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48
* * *
올림포스에서 가장 높은 곳.
몽환적인 구름 위, 안개 낀 신전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척, 척-.
걸음걸이마다 무거운 갑옷이 흔들렸다.
손에는 한층 더 강화된 아이기스를 쥔 채, 아테나는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위대한 건축물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로군.”
하늘의 권좌에 오른 자.
제우스가 기거하는 궁전.
그곳은 단 한 명을 위한 장소라 하기에는 어지간한 거대 길드의 성보다도 크고 화려했다.
저 궁전의 주인인 제우스는 예전부터 자신의 품위를 꽤 중요시했다.
그리고 궁전의 웅장함이야말로 그걸 위한 시작점이었다.
“여기서 기다려라.”
“예.”
“다녀오십시오.”
척-.
아테나와 같은 디자인의 갑옷을 입은 두 랭커들은 각각 무기를 인벤토리에 넣고 궁전의 앞에 대기했다.
저 정도의 랭커들 따위야 천 명이 모여든다 한들 제우스에게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무장한 랭커를 데리고 궁전에 들어가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테나는 근 십여 년 만에 제우스의 궁전에 다시 발을 들였다.
“왔느냐.”
궁전의 중앙.
하늘이 뻥 뚫리고, 아래로는 작은 연못과 비단잉어들이 있었다.
연못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제우스는 한가로이 잉어들에게 밥을 던져 주고 있었다.
과연 누가 믿겠는가.
이 한가로운 뒷모습이 100개의 세계로 이루어진 탑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예, 아버지.”
“네가 여길 다시 왔다는 건, 평화로운 시기는 끝났다는 뜻이겠구나.”
“그건 제가 싸움의 상징이기 때문입니까?”
“평화를 지키는 상징이니라.”
뜻밖의 대답.
한쪽 무릎을 꿇고 정중히 인사하던 아테나가 고개를 들어 제우스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같이 무뚝뚝하지만 어딘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위로인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또다시 이곳에 제우스를 만나러 온다는 건, 또다시 큰 싸움이 시작될 징조나 다름없다는 걸 말이다.
그렇기에 아테나의 한 걸음은 중요했다.
그녀가 향하는 발걸음에 따라 세상은 불안에 떨기도 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올림포스 내에 그녀가 이곳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
함께 동행한 랭커가 고작 둘뿐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관리자 때문에 그러십니까?”
“비슈누가 죽었다.”
얼마 전, 제우스는 비슈누의 추모를 위해 데바에 다녀왔었다.
“이미 칼은 빼 들었다고 봐야겠지.”
“바로 전면전이 벌어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상대가 강하니 다들 지레 겁을 먹는 거지. 다들 관리자라고 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거 아니겠느냐.”
“비슈누 님께서 돌아가셨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비슈누는 한때 이 탑을 지배하던 왕이었다.
그런 비슈누의 죽음은 여러 길드를 위축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냥 믿고 싶은 걸 겁니다. 비슈누 님의 죽음은 관리자와 비슈누 님의 개인적인 불화였을 뿐이라고.”
“그리 믿고 싶거든 믿게 둬야지.”
“다시 길드들을 소집하지는 않으시는 겁니까?”
“그건 형님이 알아서 할 거다. 난 한 번으로 족하군.”
제우스는 올림포스라는 거대 길드를 다스리는 왕이었지만 꽤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 길드들을 소집한 것만으로도 제우스는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 벌어질 일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의 책임이었다.
“그럼 저를 부르신 건…….”
“다른 녀석들에게 전해 둬라. 언제든지 싸울 준비를 해 놓으라고.”
올림포스가 전시 상태에 돌입한다.
언제, 어디서 싸움이 벌어지더라도 수천 대의 태양마차들이 출격할 것이며, 각지에 흩어져 있는 올림포스의 랭커들과 그 산하의 길드들이 힘을 합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자가 바로 아테나.
올림포스에서 ‘전쟁’을 상징하는 하이랭커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가슴에 주먹을 들어 올린 아테나의 눈빛이 매섭게 타올랐다.
이전까지의 10년이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이제는 다시 전쟁을 준비해야 할 때였다.
그렇게 막, 제우스의 명에 따라 아테나가 각오를 다지던 때.
‘웃으신 건가?’
힐끗, 키트를 들여다보던 제우스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평소 웃는 일이라면 거의 없었던 그가, 드물게 미소를 지은 것이다.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
제우스는 아테나에게 눈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하르간 녀석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더구나.”
“하르간에게 말입니까?”
썩 이해가 되지 않는 대답이었다.
평소의 제우스는 아들 바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식이란, 단지 올림포스를 굳건히 유지하기 위한 우수한 핏줄일 뿐이었다.
제아무리 하르간이 최근 빠른 속도로 랭킹을 올리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는 건, 연락의 주체보다는 연락의 내용이 흥미롭다는 뜻일 터.
“그 녀석은 지금 천계대전에 참가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막내를 주시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헤라클레스와 함께 아버지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보 아닙니까.”
“너는 포기한 게냐?”
“제 그릇은 제가 잘 압니다. 욕심도 없고요.”
“그렇군.”
올림포스의 다음 세대.
하르간과 헤라클레스, 두 사람은 분명 그걸 위해 제우스가 만들어 낸 최고의 핏줄이었다.
하나.
아직까지 둘 중 제우스의 눈에 차는 사람은 없었다.
“녀석들이 나보다 더 뛰어나다면 물려줘야겠지. 그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무력으로만 놓고 보면 헤라클레스는 이미 합격점이었다.
하나 그는 왕이 되기에는 너무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하르간은 정반대였다.
그는 왕이 될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고, 누구보다도 제우스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아직 랭커가 된 지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은 하르간은 힘이 부족했다.
둘을 딱 반반 섞어 놓으면 참 좋으련만, 그것만큼 헛된 바람도 없었다.
“그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정확히는 옆에 있는 녀석에게 부탁을 받은 게 있다더군.”
“부탁을? 아버지께 말입니까?”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테나는 참 간 큰 녀석이다 싶었다.
하르간을 통해서라고는 하나 다른 누구도 아닌 제우스에게 부탁을 해 오다니.
“김유훈이라는 이름 없는 녀석이다. 랭킹을 찾아보니 이름도 없더군.”
“그럼 아직 랭커도 되지 않은 녀석이…… 아버지께…….”
황당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대체 간이 어떻게 된 녀석인가 싶었는데, 내용은 더 충격적이었다.
“천계대전 경기장 위로 벼락을 떨어뜨려 달라더군.”
“예?”
“놀랐느냐? 나도 처음엔 너와 같은 반응이었다. 황당하더군. 미친 녀석인가 싶기도 하고.”
어중간한 부탁이었다면 오히려 불쾌했을 것이다.
고작 이런 부탁을 하려고 하르간을 통해 자신에게 감히 말을 전했느냐면서, 어쩌면 녀석의 머리 위에 벼락을 떨어뜨리려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부탁은 되려 제우스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천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경기장 위에 벼락을 떨어뜨려 달라니.
세상에 이런 미친 부탁을 하는 놈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난 이런 녀석을 좋아한다. 과감하고, 겁이 없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랭킹에는 보이지 않아도 분명 크게 될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얼굴도 본 적이 없건만 벌써부터 탐이 났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호기심이 동했다.
“이제 남은 건 결과뿐이지.”
“벼락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랍니까?”
“물어보지 않았다.”
“그를 믿으십니까?”
“아니.”
“그럼…….”
그쪽에는 하르간이 있지 않으냐.”
키트에 전송된 하르간의 문자.
구구절절 자세한 상황이 담겨진 그 문자는,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 흔적이 담겨져 있었다.
“이번 기회에 둘 다 시험해 볼 생각이다. 어쨌거나 이 부탁을 내게 전달한 건 하르간이니.”
“불가능합니다.”
아테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 다.
“천계대전의 경기장에 있는 건 랭커들만이 아닙니다. 하위 층계의 플레이어도, 그곳에 사는 천계의 거주민들도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천계대전은 일종의 축제였다.
50층부터 100층까지에 속한 모든 플레이어들과 거주민들이 참가할 수 있는 축제.
그곳에 벼락을 던진다는 건, 그들을 모두 적대시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무리 아버지라 해도 아무런 조건 없이 그곳에 벼락을 던졌다간, 패널티에 걸리게 될 겁니다.”
곧바로 패널티로 이어진다.
물론, 제우스가 어중간한 패널티 따위에 지레 겁을 먹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수백, 수천을 넘어 만 단위에 이른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그건 하르간, 그 녀석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지.”
“해결이라 하시면…….”
“내가 벼락을 던져도 문제가 없을 만한 상황. 그 정도도 고려하지 않고 내게 이런 부탁을 한 거라면, 그건 녀석의 눈이 부족한 탓이겠지.”
제우스의 말에 아테나는 그가 말한 ‘시험’의 뜻을 알아차렸다.
만약 하르간의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하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된다.
김유훈이라는 플레이어가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인지 그것도 확인하지 않고 일을 키운 게 되니 말이다.
또한,이런 부탁을 해 놓고선 벼락을 던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그건 그거대로 그 둘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었다.
“만약 상황은 만들어졌는데, 하르간이 그자에게 이용당하는 거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테나는 어떻게든 제우스를 멈추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계대전의 한가운데에 벼락을 떨어뜨리는 건, 자칫 수많은 랭커들이 죽어 나가게 될지도 모를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피해는 천계가 받겠지. 안타깝게도.”
애초에 그런 걸 함께 고민할 제우스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 않으냐?”
“…….”
아테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벼락을 떨어뜨릴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제우스는 개의치 않고 천계의 중심부에 벼락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벌어질 피해나 죽어 갈 사람들 따위는 제우스에게 그리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테나는 잊고 있었다.
그의 근본은 폭군이었다는 사실을.
* * *
[제우스 : 알겠다.]짤막한 답변.
하르간을 통해 그 문자를 확인한 유원은 미소를 지었다.
‘근본은 안 변하네.’
이건 다른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부탁이었다.
당연했다.
이곳 천계대전의 대회장에 모인 사람이 몇 명인가.
보통 이런 곳을 공격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면 분명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하지만 제우스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의 근본은 폭군.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에게 천계의 심장부라는 위치적인 제약은 그리 상관이 없는 듯했다.
“정말로 이게 통할 줄은 몰랐군.”
정작 문자를 보낸 하르간도 허락이 떨어질 줄은 몰랐다는 듯 얼떨떨한 반응이었다.
웬만한 말로는 꿈쩍도 하지 않던 자신의 아버지가, 이렇게 쉽게 움직이다니.
하르간은 복잡한 표정으로 유원을 바라보았다.
이로써 유원은 한 번에 두 명을 설득시킨 셈이었다.
“이제 좀 믿음이 가나?”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입으로 두말할 수는 없지.”
애당초 그는, 제우스의 허락이 떨어지면 유원의 말을 믿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그게 아니고서야 유원의 말을 믿기에는 너무 허황되어 보이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하르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계대전.
거대 길드의 주축 중 하나, 천계의 대장군을 가리는 크나큰 축제.
아직도 다 믿기는 힘들지만 유원의 말대로라면 이 대회는.
“……정말로 이 대회에 관리자가 나타날지도 모르겠어.”
곧, 난장판이 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