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20
* * *
털썩-.
브룬힐데가 오딘의 옆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이 기적이라 할 정도의 몰골이었다. 갑옷 곳곳이 짓뭉개지고, 창백한 안색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오딘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괜찮다.”
“상처를 좀 보겠습니다.”
“상처랄 것까지야…….”
우우웅-.
브룬힐데의 손이 오딘의 등을 짚었다. 손바닥을 통해 마력이 스며들며, 진탕된 속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런데.
“……!”
브룬힐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발키리들의 수장으로서, 그녀는 검술에서뿐만 아니라 지휘관으로서의 능력과 치료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하늘에 속한 대천사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중상자들을 돌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오딘의 상태였다.
“……어떻게 살아 계신 겁니까?”
주륵-.
그 말이 트리거가 된 듯, 오딘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질문에 답을 하려 입을 벌린 오딘의 입안은, 온통 찢기고 터진 내장에서 역류한 피로 가득해 있었다.
“버틸 때까지는 버텨 봐야지 않겠느냐.”
‘아스가르드의 왕’은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가해지는 충격을 대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크게 상쇄되어 돌아온다지만, 제아무리 오딘이라 해도 계속되는 충격을 무한하게 받아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설마…….’
달칵-.
지이익-.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브룬힐데는 급히 오딘이 입고 있는 황금 갑옷을 벗기고, 그 속의 천 옷을 찢었다.
맨살이 드러난 등짝 위로, 설마 하던 것이 드러났다.
웅, 웅웅웅-.
기이잉-.
오딘은 온몸이 마법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마법의 수식은 모두, 충격을 완화시키고 몸을 회복시키는 것들이었다.
이 싸움이 시작된 이후부터 줄곧, 오딘은 이런 것들은 몸에 두르고 있었다.
“너무 그렇게 애쓸 것 없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마법진들.
그것은 오딘의 생명력이나 진배없었다.
“나라고 특별할 게 있겠느냐?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 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거늘.”
사람의 목숨에 정해진 무게는 없다. 그 관점에서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브룬힐데는 그 말에 긍정할 수 없었다.
오딘.
그가 누구던가.
이 탑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며, 다섯 개의 층을 아우르는 거대한 나라를 다스리던 존재였다.
더욱이 지금은 이 전장을 이끄는 우두머리였고.
꾸욱-.
브룬힐데는 차마 오딘에게 멈추라고 할 수 없었다.
그가 이 전장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신화, ‘아스가르드의 왕’은 그저 아군의 피해를 대신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오딘.
그 위대한 왕이 이 전장에 함께하고 있고,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그런데 만약, 오딘의 죽음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라파엘! 우리엘!”
전장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브룬힐데는 서둘러 하늘의 대천사들을 호출했다.
지금 당장 그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백분의 일, 혹은 만분의 일이라도.
최대한 그의 죽음을 늦춰야 했다.
[‘아스가르드의 왕’이 전장을 통솔합니다.]오딘의 이름이 이 전장에서 지워지게 해선 안 된다.
그걸 위해, 라파엘과 우리엘이 서둘러 달려왔다.
“회복을 부탁하오!”
브룬힐데의 부탁에 두 대천사가 오딘의 옆에 붙었다.
그들의 치료를 받으며, 오딘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지금 이 치료는 단지 죽음을 조금 늦출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거절하지 않은 건, 그 역시 지금 자신의 존재가 전장에 얼마나 필요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너는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
거칠게 숨을 내쉬며, 오딘은 멀리서 들리는 천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헤라클레스.’
콰릉-!
* * *
콰앙-!
헤라클레스가 뻗은 주먹이 거인의 턱을 후려쳤다.
그 거대한 몸체가 순간 위로 떠올랐다.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던 거인이 다시 한 번 휘청거렸다.
욱씬-.
주먹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심상치 않았다.
어찌나 두드려 댔는지, 슬슬 주먹이 아플 지경이었다.
콱-!
그렇게 거인의 몸을 두드리던 때, 무언가 헤라클레스의 다리를 붙잡았다.
제법 강한 악력. 날뛰던 헤라클레스의 움직임이 멈추고, 그대로 붙잡힌 힘에 의해 몸이 날아갔다.
부우우웅-!
콰과과과과곽-!
날아간 헤라클레스의 몸이 땅을 뒤집었다. 헤라클레스는 날아가는 와중에 한쪽 주먹을 땅에 박아 넣어, 급하게 중심을 잡았다.
“또 뭐 하는 놈이…….”
고개를 든 헤라클레스의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그것은 헤라클레스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부우웅-!
콰앙-!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질 정도의 충격.
파짓, 치지-.
다행히 헤라클레스는 급하게 몸을 전격으로 변화시켜 그 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내, 헤라클레스는 자신을 공격한 아우터의 존재를 확인했다.
거인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몸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거인이 아니었다.
마치 언데드족 괴물, 듀라한처럼 머리가 없는 녀석이었다. 몸은 살이 뒤룩뒤룩 쪄 있어, 어떻게 그리 빠르게 움직였는지 보고도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양손에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기괴한 입이 달려 있었다. 어쩐지 종아리에서 피가 흐른다 싶더니. 저 손에 달린 이빨에 물린 모양이었다.
[지성 있는 존재의 왜곡]이젠 이름을 보는 거라면 이골이 난 헤라클레스였다.
녀석의 이름을 확인한 헤라클레스는 질린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딱 이름처럼 생긴 놈이군.”
머리가 없고, 손에는 입이 달려 있다.
모든 게 왜곡된 모습.
느껴지는 기세가 만만히 볼 녀석은 아니었다.
“……피곤하게 됐군.”
슬슬 몸이 뻐근해진다.
마력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데다, 육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수밖에 없다.
치지-.
손에 휘감기는 전격.
헤라클레스의 손에서 몇 발의 벼락이 쏘아져 나갔다.
콰릉, 콰우웅-!
지성 있는 존재의 왜곡이 헤라클레스가 쏘아 낸 벼락을 피해 냈다.
“저 뚱뚱한 몸으로 이런 기동력이라니…….”
이건 반칙이지.
미처 말을 다 잇지도 못한 채, 헤라클레스는 손에 든 곤봉을 통해 벼락의 힘을 휘어감았다.
콰릉-!
헤라클레스의 곤봉과 지성 있는 존재의 왜곡이 부딪쳤다.
덩치에 비해 녀석은 너무나도 빨랐다. 힘도 만만치 않아, 체력적으로 지친 헤라클레스는 몇 번이나 뒤로 밀려져 나갔다.
쾅, 쾅쾅, 쾅-!
그그극-.
그렇게 조금씩, 헤라클레스가 뒤로 밀리던 때.
구구구구-.
그들 둘을 가리는 그림자가 위로 드리웠다.
거인의 발.
그것이 헤라클레스를 짓밟았다.
콰앙-!
우지끈-!
헤라클레스가 땅속에 박혔다. 순간 온몸의 뼈가 가루가 되어 으스러지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헤라클레스는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거인의 힘이 다리에 깃듭니다.]콰직-, 쿠지직-.
부풀어 오르는 두 다리.
“크으…….”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며, 헤라클레스가 중얼거렸다.
“하필 또 싸우는 게 이런 놈들이라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왜 매번, 자신은 이렇게 큰 놈들과 싸우는 걸까.
“네가 헤라클레스냐?”
오래전.
기간토마키아가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기간테스를 마주쳤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헤라클레스는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당시의 그는 무언가에 눈이 가려져 미친 듯이 전장을 휩쓸며 거인들을 학살했다.
“나는 알아보겠나?”
“……기간테스군.”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았다.
자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게.
쿵-.
네 명이었던 기간테스 중 하나.
그가 헤라클레스를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
“본래 온화한 성품이라고 들었다. 제우스와는 정반대라고 말이지.”
“그게 뭘 어쨌다는 거지?”
“우리 거인들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걸로 안다.”
그는 싸울 생각 따위는 없어 보였다.
기간테스라면 올림포스의 삼신급에 달하는 존재.
그런 기간테스가 스스로 무릎을 꿇다니,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화가 풀릴 때까지 마음껏 때려라. 죽이고자 한다면 그래도 좋다. 그 대신, 더 이상 우리를 핍박하지 말아다오.”
“쓸데없는 짓이다. 차라리 일어나서 싸워라.”
“아니. 이게 우리들의 최선이다.”
잠시 망설였었다.
과연 눈앞에 있는 이자를 죽이는 게 옳은 일인가.
몇 분 남짓,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던 헤라클레스는 그 자리에서 기간테스의 목숨을 가져갔다.
그날, 넷이었던 기간테스는 셋으로 줄어들었다.
[‘칭호 : 거인 학살자’를 획득하였습니다.]거인 학살자의 칭호를 얻은 것도, 그런 칭호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학살은 그때부터 조금씩 더뎌졌다.
거인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불쾌한 감정이 쌓이고, 분노와 죄책감의 충돌로 인해 가슴만 더 뜨겁게 타들어 갔다.
그리고 어머니 알크메네의 죽음이 제우스의, 그리고 아레스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헤라클레스는 또 다른 기간테스의 앞에서 다짐했다.
이 보잘것없는 목숨 따위, 달라면 얼마든지 주겠다고.
그걸로 부족하다면 어떻게든 잘못된 걸 바로잡겠다고.
자신의 남은 시간을 그걸 위해 쓰겠다고.
“……그러니까 네 말은, 기간토마키아를 일으킨 게 그 녀석 짓이라는 거냐?”
어느 날, 유원에 의해 알게 된 진실.
기간토마키아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던 헤라클레스에게 유원은 기간토마키아가 거인족의 말살을 위한 어리석은 혼돈의 계획 중 하나였음을 알려 주었다.
“그걸 실행한 건 네 아버지였지만 말이지.”
유원은 헤라클레스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기간토마키아를 실행시킨 건 제우스였으나, 최초 그 계획을 설립한 건 어리석은 혼돈이었다.
녀석은 이날을 위해 움직였다.
기간토마키아도, 라그나로크도, 천마대전도…….
수백만일지 수억일지 모를 생명이, 이날을 위해 죽어 갔다.
“오래 살고 볼일이군.”
생각해 보면 불과 몇 년 전이었다.
거인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죽이려 달려들던 게.
그랬던 자신이, 지금은 그 책임감을 등에 짊어지고 싸우고 있다.
‘어차피 난, 그날 거기서 죽었어야 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유원과 함께 기간테스의 앞에 섰던 그날.
죽기로 각오했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헤라클레스의 어깨 위에 무겁게 올라가 있었다.
[‘거인 학살자’가 ‘가장 높게 솟은 거인’을 대적합니다.] [‘거인 학살자’가 ‘지성 있는 존재의 왜곡’을 ‘거인’으로 인식합니다.]그리고 이 칭호는, 그 각오를 계속해서 상기시켰다.
‘어차피 그들의 피로 만들어진 몸과 신화다.’
거인 학살자도, 기간토마키아의 영웅도.
그리고 헤라클레스를 대표하는 스킬, ‘거인화’까지도 모두.
거인들의 피를 통해 쌓아 올린 힘들이었다.
‘그러니까-.’
그 힘이 몸에 흐르고 있는 이상.
‘난, 여기서 끝나더라도 상관없다.’
헤라클레스는, 목숨을 아끼며 싸울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