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49
* * *
“경기장 위에 벼락을 뿌리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처음 유원의 부탁을 받았을 때, 하르간은 그를 경계했다.
어쩌면 눈앞에 있는 김유훈이라는 자는 천계대전을 망치기 위해 파견된 테러범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곧 그는, 이어진 유원의 말에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관리자가 나타날 거다.”
“관리자가?”
“너도 정보통이 있으니 알 텐데? 최근 비슈누가 죽은 것도 그렇고 말이야.”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비슈누의 죽음이 관리자와 관련이 있다는 건 이미 모르는 랭커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소식이었다.
몇몇은 관리자가 아닌, 경쟁 상대인 거대 길드에서 움직인 거라는 음모를 퍼뜨리기도 했지만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더욱이 관리자와의 전면전을 가장 완강하게 주장한 게 바로 하르간의 아버지인 제우스였다.
유원의 말에 하르간은 고민했다.
과연 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
유원이 타협안을 내놓았다.
“결정은 제우스에게 물어봐라. 내가 한 이야기와 같이 부탁하고, 알겠다는 답장이 오면 믿고 아니면 말아.”
믿을지, 말지에 대한 선택지를 제우스에게 넘긴다.
잠시 고민하던 하르간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가 아는 제우스는 이런 종류의 선택에서 결코 틀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제우스는 정말, 유원의 이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받아들였다.
“하아-.’”
천계대전의 예선이 끝나고 이틀이 지나갔다.
오후가 되면 이제 본선이 시작된다.
결승까지 하루 안에 다 치러지는 천계대전의 특성을 고려하면, 한숨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질경- 질겅-.
껌 하나를 입에 넣고 씹으며 하르간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이 경기장 위로 제우스의 벼락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문제는 패널티인데.’
제아무리 제우스라 해도 아무런 제약 없이 경기장 위에 벼락을 떨어뜨릴 순 없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제우스는 벼락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 상황을 만드는 건 자신들의 역할이었다.
‘어떻게 한다.’
고민이 슬슬 깊어지던 때.
“너무 많이 생각할 거 없다.”
함께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유원이 입을 열었다.
“그쪽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뭔가 생각이 있는 거냐?”
“있지.”
“그럼 공유 좀 하지?”
“안 돼. 지금은.”
“거 진짜, 친구 괜히 했나…….”
수상쩍은 눈으로 유원을 바라보는 하르간.
도저히 속을 모르겠으니, 이젠 아예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물론.
제우스의 허락이 떨어진 이상, 이제부터는 하르간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일단은 푹 쉬어 둬.”
유원은 계속 눈을 감은 채, 길게 하품을 하며 졸고 있었다.
“이제 십 분 남았다.”
“……그래.”
예정대로라면 정말, 이제 곧 천계대전에서 큰 싸움이 있을 것이다.
관리자와 심부름꾼들.
그들과 플레이어들의 싸움이 벌어지면 이곳은 전쟁터가 될 게 뻔했다.
‘십 분.’
척, 척, 척, 척-.
‘그 시간 동안 최대한 컨디션 조절을-.’
쾅-!
거칠게 문이 열리자 대기실에 모여 있던 유원과 판도라, 하르간과 이성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엥?”
“와아…….”
의외의 손님에 하르간은 놀라고, 이성윤은 입을 헤 벌렸다.
은발 머리를 길게 기르고, 차가운 한기와 함께 나타난 미인.
츠쿠요미가 네 사람의 대기실을 찾아온 것이다.
“분명 문은 잠겨 있었을 건데.”
자리에 드러누워 있던 유원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냥 부수고 들어온 건가.”
“찾았다, 드디어.”
가장 유명한 사람은 하르간과 판도라일 텐데, 츠쿠요미의 시선은 유원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눈은 꽤 매서웠다.
빠르게 유원의 앞으로 걸어온 그녀는 유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놔.”
“이거?”
딸랑-.
유원이 허리춤에 찬 쿠사나기와 함께 거기에 달린 팔척경곡옥을 흔들어 보였다.
거기에 더해.
“아니면 이거?”
인벤토리 속에서 나온 투명한 거울이 츠쿠요미의 얼굴을 비췄다.
“전부 다.”
“네가 찾고 있었다고 해서 내가 이걸 네게 줄 이유는 없을 건데.”
“살게.”
“나 돈 많아.”
단호한 거절에 츠쿠요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야타의 거울을 제외한 다른 두 개는 원래 우리들 거였어.”
“네 건 아니었지.”
“그건-.”
막 츠쿠요미가 무어라 반박하려는 때.
오싹-.
등골이 서늘해지는 살기에 츠쿠요미가 고개를 들었다.
은발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달빛을 닮은 색상의 마력이 주위로 퍼져 나갔다.
“너, 나가.”
“……판도라.”
자신을 적대시하는 판도라의 행동에 츠쿠요미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세 사람은 몰라도 판도라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판도라의 랭킹은 41위.
그녀는 삼귀자 중 유일한 생존자이자 95위의 랭킹을 지닌 자신보다도 더 높은 랭킹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참가자 명단에서는 못 본 것 같은데.’
판도라는 예상 밖의 변수였다.
츠쿠요미는 삼신기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무력이라도 쓸 생각이었다.
다행히 삼신기를 가진 상대는 그리 대단한 랭커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하필 판도라라는 변수가 끼어들었다.
“그녀를 믿고 있는 건가?”
“유원에게 말 걸지 마.”
“생각보다 가까운 사인가 보군.”
단순한 보디가드는 아닐 것이다.
판도라에 대한 소문이라면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누구와도 팀을 이루지 않았다.
사실상 은거한 랭커나 다름없던 그녀가 세상 밖으로 나온 건 충분히 화제가 될 일이었으나, 지금 츠쿠요미에게는 눈엣가시일 따름이었다.
‘싸워야 하나?’
쩍, 쩌저저-.
주위의 온도가 내려가며 방 안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녀는 서서히 싸울 각오를 다잡고 있었다.
판도라와 싸워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었지만 그렇게 바라던 삼신기를 눈앞에 두고 물러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막, 두 사람이 충돌하려는 순간.
“나한테 삼신기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두 사람 사이로 유원이 끼어들며, 점화되려던 싸움이 잠시 멈췄다.
쩍, 쩌저-.
츠쿠요미의 시선에 따라 얼어붙은 공기가 유원에게로 향했다.
미심쩍은 표정.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지금 싸워서 삼신기를 얻어 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걸.
“방법이 있었어.”
“그 방법을 안다는 건, 삼신기를 하나로 합칠 방법도 있다는 뜻이겠네.”
유원의 말에 츠쿠요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듯한 표정.
그리고 그 표정에서 유원은 결정을 내렸다.
“그럼 줄게. 세 개 다.”
“지, 진짜로?”
츠쿠요미가 평소 그답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환하게 웃는 그녀는 유원에게 성큼 다가와 덥석 손을 잡았다.
“이 사례는 꼭 지급하겠다. 포인트나 삼귀자에 속해 있는 땅이나 상권, 무엇이든 말만…….”
“나 부자래도. 뭐, 준다면 받기는 하겠지만.”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유원도 마찬가지.
제아무리 몰락했다지만 두 자릿수의 하이랭커들로 이루어져 있던 삼귀자가 지금까지 모아 놓은 부가 얼마나 될지는 쉽게 짐작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에 하나 더 얹어.”
“하나 더?”
츠쿠요미는 삼신기만 준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신기의 가치를 아는 자라면 그걸 쉽게 넘길 리 없었다.
그렇기에 츠쿠요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 중 대부분을 넘길 생각을 하고 이곳을 찾았다.
과연 상대는 무엇을 요구할까.
긴장한 표정의 츠쿠요미에게 유원은 주위의 세 사람을 둘러보다 말했다.
“너도 껴라, 여기.”
두루뭉술한 제안.
의미를 알 수 없어 츠쿠요미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이, 뒤에서 이성윤이 하르간의 옆구리를 툭 쳤다.
“팀장.”
“왜?”
“눈이 너무 부셔서 떠지질 않아요.”
무슨 개소리냐는 듯, 하르간은 의아한 눈으로 이성윤을 바라보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과는 달리 이성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 * *
경기장 위로 향하는 길.
싸늘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하르간은 의아한 듯 물었다.
“판도라는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거냐? 참가한다면 아수라랑 같이 우승 후보 중 한 명일 텐데.”
판도라 정도의 랭커라면 충분히 이 대회의 우승 후보로 거론될 만했다.
유력한 우승 후보는 역시 아수라겠지만, 운만 좋다면 체력이 떨어진 아수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내 편이니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이 대회에 참가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팀을 만들기 위해 참가한 대회였으니까.’
현재 유원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
그리고 유원이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료 중 한 명이 바로 판도라였다.
“……진짜로?”
하지만.
“머리에 혹 났어, 너.”
지금 이 상황에서는 썩 설득력이 없는 말이었다.
유원의 머리에 난 혹 하나.
그것이 설득력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건지.’
하르간, 이성윤, 그리고 츠쿠요미와 함께 대기실을 나가는 그 순간.
다짜고짜 판도라가 유원의 머리를 있는 힘껏 쥐어박았다.
별다른 세력도, 특별한 스킬도 없는 판도라가 41위의 랭킹을 기록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육체적인 능력 덕분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판도라의 육체 능력은 10위권 안쪽의 하이랭커들에 필적할 정도였다.
그런 판도라가 있는 힘껏 머리를 쥐어박았으니, 제아무리 유원 이라도 충격이 없을 수는 없었다.
“뭐, 일단은.”
“네 말대로라면 오늘 여기 관리자가 나타날 거라는 거지?”
어느새 합류한 츠쿠요미의 물음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럼 그냥 가져가도 좋아. 물론,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자신만만하군.”
삼신기는 츠쿠요미의 손에 들어갔다.
그녀는 삼신기를 하나로 합칠 방법을 알고 있었고, 세 개의 아이템을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적임자였다.
‘조금 아깝긴 하지만…….’
유원은 허리춤에 채워진 이계검을 만지작거리며 아쉬움을 달랬다.
‘지금 내게 삼신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실질적으로 유원이 사용하는 신기는 쿠사나기의 검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계검이 있는 유원에게 쿠사나기는 대체품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약속은 꼭 지키지. 네 말대로라면 이 대회가 끝나고 우리가 다 살아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녀 역시 귀가 있었으니, 비슈누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었다.
랭킹 2위.
만 년도 넘은 긴 시간 고대부터 존재해 온 데바의 위대한 신.
그의 죽음이 관리자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아는 이상, 츠쿠요미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삼신기를 다 모은 아마테라스의 랭킹은 20위 안쪽이었다.’
삼귀자들은 오래전부터 삼신기의 힘을 알고, 그것을 찾고 있었다.
애초부터 삼신기는 하나.
그 삼신기를 모아, 하나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삼귀자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하지만 끝내, 삼신기를 모두 모은 아마테라스는 그것을 하나로 합칠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궁금하긴 하네.’
이제야 제 주인을 만나게 된 삼귀자의 보물들.
‘삼신기가 하나가 되면 어떤 모습이 될지.’
유원은 확신했다.
바로 오늘, 삼귀자가 바라던 이상향의 랭커가 탄생하게 되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