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39
* * *
따로 짐을 챙길 건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짐은 인벤토리에 있었고, 화폐로 사용되는 포인트는 어차피 개인에게 귀속되어 있었다.
태양마차 한 대를 전세로 빌려 탄, 세 사람은 곧장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따로 마력을 공급하는 마부를 빌릴 필요도 없었다.
“아늑하니 좋네.”
마차의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손오공이 머리칼을 바람에 휘날리며 입을 벌렸다.
잠시 그렇게 시원하게 바람을 맞으며 놀고 있던 손오공이 유원과 판도라에게 돌아왔다.
“커플 사이에 끼어서 이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
“네가 그런 걸 언제 신경 썼다고.”
“맞아. 사실 그냥 해 본 말이야.”
장난스럽게 웃는 손오공의 말에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커플이고 뭐고, 애초에 손오공은 이런 걸 신경 쓸 놈이 아니었다.
질투를 했다면, 자기 빼놓고 유원과 헤라클레스가 싸우는, 그런 걸 질투할 녀석이었다.
“그거야? 이번에 선물한 게.”
손오공의 시선이 판도라의 손에 끼워진 반지로 향했다.
아이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도 손오공의 눈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신기한 걸 가져왔네.”
“예뻐.”
“그냥 반짝거리는 게 단데. 예쁘기는.”
판도라의 대답에 손오공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외향적인 아름다움 따위는 손오공의 관심 밖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아이템’이란 단지 강해지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외의 부가적인 가치는 의미가 없었다.
물론.
“그래도 시어릭 그놈, 배 좀 아프겠네. 자기 전 재산 같은 걸 줘 버렸으니.”
그런 점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판도라의 손에 끼워진 반지는 꽤 가치가 있었다.
“물리적인 힘에 따른 폭발 능력인가.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아이템인데…… 판도라한테는 꽤 잘 어울리겠는데?”
“지금도 싸울 생각밖에 없냐?”
“그걸 이제 알았냐?”
여전히 잔뜩 흥분한 듯한 모습.
“얼마 만에 너랑 싸우는 건데.”
손오공에게 있어선 싸움이야말로 최고의 놀이었다.
그걸 잘 알기에 유원은 점점 흥분하기 시작한 손오공을 굳이 진정시키지 않았다.
‘지금부터 슬슬 몸을 달궈 놔야지.’
10년.
유원도 그동안 손오공이 얼마나 바뀌었을지는 알지 못했다.
기대가 되는 건 유원도 마찬가지.
“제발 녹슬지만 않았길 바라마.”
마차는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손오공의 마력을 먹고, 태양마차는 불을 뿜었다.
화륵, 화르르-!
불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찌나 마력을 많이 퍼부었는지, 열기가 내부로까지 들어을 정도였다.
속도가 빨라졌다.
이 정도면 아폴론의 진짜 태양마차와 비교해도 될 정도였다.
‘어차피 저 녀석 마력이 바닥날 일은 없을 테고…… 유원은 자리에 드러누웠다.
마차의 열이 꽤 뜨겁긴 했지만 이 정도는 세 사람에게 그리 치명적이지 않았다.
‘일단, 편하게 가 볼까.’
유원은 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자리에 드러누웠다.
* * *
95층에 도착한 태양마차가 뿜어 내던 빛을 꺼뜨렸다.
누워서 잠시 잠을 청하고 있던 유원은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빨리도 왔네.”
이틀.
1층부터 95층까지 올라오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유원은 근 10년 동안 가장 많은 잠을 청했다.
아쉬운 마음에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이 시간 이후, 꽤 오랫동안 쉬지 못할지도 몰랐다.
“안 쉬어도 괜찮냐?”
유원은 마차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손오공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이 정도 속도로 온 걸 보면 아마 이틀 내내 쉬지도 않고 마력을 퍼부어 댔을 터.
지칠 정도는 아니더라도 조금 피로감이 느껴질 게 분명했다.
“문제없지.”
콱-.
손오공은 여의봉을 꽉 움켜쥐었다.
이미 그는 만전 상태였다.
묻지도 않고 바로 마차 아래로 뛰어내리는 손오공을 보며, 유원은 한숨을 쉬었다.
“급한 그 성격은, 나이를 먹어도 변하질 않냐.”
화륵-.
유원의 눈에 손오공과 같은 화안금정이 맺혔다.
마차 아래를 내려다본 유원의 눈이 주위 수 킬로미터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무로 뒤덮인 세계.
비슈누와 관리자의 싸움 직후라 그런지 주위에는 그 흔한 사람 한 명, 괴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장소는 딱 적당해.’
관리자가 없는 세계.
동시에 이 넓은 장소에 사람 한 명 살지 않는다.
백 개의 층을 모두 뒤져도 이런 조건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힐끗, 유원의 시선이 판도라에게로 향했다.
“걱정 마.”
이제는 제법 유원을 알게 된 판도라는 그 시선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말려들 만큼 약하지 않아.”
확신에 찬 판도라의 말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는 있었다.
직접 싸우는 거라면 모를까, 판도라가 싸움을 구경하는 정도로는 위험할 리 없다는 걸.
판도라는 두 자릿수 랭킹의 하 이랭커 였다.
그녀의 실력은 손오공과 직접 싸워도 몇 분 이상 버텨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 떼는 거 참 어렵네.’
잠시 머뭇거리던 유원은 결국 마차 아래로 뛰어내렸다.
동시에 마차는 다시 불을 뿜으며 위로 더 높게 올라갔다.
쿵-.
나뭇가지 위에 착지한 유원이 주위를 살폈다.
킬로미터 단위로 높게 솟아오른 나무들은 나뭇가지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거목보다 두꺼웠다.
‘어디냐.’
주위는 온통 나무들로 가득했다.
시야는 가려져 있었고, 먼저 아래로 뛰어내린 손오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싸움은 ‘시작’이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게 아니었다.
서로 투기를 확인한 순간, 마차 위에서부터 이미 싸움은 시작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게 바로 손오공과의 싸움이었다.
화륵-.
[‘화안금정’이 대상을 살핍니다.] [‘화안금정’이 같은 힘에 의해 상쇄됩니다.] [대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화안금정은 본래 손오공이 다루던 스킬이었다.
같다곤 하나 유원이 가진 눈은 어디까지나 손오공을 쫓아 만든 것일 뿐, 오리지널로서 숙련도는 손오공 쪽이 더 높았다.
당연히 같은 스킬로 손오공의 위치를 찾는 건 어려운 일.
하지만.
[‘감각지대’가 활성화됩니다.] [‘예지안’이 개안됩니다.]유원에게는 화안금정 외에도 아직, 남아 있는 수가 더 있었다.
투확-!
유원의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여의봉.
머리를 옆으로 틀어 여의봉을 피해 낸 유원이 멀리 떨어진 손오공을 바라보았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음에도 손오공의 기척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또한.
지금 이 한 방으로, 유원은 손오공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거리를 벌린다는 건가.”
난투를 좋아하고, 싸움을 즐긴다고 해서 사람들은 제천대성이 근접전의 대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녀석을 잘 모르는 놈들의 헛소리였다.
‘저 녀석은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수든 다 쓴다.’
누구보다 영리한 싸움을 하는 녀석.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 손오공은 평소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머리를 굴리는 스탯을 모두 싸움에 몰빵한 녀석이었다.
아마, 녀석 나름대로 이 싸움에 대한 전략이 세워져 있을 테지.
‘그렇다면.’
기잉-.
유원의 한쪽 눈동자가 황금색 안광을 뿜었다.
예지안.
잠시 후의 미래를 밝혀 주고, 그에 따라 예정되어 있던 미래를 자신의 손으로 움켜쥘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스킬.
화안금정만 놓고 보자면 유원의 눈은 손오공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예지안은 경우가 달랐다.
투확-!
다시금 뻗어 온 여의봉을 한 끗 차이로 피해 낸 유원이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멀리서 날아오는 여의봉을 피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제아무리 멀리서 다양한 각도로 날아온다 하더라도 말이다.
““커져라, 여의.””
피잉-.
백 군데가 넘는 방향에서 날아오는 여의봉들.
그 순간, 유원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이 정도는-.’
팟-.
유원의 몸이 일직선으로 뻗어 날아갔다.
‘예전에도 피할 만했다.’
투과과과광-!
백 개가 넘는 여의봉들이 주위의 나무들을 쓰러뜨렸다.
수십 미터 두께를 가진 거목들이 우수수 쓰러지는 걸 보며, 유원이 눈 을 빛냈다.
‘진짜는.’
유원의 고개가 정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투확-!
거대한 여의봉 하나가 날아왔다.
‘이거다.’
기긱, 기기기-.
한쪽 팔로 여의봉을 막아 낸 유원의 몸이 뒤로 조금 밀렸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걸, 맨손으로 막아 냈다는 게 의미가 있었다.
[거인의 힘이 팔에 깃듭니다.]꾸국, 구구-.
오랜만에 사용해 보는 스킬이었음에도 어색함이 없었다.
유원은 꽤 오랫동안 지금과 같은 상황을 그려 왔었다.
다시 몸을 움직인다 해도, 여전히 유원은 전성기에 서 있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여의봉을 막아서며 유원이 미소를 지었다.
녀석이 여의봉과 분신을 이용해 중, 장거리에서 싸우기로 마음먹었다면.
‘아무래도 이번엔, 네가 생각을 잘못한 모양이다.’
환영할 쪽은 이쪽이었다.
* * *
여의봉 끝에서 느껴진 감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단단한 벽에 가로막힌 듯한 묵직한 감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기대와는 다른 느낌에 손오공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막았나?’
휘이익, 탁-.
다시 크기가 줄어든 여의봉이 손오공의 손에 착 감겨 들어왔다.
역시나 여의봉을 통해서 느낀 손맛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저 멀리, 유원이 서 있는 곳을 보아도 그는 아무런 충격이 없어 보였다.
여의봉을 막기 위해 유원이 무슨 수를 사용했는지, 손오공의 머릿속에 여러 경우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알고 있었던 거다.’
알고 있지 않았다면 이건 막을 수 없다.
설령 극한의 반사신경을 통해 막아 낸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충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화안금정이나 감각지대만으로는 이 순간을 미리 예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예지안인가.”
저 스킬을 사용하는 이상, 앞으 로 모든 수에 있어서 유원은 자신보다 한 발 앞서 갈 수밖에 없었다.
“응?”
그리고 그때.
손오공의 눈에, 저 멀리 유원이 입을 달싹이는 게 보였다.
눈이 좋은 손오공이었다.
제아무리 거리가 멀다 해도 입술 모양 정도를 못 읽을 리 없었다.
그리고 유원의 입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울려 주마.
명백한 도발.
그리고 그 도발은 손오공을 더 뜨겁게 자극시켰다.
‘‘나야 좋지.”
눈매가 더 가늘게 좁혀졌다.
불을 담았던 눈동자의 금빛이 더 진해지며 여의봉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커져라-.”
여의봉을 앞으로 뻗은 손오공이 다음 한 발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순간.
꾸우욱-.
저 멀리 거리를 벌린 채, 손오공과 마주 보고 서 있는 유원의 모습이 보였다.
“여…… 응?”
막 여의봉을 뻗으려던 손오공이 주춤했다.
저 멀리.
유원의 손에 들려 있는 하나의 검은 창 때문이었다.
“어라?”
치지, 치지지-.
창끝에 모이기 시작하는 마력.
그 마력의 흐름에 몸이 다 오싹거릴 지경이었다.
분명히 시동을 걸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이미 여의봉을 압도할 만한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치지, 치지지-.
지금 이 순간에도 마력을 모으고, 뿜어내며 점차 거대해지는 창.
그리고 그것을 든 채 투창 자세를 취하고 있는 유원.
그의 모습을 통해 손오공은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오딘?’
궁니르를 던지기 전, 오딘의 모습.
그를 따라 하며 유원의 입 모양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거리는 네 것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