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10
* * *
유원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걸음을 옮겼다.
아직까지도 손오공, 그 녀석이 징징거리는 목소리가 머리에서 울려 대는 것 같았다.
“나도! 나도! 나도 갈 거야!”
바깥으로 나가겠다는 유원의 말에 보인 손오공의 반응이었다.
탑 곳곳에 분신을 보내는 일보단, 아무래도 탑 바깥에서 아우터들과 싸우는 게 훨씬 더 재미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애도 아니고 뭘 이렇게 징징거려?”
“쉿. 듣겠다, 그러다.”
“아악! 다 들려 이것들아!”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손오공의 의견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이곳에서 할 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자기가 맡은 일에 다하는 게 맞다.
유원은 그렇게 손오공을 떨어뜨려 놓았다.
그리고 그런 유원의 뒤로.
차박-.
터벅, 터벅-.
종종걸음으로 자신을 따라오는 판도라와 그녀의 세 배는 됨직한 덩치의 헤라클레스.
그 둘이 유원을 따라붙었다.
“그렇게 굳이 따라와야겠나?”
유원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질문에 판도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헤라클레스는 팔짱을 낀 채 말을 받았다.
“응, 굳이.”
“혼자보단 둘이, 둘보단 그래도 셋이 낫지.”
“맞아.”
언제 저리들 죽이 척척 맞은 건지.
숲은 어느덧 끝자락에 가까워져, 멀리 벽이 보였다. 유원은 한숨을 쉬며 결단코 끝까지 따라오는 두 사람을 힐끗거렸다.
‘분명히 기억은 다 옮겨졌을 텐데…….’
그중에서도 판도라.
그녀에게는 아자토스의 기억이 깃들어 있었다.
어리석은 혼돈. 그가 제우스에게 건네주었던 상자에 깃들어 있던 기억들.
그 기억으로 인해 판도라가 자신에게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관성 같은 건가?’
그것보다 이 둘을 데려가도 되는 건지.
잠시 그 둘을 번갈아보던 유원은 작게 한숨을 쉬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 몸 정도는 지키겠지.’
헤라클레스는 두말할 것도 없고, 판도라 역시 어지간한 격을 지닌 아우터가 아니고서는 크게 위험할 일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건 자신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헤라클레스도, 그리고 판도라도.
둘 모두 어리석은 혼돈이 벌인 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
녀석의 계략으로 제우스는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알크메네를 죽였으며, 판도라는 천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깜깜한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들에게는 싸울 자격이 있다.
스윽-.
세 사람이 벽에 도착했다.
유원은 반쯤 금이 가 있는 벽을 손으로 짚었다.
아직 다 무너지지 않은 벽.
“돌아가긴 귀찮은데. 부수고 가야 하나?”
헤라클레스가 소매를 걷으며 앞으로 나섰다.
잔뜩 금이 간 벽. 헤라클레스는 이 정도면 충분히 부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켜 보라는 듯, 한 손을 휙휙 저으며 다른 주먹으로 벼락을 뿜어내는 헤라클레스.
하지만 유원은 비키지 않았다.
“궁금했지?”
그 대신.
유원은 헤라클레스에게 등을 보인 채 물었다.
“왜 묻지 않는 건진 모르겠지만, 눈치 볼 필요 없다.”
목소리의 억양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헤라클레스는 유원의 등을 통해 하늘 위, 보라색의 성운 앞에서 보았던 유원을 발견했다.
갑자기 사람이 변했다.
그것이 무섭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유원은 뭐가 된 걸까.
“난 아■토스가 됐다.”
유원의 목소리 중 일부가 헤라클레스의 귀에는 깨어져 들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들을 수 없었다. 그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건, 처음부터 그 이름을 알고 있거나 같은 격을 지닌 존재뿐이었다.
유원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과 함께 헤라클레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슨 기분인지, 이건…….’
놀란 나머지 한 걸음 뒤로 물러날 뻔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느낀 기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경외심, 인가.’
위대한 존재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그 경외심으로 인한 두려움.
그것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헤라클레스 역시 손오공과 마찬가지로 유원과 함께, 나란히 걷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설마하니 이만큼이나 벌어졌을 줄이야.
“몇 글자나 들었지?”
몇 글자.
유원이 언급한 ‘이름’ 중, 들린 글자의 개수를 뜻했다.
“세 글자.”
“네 글자.”
헤라클레스가 옆을 돌아보았다.
네 글자라니. 판도라가 자신보다 더 많은 이름을 들었다.
유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 글자면 많이 들었네.”
애초에 판도라는 아자토스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니, 유원은 헤라클레스가 어디까지 들을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푸스스스-.
유원의 손끝이 닿은 벽면이 서서히 녹아내려 갔다.
벽이 사라져 간다.
보고도 믿지 못할 그 광경에 헤라클레스의 주먹에서 서려 있던 벼락이 서서히 옅어졌다.
“두 글자였으면 안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유원의 눈앞에 드러난 공간.
“한 글자였으면 실망했을 거고.”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내가 그 녀석이 됐다. 아직은 내가 김유원인지, 아자토스인지 헷갈리긴 한데…….”
확신이 없는 목소리에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김유원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뭔 소트, 그게 누군데?”
“이 벽을 만든 존재.”
자신이 만든 벽이기에 허물 수 있었다.
유원은 아자토스를 간단히 설명했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 빅뱅의 점. 모든 이름의 총체.”
“그게 너라는 거냐?”
“어쩌다 보니까.”
유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벽을 향해 한 걸음 걸어갔다.
“그냥,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일단 알고는 있으라는 거다.”
벽을 지워 일행이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유원의 눈빛과 말투는 다시 헤라클레스가 알던 유원으로 돌아와 있었다.
‘힘을 사용할 때만 한 번씩 변하는 건가.’
스으으-.
말을 마친 유원이 벽을 통과해 사라졌다.
누구도 부수지 못한 탑의 경계. 그 너머로 사라져 가는 유원의 뒤로, 판도라가 망설임 없이 뒤따랐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여기 계속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헤라클레스가 그 뒤를 따라갔다.
저벅-.
* * *
같은 시각.
거대 길드, 사신수(四神獸)에는 비상이 걸렸다.
“원숭이가 왔다!”
“제천대성! 제천대성이다!”
콰앙-!
단단한 기와집이 무너져 내렸다. 여의봉은 단숨에 기와집을 움푹 주저앉게 만들었다.
“막아라!”
“어차피 분신이다!”
사신수.
네 명의 하이랭커를 대표로 이루어진, 40층에서 제법 영향력을 발휘하는 길드.
그들은 제천대성의 분신을 막아서며 그와 싸울 각오를 마쳤다.
이유는 단 하나.
“우린 아스가르드의 협조에 응하지 않는다.”
“전쟁? 지들끼리 하라 그래. 우리야 뭐…….”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좋지. 이번 일로 아스가르드나 올림포스의 힘이 약해지면.”
“우린 중립이다. 혹시라도 어떤 놈이든 협조를 구해 오면 그 즉시 돌려보내. 불가피하다 싶으면 무력을 써서라도 말이지.”
길드를 대표하는 네 명의 하이랭커들의 명령이었다.
그들이 염려한 대로 아스가르드에서는 직접 사람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손오공의 분신들이 각 길드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고작해야 분신이었으니까.
하지만 오산이었다.
“잔챙이들 말고, 대가리 나와!”
부우웅-.
길드 소속의 랭커들만으로 여의봉을 휘두르는 손오공을 막기란 역부족이었다.
나오지 않으면 아예 길드를 몰살이라도 시켜 버리겠다는 듯. 손오공은 계속해서 난동을 부렸다.
결국.
화르르르-!
붉게 치솟아 오른 불길.
여의봉을 휘두르던 손오공이 행동을 멈추고 불길 위를 바라보았다.
날개를 펼치고 뜨거운 불길을 뿜어내는 하이랭커.
한 쌍의 붉은 날개를 펼치고, 아름다운 붉은 머리를 휘날리는 여인.
사신수(四神獸)의 하이랭커, 주작.
그녀는 손오공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무 난동을 부리는군.”
“드디어 등장들 하시는구먼.”
화아아-.
시원한 바닷내음과 함께 땅이 꿈틀거렸다. 날카로운 바람이 태풍이 되어 사방을 감쌌다.
주작뿐만이 아니었다.
사신수를 대표하는 하이랭커들.
주작과 청룡, 현무와 백호.
그들이 모두 손오공의 앞에 나타났다.
“건방진 원숭이의 분신아. 여기가 어디라고 그리 난동을 부리느냐?”
“어린놈의 자식이 건방지게.”
“우린 중립이다. 입장은 충분히 밝혔을 텐데?”
각자 한 마디씩 거드는 사신수의 하이랭커들.
손오공은 그들의 말에 귀를 후비며 대꾸했다.
“중립이 아니라 방관이겠지. 니들도 알 거 아니야? 요즘 보라색 하늘이 군데군데 나타났으니까.”
“이런 건방진-!”
“건방이고 나발이고, 알잖아? 이 싸움이 단순한 길드 간의 싸움과는 다르다는 거.”
이건 세계와 세계의 싸움이었다.
고작 아스가르드와의 싸움이 끝났다고 해서 아우터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스가르드가 멸망하면 다음이 있을 거야. 그리고 다음, 또 다음이 있겠지.”
사신수도 알고 있었다.
아우터의 목표는 이 탑이었고, 아스가르드가 패하면 언젠가 자신들의 차례가 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패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아스가르드가 이길지도 모른다.
또한, 그 과정에서 아스가르드와 올림포스가 약해질지도 모른다.
자신들, 사신수가 탑의 주체가 될지도 모른다.
“결국 아스가르드의 뒤에 숨어서 안전하게 있겠다?”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오공의 눈이 둥글게 휘어졌다.
“니들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야.”
이 싸움으로 다른 길드가 망가지는 걸.
그로 인해 가만히 앉아 자신의 위치가 높아지는 걸.
그리고 그건, 자신의 차례가 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기대에서 기인한 결정이었다.
“결국 너희는 이 결정을 후회할 거다. 내가 알아.”
사신수.
가장 마지막까지 동맹을 거절한 고집 센 녀석들.
“그러니까 난, 여기서 그냥 돌아갈 생각이 없어.”
강요로 인한 협력은 옳지 않다.
그런 생각으로 인해 미래에서는 하나로 힘을 합치지 못했다.
적어도 손오공이 나서기 전까지는 그랬다.
“알겠냐? 이 이기적인 새끼들아.”
“감히!”
“여기가 어딘지도 알고 주제넘게!”
“분신 따위가!”
구구구구-.
네 명의 사신수들이 내뿜은 마력이 땅을 뒤흔들었다.
가장 랭킹이 높은 주작은 무려 두 자릿수에 달하는 하이랭커. 또한, 다른 세 명 역시 200위 안쪽에 속하는 하이랭커들이었다.
하지만 상위권의 하이랭커 네 명이 내뿜는 마력에도 손오공은 그리 겁을 먹지 않았다.
당연했다.
“싸우기 전에 혹시나 해서, 정말 혹시나 오해하는 건가 싶어서 물어보는 건데…….”
황당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손오공.
“니들, 진짜 내가 분신으로 보여?”
“……?”
“……?”
당황하는 눈치들.
감히 날 상대로 무슨 배짱들이냐는 손오공의 물음에, 땅을 온통 다 뒤집어 놓을 것처럼 들썩이던 마력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피슈-.
김빠진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마력.
정적과 함께 사신수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손오공과 가장 가까이 있던 주작이 입을 열었다.
“시…… 간 좀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