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30
* * *
“기, 기억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 녀석에 대해서는 왜 물어보는 거지?
“그건…….”
역으로 돌아온 질문에 바루나는 말끝을 흐렸다.
그 이유에 대해 말하려면 지난 십 년 간, 자신이 판도라에게 끝없이 구애를 해 온 것도 함께 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할 말 없나?
“아, 아닙니다. 모르신다면 됐습니다.”
-그래?
흐음-.
어딘가 미심쩍은 듯 비슈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더 이상 얘기할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통화는 끊어졌다.
-알겠다. 그럼 끊으마.
뚝-.
빈 화면으로 변한 키트를 바라보며 바루나는 다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해졌다.
데바의 주인인 비슈누는 분명 김유원과 꽤 인연이 있었던 걸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비슈누조차 김유원을 기억하지 못한다.
갈등하던 끝에, 바루나가 소리쳤다.
“배, 배! 배 돌려!”
* * *
25층의 세계.
길드, ‘원탁’이 다스리는 나라 브리튼이 있는 곳.
그 심장부에는 백 명의 기사들이 둘러앉는 신성한 원탁이 존재했다.
하나 오늘.
그 원탁의 주인은 백 명의 랭커가 아닌, 여러 길드의 절대자들이었다.
“늦는군.”
“어디 그놈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키던가.”
“주인공은 제일 늦게 등장한다, 뭐 그런 뜻 아니겠어?”
여러 랭커들이 원탁에 둘러앉았다.
새롭게 원탁의 주인이 된 가웨인.
원탁의 수호자, 멀린.
아스가르드의 새로운 왕, 토르.
사자왕과 칼리, 데바의 비슈누…….
수많은 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꿀꺽-.
그 주위에서 경계 중인 원탁의 기사들은 저마다 긴장해 마른침을 삼켰다.
원탁도 작은 길드는 아니었지만 눈앞에 있는 별들에 비하자면 한없이 작았다.
‘뭔 일이야, 대체?’
‘나도 몰라.’
‘아, 집 가고 싶다…….’
‘숨소리도 못 내겠어.’
원탁의 랭커들 중 유일하게 멀쩡해 보이는 사람은 멀린뿐이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두 사람.
바로 현 올림포스를 이끌어가는 기둥들, 제우스와 하데스였다.
그렇게 수십 명의 별들이 그들 두 사람을 기다리던 중.
“……알겠다. 그럼 끊으마.”
뚝-.
비슈누는 방금 전에 걸려 온 바루나와의 전화를 끊고는 중얼거렸다.
“또 쓸데없는 짓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왜? 무슨 일 있어?”
옆에서 손오공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어지간히 심심했는지 손오공은 한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원탁을 빙빙 돌고 있었다.
“가만히 좀 있을 수 없나? 정신 사나워서.”
“어차피 다 모이려면 멀었잖아?”
“그렇긴 하다만…….“
“심심해 죽겠다. 불만이면 나랑 싸워 주든지.”
“그건 거절하지.”
비슈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막무가내인 손오공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 탑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죽어 버린 오딘이라도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긴. 그렇지 않아도 찝찝했는데 잘됐나.’
이 좁은 회의장에서 진짜로 손오공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비슈누는 적당히 손오공의 심심함을 달래 줄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김유원이라고 아나?”
“김……?”
손오공의 눈이 흔들렸다.
이내, 그는 비슈누를 향해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소리쳤다.
“너 드디어 기억……!”
쥐구멍으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
그 순간, 손오공의 머릿속에 유원의 경고가 떠올랐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어디 가서 나 기억나냐고 떠들고 다니진 마라.”
“아니,왜?”
“그냥 지금은 적당히 이렇게 있는 게 나아. 어차피 언젠가 다시 기억이 나긴 할 거니까.”
“아쉽지 않아? 그럼 널 아는 건 여기 있는 우리 셋밖에 없는 건데.”
“상관없지. 어차피 영원히 잊혀지는 것도 아니니까.”
“만약 떠들고 다니면?”
“절교다.”
환하게 웃던 손오공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며 실망한 얼굴을 한 손오공의 표정 변화에 비슈누는 이상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내, 손오공은 비슈누의 눈치를 살피다 몸을 돌렸다.
“아, 배고프다. 야, 헤라클레스! 너 뭐 먹을 거 있냐?”
“아나 보군.”
확신에 찬 비슈누의 말에 손오공이 흠칫 놀랐다.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을린 손오공이 비슈누를 돌아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내, 내가 뭘?”
휙, 휘리리-.
김빠진 휘파람 소리가 부자연스립게 흘렀다.
제 딴에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연출이었겠지만 글쎄.
오히려 그 휘파람은 ‘나 지금 수상합니다’라고 광고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힐끔-.
‘이상하군.’
‘이상해.’
‘뭘 숨기고 있는 거지?’
손오공과 친하든, 친하지 않든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은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손오공이 누구던가.
천계와 맞서 싸워 옥황상제를 쓰러뜨리고 제천대성이라는 이름을 얻은 데다, 아우터와의 전쟁에서 지대한 공을 세운 영웅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손오공이 숨기는 비밀이라.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사람.
“저 바보 원숭이가…….”
헤라클레스는 조용히 머리를 싸매며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시끄럽군.”
손오공에 의해 어수선해진 회의장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저벅-.
유난히 큰 두 명의 발걸음 소리가 회의장에 들어섰다.
휘파람을 불던 손오공도.
그런 손오공을 욕하던 헤라클레스도.
김유원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되새기던 비슈누도.
모두의 시선이 그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드디어 오셨군.”
“십 년 만인가.”
“그새 얼굴이 더 훤해졌어.”
이 자리에 모인 랭커들은 모두 탑에서 선택받은 고위 하이랭커들이었다.
아우터와의 전쟁을 겪고, 그 전 쟁에서 살아남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랭킹을 지켜온, 실질적인 탑의 지배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존재는 눈이 부실 수밖에 없었다.
오딘이 죽고, 데바의 주인인 비슈누를 제치고 랭킹 1위에 오른 왕좌의 주인.
아스가르드를 제치고 탑 최고의 길드가 된 올림포스의 왕인 자.
“제우스…….”
제우스와 하데스.
올림포스를 통치하는 두 명의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수선하군.”
하데스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손오공에게서 멈췄다.
회의실 내에서 원탁의 기사들을 제외하면 일어서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또 저 원숭이 때문인가.”
빠직-.
손오공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뭐 인마?”
“성질을 죽여라. 중요한 자리다.”
“시비를 누가 먼저 걸었는-.”
“시끄럽다.”
턱-.
언성을 높이는 손오공의 머리를 큼직한 손바닥이 짓눌렀다.
표정을 구긴 손오공을 뒤덮은 헤라클레스의 손.
“네가 먼저 소란을 일으킨 건 사실이다. 자리에 가서 앉아라.”
“아오, 씨.”
제아무리 막무가내라고는 하나, 계속 회의를 방해하고 있을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결국 손오공은 씩씩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단숨에 소란을 일으킨 손오공을 진정시킨 헤라클레스가 제우스를 바라보았다.
“시작하시지요.”
눈이 마주친 제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 * *
닷새가 흘렀다.
바루나는 다시 1층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지는 꽤 됐다.
하지만 그는, 곧장 유원에게 가지 못했다.
카페에 앉아 다리를 덜덜 떨던 바루나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내가 왜 돌아왔지?’
하루 종일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일단 돌아오긴 했는데 유원에게 돌아가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말을 꺼냈다가 혹시 그대로 목이 날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덕분에 바루나는 아무 카페에나 들어와 앉아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었다.
“저기, 손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바루나가 고개를 돌렸다.
머리를 예쁘게 뒤로 묶은 카페 주인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바루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카페는 만석이었다.
아니, 만석인 지는 꽤 오래 됐다.
분명 아침 무렵에 들어온 것 같은데 벌써 밖은 해가 지고 있었다.
‘맛집이었네.’
이 사람 많은 카페에서 고작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하루 종일 다리나 떨고 있었다니.
민망함을 느낀 바루나는 급히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크흠. 커피 한 잔 더 주십시오. 딸기 케이크도 한 조각 주시고.”
“커피 한 잔, 딸기 케이크……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바루나 님.”
“날 아십니까?”
“알죠. 플레이어가 바루나님 모르면 간첩이게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싸인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하, 기꺼이. 자리만 축내서 미안했는데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군요.”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바루나는 카페 주인에게 싸인을 선물했다.
이내,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은 바루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그래. 이게 맞지.’
자신을 아냐며 능청스레 묻긴 했지만 실은 알고 있었다.
이 카페에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나 정도 되면, 당연히 다 알 수밖에 없는 거 아니야?’
이 탑에서 바루나는 연예인이나 다름없었다.
잘생긴 얼굴.
매너 있는 말투.
데바의 간부가 될 정도의 실력.
화보집까지 찍은 데다, 랭킹까지 높으니 관심을 받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김유원.’
그는 달랐다.
‘그분 정도 되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건데 말이지.’
전성기 시절, 유원은 랭킹 4위까지 오른 전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는 탑의 마지막 전쟁을 예견하고, 어리석은 혼돈이라는 아우터와 일찍부터 싸워 왔으며 탑의 혼란을 막아낸 영웅이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업적만 놓고 봐도, 탑의 실질적인 지배자나 다름없는 제우스보다도 높았다.
비록 어떤 이유인지 마지막 전쟁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지만 말이다.
‘잠깐만.’
“그분?”
어느새 유원을 속으로 높여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 중얼거리는 순간.
“바깥이 시끄럽길래 혹시나 했더니만.”
스윽-.
두려운 얼굴이 바루나의 맞은편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음습한 기척은 너였나?”
“김…….”
바루나의 눈이 커졌다.
이내,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직은 괜찮다. 여긴 카페야.’
유원은 분명히 말했다.
다시 한번 판도라에게 접근했다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여긴 시내에 있는 카페.
죄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카페에는 무슨 일이십…… 지?”
“무슨 말투야 그건?”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어정쩡한 말투.
유원은 차갑게 식은 바루나의 커피잔과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주문하신 커피와 케이크 나왔습니다.”
때마침 나온 메뉴.
커피와 케이크를 들고 온 카페 주인이 바루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이어, 그녀의 시선이 유원에게 잠시 머물렀다 돌아갔다.
바루나와 함께 있는 유원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런 카페 주인의 시선과 함께.
“……아.”
유원은 눈앞에 있는 바루나의 표정을 보고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을 보는 카페 주인과 바루 나의 눈빛이 전혀 다르다는 걸.
“기억났나 봐?”
달칵-.
새로 시킨 바루나의 커피를 집어 들며, 유원이 물었다.
“내가 누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