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12
* * *
치지지-.
심장을 중심으로 벼락의 힘이 끓어올랐다.
몸속에 내재된 황금빛의 전격이 팔을 타고 흘러 주먹에 깃들었다. 눈빛이 이글거리며 주먹을 뻗은 건 그때였다.
콰릉-!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주먹이, 거대한 아우터의 몸에 구멍을 뚫었다. 갑각류처럼 단단한 껍질을 몸에 두르고 있던 아우터는 몸의 절반이 날아갔다.
쿵-.
“후우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헤라클레스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대체 몇 마리째 쓰러뜨린 건지. 대략 이걸로 세 자릿수는 넘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걸로 대략 정리는 됐나.’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아우터를 처리한 헤라클레스의 시선이 뒤쪽에 있던 판도라에게로 향했다.
처음에는 걱정도 했지만 그녀는 강했다. 순수한 전투력만 놓고 보더라도 그녀는 올림포스의 삼신급 반열에 들어서 있었다.
그녀 역시 숨이 조금 차 보이긴 했지만 특별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걱정할 필요 없겠군.’
저벅-.
걸음을 옮기는 기척에 헤라클레스의 시선이 유원에게로 향했다.
제법 큰 전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의 결과는 단연 압승이었다.
헤라클레스, 자신도 역시 제법 힘을 내서 싸우긴 했지만…….
‘압도적이군.’
유원이 보여 준 힘은 아예 규격 외라고 할 만했다.
그가 딛고 선 사막이 온통 새까만 혼돈으로 뒤덮였다. 산양들을 몰고, 불꽃을 휘두르며 유원은 수천에 달하는 아우터들을 집어삼켰다.
신력이라고 했던가.
이곳으로 넘어온 후, 유원은 점점 더 강해졌다.
‘눈빛이 또 달라졌다.’
바닥에 깔린 아우터들의 잔해를 바라보는 눈동자.
함께 바깥으로 넘어와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지켜봐 온 만큼, 헤라클레스는 저 눈이 누구의 것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지금의 유원은 김유원이 아닌, 아자토스에 한 발 더 가까워져 있었다.
“소토스의 흔적들인가.”
유원의 중얼거림에 헤라클레스가 귀를 세웠다.
“소토스?”
“들었냐?”
유원의 눈빛이 어느새 조금씩 돌아왔다.
하지만 처음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눈을 마주하고 있는 헤라클레스는 그가 유원인지, 아니면 아자토스인지 헷갈렸다.
“그래. 이번엔 확실히 들었다.”
소토스.
아자토스와 가장 가까운 이 이름은 앞에 두 글자가 더 있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줄여서 말한 이름조차 처음엔 다 듣지 못했다.
하지만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 헤라클레스는 처음으로 그 이름을 다 들을 수 있었다.
“대체 소토스가 누구냐?”
이름을 제대로 들을 수 있게 되자, 헤라클레스는 그제야 이름에 관심을 가졌다.
유원은 몇 번이나 소토스라는 이름은 언급했다. 마치 그 이름만이 자신이 신경 써야 하는 이름이라는 듯이 말이다.
“너도 한 번 만나 봤을 거다.”
“나도?”
“하늘 위. 우리가 넘보지 말라고 했던 녀석.”
“궁금해하지도, 혹여나 찾아가지도 마라. 절대로.”
그때 그 이름이 소토스였다니.
‘소토스라.’
헤라클레스는 하늘 위에서 보았던 거대한 성운을 떠올렸다.
마치 무한(無限)을 보는 듯한 기분. 그 거대한 존재 앞에서 헤라클레스는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지는 걸 느꼈다.
녀석은 단순히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수없이 많은 세계의 집합체 같았다. 그런 것과 싸운다니, 이길 자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 감히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특이사항이라면 슈브 니구라스의 전남편이라고 해야 하나.”
“전, 남편?”
“정확히는 슈브 니구라스가 일방적으로 쫓아다녔지. 녀석이 창부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고.”
“그 녀석들에게도 사랑이라는 게 있었나 보군.”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광기에 가까웠다. 더 큰 이름에 끌린 거지.”
“그 녀석이?”
헤라클레스의 머릿속에 슈브 니구라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가 가진 힘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비슈누와 오딘, 제우스를 비롯한 이 탑의 왕들을 압도하던 힘.
그녀는 혼자서 탑을 궁지로 몰아넣을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녀가, 더 큰 힘에 꼬리를 흔들어 창부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니.
스윽-.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게 저 녀석이라는 거지?”
별들이 반짝이는 보랏빛 하늘.
그 하늘에 올랐던 날을 떠올리며, 헤라클레스가 물었다.
“그런데 흔적이라는 건 무슨 뜻이냐?”
“내가 준 이름들이 아니란 거지.”
“자세히 좀 말해 봐라.”
“이 녀석들은 소토스가 나눠 준 이름을 먹고 탄생한 녀석들이다. 방금 막 나눠 준 건지, 아니면 훨씬 오래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원이, 아니.
아자토스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만약 후자라면 녀석이 내 행세를 하고 있다고 봐야겠구나.”
순간, 유원에게서 흘러나온 존재감에 헤라클레스가 흠칫 놀랐다.
그 전까지는 몰라도 마지막 말을 할 때만큼은 확실히 아자토스에 가까웠다.
그 사실을 자각이라도 한 것일까.
유원은 고개를 크게 한 번 흔들어 보이고는 말을 돌렸다.
“어쨌든 잘된 일이야. 이름을 다 들을 수 있게 됐다는 건 그만큼 격이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러냐?”
확실히 지난 한 달.
헤라클레스는 아우터와 싸우고, 유원과 동행하며 스스로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뚜둑-.
손가락 마디를 풀며 헤라클레스는 아쉬움에 콧김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결국 이래서는 전부 네게 달린 거나 다름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라클레스는 이 싸움의 핵심은 역시 유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가진 아자토스의 힘.
그 힘이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이 싸움의 승패가 결정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
“왜지?”
“결국 이건 나 혼자 할 순 없는 싸움이다. 아자토스라는 이름은 얻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아자토스가 된 건 아니니까 말이야.”
“그게 대체 무슨 말…….”
순간 이해를 하지 못했던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하늘. 유원은 저 하늘을 가리켜 ‘소토스’라 불렀다.
더욱이, 지금 나타났던 녀석들은 그 소토스의 흔적들이라 했으니.
“이름이 다 흩어져 있어서인가.”
“그래.”
“그럼 네 역할은 그 소토스라는 녀석을 맡는 거겠군.”
“손오공과 온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랬으면 이해시키는 게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 건데.”
유원은 부정하지 않았다.
저 하늘을 없애지 않고서 이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혼돈은 물론, 저 보라색의 하늘 역시 모두 처리해야 싸움은 끝난다.
“녀석들은 이름을 가지고, 힘을 가졌다. 아마 소토스에게 나눠 받은 이름도 가지고 있겠지.”
“그 잔챙이들을 우리가 막으면 되는 건가.”
“그래.”
“그 정도야…….”
시시하다는 듯한 헤라클레스의 반응에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 ‘잔챙이’들 속에 어리석은 혼돈도 포함되어 있다.”
덜컥-.
헤라클레스의 표정이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어리석은 혼돈.
녀석은 제우스의 목숨을 빼앗아 간 상대였다. 이미 한 번 붙어 보았기 때문인지 헤라클레스는 더 투기를 끓어 올렸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녀석은 조심해야 할 거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나도 알 수가 없으니. 게다가…….”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아.”
츠츠-.
황금색으로 변한 헤라클레스의 눈동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녀석을 놓쳤던 건 나다. 내 실수니 내가 만회하고 싶다.”
“……그러냐?”
잠시 고민하던 유원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렇다면 기타 말보단 부딪쳐 보는 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어리석은 혼돈과 싸우는 건 헤라클레스 혼자만의 역할이 아니었다.
다만, 역시 걸리는 건 있었다.
‘다른 녀석은 몰라도 니알라, 그 녀석은 다를 줄 알았는데 말이지.’
자신의 뒤를 따랐던 작은 꼬마.
어느 순간부터인가 멀어지나 싶더니, 녀석은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
‘녀석이 그 이름을 어찌 사용할지…….’
어리석은 혼돈.
아자토스가 가지고 있던, 가장 조각의 큰 이름 중 하나.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의 반쪽.
소토스도 문제였지만 녀석이 그 이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도 변수의 하나였다.
스윽-.
유원은 고개를 들어 소토스를 올려다보았다.
녀석이 언제쯤 움직일까.
‘그리도 준비할 게 많더냐.’
녀석의 ‘문’은 제아무리 아자토스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해도 넘어갈 수 없었다.
그렇기에 유원은 녀석을 만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겁이라도 먹은 걸까.
아니면 다른 준비가 더 필요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소토스가 당장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건 확실했다.
그 시간을 그냥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다.
지난 한 달.
제법 많은 아우터들을 만나 그들의 이름을 다시 회수했다.
덕분에 이름과 함께 힘도 제법 되찾을 수 있었다.
[신력 : 401]꾸준히 하나씩 올린 끝에 신력이 400을 넘어섰다.
슬슬 궁금해졌다.
과연 모든 이름이 다 모였을 때.
‘아자토스’라는 이름이 완성되는 순간, 이 스탯은 몇을 기록하게 될지.
저벅-.
텅 빈 사막.
더 많은 이름을 찾기 위해, 유원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또다시 석 달이 흘렀다.
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냈다.
100개의 세계가 일제히 분주하게 움직였다. 랭커와 상위 층계의 플레이어들 모두가 한 몸이 되어 움직였다.
탑의 긴 역사상 가장 많은 길드가 움직였던 날.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이 있었던, 화합의 날보다도 더 많은 숫자가 자리에 모였다.
“거의 다 모였군.”
오딘의 시야에 들어온 무수히 많은 랭커들.
아스가르드, 올림포스를 비롯해 탑의 주축이 되는 거대 길드. 그리고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중견 길드들까지.
엉덩이가 무겁기로 알려진 사신수까지 모을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손오공의 역할이 컸다.
“제천대성에게 맡긴 게 잘한 선택이었나 봅니다. 짧은 기간 안에 이만큼이나 모인 걸 보면.”
가까이 다가온 브룬힐데의 말에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잘한 선택이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많은 길드를 움직여야 하는 지금, 손오공만큼 결단력 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 원숭이는 지금 어디 있지?”
“저 위에, 근두운을 타고 올라가 있습니다만…….”
“만?”
“제 소견으로는, 어딘가 일전을 치르기 직전의 기백 같은 느낌이 납니다.”
“기백?”
오딘의 시선이 하늘 위로 향했다.
기백이라니.
그 손오공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손오공은 싸움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며, 마냥 신나서 날뛸 녀석이었다.
구름 사이.
마법을 사용해 시야를 확장한 오딘은 손오공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벽’을 바라보고 있는 손오공의 뒷모습에서는 브룬힐데의 말대로 어떤 각오나 기백 같은 것들이 엿보였다.
보라색의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근두운(筋斗雲)의 위.
덮여져 있던 눈꺼풀이 벗겨지며, 그 속에 감춰져 있던 화안금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다.”
* * *
자박-.
느릿하게 걷던 사막 가운데.
유원의 발걸음이 멈추고 고개를 위로 올렸다.
한동안 하늘을 보지 않던 유원이 돌연 발을 멈추고 고개를 들자, 뒤따라오던 헤라클레스가 물었다.
“왜 그러지?”
덜, 덜덜-.
대답보다 먼저 헤라클레스는 옆을 돌아보았다.
“판도라, 너는 왜…….”
“몸…… 이…….”
판도라가 몸을 떨었다.
분명 사막의 추위에도 제법 적응했다 싶었는데, 그녀는 처음 바깥에 넘어온 때보다도 더 몸을 떨고 있었다.
당황하는 헤라클레스.
그리고 겁에 질린 판도라.
유원은 헤라클레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는 거냐?”
유원의 시야를 가득 메운 밤하늘을 무수히 많은 별들.
“……소토스야.”
그 별들이, 아래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