지금은 할 일이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저 녀석들에게 주었던 이름을 다시 회수할 차례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손을 위로 뻗은 순간.
스윽-.
앞으로 뻗은 손이 저절로 내려갔다.
‘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저 녀석들의 이름을 모두 다시 회수할 수도 있었다.
녀석들에게 준 이름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이름들은 아직 아자토스가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자토스라는 진명이야말로, 그 모든 이름을 아우르는 심장과도 같은 이름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화아악-!
하늘의 별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무수히 많은 아우터들이 아자토스가 가진 다른 이름들을 탐내, 감히 이빨을 드러냈다.
무수히 많은 이빨에 물어뜯긴다. 날카로운 이빨의 틈 사이로 남아 있는 이름을 빼앗기는 아자토스의 기억에, 유원이 물었다.
‘왜 그런 거냐, 아자토스?’
대답을 바라지 않았던 질문.
그런데 그 질문에 대답하듯.
-멈출 거라 생각했다.
아자토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