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42
* * *
싸움이 끝난 후, 유원과 손오공은 다시 마차 위로 올라왔다.
상처를 입은 쪽은 손오공이었다.
니르에 관통당한 옆구리나 마력에 휘말려 터진 상처는 아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판도라는 손오공의 앞에 약통을 갖다 놓았다.
알아서 몸에 바르라는 뜻이었다.
“됐어. 가만히 두면 나아.”
“안 아파?”
“괜찮아. 재밌으니까.”
“난 아프던데.”
“너 싸우는 거 싫어하는구나?”
“응.”
“특이하네.”
“그런가?”
단순하기 짝이 없는 대화.
보통이라면 싸우는 걸 싫어할 텐데, 아무렇지 않은 그 대답에 판도라는 오히려 자신이 특이하다 여기는 모양이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네 취향이 변태 같은 거지, 뭘.”
유원의 핀잔에 손오공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불만은 항상 똑같았다.
“너나 헤라클레스나, 힘이 있는데 쓰질 않아.”
“쓸 일이 있어야 쓰지.”
“덕분에 얼마나 심심했는데.”
“가능하면 평생 심심해라. 그게 평화를 위해 더 좋은 것 같으니.”
한숨을 쉬는 유원을 보며 손오공은 판도라가 건넨 약을 주워들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냐? 여기 관리자는 없는 것 같은데.”
“어차피 바로 싸움이 벌어지진 않을 거다.”
“그럼?”
손오공은 유원의 생각을 물었다.
금방의 대련으로 그가 충분히 강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유원과 함께라면 당장 슈브 니구라스가 다시 나타나더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지금부터의 계획이었다.
“……일단 복귀부터 해야지.”
“복귀? 어딜?”
지금껏 유원은 잊혀 있었다.
랭킹 관리국조차 그를 잊어 랭킹에서 사라진 상태였고, 원래대로라면 이 급한 상황에 아무도 유원을 찾지 않을 것이다.
결국 유원은 스스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유원이 갈 곳은.
“전장에.”
긴 탑의 역사에서, 가장 긴 전쟁이 있던 곳이었다.
* * *
그르르르르-.
네 개의 뿔을 가진 집채만 한 맹수가 이빨을 드러냈다.
랭커들의 창칼에도 몸이 뚫리지 않는 단단하고 질긴 가죽과 전격을 쏘아 내는 뿔까지.
녀석은 50층에서 출몰하는 괴물 들의 우두머리로, 뇌랑(雷浪)이라는 이름을 가진 요괴였다.
“서쪽으로 몰아!”
“가까이 접근하지 마라! 전격에 휘말린다!”
“장군께서 오실 때까지 붙잡아!”
“이번에도 놓치면 또 몇 년이 걸릴 거다!”
어수선한 전장에서 급박한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뇌랑은 천 년이 넘게 존재해 오며 수많은 거주민들을 학살해 온 요괴과의 괴물이었다.
상위 랭커 몇 명이 달려들어도 잡지 못했던 녀석을 잡기 위해, 천계의 랭커들은 대규모로 병력을 소집했다.
커흥-!
늑대를 닮은 울음소리에 전격이 섞여 퍼져나갔다.
과자자자-!
주위의 지면이 푸른 전격에 발톱 자국으로 쓸려나갔다.
그에 뇌랑을 덮치던 랭커들이 밀려 날아갔다.
몇몇은 전격에 감전된 듯, 눈이 뒤집어지며 날아가던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크르르르-.
잠시 움직임을 멈춘 뇌랑이 몸을 돌려 자신을 추격하던 천계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비웃음이 섞인 듯, 눈이 휘어진다.
곧장 도망치지 않고 발을 멈춘 것 역시 붙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젠장!”
“저 얄미운 놈이……!”
천계의 랭커들을 농락하는 속도와 힘.
괜히 녀석이 천 년을 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선 건,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래도 얄미운 건 얄미운 거였다.
‘젠장. 이대로라면 또 놓친다.’
상위 랭커, 금각대왕과 은각대왕 형제는 이를 빠득 갈았다.
천계의 장군 작위를 받기 위해 그들은 이번 뇌랑 사냥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렇게 뇌랑을 추격하기 시작한 게 벌써 5년 전.
하지만 뇌랑은 빠른 속도로 두 사람을 농락하며 유희를 즐겼다.
무슨 수를 써도 절대 자신을 잡을 수 없을 거라는 듯이 말이다.
“천라지망이 뚫렸습니다!”
그때 들려 온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
“뭐?”
“이런 씨……!”
천라지망.
하늘과 땅을 엮은 그물이라는 뜻을 가진 포위망으로, 금각대왕과 은각대왕 형제는 이번에 뇌랑을 잡기 위해 천계의 병사들을 빌려 천라지망을 펼쳐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뇌랑은 그 포위망을 날카로운 발톱과 전격을 이용해 찢어 놓은 것이다.
‘이번에도 놓친 건가.’
‘이럼 천계에서 한 자리 받기로 한 것도 나가린데…….’
그렇게 두 사람이 뇌랑을 놓치기 직전의 순간.
“잘 붙들고 있었군.”
팟-.
두 형제의 머리 위로 품이 넓은 망토를 펄럭이며 은색의 선 하나가 빠르게 날아갔다.
누구인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어찌나 빠른지, 그 민첩한 뇌랑의 속도가 다 우습게 보일 정도였다.
두 사람이 볼 수 있었던 건 딱 하나.
어지간한 장신의 남자보다도 더 기다란 거대한 언월도뿐이었다.
“설마-.”
슈아아악-!
언월도가 뇌랑의 목을 향해 날 아갔다.
컹, 컹-!
치지, 치지지-!
위협을 느낀 뇌랑의 몸이 푸른 전격이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언월도를 휘두르던 녹색 머리의 남자가 실체가 사라지기 시작한 뇌랑을 노려보았다.
“그간 왜 다들 네놈을 못 잡나 했더니만…….”
그리고 그가 손을 뻗는 순간.
콱-.
전격으로 변해 사라지던 뇌랑의 실체가 다시 드러났다.
크륵-?
목이 붙잡힌 뇌랑의 눈동자가 떨렸다.
언월도를 손에 쥔 이랑진군은 그런 뇌랑을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다음 생에는 선한 영물로 태어나거라.”
쫘아악-!
단숨에 뇌랑의 몸을 양단하는 언월도.
이랑진군은 언월도를 한 번 휘두르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쩌어억-.
언월도에 베어진 뇌랑의 시체가 뒤늦게 반으로 갈라지며 양옆으로 쓰러졌다.
핏물도 튀지 않을 만큼 깔끔한 일격이었다.
금각대장과 은각대장은 거의 등장과 동시에 뇌랑을 잡아 낸 이랑진군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이랑진군…….’
‘이게 최상위 하이랭커의 실력인가.’
이랑진군.
현재 랭킹 20위를 기록한 하이랭커로, 천계의 실질적인 일인자였다.
직위는 대장군으로 상제(上帝) 의 자리에는 앉지 못했으나, 세간에는 그가 자리를 거절했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퍼져 있었다.
한때 그 유명한 제천대성과도 자웅을 겨루었다는 이 탑의 지배자 중 한 명.
그의 등장에 두 랭커는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천계의 대장군을 뵙습니다!”
이랑진군은 자신을 향해 과한 인사를 건네는 둘을 내려다보았다.
예를 갖추는 걸 보면 천계의 장수인가 싶었는데, 못 본 얼굴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랑진군은 뇌랑을 사냥하는 이 자리에 천계 외부의 랭커가 투입되었다는 보고를 떠올렸다.
“자네들이군. 금각, 은각대장이 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던 랭커가.”
“예! 오래전부터 천계의 장수가 되기를 바랐으나, 실력이 미천하여 실력 증진에 힘써 왔습니다.”
“그런가? 수고했네.”
툭, 툭-.
이랑진군은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으로 노고를 치하했다.
활짝 웃는 두 사람을 두고, 이랑진군은 몸을 돌렸다.
이내, 이랑진군의 옆으로 다가온 북천장군이 물었다.
“어떻습니까?”
“실력들은 쓸 만하군.”
“그럼…….”
“받아는 들이게. 장군직은 보류하고.”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눈을 보니 정신머리가 글러 먹었어. 장수로서의 기개보다는 무언가를 탐하고자 하는 눈이야.”
이랑진군은 언월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천계의 장수가 되려거든 정신머리부터 고쳐야겠지.”
금각대장과 은각대장이 들었다면 소름이 끼칠 말이었다.
하지만 북천장군은 이런 이랑진군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고개를 숙이며 말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인가?”
“예. 내일부터 시작입니다.”
북천장군의 대답에 이랑진군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골칫거리던 뇌랑의 사냥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음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준비 중 하나였을 뿐.
천계가 과거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일부터 있을 이벤트가 성공해야만 했다.
‘부디…….’
방금 전에 만난 금각대장과 은각대장을 떠올리자, 한숨이 더 깊어졌다.
‘쓸 만한 녀석들이 참전해야 할 텐데 말이지.’
* * *
천계대전.
그것은 오래전, 손오공과 우마왕이 천계에 쳐들어와 벌어졌던 큰 싸움을 뜻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오래전이었다.
무림대전을 본따 만든 이 대회는 탑의 정중앙에 위치한 50층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바로 오늘 말이다.
“이거 진짜 써도 되는 겁니까?”
“뭐가?”
“천계대전 말입니다.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기어였던 것 같은데…….”
“알 게 뭐냐. 상제께서 돌아가신 지도 십 년이 넘었고, 평천대성, 제천대성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은데.”
천계에 몰려든 인파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던 장수들의 대화.
천계대전은 천계에서 오랫동안 입에 담기 금기시되어 오던 단어였다.
거대 길드의 한 축인 천계가 단 두 명에게 고전했다는 사실은 계속 화자되어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게다가 제천대성이 옛날이랑 같냐? 지금 우리에게 제천대성과 싸웠던 역사는 부끄러운 게 아니야.”
제천대성.
처음 천계대전이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그의 랭킹은 20위 바깥이었다.
하지만 천계대전이 지속되고, 결국 천계와 대등한 싸움을 한 결과 제천대성과 평천대성의 랭킹은 처음보다 몇 단계나 올라갔다.
그리고 지금.
“이젠 그 녀석 랭킹이 3위니까.”
제천대성 손오공.
그는 본래 제우스, 비슈누와 헤라클레스에 이어 4위의 랭킹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비슈누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랭킹은 한 단계 상승해 3위가 되어 있었다.
“영 찝찝하군. 관리자에게 비슈누가 죽은 이 시국에 이런 축제라니.”
“여기서는 먼 세계 이야기니까. 그래도 아마, 데바와 가까운 길드에서는 이 대전에 참가하지 않을 테지.”
“쓸 만한 참가자가 있어야 할 텐데 말이지.”
이름만 다를 뿐, 천계대전의 본질은 무림대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력 있는 플레이어를 찾고, 각 길드에서 포섭하기 위한 자리.
그리고 길드에 소속되기 전,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자리.
천계는 이 대전으로 새로운 랭커들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실례합니다.”
그렇게 천계의 장수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천계대전에 참가하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됩니까?”
남자 한 명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 길을 물었다.
낯선 복장이었다.
확실히 천계가 다스리는 50층에 거주하는 랭커나 플레이어는 아닌 듯했다.
천계대전의 소식을 듣고 온 모양.
“저기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붉은 깃발을 찾으쇼.”
“고맙습니다.”
“좋은 결과 있길 바라겠소.”
인사를 끝으로 남자는 미련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특별한 상황은 아니었다.
벌써 오늘만 해도 수십 번은 넘게 겪은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딘가 모를 찝찜함에 두 사람은 잠시 남자가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
그리고 그때.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생각에 잠겨 있던 장수가 찝찝함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