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50
* * *
천계대전의 본선이 시작될 장소.
경기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간에서 이랑진군이 중얼거렸다.
“엄청난 녀석이 참가했군.”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참가자들.
도합 64명으로 이루어진 참가자들의 선별은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우승의 기준은 오로지 강함 하나뿐.
하지만 이랑진군의 눈에는 이미 우승자가 뻔히 보였다.
“아수라를 말하시는 겁니까?”
옆에 선 다른 장군의 질문에 이랑진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하긴, 끝자락이긴 해도 한 자릿수의 하이랭커니까요.”
본래 10위였던 아수라의 랭킹은 비슈누의 죽음으로 한 단계 상승해 9위가 되었다.
비록 한 자리가 공석이 되어 만들어진 랭킹의 상승이라지만, 한 자릿수가 지니는 랭킹의 의미는 남달랐다.
더욱이 어떤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아수라가 보유한 랭킹의 의미는 개인의 힘으로 거대 길드와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의 폭력성이지.”
아수라.
그의 이름은 하나의 대명사처럼 쓰였다.
피가 낭자하는 전장에서나, 악귀처럼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에게나.
아수라라는 이름은 그런 폭력적인 냄새가 나는 곳에 어울렸다.
“저자가 대장군이 되었을 때, 과연 그게 득이 될지 실이 될 지…….”
“상관없지 않은가?”
저벅-.
뜻밖의 인기척에 이랑진군이 고개를 돌렸다.
굵고 어딘가 긁힌 듯한 목소리.
그 안에 깔린, 인자하고 부드럽지만 강직한 목소리.
한동안 잊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태상노군……?”
“이제 무릎도 꿇지 않는구나.”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르고, 지팡이로 몸을 지탱한 노인.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온 게 아닌가 싶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가 바로, 제천대성과 평천대성이 일으킨 천계대전 때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태상노군이었다.
“곧 상제가 될 거라지만, 아직은 아닐 텐데.”
“태상노군을 뵙습니다.”
“태상노군을 뵙습니다!”
이랑진군과 함께 그의 옆에 있던 장군도 따라 무릎을 꿇었다.
워낙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던 탓에 현재 천계에는 태상노군의 얼굴을 아는 자보다는 모르는 자가 더 많은 실정이었다.
이랑진군의 반응에 함께 무릎을 꿇은 장군은 시선을 힐끗 위로 올리며 태상노군을 바라보았다.
‘저자가, 태상노군?’
그는 전설 속의 인물이었다.
만약 랭킹에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그가 죽었을 것이라 확신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계에서 태상노군이 차지하는 지위는 옥황상제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그 꼬마가 많이도 컸구나. 대장군이 된 게 엊그제 같은데…….”
“지난 일입니다.”
“고개도 이리 뻣뻣이 들고. 오래 살고 볼일이야.”
단 몇 마디였다.
꿇고 있던 무릎을 피고 고개를 들어 올린 이랑진군은 곧 태상노군의 의중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어찌 여기 왔는지.
그 의도가 천계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 등.
시간이 훌쩍 지나 버린 태상노군에게서는 예전의 그 인자한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어찌 나오셨습니까?”
“폐관이 끝났느니라.”
폐관.
태상노군은 어떠한 관직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천계에서 옥황상제만큼이나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이유는 바로 전대 옥황상제의 스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폐관에 들어 있었다.
목적은 단 하나.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기 위함이었다.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으셨습 니까?”
“그래.”
태상노군의 입에 희미한 웃음기가 걸렸다.
“경지를 넘었느니라.”
“……그랬습니까?”
이랑진군은 잠시 태상노군의 기운을 읽어 보았다.
그의 주위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본다면 평범한 노인네, 그 이상으로는 절대 보지 않을 것이다.
“나와서 잠시 세상을 알아보니, 천계대전이라는 일이 있었더구나.”
태상노군은 나오자마자 지난 세상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폐관에 들어 있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이다.
“웃기더구나. 고작 요괴 놈 둘에게 천계가 뒤집어지고, 옥황은 죽고. 지금은 네가 차기 옥황으로 발탁되었다니 말이야.”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그래. 부족하지. 한참 부족했지. 그런데, 대장군으로도 부족한 녀석이 옥황이라?”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방 안에 가득 퍼졌다.
이내, 몸을 돌린 태상노군이 자리를 벗어났다.
‘어르신의 복귀를 기뻐해야 할 터인데…….’
태상노군의 뒤를 따라가는 이랑진군의 시선.
‘왜 이리 불안한 것인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듯한 태상노군의 모습에, 이랑진군은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차기 대장군을 정하는 천계대전의 본선이 시작되는 이때.
갑작스럽게 나타난 태상노군의 존재를 반겨야 할지,말아야 할 지 이랑진군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대장군님.”
태상노군의 등장에 잠시 넋이 나가 있을 때.
“이제 가셔야 합니다.”
어느새 본선의 시작 시간이 코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이랑진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기장 아래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뭐가 됐건.
이 대회를 무사히 마쳐야, 천계에는 다음이 있을 것이다.
* * *
유원을 비롯한 일행이 천계대전의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경기장은 시끄러웠다.
자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관중들의 함성 때문이었다.
“아수라-!”
“난 너한테 다 걸었다-!”
“난 츠쿠요미한테 올인이야!”
“우유빛깔 츠쿠요미! 사! 랑! 해! 요! 츠쿠…….”
어느 대회나 그렇듯, 가장 즐거운 놀거리는 역시 내기였다.
각 참가자들에게 걸린 돈.
유력한 우승 후보인 아수라부터 츠쿠요미, 이예 등 그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넘쳐 났다.
“팬 한번 엄청 많네.”
목소리의 대부분은 아수라와 츠쿠요미를 응원하고 있었다.
한 자릿수의 랭킹을 가진 유력한 우승 후보 아수라는 그렇다 쳐도 츠쿠요미는 단순한 팬심이 더 큰 것 같았다.
당연했다.
애초에 신비주의였던 그녀가 이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게 거의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응원이 낯부끄럽군.”
천천히 이예가 유원의 옆으로 다가왔다.
스윽-.
어깨에 팔을 걸치며,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 그런가?”
‘위협인가?’
딱히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유원은 어깨에 걸쳐진 이예의 팔을 풀어내며 대답했다.
“그쪽은 딱히 인기가 없나 봐.”
“아직 날 잘 모르는 거지. 딱히 상관도 없고.”
“어련하시겠어.”
“전에 하던 얘기는 마저 해야 지?”
“엘릭서?”
“그래.”
이예의 눈빛이 달라졌다.
엘릭서.
그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이예는 목숨까지 걸 각오가 되어 있었다.
“조건이 뭔지는 모르지만, 네가 아는 방법을 말해 주기만 하면……,”
“대회가 끝나면 알려 주마.”
“어?”
예상 밖의 대답이어서 그럴까.
너무 순순히 엘릭서에 대한 정보를 넘기겠다는 대답에 이예는 순간 의구심이 들었다.
‘거짓이었나?’
엘릭서가 무엇이던가.
그 천고의 영약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그냥 알려 줄 리 없었다.
분명 이예는 무언가 다른 조건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거짓말 같지?”
속을 꿰뚫어 본 듯한 유원의 말.
“어차피 다 끝나면 아니라는 건 알게 될 거고. 일단 잘 살아남아 봐.”
“뭐?”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알려줄 테니까. 물론, 그러려면 도망쳐서도 안 되겠지만.”
“대체 뭔 말이야 그게?”
대답을 재촉하는 이예의 말을 무시하며, 유원은 키트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뭐가 잘못 되기라도 한 건가? 왜 소식이 없어?’
벌써 며칠이 지났다.
분명 도착하자마자 연락을 준다던 손오공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녀석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이건 조금 심하다 싶었다.
지금까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손오공이었기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었지만.
‘혹시 일이 잘못된 거라면…….’
그 순간 울리는 키트의 진동.
유원은 서둘러 키트에 도착한 문자를 확인했다.
[손오공 : 아, 미안. 늦었다.]유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문자가 도착했다는 건 어쨌거나 그리 급한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키트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주위의 마력이 안정적이어야 했다.
[손오공 : 그쪽에도 곧 도착할 거다. 준비하고 있어 봐. 아 그리고 여기도 꽤 재밌다?]문자를 통해 손오공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대충 내용을 보니 저쪽은 이미 시작한 모양인데…….’
너무 늦게 온 연락.
손오공을 믿은 자신이 바보 같았다 생각하며, 유원은 관중석을 비롯한 경기장 안을 훑어보았다.
‘이쪽도 슬슬 시작이겠군.’
기이잉-.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예지안(豫知眼)을 반짝이며 말이다.
* * *
구름이 맑게 갠 하늘에 먼지구름이 끼었다.
높게 솟은 언덕의 정상 위.
손오공은 귀를 후비며 문자를 보낸 키트를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너무 놀았나. 조금 늦은 거 같은데…….”
혹시나 유원에게 혼나지는 않을까 잠시 걱정하던 손오공은 이내 복잡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아무렴 어때. 알아서 잘하겠지.”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불만에 차 있던 손오공은 기분이 좋은 표정이었다.
당연했다.
이렇게 신나게 싸워 본 게 대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으니까.
“끄으…….”
손오공이 깔고 앉은 언덕 아래.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려오자, 손오공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엉덩이에 깔고 앉은 심부름꾼들의 시체 더미.
손오공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살아 있었어?”
관리국의 본부장급 심부름꾼.
이름은 호란이라던 녀석이었다.
관리자가 떠나고 없는 관리국.
그곳에 남아 있던 만 명이 넘는 심부름꾼들.
손오공은 홀로 그들과 싸움을 벌였다.
본부장급 심부름꾼인 호란은 다른 심부름꾼들을 데리고 손오공을 저지하려 했지만, 이틀 내내 이어진 싸움에도 불구하고 손오공은 지칠 줄을 몰랐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
“먼저 싸움을 걸어온 건 너희들이었잖아?”
화륵-.
화안금정으로 불타오른 손오공의 눈매가 매섭게 휘어졌다.
“비슈누는 왜 죽였어?”
비슈누의 죽음은 잠시 꺼져 있던 손오공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소식을 듣는 순간, 미래에서와는 달리 동료를 지켜 냈다는 생각이 와장창 깨어졌다.
누구에게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은 생각에 하루하루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니들이 뭘 원하는지 난 몰라. 그런 건 유원이 생각할 거야. 근데 말이야.”
콱-.
날카롭게 곤두선 손톱과 함께, 손오공이 호란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우릴 건드린 이상, 니들은 다 내 손에 죽어.”
“이제…… 곧…… 그분이…… 올…… 겁니다…… 그럼…… 당신도…….”
푸확-!
손아귀 힘에 으깨지는 머리.
으깨진 과육처럼 산산조각 난 머리와 몸뚱이를 바닥에 내던지며 손오공이 중얼거렸다.
“그러던지.”
그와 동시에 손오공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먼지구름에 가려져 있던 하늘의 푸른빛이 손오공을 내리 쬐었다.
먼지구름을 걷어 내는 바람과 함께, 강철의 갑옷을 입은 말을 탄 기사가 나타났다.
관리자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모두 다르다더니.
씨익-.
흥분으로 인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화안금정을 통해 녀석의 몸에 둘러싸인 마나의 흐름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유유히 흐르는 마나.
저걸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왔구나.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