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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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득, 콰드득-.
수많은 아우터들에게 둘러싸여, 산 채로 몸이 뜯겨지는 듯한 공포는 쉬이 잊어버리지 못할 기억이었다.
다행히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건 ‘경험’이 아닌 ‘기억’이었다.
기억에 통증이 있을 리 없었고, 소리는 들려도 이빨의 차갑고 서린 감촉은 없었다.
-멈출 거라 생각했다.
아자토스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서부터였다.
화아아아-!
주위의 풍경들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던 보라색의 물결이 모두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처음의 그 검은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
유원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늘고 얇은, 하지만 굳은살이 박혀 있는 손.
방금 전까지 보았던 마냥 하얗기만 하던 손과는 다른, 자신의 원래 손이었다.
그리고 그런 유원의 눈앞으로.
-꽤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군.
누군가 서 있었다.
유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곳은 ‘무정형(無定形)의 혼돈’ 안쪽.
허락받지 않은 자, 혹은 자격이 되지 않은 자는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었다.
판도라, 그녀가 갑작스레 나타났을 때 놀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렇다는 건.
“아자토스냐?”
이 남자는 방금 전까지 유원이 되었던 그 사람이 맞을 것이다.
힐끗-.
유원은 아자토스의 모습을 살폈다.
만약 단풍이 어른이 되면 이런 모습일까.
정돈된 하얀 백발과 머리색만큼이나 창백한 얼굴, 몸에 둘러진 검은 옷은 흑과 백이 어울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알면서도 물어보는 건 무슨 심보지?
“만나게 되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뭐지?
“단풍은 뭐냐?”
내내 궁금했다.
단풍은 대체 뭐였는지. 녀석은 왜 그런 작은 알에서 나왔는지.
그리고 왜, 녀석은 자신의 옆에서 갑자기 사라졌던 건지.
“그 녀석은 너냐? 아니면 네게서 떨어져 나온 이름?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유원은 질문을 잇던 중 말을 멈췄다.
혼자서 생각하던 여러 추측들.
하지만 어차피 아자토스를 만난 이상, 자신이 혼자 하던 추측들은 더는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그에게 해답이 다 있을 테니 말이다.
-녀석은 아자토스였다.
아자토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원이 처음 예상했던 것과 같았다.
다만.
-그렇게 될 뻔했지.
그런 아자토스의 말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뻔, 하다니?”
-나는 죽지 않는다. 죽는 것처럼 보이고, 느껴질 뿐이지.
어딘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말.
-한낱 미물인 불사조조차 불이 꺼진 잿더미 속에서 다시 부활하거늘. 나라고 그러지 못할까.
역시 유원은 이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이것도 그때인가.’
슈브 니구라스의 목을 베고, 그녀의 이름을 다시 빼앗은 건 아자토스였다.
그는 슈브 니구라스와 나눴던 이야기를 그대로 유원에게 전했다. 그리고 유원은 그 말로서 아자토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그 알이, 네 부활을 위한 매개체였던 건가.”
아자토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웃음의 의미는 과연 긍정일까 부정일까.
아자토스는 그렇게 웃더니 고개를 들었다. 이곳의 까만 하늘은 유원이 아는 바깥의 보라색 하늘과는 달랐다.
-네가 물었지? 왜 그랬느냐고.
분명 그랬다.
잠시지만 유원은 아자토스가 되어 그의 기억을 걸었다. 그의 삶은 내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마지막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랬던 걸까.
분명 아자토스는 그 모든 아우터들을 압도할 만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아까도 말했지만 난 멈출 거라 생각했다. 내게 남아 있는 이름을 다 빼앗고 나면 만족할 거라 생각했지.
“멈추기 위해서?”
고작 그걸 위해 희생했단 말인가.
“왜 그래야 했지? 그렇게 되면, 네가 힘을 잃어버릴 텐데?”
-아직 나를 다 모르는구나. 아니, 알면서도 물어보는 건가.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자토스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다만, 그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듣고자 했을 뿐이었다.
-내가 왜 그들에게 이름을 주었지?
“네가 이름을 준, 네 자식들이니까.”
-잘 아네.
알 수밖에 없었다.
잠시지만 아자토스가 됐다. 그의 기억을 가졌고, 그의 생각을 공유했다.
끔찍한 혼돈 속에서 태어나 신과 같은 힘을 가진 그의 유일한 약점.
그건 바로 자신이 이름을 내린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아자토스는 죽지 않는다.
그는 꼭 자신의 이름을 타인의 이름을 부르듯 말했다.
-다만, 다시 태어날 뿐이지.
아자토스의 시선이 유원의 발 아래로 향했다.
뭘 보는가 싶어 유원의 시선이 아자토스의 눈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익숙한 녀석이 유원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아바아-.”
“단풍이?”
유원은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단풍을 번쩍 안아 들었다. 어쩐지 전보다 제법 무게감이 느껴졌다. 키도 조금은 큰 것 같았다.
-무정형(無定形)의 혼돈. 내가 처음 지은 이름이었지.
“단풍이 말이냐?”
-그 구려 빠진 이름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군.
“네가 짓는 그 이상하고 어려운 이름들보다는 훨씬 쉽고 귀엽지.”
별다른 고민 없이 생김새 하나만 놓고 떠오른 ‘단풍’이라는 이름.
무정형의 혼돈,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 낳아지지 못한 자…….
온갖 복잡하고 어려운, 두루뭉술한 이름들.
유원과 아자토스의 작명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안 그러냐?”
“마쟈-.”
유원의 물음에 단풍은 앙증맞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단풍은 자신의 이름에 빠져든 상태였다. 탄생 이후, 한 번도 불려 본 적 없던 다른 이름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유원은 거 보라는 듯 아자토스를 바라보았다. 아자토스는 눈을 피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언짢은 듯한 얼굴.
-상관없다. 어차피 그 무엇이든 이제부터는 내가 아닌 네가 짊어져야 할 거니까.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아자토스는 죽지 않는다. 다만 다시 태어날 뿐이지.
같은 말이었지만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유원은 품 안에 안겨 있는 단풍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녀석은 분명 다음번의 아자토스가 될 뻔했던 존재였다.
-아자토스는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이름이다. 새로운 몸에 이전까지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이름이 깃들어 부활한다. 나 역시 그랬고 말이지.
기억이란 판도라를 뜻했다. 그녀가 유원에게 보여 주었던 건 분명, 아자토스가 겪었던 과거였다.
그렇다면 새로운 몸이란 건 역시.
‘이 녀석인가?’
안겨 있는 게 불편한지 팔을 휘적거리며 내려 달라는 단풍.
유원은 단풍을 아래에 내려 주며 이어진 아자토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녀석은 내가 계획한 다음 아자토스였다. 네가 있기 전까지는.
“왜 나지?”
-이 녀석이 널 걱정했다.
“나를?”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단풍이 자신을 걱정한 거야 처음 안 사실은 아니었으니.
녀석은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을 도와달라던 자신에게 위험하다며 충고했다.
그건 분명 유원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비롯된 말이었다.
-네가 아자토스가 되기를 원했지.
“고작 그런 이유다?”
-걱정한 건 아니지만 나 역시 네가 낫다는 생각은 다르지 않다.
“왜?”
-넌 나와 달리, 그들을 증오하니까 말이야.
그들.
아우터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는 아자토스의 눈빛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자신은 그들을 증오했다.
-내가 계획한 몸이 너 같은 녀석의 손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 바깥의 존재를 아는 자. 그들과 대적할 자. 공교롭게도 이리 조건이 딱 맞아떨어지다니 말이야.
아자토스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그게 바로 유원의 존재였고, 그런 그의 손에 아자토스의 첫 번째 이름이 쥐어지는 것이었다.
당황하긴 했지만 나쁠 건 없었다.
이게 운명이라면.
그 운명대로, 아자토스는 기꺼이 따를 생각이었다.
“물러 터졌군.”
유원은 이제 아자토스를 알았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도. 속으로는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도 말이다.
분명 욕을 들었을 텐데 아자토스는 웃었다.
그는 유원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그 꼬마가 내게 한 말이 있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나의 아버지’라고.
아자토스를 따라다닌, 앙상하고 마른 얼굴 없는 꼬마아이.
니알라 토텝. 아자토스에게서 ‘어리석은 혼돈’이라는 이름을 빼앗은 배반자.
그는 아자토스를 어리석다 욕했다. 아마 그가 말한 어리석음이란, 아자토스가 자신의 이름을 모두 내려놓았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맞는 말이다. 나는 어리석었다. 마음을 억세게 먹지 못하고, 녀석들이 멈출 거라는 헛된 기대를 품었다.
“너는 처음부터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은 달라.”
유원은 탑에 들어와 시험을 통과하고 랭커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플레이어들을 보았다. 처음 튜토리얼을 통과하고 1층에 도착해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무언가 각오와 결심을 가지는 자들도.
분명 그들은 처음보다 훨씬 강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을 올랐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처음 탑에 들어왔을 때가 떠올랐다.
지금 정도는 아니어도 유원은 분명 엄청난 속도로 탑을 올랐다.
각 층의 랭킹을 갈아치우며 빠르게 이름을 떨쳤다. 랭커가 될 무렵, 유원은 이미 하이랭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
더 위로 올라가고자 했던 열망 때문이었다.
“한 번 힘을 가지면 더 큰 힘을 원하지. 더 큰 힘을 가지면 또다시 더 큰 힘을 원하고, 그러다 보면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르게 되는 거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
아자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였다.
그게 바로 아자토스의 가장 큰 결점이었고, 그래서 그는 이름을 나눠 준 존재들이 자신과 다르다는 걸 알지 못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녀석이 말은 잘했네. 어리석고 어리석은 아버지라니. 잘 어울려.”
-넌 다르지 않겠느냐?
아자토스가 유원에게 거는 기대.
그건 자신과는 정반대되는 유원의 목적성 때문이었다.
-너에겐 목표가 있다.
유원은 눈을 감았다.
어리석은 혼돈과의 싸움이 끝나고,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던 그날.
크로노스가 시계태엽을 건네면서 말했다.
다시 시작하라고.
스으으으-.
아자토스의 모습이 검은 먼지가 되어 흩어져 갔다.
다리부터 허리까지, 천천히 사라져 가는 존재.
-내가 이름을 준 것들에게서 다시 이름을 빼앗고, 그들을 죽여 짓밟거라. 그게 바로 내가 널 택한 이유니까.
아자토스가 앞으로 손을 뻗었다.
언젠가 오게 될 날이 드디어 왔다.
그 긴 시간 동안 존재해 왔던 아자토스는 이제 없었다. 이제 그의 기억과 힘, 이름을 가진 새로운 존재가 탄생할 차례였다.
-이제부터는 네가 ‘아자토스’다.
파스스스-.
아자토스의 모습이 완전히 흩어져 사라졌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혼돈 속.
스륵-.
천천히 눈을 뜬 유원이 바닥을 뒹굴고 있는 단풍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이름이 각인됩니다.] [‘진명(眞名) – 아자토스’를 획득하였습니다.]처음과는 달라진. 아자토스가 깃들었을 때의 그 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