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14
* * *
화르르-.
화안금정이 불타올랐다.
시야가 어지럽게 일렁거리는가 싶더니, 수백 개의 눈을 가진 것처럼 시야가 확장되어 전장의 모든 게 한 눈에 들어왔다.
“욱…….”
여의봉을 휘두르던 손오공이 돌연 휘청거렸다.
수많은 랭커들이 원하던 최상위 랭크 스킬 화안금정.
진리를 꿰뚫고 세상을 한눈에 들여다보는 눈.
단순히 말하자면 화안금정은 ‘눈’이 가진 힘을 극대화한 것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더더욱 손오공은 이 순간, 자신의 그 눈을 도려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꾸드득-.
손오공이 뛰어든 보라색의 물결 속.
무언가 손오공의 발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힐끔, 손오공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대체 언제 변한 건지, 땅은 물렁하고 진득한 늪으로 변해 있었다.
“너냐?”
손오공의 눈에 녀석의 이름이 보였다.
[불결하고 오염된 질병]“……압호스.”
땅에서 수백, 수천 개의 팔이 뻗어 왔다. 그 손은 손오공을 늪으로 더 깊게 빨아들였다.
압호스.
불결하고 오염된 질병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름 그대로 불결한 색깔을 지닌 늪.
치이이-.
발목이 녹아내리는 뜨끈하고 불쾌한 감각.
아마 손오공이 아닌 평범한 랭커들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늪에 빠져들며 온몸이 독이 되어 녹아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기이이잉-.
손오공의 머리를 중심으로 빛이 뿜어졌다. 손에 움켜쥔 여의봉을 통해 마력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천계의 반역자’가 시작됩니다.] [‘천축’이 시작됩니다.] [‘원숭이의 왕’이…….]지금껏 손오공이 써 온 이야기.
신화(神話)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이 한데 얽히고설켜.
[‘서유기’가 시작됩니다.]마침내, 완성된 하나의 신화로 탄생했다.
“길어져라-.”
부우웅-!
마력으로 감싸여진 여의봉.
“여의(如意).”
콰우우욱-!
쫘아아악-!
손오공의 뜻대로 길어진 여의봉이 늪을 갈랐다.
아니.
쩌저저저-!
애초부터 여의봉은 늪 하나만을 겨눈 게 아닌 듯, 땅을 둘로 쪼개며 몇 개의 산과 함께 수천에 달하는 아우터들을 베어 냈다.
그 한 방의 일격은 손오공을 선두로 하여 싸우던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원숭이.”
길드가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싸움에 참전한 아수라도.
“과연. 명불허전이군.”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보던 천마, 천무진도.
“그새 괴물이 다 됐군.”
전장을 지휘하던 오딘도.
손오공이 보여 준 일격 하나에 놀라,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늪과 땅을 만들어진 여의봉의 흔적은 흡사 봉(棒)이 아닌 검(劍)의 흔적에 가까웠다.
부웅-.
여의봉이 다시 손오공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압호스의 늪을 땅 아래로 꺼뜨린 손오공이 몇 번 허공을 밟아 위로 도약했다.
하얗게 뒤집어진 눈동자.
손오공이 기합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쩌어억-!
주먹을 뻗고, 여의봉을 휘둘렀다.
양손이 부족하면 다리로 걷어차고, 그마저도 부족하면 이빨로 물어뜯었다.
콰직, 쾅-!
지이이익-.
이빨로 아우터의 가죽을 뜯어낸 손오공의 눈이 희번덕하게 변했다.
그의 머릿속에 얼마 전.
신화를 이루고 격(格)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어느 남자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요괴로 태어나 인간처럼 살기를 원하는가.”
민머리에 이마에 점인지 사마귀인지 모를 것을 새긴 남자였다.
그는 자신을 삼장법사(三藏法師)라 소개했다.
손오공이 이룩한 신화.
서유기(西遊記)의 시작이자 법경의 주인인 존재.
처음 만나는 건 아니었다. 미래에서도 손오공은 그를 만났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같은 사람임에도, 삼장이 던지는 화두는 그때와 사뭇 달랐다.
“그것이 욕심이라는 걸 아느냐?”
삼장법사.
그는 손오공을 꿰뚫어 보았다.
화안금정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속 깊은 곳에. 아주 오래전, 화과산에서 나고 자랄 때부터 묻어 두었던 다짐을, 그는 손오공의 면전에 꺼내 기어이 물었다.
“정말 인간으로 살 테냐?”
그에 대한 손오공의 대답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당연하지.”
“……그렇구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삼장.
하나, 그가 알고 있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네 동료들이 더 죽게 될지도 모른다.”
손오공의 눈빛이 처음 흔들렸다.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눈빛. 그 눈빛이 불쾌하면서도, 손오공은 절대 피하지 않았다.
“너도 알지 않으냐?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해서 인간으로 살 순 없다. 본질이란, 행동거지나 표현 따위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삼장법사의 말은 손오공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부정하고 싶어 귀라도 틀어막고 싶었지만 손오공은 그러지 않았다.
들어야 하는 이야기다.
이건 어디까지나 시험.
모든 건 자신이 감내하고, 이겨 내야 하는 과정이었다.
빠직-.
“야 이 대머리 자식아, 네가 뭘 알아?”
과정, 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짜증을 참아 내기에는 아무래도 인내심이 부족했다.
그래도 참을 인(忍)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던가.
속으로 쓸 줄도 모르는 글자를 백 번쯤 되새긴 손오공은 겨우 주먹이 나가려는 걸 참아 냈다.
“난 요괴 같은 걸로 안 살아. 나도 그렇고, 형님도 마찬가지야.”
“본성을 억누르며 살겠다?”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아니. 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난 요괴가 아닌 인간이다. 난 그들과는 다르다. 살을 찢고, 내장을 파내고, 피를 마시는 괴물이 아니다.”
삼장의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느냐?”
콰직-!
손오공의 정신이 잠시 현실로 돌아왔다.
등에 꽂힌 길고 날카로운 촉수. 그 충격으로 인한 변화였다.
하지만.
그를 궁지로 몰아붙이는 목소리는 여전히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건 자기암시일 뿐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인간들과 함께, 가족을 가지고. 친구를 가지고 말이야.”
가족. 친구.
그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단어는 지금껏, 손오공의 옆을 따라붙었다.
요괴에게는 그런 게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걸 원하면서도 싸움을 즐기는 건, 차마 억누르지 못한 최소한의 본능일 따름일 터.”
쫘아아아-!
콰드드드드-!
손오공이 휘두른 손톱이 촉수를 따라 그 끝에 연결된 아우터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날카롭게 곤두선 손톱들.
그 손톱이 허공에 선명한 자국을 남긴다.
“그런데 말이다.”
“닥…… 쳐…….”
“앞으로 닥치게 될 싸움에, 너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닥치라고-!”
뿌드득-.
손오공은 이를 악물었다.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눈이 희번덕하게 떠지며, 무언가를 죽이거나 찢어발기고 싶은 욕망이 속에서 꿈틀거렸다.
콱-.
여의봉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나는 손오공이다.
제천대성. 천계의 반역자. 화과산 원숭이…….
자신을 칭하는 무수히 많은 이름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을 향하던 손톱이 금방이라도 뒤에 랭커들에게 돌아갈 것만 같아서였다.
“너는 요괴다, 오공아.”
친숙하게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
하지만 그 말은 그 어떤 말보다도 손오공의 가슴을 후벼 팠다.
“받아들여라. 그렇지 않으면, 계속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주륵-.
날카롭게 튀어나온 송곳니가 입술을 찌르자 핏물이 흘렀다.
그 통증에 손오공은 겨우 흐릿하게 변하던 정신을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알아…….”
그때는 대답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근데 그건…… 재미…… 없잖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요괴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어 한다는 것쯤은.
요괴.
그들은 인(人)과 마(魔)의 사이에 놓여진, 흔히 이 세계에서는 괴물의 한 종류로서 알려진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손오공과 우마왕.
그들처럼 요괴가 아닌, 인간처럼 섞여 살아가는 자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기고 싶지 않으냐?”
삼장의 그 말에, 손오공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지면, 아무것도 없다.”
후회한다.
미래에서도 지금처럼 선택을 했다면.
이길 수는 없더라도, 더 살 수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더욱.
손오공은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끄아아아아아아-!”
손톱으로 찢고, 여의봉을 휘두르고.
단순하지만 손오공은 쉬지 않았다.
콰직-!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싸움이었다.
그 싸움을 지켜보는 동료들.
아수라는 그 모습을 보며 생에 처음, 경외심을 느꼈다.
‘뭐 저런 싸움이…….’
꾸욱-.
칼을 움켜쥔 네 개의 손에 땀이 차올랐다.
손오공의 싸움을 지켜보는 두 명의 아수라는 이 순간,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저런 싸움을 하는 녀석도 있었군.”
첫 번째 머리가 입을 열었다.
두 번째 머리도 역시 같은 감상이었다.
아수라는 자신의 실력을 잘 알았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제천대성이나 헤라클레스, 오딘과 같은 존재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걸 속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수라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존경하거나, 올려다본 적이 없었다.
이 순간 전까지는 그랬다.
“지고 싶지 않군.”
“그럼 얼른 움직여라. 게으름 부리지 말고.”
“……그러지.”
첫 번째 머리의 잔소리에 아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의 등 뒤로 붉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솟아오르며 신형이 사라졌다.
자극을 받은 건 아수라만이 아니었다.
콰우우-!
언월도를 휘둘러, 강한 풍압을 만들어 낸 이랑진군.
“허허어-.”
그는 언월도를 휘두르는 동시에 손오공을 바라보았다.
“너무 멀리 가 버렸어.”
아직도 손에 잡힐 듯, 기억하는 이야기였다.
고대 시절부터 존재해 온 그로서는 제천대성을 비롯한 요괴와 천계의 천계대전(天界大戰)은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였다.
당시, 이랑진군은 손오공과 며칠을 겨뤘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손오공은 아예 다른 사람 같았다.
반면.
우마왕은 그런 손오공에게서 눈을 돌렸다.
“기어이…….”
끝끝내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그때가 오자, 속이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우마왕.
아직까지도 손오공은 싸우고 있었다.
콰앙-!
마력을 한껏 퍼부어 낸 손오공이 거칠게 숨을 토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손오공은 누구보다 앞장서 가장 많은 적들을 쓰러뜨렸다.
“후우, 후-.”
화안금정은 여전히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손오공의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아우터들. 겨우 땅을 정리했지만, 그마저도 잠깐일 뿐이었다.
으득-.
손오공은 둘과 싸우고 있었다.
이 싸움의 적인, 아우터들.
그리고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요괴로서의 자신까지.
“그래…… 인정한다.”
이 싸움에서 예전처럼 무기력하게 패배할 순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서유기의 신화를 이룩하고, 긴고아의 봉인에서 풀려났다.
혹시 예전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붉은색과 황금색.
두 개의 색깔이 공존하는 눈.
그 눈을 희번덕하게 뜨며, 손오공이 다짐하듯 말을 내뱉었다.
“요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