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26
* * *
수업 시간이 되자, 유원은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 주머니에 넣었다.
수업은 지루했다.
불면증을 치료하려면 병원이 아니라 학교를 가라고, 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는 학생이 절반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원은 교수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에- 그러니까,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은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가까운…….”
인문학.
성적에 맞춰 온 학교, 성적에 맞춰 온 학과였다.
하지만 유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수업에 집중했다.
“유명 스포츠 으류 브랜드인 나이x의 로고는, 흔히 초승달 모양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Νίκη)’의 날개를 옆에서 본모습으로…….”
거기까지 듣는 순간.
“니케는 날개 없는데.”
“응?”
무심코 입 밖으로 나온 중얼거림에 옆에서 졸고 있던 한다은이 놀라 물었다.
깜짝 놀란 유원이 고개를 저었다. 모른 척 수업에 집중하는 유원의 모습에 한다은은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집중하는 척했지만, 유원은 혼란스러웠다.
‘또다.’
승리의 여신, 니케.
분명 자신은 그녀를 알지 못했다. 애초에 신이라는 존재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원은 생각했다.
니케에게는 날개가 없다.
그것은 물음표가 아닌 확신이었다.
문제는 이 확신이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두 번이 아니야.’
신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늘 이랬다.
이 묘한 기시감은 어릴 때부터 쭉 이어졌다.
드륵-.
유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에 다시 이어폰을 꽂고, 밖으로 나왔다.
수업 시간에는 내내 졸던 한다은이 가방을 챙겨 나오는 유원을 따라 나오며 물었다.
“뭐야, 땡땡이냐?”
“어.”
“웬일로?”
어지간해선 수업에 빠진 적이 없던 유원이었다. 그런데 대뜸 수업을 내팽개치고 나가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기분이.”
“무슨 사춘기냐?”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마저 자라.”
드르륵-.
강의실의 뒷문을 열고 유원이 밖으로 나왔다.
학교 언덕을 내려와 대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기시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끼이-.
유원의 옆으로 버스 한 대가 멈춰 섰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버스에 붙은 포스터가 보였다.
아스가르드의 왕자 토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라그나로크.’
이미 본 영화였다. 첫 개봉일 때부터 유원은 무언가에 홀린 듯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걸 보면, 뭔가 또 기억날 것 같은 기분에서였다.
‘어림도 없었지.’
기억나기는커녕 기시감만 더 커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유원의 생각은 이것뿐이었다.
‘라그나로크는, 그런 게 아니야.’
마치 라그나로크를 겪어 본 듯한 감상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진짜 어디 무당이라도 만나 봐야 하나…….”
* * *
드르륵-.
문이 닫히고, 유원이 밖으로 나왔다.
산속이라 그런지 새소리가 유난히 잘 들렸다. 안에서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신님! 만신님!”
“갑자기 왜 기절을…….”
“모, 모르겠습니다. 아침까지는 팔팔하셨는데…….”
안에서 들려온 대화에 유원의 마음이 급해졌다.
도망가자.
서둘러 산을 뛰어 내려온 유원은 가쁜 숨을 내쉬며 자신이 뛰어온 길을 올려다보았다.
전생이라도 기억하는 건 아닐까 해서 사주를 보러 갔건만, 자신과 눈을 마주친 무당이 갑자기 덜컥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린 것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용한 무당을 찾는다고 제법 멀리까지 온 탓인지 시간이 늦어지고 말았다.
유원은 서둘러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날이 완전히 다 어두워진 후였다.
풀썩-.
“하-.”
가방을 한쪽 구석에 내던지고, 양말도 벗지 않은 채 작은 침대에 몸을 눕혔다.
계속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딘가 알 것 같은 이름이 귀에 들릴수록.
이 기시감은 점점 더 고조되었다.
힐끗-.
유원의 시선이 협탁 위로 향했다.
작은 상자 하나.
집에 올 때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었다.
언제였더라.
몇 년 전쯤, 길에서 마주친 어떤 여자가 대뜸 주었던 선물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미인이었다. 어지간한 연예인조차도 그녀에 비하면 오징어나 개구리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다.
“절대 열면 안 돼.”
선물이라면서 열지는 말라니.
“역시 궁금하단 말이지.”
대체 저 안에 든 게 뭐기에 절대 열지 말라고 하는 건지.
그녀가 자신의 이상형이 아니었다면 아마 진즉에 내다 버리거나 경고를 무시하고 열어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을 버리지 않고 지금껏 참은 건.
-한 눈에 반했기 때문이었다.
힐끗-.
유원의 시선이 계속해서 상자로 향했다.
‘궁금한데.’
열면 안 되는 상자.
이런 걸 두고, 뭐라고 하더라.
“판도라의 상자, 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유원의 가슴 한쪽이 쓰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덜컥-.
손을 뻗어 상자를 집은 유원이 상자를 열었다.
기다리고 고민한 시간과는 달리 상자는 손쉽게 열렸다.
허무할 만큼이나 말이다.
“뭐야.”
그리고 쉽게 열린 만큼, 그 안의 내용물 또한 허무했다.
“……아무것도 없네.”
상자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텅그렁-.
상자 속을 확인한 유원이 그것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한숨이 나왔다.
몇 년 전, 그녀에게 상자를 건네받았을 때 느꼈던 거품처럼 몽글몽글한 감정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그냥 쓰레기를 버린 거였나.’
괜히 기대했다.
유원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잠시 멍하니 누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기분이 더 들었다.
바닥에 떨어뜨린 상자에 자꾸 눈이 갔다.
힐끗-.
분명 아무것도 없는 걸 눈으로 확인했는데.
“내가 뭘 하는 건지…….”
유원은 다시 상자를 주워들어, 그 속을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텅 빈 상자였다. 거꾸로 뒤집어 봐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더 확인을 하지 않으면 이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을 것 같아, 유원은 아예 상자에 눈을 가까이 가져가 확실하게 확인했다.
“역시 없잖…….”
유원의 중얼거림이 멈췄다.
상자 속 바닥, 무언가 흐릿한 게 보였다.
그것은 집중할수록 점점 선명하게 보였다.
주황색 머리에 아름다운 이목구비.
길 한복판에서 이 상자를 주었던 그녀였다.
그녀는 붉은 원피스를 입고, 입에 케이크를 물고 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녀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유원, 김유원. 김…….”
상자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중얼거리는 이름은 자신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
유원은 그간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김유원…….”
이 상자를 건네준, 한 명이.
김유원을.
* * *
똑똑-.
누군가 판도라의 저택을 두드렸다.
식탁에 앉아 같은 이름을 중얼거리던 판도라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문을 두드린 게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유워…….”
“그대가 판도라요?”
“…….”
느끼하게 생긴 구릿빛 피부의 남자였다.
꽃다발을 손에 쥔 그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그녀에게 다른 한 손을 내밀었다.
“데바의 하이랭커, 나 바루나는 정식으로 그대와 교제를…….”
이내, 그의 얼굴 위를 그림자가 덮쳤다.
부우웅-.
쩡-!
바루나가 별이 되어 하늘 위로 날아갔다.
더 들을 가치도 없었다. 단숨에 주먹을 날린 판도라는 손을 털며 문을 닫았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탑 최고의 미녀가 외딴 저택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구애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녀석들.
그다음도.
또다시 그다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판도라는 어김없이 주먹을 휘둘러 그런 불청객들을 날려 버렸다.
“누군진 몰라도 좋겠군.”
그나마 문전박대 정도에서 그치는 건 딱 두 명.
스윽-.
손오공이나 지금처럼 매번 케이크를 손에 들고 찾아오는 헤라클레스 정도였다.
“이렇게 기다려 주는 사람도 있고.”
“……?”
판도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눈이 동그랗게 뜬 그녀의 표정에 헤라클레스가 물었다.
“왜?”
“내가 기다리는 걸로 보여?”
“그럼, 아니었나?”
맞긴 했다.
다만, 지금까지 헤라클레스가 이런 걸 언급한 적이 없어서 의아할 뿐이었다.
“방금 전에 바루나가 날아가던데. 그 녀석, 성격은 조금 느끼해도 잘생긴 걸로 인기 많거든.”
헤라클레스는 씩 웃으며 물었다.
장난기가 묻어난 표정이었다.
“기다린다는 그 녀석, 많이 좋아하냐?”
“응.”
판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결혼할 거야.”
“결혼할 거야.
헤라클레스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겹쳐졌다.
어째서인지 판도라의 이 말이 처음 같지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자리에 멍하니 서 있던 헤라클레스가 판도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왜?”
“아, 아니.”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은근히 무언가를 기대하던 판도라가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를 줄 알았건만. 결국 똑같은 반응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그렇게 문 앞에서 잠시 대화를 나누고는 돌아갔다. 판도라는 그가 멀어지는 걸 잠시 지켜보다 몸을 돌렸다.
끼이이-.
천천히 문이 닫혔다.
쿵-.
지난 수십 년 간, 판도라는 누구도 이 문 안쪽으로 사람을 들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부디 이 문을 넘는 첫 번째 사람이 기다리던 그이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막 문을 등져 저택 안으로 들어온 판도라가 선물 받은 케이크를 먹기 위해 포크를 드는 순간.
똑똑-.
누군가 또다시 문을 두드렸다.
헤라클레스는 방금 돌아갔다. 손오공이라면 얌전히 노크를 하는 게 아니라 벌써부터 시끄럽게 떠들어 댔을 것이다.
반갑지 않은 노크 소리.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씨이-.”
오랜만에 헤라클레스가 들고 온 케이크를 먹을 생각에 조금 기분이 좋아지던 순간이었는데.
그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그녀는 한 손에 포크를 쥔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판도라는 다짐했다.
이번에는 날려 버리지 않고, 포크로 찌르리라.
그렇게 판도라가 신경질적으로 손을 뻗어 문을 열어젖혔다.
덜컥-.
“또 누구-.”
이번엔 또 어떤 놈이냐며 방문객의 얼굴을 확인한 판도라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환한 햇살 아래.
유원이 판도라를 내려다보았다.
“반응을 보니, 누가 많이 왔었나 보네.”
속을 그렇게 썩였으면서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막상 이 상황이 되니 뭐라 말하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판도라는 그만 그 자리에서 굳어지고 말았다.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았다.
어딜 갔던 거냐고.
왜 이제 온 거냐고.
왜 전부, 널 기억하지 못했던 거냐고.
질문이 너무 많은 나머지 아무런 말도 나오질 않았다.
어색한 침묵도 잠시.
“내가 좀 당연한 걸 묻는 것 같기도 한데…….”
혹시나 하는 걱정과 함께, 유원이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내 이름…….”
기억하냐고.
그렇게 물어보려는 순간.
와락-.
판도라가 달려들어 목을 껴안았다.
“유원-!”
벌써 질문을 다 듣기라도 한 듯.
목청껏 그의 이름을 소리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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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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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꿈을 꿨다.
유원은 그 꿈을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곳에서 자신은 학생이었다.
그 세계에서 손오공은 서유기라는 신화의 신처럼 여겨졌고, 녀석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가 만들어졌다.
치키차카초코초코, 웃기고 재밌는 노래가 아직도 귀에 맴돌았다.
생각해 보면 그 세계에서 손오공은 유달리 인기가 많았다.
그 녀석의 이름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만 해도 대체 몇 종류였는지 모른다.
이야기를 듣던 손오공의 어깨가 잔뜩 올라갔다. 그는 헤라클레스를 보며 거 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올림포스를 배경으로 한 만화는 수십 권에 달하는 만화책으로 출간되었다. 열 권이 넘게 나온 만화책 ‘올림포스 신화’는 도합 천만 권이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작품이었다.
이 대목에서, 헤라클레스는 자신은 왜 주인공이 아니냐면서 조금 아쉬워했다.
토르가 주인공인 영화는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그 역할을 맡은 배우는 이듬해 영화제에서 최고의 액션배우로 상을 받았다.
아쉽게도 주인공은 오딘이 아니었다.
그밖에도, 유원이 꾸었던 꿈속의 세계에서는 수없이 많은 길드의 이야기가 곳곳에 퍼지고 사람들의 삶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렇게 판도라와 헤라클레스, 손오공까지.
네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유원이 그 꿈을 이야기하자, 손오공이 제일 먼저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런 세계가 대체 어디 있느냐고.
-신과 함께 레벨업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