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16
* * *
시간의 흐름이 대체 얼마나 흘렀을까.
그것은 몇백, 몇천, 혹은 몇만 년에 달하는 시간으로 따질 만한 게 아니었다.
낡은 오두막 안.
아자토스는 사막의 한가운데 집을 지어 살았다.
그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건 두 사람.
아니.
한 명과 한 산양이었다.
“어디 가십니까?”
슈브 니구라스의 물음에 아자토스다 답했다.
“누가 나를 부르는 모양이구나.”
손을 뻗어 낡고 녹슨 문을 열었다.
바깥의 풍경이 훤히 드러났다. 하늘과 땅. 모든 게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역시…….”
보라색.
“모여들 있었느냐?”
요그 소토스의 색깔이었다.
고오오오-.
수많은 아우터가 하나로 모였다. 그리고 그들의 가운데에는 요그 소토스가 있었다.
아자토스는 다음으로 이어질 순간을 알고 있었다.
슈아아악-.
퍼억-!
등 뒤를 찌르는 날카롭고 거친 뿔.
덜컥-!
아자토스의 몸이 흔들렸다. 슈브 니구라스의 팔이 하나의 길고 거대한 뿔로 변해, 아자토스의 몸을 뒤에서부터 관통했다.
주륵-.
입가를 통해 피가 흘렀다.
이럴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아자토스는 이 순간을 피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자토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엇이 그리 불만이냐, 소토스야.”
우우우-.
하늘에 뜬 성운이 거세게 흔들린다.
요그 소토스.
늘 자신의 머리에 있는 저 하늘의 이름이었다.
“또…… 떨고 있느냐?”
이름을 얻은 하늘은 그때부터 감정을 가지게 됐다.
소토스는 가장 크고 위대한 이름을 가졌다. 이 세계의 하늘로서 모든 존재를 아울러 통솔하라는 의미로 부여한 이름이었다.
녀석은 ‘세계의 하늘’이며 ‘존재가 없는 공허’였다.
애초에 하늘이란, 어디서나 보이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에게 준 이름이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게 탐이 나느냐?”
아자토스가 옅게 웃었다.
자신에게 남은 이름은 아직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가득한 저들은, 그 이름을 탐내고 있었다.
대체 왜 이리들 욕심을 내는 것일까.
단지 두렵기 때문일까?
더 큰 힘을 가지면 무엇이 좋다고.
“말로 하지 그랬느냐. 그랬다면 주었을 텐데.”
-사건의 종결자도. 어리석은 혼돈도. 무정형(無定形)의 혼돈도, 모두 말입니까?
“참 욕심도 많구나.”
녀석이 언급한 이름은 모두, 아자토스가 가진 이름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큰 힘을 지닌 이름들이었다.
사실상 모든 이름을 다 빼앗겠다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말.
아자토스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이 자리에서 저들이 가진 이름들을 모두 회수했을 것이다.
“그 이름들을 가지고, 너는 무엇을 하려는 거냐?”
-…….
요그 소토스는 답이 없었다.
대신, 그는 무수히 많은 별들을 움직이며 아자토스를 위협해 보였다.
잔말 말고 이름을 내놓으라는 뜻인 걸까.
가소롭기 그지없다. 이런 짓을 하는 걸 보면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당장이라도 아자토스는 저들의 이름을 모두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었지만…….
“가져가거라.”
아자토스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은 저들에게 주었던 이름을 다시 가져올 수 없었다. 다시 혼자가 된다는 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아자토스의 말대로 소토스와 다른 아우터들은 그의 몸을 찢어발겼다.
그 살점 속에 있는 이름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각자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서로를 위협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름이 빼앗기던 도중에도.
‘끝내 대답을 하지 않는구나.’
아자토스는 내내, 하늘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소토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끝끝내,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말해 주지 않았다.
* * *
유원의 눈에 별이 담겼다.
그 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떨어져 내렸다. 아름답다고 홀려 보고만 있다면, 아마 그 힘에 깔려 짓뭉개지고 말 것이다.
츠츠츠-.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이계검(異界劍)’에 깃듭니다.] [‘이계검(異界劍)’에 의해 신력이 증폭됩니다.]칼끝에 깃드는 이름의 힘.
유원의 눈동자가 붉게 이글거렸다. 화안금정에 비쳐진 별들 가운데, 하나의 선이 그어져 보였다.
벤다.
찰각-.
검을 쥔 손을 살짝 틀어 자세를 잡았다. 하늘을 가른다는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쫘아악-!
단숨에 하늘이 갈라졌다.
시간이 멈춘 듯 쏟아져 내리던 별들이 정지하고, 하늘에 검은 선이 길게 그어졌다.
마치 세상이 두 쪽이 난 듯한 모습.
하지만 유원의 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의 힘이 증폭됩니다.] [‘이계검(異界劍)’의 내구도가 급격히 소모됩니다.]츠츠츠츠-!
칼끝에 깃든 기운이 더욱 증폭되어 갔다.
이계검의 효과는 신력의 증폭.
하나, 헤파이스토스의 역작이라던 아이템조차 아자토스의 힘을 증폭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쩌어어-!
방금 전과 같은 일격을 몇 번이나 더 뿌릴 수 있었다.
쫘아아아-!
하늘에 그어지는 몇 개에 달하는 검은 선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의 선은 하늘을 넘어 땅으로 이어져 사막을 반으로 갈랐다.
투둑, 투두두두-.
소토스가 날린 별들이 모두 베어져 추락했다.
쏟아지는 별들의 잔해.
유원은 그 잔해를 온몸으로 받으며 힐끗, 손에 쥐어진 칼을 바라보았다.
“이렇게나마 쓸 수 있는 게 다행인가.”
헤파이스토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계검은 두 명의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낸 최고의 역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지 못한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자토스의 힘을 버텨 내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쉬움에 중얼거린 유원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이제 어쩔 테냐?”
유원의 눈에 보라색의 아지랑이로 일렁거리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싸움이 시작된 후부터 줄곧, 성운의 별들을 뿌려 대던 소토스에게는 남아 있는 별이 몇 개 없었다.
요그 소토스.
녀석은 무수히 많은 이름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위대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다.
[사건의 종결자] [존재가 없는 공허] [세계(世界)의 하늘]구구구구-.
소토스가 지닌 이름이 사막을 짓눌렀다. 무한의 중력이 쏟아지자, 유원은 소토스가 싸움의 방법을 바꾸었다는 걸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럴 생각이로구나.”
유원의 허리가 조금씩 구부러졌다.
별들을 날리더니 이제는 중력을 뒤바꾼다. 녀석의 싸움은 역시나, 일반적인 생물의 싸움과는 궤가 달랐다.
소토스의 힘은 전능(全能)에 가까웠다.
“하나…….”
그리고 그건.
“한 번쯤은 뒤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아자토스’라는 이름도 마찬가지였다.
푸욱-.
소토스의 형상을 뚫고 나오는 손.
그 손이 소토소의 힘을 흔들었다.
구구구구-.
유원의 몸을 짓누르던 중력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유원은 소토스의 뒤로 나타난 팔의 정체를 바라보았다.
“잘했다.”
씩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
“단풍아.”
아자토스의 이름,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정해지지 않던 형체를 갖춰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내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존재해 왔던 단풍이, 이제는 어엿한 어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단풍.
그것은 유원이 지었던 첫 번째 이름.
본래 단풍은 아자토스가 될 예정이었다.
알에서 부화한 녀석이 손바닥 만한 크기에서 어린아이가 되고, 이제는 어른이 됐다. 그것은 유원이 지니고 있는 이름이 커질수록 생겨난 변화였다.
녀석은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의 본체였으니 말이다.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존재가 없는 공허’에 대항합니다.] [‘존재가 없는 공허’가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에 대적합니다.]츠츠, 츠츠츠-.
소토스와 단풍의 충돌에 주위로 신력이 스파크처럼 튀었다. 그렇게 두 이름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무정형(無定形)한 혼돈과 존재가 없는 공허.
두 이름 모두, 명확한 형체가 없기는 마찬가지.
화아아-!
단풍의 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거대한 혼돈이 소토스의 공허를 집어삼켰다. 별들을 잃어버린 공허는 보라색의 기운을 확장하며 단풍으로부터 저항을 시작했다.
츠츠츠, 츠츠-!
쿠르르릉-!
대기가 일그러지고, 시공이 뒤틀려 갔다.
저기에 휘말리게 되면 어떤 단단한 금속이라 해도 그 자리에서 소멸에 가까운 작은 점이 되어 버릴 것이다.
더군다나.
웅, 웅-.
흐릿한 소토스의 형상 가운데 생겨나는, 작은 점들.
유원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것은 ‘세계(世界)의 하늘’이 가진 힘이었다. 그 이름을 가진 한, 소토스는 무한에 가깝게 성운을 재생시키고, 또 그것을 하나로 만든다.
“……역시, 이대로는 끝을 낼 수가 없겠구나.”
벌써 며칠째 이 싸움은 계속되었다.
힘이 마르지 않는 둘이었고, 어쩌면 이대로라면 영원히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냥 부딪치기만 해서는 쉬이 결판이 나질 않았다.
“아직도 용기가 나지 않는 거냐? 소토스야.”
성운의 별들을 쏟아 내던 소토스는 지금껏 말 한 마디조차 내뱉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 한 마디조차 조심스럽다는 듯이.
소토스가 무엇을 경계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녀석은 아자토스를 두려워했다.
정작 그 이름 중 대부분을 빼앗아 간 주제에 말이다.
“하나이며 전부이자, 전부이며 하나인…….”
유원의 말이 시작되자, 소토스의 형상이 조금씩 꿈틀거린다.
끼이이-.
문이 삐걱거리는 듯한 소리. 일렁거리던 작은 우주 속에 있던 작은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시시한 말장난에 속아, 스스로가 전부가 되려던 못난 이름아.”
꿈틀-.
소토스의 형상이 계속해서 일그러지고, 꿈틀거렸다.
“언제까지고 거기 숨어 있을 셈이냐?”
그것은 도발이었다.
겁먹지 말고 어서 빨리 튀어나오라는.
치지지지-!
유원의 손에 채워진 장갑, ‘우라노스의 심장’이 빛을 뿜었다.
검게 손안에 휘감기는 전격.
타르타로스의 힘을 사용해 만들어진 ‘벼락’이 유원의 손을 타고, 몸에 휘감겨졌다.
“어서 나와서 나를 먹어치워 보거라. 그리하면 이 이름 또한, 원하는 대로 네 것이 될 테니.”
“당신은 모릅니다.”
어느새 소토스의 속에서 활짝 열린 문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당신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두려워해? 무엇을?”
“당신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이며 전부이자, 전부이며 하나인 것이라…….”
웅-.
성운이 흔들렸다.
그 속에 있는 문이 활짝 열리며, 끝내 ‘사건의 종결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린 알고 있습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분명, 예전엔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소토스에게 모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녀석은 하늘.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우린 결국 당신이 만들어 낸 이야깃거리일 뿐이라는 걸.”
“넌…….”
그런 소토스가 제대로 된 존재를 가지고 유원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소토스를 보며, 유원이 입을 열었다.
“내가 되고 싶은 거로구나.”
문을 열고 나온 소토스.
그는, 오래전, 아자토스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