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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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토스가 니알라 토텝을 처음 발견했을 때.
이름도 없던 녀석은, 아무것도 먹지 못해 앙상하고 잔뜩 굶주려져 있었다.
오래 전부터 니알라 토텝은 이 세계를 싫어했다.
모두가 굶주리며, 불행한 세계라고.
그래서 녀석은 아자토스를 원망했다.
충분한 힘이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으며, 이 세계를 방치하고 있다고 말이다.
“나처럼, 이라…….”
유원은 니알라 토텝의 그 말을 입안에서 곱씹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유원은 자신이 김유원인지 아자토스인지 스스로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하긴, 처음부터 잘못은 이쪽에 있었지.”
유원의 시선이 황폐한 사막으로 향했다.
이곳은 이미 오래 전에 망해버린 세계였다. 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세계에서는 당연하게도 아무도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런 곳에서 아자토스는 다른 생명이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렇게 그는 이름을 나눠 주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걸 청산할 존재는 자신이었다.
‘그래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유원의 한쪽 눈에 탑 안쪽의 광경이 비춰졌다.
“이 미인은 누구야? 아프로디테 저리 가란데.”
“판도라다. 김유원 여자친구.”
“……김유원한테 여자친구가 생겼어?”
“어차피 곧 돌아갈 놈이 어딜 여기서까지 여자한테 찝적거려? 뒤질라고.”
“아니, 난 그냥…….”
“그리고 걔가 바루나 너보다 셀걸? 우리가 있던 곳에서는 못 봐서 그렇지.”
판도라의 앞에서 손오공의 분신이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급박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은 판도라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미래에서 온 동료들.
유원은 판도라의 눈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미미르.’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해, 미미르가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는 굳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덕분에…… 훨씬 쉬워졌군.”
본래 여기서 니알라 토텝을 꺾고, 다시 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서두른다면 싸움이 끝나기 전,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미미르 덕분에 저쪽에는 큰 변수가 생겨났다.
오딘과 헤라클레스가 동료들을 데리고 이쪽으로 넘어온 것이다.
이젠 걱정할 필요 없었다. 요그 소토스와 슈브 니구라스, 니알라 토텝이 없는 아우터들은, 충분히 맡겨 놓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오랜 시간, 아우터들과 싸워 살아남은 전사들이니.
그렇다면.
‘더 이상, 이름을 아낄 필요가 없다.’
망설일 이유가 모두 사라졌다.
“니알라야.”
유원의 부름에 니알라 토텝의 대답이 조금 늦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녀석은 뒤늦게 대답했다.
“예, 아버지.”
녀석은 유원에게서 두 명을 보고 있었다.
지금껏 오랫동안 자신과 대적해 온 김유원이라는 한 명의 플레이어와.
사막을 떠돌던 굶주린 어린아이에게 이름을 주었던 아버지, 아자토스.
그 두 명 중, 니알라 토텝은 유원을 아자토스라 여기며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그리고 유원은, 이번에는 아자토스로서 물었다.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겠느냐?”
“멈춘다면, 용서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모두 돌아간다면…….”
“제 생각보다 한술 더 뜨십니다.”
니알라 토텝의 입꼬리가 비웃듯이 위로 올라갔다.
“어리석은 나의 아버지여. 당신도 이제 아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당신이 사랑하던 모든 이름들이, 당신의 등에 칼을 꽂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 돌아가거라.”
“꼭 저를 봐 주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니알라 토텝의 양팔이 활짝 벌어졌다.
“당신이 가진 이름은 제가 가진 것보다 적습니다. 무정형의 혼돈 하나만으로 이 이름들을 다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사건의 종결자] [존재가 없는 공허] [세계(世界)의 하늘] [어리석은 혼돈] [검은 풍양의 여신] [발음할 수 없는 존재] […….]유원의 눈에 보이는 이름만 하더라도 백이 훌쩍 넘었다. 심지어 그중 ‘어리석은 혼돈’이나 ‘존재가 없는 공허’와 같은 이름은 무정형의 혼돈이 가진 이름만큼이나 높은 격을 지닌 이름이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꾸준히 이름을 모아 온 모양.
거기다 요그 소토스의 이름까지 먹어치웠으니, 확실히 자신만만할 만했다.
하지만.
“너도 그녀와 똑같은 실수를 하는구나.”
녀석은 결국 슈브 니구라스와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이름이 가지고 있던 힘은 사라져 껍데기뿐인 진명(眞名) 하나만이 남아 있지요.”
슈브 니구라스도, 그리고 니알라 토텝도.
이름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진명은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다. 네가 집착하는 여러 이름들이야말로 그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이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말.
그만큼 그들은 똑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자토스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화아아-!
니알라 토텝을 감싸고 있던 세상이 돌변했다. 보랏빛의 하늘도, 그간의 싸움으로 쩍쩍 갈라졌던 하늘도.
애써 그린 그림 위로 까만 먹물이 번지 듯, 니알라 토텝을 둘러싼 세상이 온통 칠흑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나는 무정형(無定形)의 혼돈 속에서 옥좌에 앉아 대혼란을 준비하는 불경스러운 왕.”
옥좌에 턱을 괴고 앉은 유원이 니알라 토텝을 내려다보았다.
“나보다 위대한 이름은 없느니라.”
니알라 토텝의 눈이 부릅떠졌다.
또다시 이렇게 그를 올려다봐야 하다니.
속이 벌써부터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억지입니다.”
“그리 보일 수도 있겠지.”
저벅-.
유원이 옥좌에서 내려왔다.
느긋한 발걸음.
니알라 토텝은 그런 유원을 집어삼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사용했다.
그런데.
“여긴 아무것도 없다.”
니알라 토텝의 이름은 반응하지 않았다.
“이름도, 그 무엇도.”
저벅-.
옥좌에서 완전히 내려온 유원의 키가 전보다 훨씬 높아져 보였다.
혹시나 싶어 내려다본 자신의 손이, 어느새 앙상하게 마른 어린아이의 손바닥으로 변해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말하지 않았느냐? 네가 집착하는 이름이야말로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이라고.”
유원이 니알라 토텝을 내려다보았다.
키가 유원의 허리 부근밖에 되지 않는 작은 어린아이는, 기껏 얻은 얼굴조차 잃어버린 채였다.
“나처럼 이 세계를 방치하지 않겠다고 했느냐?”
그리고 유원은.
“틀렸다.”
그런 니알라 토텝에게, 그동안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 진실을 꺼냈다.
“네가 그토록 싫어하던 그 세계를 그렇게 만든 게 나다, 니알라야.”
“……!”
충격을 받은 듯, 니알라 토텝의 가느다란 팔이 떨렸다.
“아자- 토스-!”
구구, 구구구-.
니알라 토텝의 분노가 공간을 울렸다.
그 분노에 유원이 앉아 있던 옥좌가 흔들렸지만 그 뿐.
“네가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가 아니다. 그저 네가, 나를 믿었을 뿐인 것이지.”
아자토스의 기억을 가지고, 유원이 가장 놀랐던 게 바로 이것이었다.
그토록 세계를 사랑하던 아자토스가. 아우터들조차 모르는 먼 과거에는 이 세계를 황무지로 만들었던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네가 나를 배신했다고 욕할 생각이 없다. 너를 비난한다면 오로지 네가 다른 이들에게 저지른 짓 때문이겠지.”
“대체 왜…… 아니, 어떻게…….”
니알라 토텝이 절망했다.
“아직, 그렇게 크신 겁니까?”
앙상하게 마르고 작아진 자신과는 달리, 유원은 점점 더 커져 보였다. 분명 가지고 있는 이름은 자신이 훨씬 많을 텐데도 말이다.
쩍-.
유원이, 아니 아자토스가 앉아 있던 옥좌에 금이 생겨났다.
“네가 아무리 많은 이름을 가졌다고 한들-.”
쩍, 쩌저저-.
옥좌의 금이 점점 더 늘어났다.
“결국 내가 원하면 이리 먼지처럼 변할 뿐이다.”
“……사라지실 생각입니까?”
점점 금이 늘어나는 옥좌를 보며, 니알라 토텝이 물었다.
저 옥좌가 가지는 의미라면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저것은 단순한 기물이 아닌, 아자토스의 힘 그 자체였다. 아자토스는 늘 저 옥좌에 앉아 힘을 다스렸다.
그런데 지금, 그 옥좌가 파괴되려 하고 있었다.
아자토스.
그 이름의 본질, 그 자체가 말이다.
“제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이름을 다 잃어버리고서 그렇게 힘을 쓰려고 하면…….”
“모든 이름은 아자토스로부터 나왔다.”
황폐해진 세계도. 니알라 토텝도. 그로부터 시작된 다른 이름들의 탐욕까지도.
모든 문제의 탄생은 아자토스였기에, 유원은 이 결말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그럼, 내가 안고 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
구궁, 구구구-.
니알라 토텝의 눈에 보이는 유원의 모습이 점점 더 크고, 위대해져갔다.
그것은 자신들에게 남아 있던 이름을 빼앗기기 전, 그 힘없고 왜소해진 아자토스가 아니었다.
가장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모든 이름들을 가지고 있던, 전능(全能)에 가까운 존재였던 그 아자토스의 모습이었다.
쩍, 쩌저-.
유원은 힐끔, 뒤쪽에 있는 아자토스의 옥좌를 돌아보았다.
“원래 이렇게 빨리할 생각은 없었다만-.”
화아아아-!
주위의 모든 공기가 니알라 토텝의 몸을 감쌌다.
돌변한 공기의 흐름에 반응하려던 것도 잠시.
콰득-.
니알라 토텝은 자신의 두 다리를 물어뜯는 이빨에 놀라, 급히 고개를 숙였다.
“뭣…….”
어느새 니알라 토텝의 두 다리는 저 아래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을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발버둥 쳐 보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저항이었다.
이 속에서 아자토스는 전지하고 전능했으며, 그가 가진 이름들은 아무런 힘을 지니지 못했으니.
“시간이 촉박해져서 말이다.”
콰득, 쿠득-.
니알라 토텝의 몸의 절반이 넘게 사라졌다.
단지 몸뚱이뿐이라면 모를까, 니알라 토텝을 끌어들인 무저갱은 그의 본질인 이름 자체를 소멸케 만들었다.
그렇게 존재가 사라지며, 니알라 토텝은 마지막으로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당신을…… 증오합니다.”
니알라 토텝은 굶주리고 외롭게 떠돌던 때를 떠올렸다.
“저주합니다. 당신이 가진 힘도, 이름도, 모든 것들을 전부 다-!”
“……그래.”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거라.”
콰드드-.
그렇게 니알라 토텝이 완전히 세계에서 사라졌다.
유원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니알라 토텝.
멸망한 세계에서 겨우 살아남았던, 굶주리고 어렸던 꼬마아이.
그 세계를 증오하고, 바꾸고자 했던 녀석.
그걸 위해 유원의 세계를 빼앗고, 파괴했던 적.
그런 녀석을 문제라며 탓하고자 할 생각은 없었다. 어찌 보면 결과가 삐뚤어진 것일 뿐, 녀석도 희생자일 뿐이었다.
‘모든 문제는 역시…….’
유원은 잠시 눈을 감았다.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결정할 시간이었다.
‘아자토스다.’
본래 이 순간을 가능하면 늦추려고 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겨났다.
쩍-.
옥좌의 금이 점점 늘어났다.
아자토스의 이름이 완전히 소멸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반나절 정도.
아무리 껍데기라 낮잡아 말했다지만 현재의 아자토스는 대부분의 이름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진명 하나만으로 전성기 때와 같은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무리가 뒤따르기 마련.
‘아직 시간은 있을 거다.’
아마 저 옥좌의 파괴와 자신의 소멸은 함께일 것이다.
‘문이 닫힐 때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