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13
* * *
별들이 쏟아진다.
헤라클레스의 눈에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
하늘을 이루고 있던 보라색의 물결과 그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던 별들은 구겨지고, 찌그러지고, 점점 작아져 간다.
팽창하고, 수축하고. 비틀어지며 다시 시공을 뒤틀며 다가오는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저런 것과…….’
헤라클레스는 절망을 느꼈다.
‘싸우라고?’
절망이 내려온다.
그것이 헤라클레스의 감상이었다.
옆을 힐끗 보자, 판도라는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몸의 떨림은 어찌나 심한지 그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가 있거라.”
유원의 목소리에 놀란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는, 헤라클레스가 아는 유원이 아니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지금은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뿐이니.”
유원은 헤라클레스의 걱정을 알고 있었다.
내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이미 유원에서 아자토스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다.
“……괜찮은 거냐?”
“내 쪽은 걱정할 것 없다.”
알고 있었다.
이 걱정은 어디까지나 ‘감히’였다.
이 세계에서 아자토스를 걱정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저 녀석이 움직였다는 건, 저쪽도 시작했다는 뜻이다.”
유원의 말에 헤라클레스가 눈을 부릅떴다.
저쪽이라는 건 역시 탑의 안쪽.
그 말은 즉, 소토스를 제외한 다른 아우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털썩-.
판도라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저 하늘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상, 판도라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아우터들의 영향을 누구보다 강하게 받을 테니까.
“일단, 그녀를 부탁하마.”
유원의 부탁에 잠시 망설이던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 어깨에 판도라를 둘러업은 헤라클레스가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잠시 유원의 시선이 헤라클레스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혹시라도 소토스 녀석이 헤라클레스와 판도라를 노리진 않을지 하는 걱정에서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쏴아아-.
쏟아지는 별들은 그들을 노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 멍청하지는 않구나.”
이곳에는 아자토스가 있으니까.
아래로 쏟아지는 보라색의 물결이 어느 순간, 하나로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녀석과 싸우기 위해.
스으으-.
유원의 주위로 까만 혼돈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너무 그리 보채지 않아도 된다.”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하나로 존재하는 전체’를 향해 이빨을 드러냅니다.]유원의 주위로 모여든 혼돈이 하나의 형상을 갖춘다.
등 뒤에 선 희미한 어른의 형상을, 유원이 진정시켰다.
“……단풍아.”
* * *
쿵쿵, 쿵쿵쿵쿵-.
파지짓-!
헤라클레스의 발이 빠르게 움직였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어깨에 업혀 있는 판도라의 미약한 숨소리가 금방이라도 끊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멈…… 춰…….”
툭-.
판도라의 손이 헤라클레스의 등을 때렸다.
몸의 떨림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당연하게도 헤라클레스는 몸을 돌릴 수 없었다.
“저쪽도 급하다.”
“난…… 두고…….”
“넌 방해만 돼.”
독을 품고 뱉어 낸 헤라클레스의 말에 판도라의 눈이 흔들렸다.
“방해가 되고 싶어서 따라다니는 건 아닐 텐데?”
“…….”
판도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도 모르지 않았다.
앞으로의 싸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당장 저 하늘이 가까이 다가온 것만으로도 그녀는 몸을 떨며 쓰러져 버렸다.
“그래도 어떻게 따라왔는데…….”
이해는 했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야 겨우 같이 다닐 수 있게 됐는데…….”
가죽 옷의 어깨가 젖어 가는 게 느껴졌다.
빠르게 뜀박질하던 헤라클레스의 속도가 조금 늦어졌다. 그의 머릿속에 약 석 달 전, 판도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혼할 거야.”
판도라는 진심이었다.
제우스에게 선물 받은 그 저주받은 상자의 영향 때문인지, 그녀는 평소 감정 없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예외는 있었다.
유원과 함께 있을 때였다.
‘마음 같아선 돌아가고 싶지만…….’
흐느끼는 판도라를 달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시간도 없고, 상황도 좋지 않았다.
턱-.
헤라클레스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벽을 넘어가기 위해 달리던 도중에 마주친 아우터들 때문이었다.
[거친 사막의 풍량] [숭배자들의 포식자] [부정한 오염의 근원] […….]워낙 오랫동안 저들과 섞여 지내고, 유원을 통해 숱한 이름들을 들어 왔기 때문일까.
눈앞에 펼쳐진 아우터들의 이름이 보였다.
“그냥 보내 주지는 않겠다, 이건가.”
꾸욱-.
헤라클레스가 주먹을 말아 쥐며 어깨에 둘러업고 있던 판도라를 아래로 내려놓았다.
“뚫고 가야겠다. 쉬고 있어라.”
콰릉-!
헤라클레스의 주먹에서 벼락이 터져 나왔다.
지금부터는 한시가 급했다. 탑 안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면 그쪽에 서둘러 합류해야 했다.
마력을 아낄 여유 따위는 없었다.
파짓, 파지지-.
[‘벼락’의 힘이 팔에 깃듭니다.] [거인의 힘이 몸에 깃듭니다.]거인화의 시동과 함께 이루어진 벼락의 방출.
쿠르르, 쿠구궁-.
헤라클레스의 주위로 수십 발의 벼락의 창들이 떠오르며, 눈동자를 비롯해 머리색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지금의 헤라클레스는 천신이자 영웅.
제우스가 만들고자 했던, 이상(理想)의 존재였다.
“나도…….”
콱-.
그리고 그런 헤라클레스의 앞으로.
“도울, 게.”
겨우 몸을 가눈 판도라가, 무언가 결심을 굳힌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떨림은 멈췄고, 그녀는 돌아가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한 손이라도 더 필요한 마당.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미리 말해 두지만, 굳이 나서서 싸우겠다면 널 보호할 순 없다.”
“그럴 필요 없어.”
“좋아. 그렇다면야…….”
쿵-.
쿠구구구-.
발을 앞으로 내딛는 것과 함께.
콰과과과-!
사막의 모래가 뒤집어지며, 헤라클레스가 앞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뚫자.”
* * *
-……온다.
때마침 손오공을 보고 있던 오딘은 그의 중얼거림에 급히 손을 뻗었다.
콱-.
바닥에 세워두었던 궁니르를 움켜잡은 오딘.
그가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적들이 온다-!”
지이잉-.
오딘의 목소리는 마법을 통해 지평선 너머까지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런 오딘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오오오-!
-아아, 아아아-!
카아아아-!
괴성과 울음. 한탄과 비명과 같은 온갖 소리들이 저 지평선 너머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되는 건가…….”
꿀꺽-.
긴장감으로 인해 자리에 모인 랭커들이 손에 땀을 쥐었다.
그들 역시 수백, 혹은 수천 년 동안 랭커로 살아오며 무수히 많은 전투를 겪어 온 자들.
죽음의 위기는 몇 번이나 넘겨 왔으니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시야에도 다 들어오지 않은 저 보랏빛 물결 속에 섞여 몰려오는 존재들을.
꿈틀-.
탑의 밖에서 들어온, 거대하고도 위대한 존재들.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조차 힘든. 수만인지 수억인지 모를 숫자의 물결.
“끄…… 으으…….”
“소, 소문은 들었지만…….”
“대체…… 저런 거랑 뭘 어떻게 싸우라는 거지?”
털썩-.
겨우 분위기에 압도당한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주저앉았다.
가능한 전력을 더 확보하기 위해 상위 층계의 플레이어들까지 데려왔던 것인데, 그들은 이 정도 거리 내에서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운 모양이었다.
싸움에 대한 두려움.
괜히 이곳까지 왔다는 후회.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하는 갈등.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그들의 머릿속에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중.
손오공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끌려 온 이들의 불만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뭔지도 모르는 것들과 싸워야 한다니…….’
‘이거 정말, 이길 수 있는 싸움인 건가?’
‘차라리 제천대성과 싸우는 게 나을지도…….’
힐끔, 힐끔-.
서로의 눈치를 보는 랭커들의 시선에 오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큰일이군.’
시작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특히나 아우터를 처음 마주하는 자들이라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그걸 위해선…….
투, 화아아-!
강렬한 바람이 전장을 가로지른 건 그때였다.
긴장하고 있던 랭커 중 몇몇이 깜짝 놀라 손을 들어 머리를 보호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다행히도 그건 어디까지나 무언가가 빠르게 이동하느라 생긴 자연적인 바람이었다.
“갑자기 뭐가-.”
“저, 저기!”
랭커들이 술렁거리며 하늘을 가리켰다.
반듯하게 하늘을 가로지른 한 줄기 새하얀 선.
손오공이 탄 근두운이었다.
한 순간에 시야에 닿지 않을 만큼 멀어지는 근두운.
그와 동시에.
투콰앙-!
거대한 여의봉이 눈앞에 몰려오던 아우터들을 튕겨 냈다. 그 어지럽고 위험한 전장에 홀로 뛰어든 손오공의 기합성이 멀리까지 들려왔다.
“마지막 기회다-!”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손오공답지 않은 목소리.
“그러니까 쫄지 말라고, 젠장!”
콰앙-!
거리가 어찌나 먼지 하늘까지 치솟은 여의봉이 작게 보일 정도.
하지만 그만한 거리에서도 손오공의 처절한 외침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씨익-.
“저 원숭이 놈이…….”
오딘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지금 이 자리에는 반쯤 강제로 자신들을 끌고 온 손오공에게 불만을 품은 랭커들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손오공은 누구보다 먼저 전장으로 뛰어들면서 그들의 불만을 반쯤 지워 버렸다.
‘마지막 기회라.’
오딘은 손오공을 알고 있었다.
그가 유원과 함께 미래에서 싸웠으며, 끝내 패배했음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이곳에 있었다.
저들로부터 이기기 위해서. 패배를 승리로 바꾸기 위해서.
“시원하게 잘해 줬군.”
싸움의 시작은 녀석이 완벽하게 끊어 줬다.
이제부터 전장의 흐름을 이끄는 건 자신의 역할이었다.
쿵-.
오딘의 발이 땅을 울렸다.
다량의 마력이 지면을 타고 전해졌다. 가장 처음은 손오공이, 그다음은 오딘의 존재감이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그드라실’의 힘이 땅에 깃듭니다.] [모든 ‘아스가르드’의 힘이 증폭됩니다.]아스가르드의 땅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오딘이 지닌 힘의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무. 이 땅을 이루고 있는 세계, 그 자체.
이그드라실의 힘이 땅을 딛고 선 랭커들의 몸에 조금씩 깃들었다.
거기에 더해.
[‘아스가르드의 왕’이 전장을 통솔합니다.] [부정적인 효과로부터의 저항을 성공합니다.] [아군의 피해가 20% 감소합니다.] [아군의 피해를 일부 대신합니다.]아스가르드의 왕.
100층의 시험을 통과하고 얻은, 오랜 세월 오딘이 써 내려온 신화이자 신격의 힘.
“모두 나를 믿어라.”
오딘의 말은 손오공의 것처럼 크고, 우렁차지 않았다.
하나 목소리의 크기가 힘을 모두 대변하는 게 아니듯.
“지금부터 너희는 모두 ‘아스가르드’다.”
이어진 오딘의 말에 전장은 하나로 뭉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