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15
* * *
어두운 방 안.
하늘이 보라색으로 변한 아스가르드의 왕성에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남자가 잠들어 있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자는 대신,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를 가지게 된 현자.
미미르.
자신의 능력이 깃든 두 개의 눈을 모두 잃어버린 그는, 하이랭커의 자격을 박탈당한 걸 넘어 아예 랭커 중에서도 하위권으로 강등되어 버렸다.
이유는 둘.
첫째로는 두 개의 눈을 잃어버린 미미르의 힘은 전에 비해 너무나도 보잘것없다는 것이며.
둘째로는 지식의 저주로 인한 수면이 천 년일지, 만 년일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달싹-.
영원히 잠들 수도 있단 예상과는 달랐다.
미미르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날이군.”
눈은 뜨지 않았다.
아니, 뜰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눈꺼풀을 열어 봤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
칠흑처럼 어두운 시야.
더 이상 자신의 세상에 빛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며, 미미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쿠구구-.
아스가르드의 성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오감이 전부 무뎌진 건 아니었다.
천천히 창가로 향한 미미르는 비틀거리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살려 줘!”
“쿨란! 젠장할!”
“이쪽도 지원을…….”
“여기도 바쁘…… 아아악!”
비명 소리와 피가 튀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가 터져 나가거나 찢겨져 나가는 소리.
전장의 향기가 이 먼 곳까지 풍겼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익숙한 외침도 섞여 있었다.
“아스가르드여!”
“아스가르드를 위하여!”
“……오딘.”
아스가르드를 통솔하는 오딘의 외침이 귓가를 맴돈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선, 궁니르가 시동되는 기운마저 느껴졌다. 궁니르를 아끼고 있을 만큼 상황이 그리 쉽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녀석이 없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딘은 늘 자신이 깨어날 즈음, 침대 옆을 지키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혹은 앉은 채 꾸벅꾸벅 졸며, 자신에게 깨어났느냐고 가볍게 인사했다.
아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다.
“이제 못 보겠구나.”
1년 만에 일어났다.
기록이었다.
이렇게 빨리 정신을 차릴 거라고 과연 생각이나 했을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건, 이 세계에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이 세계에는, 말이지.’
미미르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미련은 없었다.
그런 걸 가지기에는 지금 이 순간을 너무 많이 살았다.
아마도 유원을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일 것이다.
이기기 위해선 이 방법뿐이다.
‘우리’들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면 역시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파스스-.
미미르의 몸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먼지가 되어 손끝이 사라지는 걸 느끼며, 미미르가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아프진 않구먼.”
이 순간을 오랫동안 그려 왔기 때문일까.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는 건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오랜 시간 다졌던 각오는 그 고통마저 이겨 내게 만들었다.
두 눈을 잃었다.
이제 남은 건 몸뚱이뿐.
이것마저 버리고 나면 그 후에 기다리고 있는 건, 아마 완전한 소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다행이야. 성공하긴 해서.”
미미르는 말 속에 후회나 두려움보다는 안도를 섞어 내뱉었다.
과연 이것으로 인해 이 싸움이 승리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으로 승산은 조금 더 높아졌다.
그것만으로도 미미르는 자신을 희생하는 데 충분함을 느꼈다.
“오딘아…… 이 친구야…….”
그렇게 보이지 않는 먼 전장을 향해서.
“너무 화내진 말거라.”
미미르는 마지막 남은 말을 뱉었다.
스스스-.
* * *
전장의 지휘관은 보통 후방에 있기 마련이었다.
지휘관의 죽음은 곧 전쟁의 패배로 직결된다. 그렇기에 지휘관은 최대의 안전을 취하며, 전장을 승리로 이끌어 간다.
하지만 이 싸움은 그렇게 해서 승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딘은 앞으로 나섰다.
아스가르드의 전사로서.
그리고 전장의 지휘하는 왕으로서.
“아스가르드여-!”
“아스가르드를 위하여-!”
오딘의 외침에 발키리를 비롯한 아스가르드의 랭커들이 화답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사기는 점점 떨어져 갔다.
어쩔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아우터들은, 하나하나가 하이랭커급이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스킬이나 신화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오딘이 이룬 신화, ‘아스가르드의 왕’은 아군의 힘과 사기를 끌어올린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피해를 일부 대신한다. 작은 패널티가 있지만, 이렇게 큰 전장에서는 가히 사기적인 힘이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지금은 눈에 보이는 전장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쿠구구구-.
오딘의 손에 쥐어진 궁니르가 시동을 시작했다.
이번이 몇 번째더라.
‘네 번째인가.’
궁니르는 한 번의 시동에 어마어마한 마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오딘조차 궁니르를 두 번 넘게 시동하는 건 가능하면 자제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네 번이라니.
이 정도면 신기록이었다.
번쩍-!
오딘의 손을 떠난 궁니르가 전장을 갈랐다.
콰우웅-!
거칠게 대기를 꿰뚫는 파공음.
새하얀 빛 무리에 찢어 발겨지고, 생명을 잃은 아우터들의 조각들이 땅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이목이 집중되고, 다시 한번 랭커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궁니르…….”
“이게 몇 발째지?”
“네 발인가?”
벌써 네 발째가 쏘아졌다.
궁니르가 한 번 시동될 때마다 전장의 국면이 바뀌었다. 어마어마한 광범위에 지나가는 모든 걸 꿰뚫는 일격은 가히 압도적인 위력을 뽐냈다.
쿠구구-.
궁니르가 꿰뚫고 날아간 흔적이 전장에 고스란히 남았다.
보랏빛의 물결로 몰려 들어오던 아우터들 사이에 둥그런 원이 생겨나고, 창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하얀 선이 그려졌다.
잠시지만 전장의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궁니르 한 발, 한 발은 충분히 그럴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주륵-.
“크읍…….”
오딘은 급히 코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 내고, 어지럽게 흔들리는 몸의 중심을 다잡았다.
[‘아스가르드의 왕’이 전장을 통솔합니다.] [아군의 피해를 일부 대신합니다.]지이잉-.
머릿속에 충격이 전해졌다. 정신적인 데미지와 물리적인 데미지가 함께 전해졌다.
제아무리 마법을 겹겹이 쌓아 몸을 보호하려 해도 역부족이었다.
‘지금은 안 된다.’
걸레짝이 되어 있는 몸을 겨우 바로 세웠다.
자신은 언젠가는 분명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지금이어서는 안 된다. 가능하다면 늦게, 단 일 초라도 늦게여야만 했다.
오딘 왕.
그는 이 탑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므로.
“오딘아…… 이 친구야…….”
그때였다.
흐르는 코피를 겨우 틀어막으며 정신을 다잡던 오딘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
“……미미르?”
설마 하는 목소리와 함께 오딘이 고개를 휙 돌렸다.
아스가르드 왕성.
그 속에 홀로 잠들어 있는, 자신의 오랜 친구.
녀석이 벌써 잠에서 깨어났다.
분명 쌍수를 들고 환영해도 모자랄 일처럼 보이겠지만.
“뭘 하려는 거냐?”
오딘은 이 순간, 속에서 강하게 싹트는 불안감을 지워 낼 수가 없었다.
미미르의 저주는 평범한 게 아니었다.
지혜의 저주. 그것은 아스가르드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그드라실의 샘물을 마시는 대신 얻어진, 저항이 불가능한 힘이었다.
더군다나 미미르는 지금, 힘의 원천이나 마찬가지이던 두 개의 눈마저 잃어버린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이렇게 깨어났다는 건-.
“너무 화내진 말거라.”
-다른 변수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스스스-.
오감이 곤두서 있던 오딘의 시야에 저 멀리, 미미르의 존재가 사라져 가는 게 보였다.
온몸이 굳어져 달려갈 수도 없었다.
미미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그의 존재가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허허…….”
오딘은 허탈하게 웃었다.
미미르가 소멸했다.
웃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웃어 보인 건, 미미르가 남긴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이 친구야…….”
대체 왜 그랬느냐는 원망.
그리고 잘 떠나라는 인사.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따져 묻기에는 물을 상대가 없었고, 왜 그랬는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미르는 똑똑한 친구였다.
아마 녀석이 세운 계획의 대가가 눈을 넘어선 완전한 소멸이었다면 오딘은 결코 협조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방해하려 했을지도 몰랐다.
미미르는 거기까지 내다보았을지도 몰랐다.
“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거냐?”
김유원.
그 녀석이 미래에서 돌아왔다는 걸 알고, 녀석을 통해 미래의 상황을 알게 된 후.
오딘은 미미르가 자신보다 먼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데 서운함을 느끼고는 물었다.
“말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는 거냐?”
“이유는 무슨. 우리가 할 게 없으니 그런 거지.”
“그렇다고 네가 가만히 있어? 이 녀석아, 속일 사람을 속여라.”
할 게 없다니. 당연히 믿지 않았다.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믿었기에, 자세한 걸 묻지 않았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것이라니.
“처음 만날 때고 지금이고, 황당한 녀석이야.”
“오딘이다.”
미미르를 처음 만난 건 튜토리얼에서였다.
“미미르다.”
“이중엔 그래도 제법 낫더군. 같이 갈 생각 있나?”
그리고 오딘은 미미르에게 손을 내밀었던 순간이 비로소 아스가르드의 시작이라 생각했다.
함께 팀을 이룬 두 사람은 처음 전투를 치렀다.
오딘은 미미르가 사용하는 불꽃과 얼음과 같은 화려한 스킬에 관심을 가졌다.
“아까 그건 뭐지?”
“마법이라는 거다.”
“마법?”
“너는 창을 쓰나 보군.”
“그렇긴 한데…… 그것도 관심이 좀 생기는데.”
어린 시절, 오딘은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았다. 창을 무기로 사용해 단련하던 그에게 미미르의 마법은 실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배워 볼 테냐?”
“그 마법이란 걸 말이냐?”
“그래.”
그날부터였다.
오딘은 미미르와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지식의 저주에 갇힐 걸 알면서도 그가 이그드라실의 샘물을 마셨을 때도, 오딘은 그 선택을 응원해 주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뭘 준비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게 실패할 리는 없겠지.
고개를 끄덕인 오딘은 가까스로 마음을 추슬렀다.
미미르.
아스가르드보다도 오래된, 자신의 하나뿐인 벗.
이게 녀석의 선택이라면 존중한다.
화를 내지 말라고 했던가.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욕할 생각도, 걱정하던 대로 화낼 생각도 없었다.
이번만큼은 녀석이 잘못 생각했다.
“너무 외로워 마라.”
오딘은 화내지 않았다. 화를 내기는커녕,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랐다.
저벅-.
오딘은 아우터의 중심을 향해 더 깊숙하게 들어갔다.
어느새.
츠츠-.
있는 힘껏 내던졌던 궁니르가 다시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는 궁니르를 움켜쥐며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전장을 눈에 담았다.
미미르가 죽었다.
아니.
뿐만 아니라, 이미 무수히 많은 랭커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치지지지-.
오딘은 다시 한 발. 궁니르를 시동시키며 생각했다.
모두가 살 수 있는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반드시 누군가는 죽거나, 모두가 죽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싸움에서는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그중에서는 일단.
‘미미르, 그리고 나.’
이렇게 둘이 확정되었다.
주륵-.
더 이상 흐르는 코피를 막지 않으며, 오딘이 푸른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곧 따라가마.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