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32
* * *
“화합의 날 당시 생존자와 사망자의 명단입니다.”
데바는 아스가르드와 함께 이 탑에서 가장 오래된 길드였다.
그들은 기록을 중요시했다.
특히 수르야는 이 탑에 벌어지는 일이라면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모두, 언젠가를 대비해 기록해 놓았다.
그날도 그랬다.
수르야는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은 물론, 아우터와 관련이 있다 여겨지는 모든 사건을 기록했다.
어떤 길드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전쟁에서 공을 세운 랭커에게는 어떤 상을 내려야 할지.
데바 내에서 희생자가 있었다면 그들의 사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렇게 명단을 확인하는 순간, 비슈누가 물었다.
“어떤 순서로 정리해 놓은 거지?”
“생존자와 사망자, 둘 모두 공헌도 순서대로 정리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공헌도?”
처음에는 분명 의아했다.
만약 정말 공헌도 순서라면, 제일 첫 번째 이름은 제우스나 오딘, 혹은 자신이었어야 했을 테 니까.
그런데.
“처음 보는 이름이군.”
그 기록의 첫 번째에는 [김유원]이라는, 생전 처음 보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원래였다면 그때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다.
그렇게 이상함을 느꼈으면 김유원이 누구인지를 조사하고, 그를 찾았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비슈누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비슈누만이 아니었다.
‘수르야도. 나도. 다른 모두가 그랬다.’
생각해 보면 김유원이라는 이름을 발견한 건 그때만이 아니었다.
아우터와 관련된 여러 기록들 속에서 김유원이라는 이름을 본 건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모두, 김유원이 누구인지 찾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작위적이기 이를 데 없는 행동들.
‘뭐야, 대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왜 그때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지는 물론이고, 왜 지금에 와서 하필 그때 상황이 떠올랐는지까지도 모두 의문이었다.
‘그래서 김유원이 누군데 대체?’
* * *
길드 십이지신.
열두 명의 랭커와 백여 명의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소형 길드.
그 길드의 길드장, 브라닐은 15층에 있는 한 저택에 앉아 손님을 맞이했다.
“……심부름꾼이 여기까진 무슨 일이지?”
긴 식탁의 맞은편에 앉은 작은 꼬마.
심부름꾼.
관리자들의 손과 발로서, 그들의 일을 대신하여 처리하는 자들.
그들은 본래는 시험을 계획하거나 탑에 있는 중요한 기관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식으로 심부름꾼이 랭커를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적어도 브라닐의 머릿속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못 올 곳이라도 됩니까?”
“경우가 없던 일이라.”
“예고도 없이 찾아온 건 죄송하군요. 오, 이거 차맛이 아주 좋은데요. 가는 길에 좀 얻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꼬마처럼 생긴 게 말하는 건 애늙은이나 다름없었다.
하하 웃는 심부름꾼의 얼굴에 브라닐은 긴장했다.
눈앞에 있는 심부름꾼은 최소 관리자 휘하에 있는 기관의 본부장급에 달하는 심부름꾼이었다.
즉, 어지간한 하이랭커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뜻.
‘우리가 뭐 잘못한 게 있었나?’
십이지신은 작은 규모의 길드였다.
길드를 운영하는 데 뭔가 잘못된 게 있다 쳐도, 눈앞에 있는 정도의 고위직의 심부름꾼이 직접 나설 만한 일은 없었다.
움직인다고 해도 말단 심부름꾼 하나둘쯤 움직이겠지.
더군다나.
쪼르르르-.
눈앞에 있는 심부름꾼은 벌써 삼십 분째 아무런 말도 없이 천천히 차만 따라 마시고 있었다.
“15층의 시험 감독관 총괄, 나비손이라고 합니다. 소개가 너무 늦었네요.”
대부분의 심부름꾼들은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있는 심부름꾼이라는 건, 관리자의 선택을 받은 정말 소수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이었다.
나비손.
사람의 이름으로 칭하기엔 특이한 편이었다.
의외는 아니었다.
세간에 알려져 있는 몇몇 심부름꾼들의 이름 역시, 눈앞에 있는 나비손처럼 특이한 이름이 대부분이었으니.
“내 소개는 필요 없겠지. 어차피 다 알고 온 것 같으니.”
“예. 십이지신의 리더이신, 용족의 자랑스러운 랭커. 브라닐 님 아니십니까.”
“이름까지 있는 심부름꾼께서 그렇게 말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아무튼 그럼 소개를 서로 했다 치고, 이제 용건이나 말해 보지 그래?”
불안했다.
눈앞에 있는 나비손이라는 심부름꾼의 존재 자체가.
특별히 큰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계속되는 불안감이 브라닐을 떨게 만들었다.
십이지신이 그리 대단한 길드는 아니라지만, 브라닐은 하나의 길드를 이끌어 온 랭커였다.
탑을 100층까지 정복한 자들은 모두 특출난 구석이 있기 마련.
그리고 브라닐을 지금의 이곳에 있게 만든 건,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위험하다.’
까닭 모를 불안이 확신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삼십 분 남짓이었다.
용건을 말하라는 말에, 나비손은 벌써 두 번이나 응하지 않았다.
묵묵히 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며 날씨가 좋다는 둥, 헛소리나 해댈 뿐.
드륵-.
그렇게 막, 불안감에 질식되어 가던 브라닐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앉으십시오.”
저벅-.
누군가 두 사람이 있는 방의 문 앞으로 걸어왔다.
“그분이 오셨으니.”
“왔다고……?”
브라닐의 눈동자가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당장 눈앞에 있는 나비손만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또 다른 누군가가 허락도 없이 자신의 공간을 침범했다니 화가 날 수밖에.
“여긴 십이지신의 길드 하우스다. 아무리 심부름꾼이라도 누구 마음대로 내 구역에-.”
[누구 마음대로.]구웅-.
건물이 내려앉는 듯한 중압감.
[여기가 네 구역이라는 거지?]쿠득, 쿠드드-.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찌그러져 갔다.
단순히 구겨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한 점으로 구겨진 문짝은 이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야 할 정도로 큰 거구.
그 거구를 올려다보며, 브라닐은 비로소 자신이 느끼던 불안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세계는 내 것이다.]“과, 과…….”
브라닐은 덜덜 떨리는 입을 겨우 이어 말했다.
“관리자?”
거구의 몸에서 흐르는 불규칙한 마력의 흐름.
마치, 이 세계의 모든 걸 한 명의 사람으로 빚어 놓은 듯한 존재감.
15층의 관리자가 브라닐의 눈앞에 나타났다.
‘크다.’
브라닐은 눈앞에 선 관리자를 올려다보았다.
크다는 건 단순히 덩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덩치만으로 놓고 보면 거인족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정도였다.
탑을 오르며 여러 거인족들을 만나 온 브라닐에게, 이 정도 덩치는 놀랄 만한 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작아진 건가?’
브라닐은 눈앞에 있는 관리자에 비하면 자신이 한없이 작고 하찮은 먼지가 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쿠구구-.
털썩-.
관리자의 몸에서 흐르는 마력에 짓눌린 브라닐이 무릎을 꿇었다.
‘쿵, 쿵-.’
관리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나비손이라는 이름의 심부름꾼은 그를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수많은 심부름꾼들이, 관리자의 주위를 요정처럼 맴돌았다.
[너무 겁을 먹었군. 이래서야 대화가 되질 않겠어.]관리자가 낮게 혀를 찼다.
관리자의 몸에서 흐르는 위엄에 브라닐은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하긴.
애초에 그걸 의도하고 있던 거였으니, 관리자의 입장에서도 지금 이 상황에 대해 큰 불만은 없었다.
[정신 차리거라. 브라닐.]“아, 알겠…… 습…….”
브라닐은 횡설수설하며 급히 차를 내왔다.
정신이 없었다.
공포가 몸을 집어삼켜, 제대로 된 사고조차도 되지 않았다.
지금은 일단 최대한 관리자의 기분을 맞출 생각뿐이었다.
“여기…… 있습…….”
[브라닐.]관리자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인자하고 평온한.
뇌를 녹이는 듯한 울림이었다.
“예, 예?”
얼빵한 대답과 함께 관리자는 브라닐이 건넨 찻잔을 받아 마시고는 물었다.
[우리에게 오지 않겠느냐?]* * *
올림포스.
거대한 산 위에 위치한 성 안에는, 한 사람이 왕좌에 앉아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절그럭-.
황금색의 갑옷을 입은 채, 제우스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변수로군. 변수야…….”
툭, 툭-.
옥좌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중얼거리자, 대전의 문이 열렸다.
“혼잣말하는 버릇은 여전하군.”
끼이이-.
육중한 철문이 열리며 바깥에서 하데스가 걸어 들어왔다.
“그렇게 신경 쓰이나?”
“오셨습니까, 형님?”
“오냐.”
제우스는 뒷짐을 지고 온 하데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어쨌거나 형제지간이었다.
공식 석상에서라면 모를까 제우스는 사적인 자리에서는 하데스에게 존칭을 사용했다.
“아직도 신경 쓰는 거냐?”
“그렇습니다.”
“하긴. 보통 일이 아니긴 하지. 그것 때문에 거대 길드 회의까지 소집했으니.”
거대 길드가 한 자리에 모인 건, 십 년 전에 있던 전쟁이 마지막이었다.
화합의 날. 그리고 벽이 무너지며 시작된 아우터와의 전쟁.
두 사건 모두 탑이 전례 없이 큰 위기에 봉착했을 때였다.
그리고 이번 사안은, 제우스가 느끼기에 그 정도로 큰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드는군.”
“관리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게 뭐가 문제라는 거지?”
“관리자는 탑을 위해 움직인다. 애초에 목적이 저들과는 달라.”
한 번 큰일을 겪어 봤기 때문일까.
관리자의 대응에 반응은 반반으로 갈렸다.
“관리자를 적으로 인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아무리 네 말이라 해도, 그들과 싸우는 건 십 년 전의 싸움을 반복하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 말이야.”
“형님은 믿으십니까?”
회의를 소집하기 한 달 전쯤, 올림포스가 있는 층의 관리자가 제우스를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관리자가 직접 올림포스를 찾아왔다.
그는 올림포스의 심장부.
올림포스의 주인만이 앉을 수 있는, 대전의 왕좌에 앉아서 제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믿지 마라.”
“우리? 관리자를 말하는 건가?”
“그래.”
제우스는 오래전부터 관리자와 꽤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관리자는 이 탑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주인이나 다름없었고, 당시에는 관리자와의 관계가 곧 길드의 영향력을 좌우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관리자는 탑을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움직일 뿐이지.”
그날 찾아온 관리자의 말은 지금껏 제우스가 가지고 있던 관리자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무슨 소리지 그게?”
“여기까지만 말하마. 나도 이 이상은 말하기 부담스러우니.”
그를 더 붙잡을 수는 없었다.
관리자는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혼란스러운 말이었다.
어떤 근거도 없었다. 그럼에도 제우스는, 그날 있던 관리자의 말을 쉽게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건 경고였습니다.”
제우스는 확신했다.
“감히, 우습고도 멍청하게도…….”
파짓, 파지지-.
갑옷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전격.
가소로움에 입꼬리를 비틀고 웃는 제우스를 보며, 하데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 표정을 보니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우리에게 이빨을 드러낸 겁니다.”
이미 제우스는 싸움을 시작해 있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