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34
* * *
“여기 구슬 같은 건 없어.”
유원의 말에 시어릭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바뀐 표정의 변화는 찰나였다.
평범한 플레이어는 물론, 웬만한 랭커들조차 그 변화를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사기꾼 시어릭.
그 이름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겁니까?”
“구슬이 있어야 고르지. 없는 구슬을 고를 순 없지.”
턱-.
유원이 가장 가까이 있는 컵을 집어 들었다.
“봐.”
빈 컵.
유원은 다음으로 옆에 있는 다른 컵을 향해 손을 옮겼다.
“여기에도.”
두 번째에 이어 세 번째.
“여기에도…….”
그렇게 유원이 네 번째에 이어 다섯 번째 컵을 집어드는 순간.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콱-.
시어릭이 유원의 손을 붙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손목을 꺾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당장 이 자리에서 어떤 소란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혹시 이 새끼, 관리국에서 나왔나?’
상대는 자신의 속임수를 간파했다.
맞았다. 유원의 말대로 이 컵 안에는 구슬이 들어 있지 않았다.
“없는 거 맞잖아?”
짜증 섞인 유원의 물음에 울컥 화가 솟구치던 때.
“오, 이게 여기 떨어져 있었네요!”
가까이서 호객 행위를 하던 시어릭의 일행이 손에 주홍색의 구슬을 집어든 채 소리쳤다.
“하하, 이런 실수를 다 하시고. 시어릭님답지 않으십니다.”
일부러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손에 들린 주홍색 구슬은 발견한 관중들이 술렁거렸다.
“뭐야, 구슬이 없는 게 진짜였어?”
“언제 떨어진 거지?”
“랭커도 실수를 하긴 하는구만.”
“난 좀 수상한데…….”
시어릭의 눈매가 미미하게 좁혀졌다.
가까이 있는 유원만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작은 표정의 변화.
하지만 그 언짢은 기분과는 달리, 시어릭은 사과를 해야 했다.
“제가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이걸 어찌 보상해야 할지…….”
“얼른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지. 어쨌든 구슬이 여기 없다는 걸 찾은 것도 사실이니까.”
유원의 시선이 힐끔, 관중들을 진정시키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사기꾼 팀인가. 저 녀석도 제법 실력은 있는 놈 같은데…… 랭킹이나 실력이 아깝군.’
고작해야 1층이었다.
시시한 게임이지만 이 게임에 도전하는 데 들어가는 100포인트는 엄청 큰돈은 아니더라도, 1층에선 무시할 수 없을 만한 돈임에는 확실했다.
이렇게 한 달만 더 일해도, 100만 포인트 정도는 우습게 벌 수 있을 정도.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아무도 저들이 내건 ‘상품’을 획득하지 못했을 경우였다.
‘사기꾼 시어릭. 이름만 들어 봤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가.’
그리 유명한 랭커는 아니었다.
환각 계열의 스킬을 다루는 랭커로서 본래 녀석은 전투 보조에 특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돈에 눈이 멀어, 여러 길드에 사기를 치고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그 말로는 썩 아름답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쩌다 이 밑바닥까지 떨어진 건지.’
시어릭의 목적은 뻔했다.
아마 1층의 플레이어와 거주민들의 코 묻은 돈을 뜯어먹고, 다시 위로 올라갈 생각이겠지.
“그렇습니까? 다음 게임에 도전하신다는 거군요.”
다음 게임.
시어릭은 유원의 이 도전을 도발로 인식했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다른 하나의 컵과 구슬을 꺼내 눈앞에 보였다.
“이번에는 컵과 구슬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당연히 난이도는 두 배 이상 늘어나지요.”
씩-.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리며 컵을 섞기 시작하는 시어릭.
방금 전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컵이 움직였다. 시어릭은 아예 작정하고 유원의 눈을 속일 생각이었다.
‘보통내기는 아니야.’
시어릭은 얼굴을 가면으로 뒤덮은 채, 붉은색으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유원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자신의 트릭을 알아보았다.
물론 단순한 손놀림에 불과했지만, 어지간한 랭커도 알아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시력을 강화시키는 어떤 특별한 스킬을 가진 거겠지.’
확실한 사실은 지금 자신의 상대가 1층의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그에 맞춰서 자신도 움직여야 했다.
탁-.
이내, 손이 멈추고.
“자, 골라 보십시오.”
사람 좋은 얼굴로 시어릭이 컵에서 손을 떨어뜨렸다.
“이번에도 구슬의 위치를 맞추시면 그땐 데바에서 만든 불로장생의 영약을 상품으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불로장생의 영약?”
“저게 그거였어?”
“먹기만 하면 랭커가 아니어도 불로장생할 수 있게 된다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시어릭이 깔아 놓은 상품 중 두 번째인 ‘불로장생의 영약’은 실제 불로장생이 가능한 영약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영약의 효과는 ‘불로(不老)’뿐.
하지만 그 효과만으로도 영약의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눈 돌아가겠지. 두 번만 성공해도 인생 역전이니까. 그래도 어차피 절대 못 맞추…….’
“1번, 4번.”
“……!”
시어릭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번엔 그 표정의 변화를 누구나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유원은 그런 시어릭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손을 뻗어 첫 번째 컵을 들춰냈다.
“하나는 맞았군.”
이내, 4번 컵을 향해 손을 뻗는다.
“다른 하나는…….”
그때.
[‘사기꾼의 트릭’이 발동합니다.] [지정된 상대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지정된 물체를 옮길 수 있습니다.]사기꾼의 트릭.
지금의 시어릭을 있게 만든, B등급의 스킬.
등급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스킬의 숙련도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웠다.
스킬을 사용하는 게 손발을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쉽다.
그렇기에 시어릭은 이 스킬로 상황을 반전시킬 생각이었다.
‘여기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고작 1층에서 스킬까지 사용하게 됐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불로장생의 영약은 시가 10만 포인트가 넘어가는 아이템.
그걸 이렇게 쉽게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알 수 없는 힘이 개입됩니다.] [‘사기꾼의 트릭’이 취소됩니다.]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당황한 시어릭이 잠시 멈춰 있는 찰나, 유원이 두 번째 컵을 열었다.
“맞췄네.”
주홍색의 구슬 두 개.
시어릭은 결국 눈이 돌아갔다.
“이, 이건 사…….”
사기라고 소리치려던 입이 꽉 다물어졌다.
그건 자신의 전공이었다.
당장 이 자리에서 사기니 뭐니, 잘잘못을 따지게 된다면 분명 관리국이 나서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무력을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
1층에서 자칫 플레이어나 거주민을 상대로 힘을 사용했다가는 그 즉시 탑의 제재가 가해질 것이다.
“다음으로 넘어가지.”
유원의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시어릭은 급히 가면을 썼다.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시어릭이 입을 열었다.
“정말 도전하시겠습니까? 만약 실패하시면, 두 번째 도전에 대한 상품도 사라지게 됩니다.”
“상관없어.”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엔.”
스윽-.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컵과 구슬을 더 꺼낸 시어릭은 그걸 다시 섞기 시작했다.
하지만.
“5번, 7번, 10번.”
[알 수 없는 힘이 개입됩니다.] [‘사기꾼의 트릭’이 취소됩니다.]다음도.
“1번, 3번, 4번, 6번.”
[알 수 없는 힘이 개입됩니다.] [‘사기꾼의 트릭’이 취소됩니다.]또다시 그다음도.
계속해서 스킬은 실패했다.
꽈아악-.
‘이건 안 된다.’
벌써 4번째였다.
이제 남은 건 한 번.
마지막까지 통과하고 나면, 더는 미래가 없었다.
‘무슨 능력인지는 몰라도 저 새끼한테 내 스킬을 무효화하는 능력이 있다. 눈도 내 손을 쫓아오고 있고…….’
뒷짐 진 손을 말아 쥐며, 시어릭이 유원을 노려보았다.
‘도망치는 수밖에 없나.’
[‘사기꾼의 환영’을 생성합니다.] [지정된 공간 내의 환경을 복제합니다.]우웅-.
시어릭의 주위로 반투명한 색의 마력이 퍼져 나갔다.
사기꾼의 환영.
반쯤 실체를 가진 형상을 만들어 주위의 시선을 속이는 스킬.
그 스킬을 발동시킨 시어릭은, 곧장 상품들을 챙겨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가만 보자 보자 하니까 말이야.”
콱-.
어느새 뻗어 온 손이 시어릭의 손목을 움켜잡고, 스킬의 발동을 막아 냈다.
“선을 넘네?”
[‘물보라의 정령’이 ‘사기꾼의 환영’에 개입합니다.] [‘사기꾼의 환영’이 소멸합니다.]화아아-.
반투명한 마력이 소실되며 잠시 주위의 풍경이 일그러졌다.
관중들의 눈에는 차분하게 다음 컵을 꺼내던 시어릭의 모습이 사라지고, 미남자에게 손을 붙잡힌 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뭐야?”
“방금 봤나?”
“저 사람은 누구야? 갑자기 어 디서 나타난…….”
“바, 바루나다!”
남자를 알아본 어느 관중의 외침.
얼굴에서 절로 빛이 나는 것 같은 잘생긴 외모는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1층에 내려왔다는 소식은 듣긴 했는데…….”
“왜 여기 나타난 거지?”
“혹시 바루나도 저 상품에 관심이 있는 건가?”
“하이랭커도 탐낼 만한 상품이긴 하지만…… 이 상황은 좀…….”
바루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시어릭을 노려보았다.
당연하게도 그의 얼굴을 모를 리 없는 시어릭은 난감한 기색이었다.
표정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데바의 하이랭커가 왜 여기에?’
저 정도 랭킹의 하이랭커가 왜 1층까지 내려온 건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뒤에 바루나가 있던 거였어.’
제아무리 시어릭이라고 해도 환각으로 속일 수 있는 상대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바루나가 비록 잘생긴 외모 덕에 다른 하이랭커에 비해 인지도가 있다곤 하지만 엄연히 그는 데바의 간부로 임명될 정도의 실력을 가진 랭커였다.
그라면 자신의 스킬을 파훼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괜찮다. 아직은 괜찮아.’
자신의 스킬은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뒤에 바루나가 있다고는 한들, 아직 게임은 끝난 게 아니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입니다.”
“오해? 뭔 놈의 오해?”
“일단 이것 좀 놓고 이야기하시겠습니까? 바루나 님. 조금 아프군요.”
시어릭은 정말 괴롭다는 듯 팔을 부르르 떨고 식은땀을 흘렸다.
뭣 모르는 관중들 눈에는 데바의 하이랭커가 갑자기 끼어들어 잘 돌아가는 게임을 방해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연기 한 번 기가 막히네.”
바루나는 이를 빠득 갈며 시어릭의 손목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목적은 곤란한 상황을 도와주고, 조금이라도 더 유원의 호감을 얻어 보려 했던 것이었는데.
‘이래선 괜한 뻘짓밖에…….’
옆에 서 있는 유원을 힐끔 돌아본 바루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유원은 난입한 자신이 아닌,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야, 이거 재밌는 게임이네.”
그리고 그때.
“그런데 아까부터 섞는 놈이 너무 못하는데. 다른 놈이 좀 섞으면 안 되겠냐?”
“이번엔 또 누가-.”
또 어떤 불청객인가 싶어 고개를 돌린 찰나.
툭-.
새하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장신의 남자가, 시어릭을 향해 머리를 맞댔다.
“나 몰라?”
낄낄거리는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
화륵-.
손오공의 두 눈이 화려하게 타오르며, 공포에 젖은 시어릭의 표정을 거울처럼 비췄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