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53
* * *
경기장 위에 주저앉은 아수라.
유원은 그런 아수라의 돌발 행동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은 저게 장점이지.’
아수라는 싸움에 눈이 먼 손오공과는 달랐다.
물론 그는 한평생 인드라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아온 귀신이었다.
하지만 그 복수심에도 불구하고 아수라는 섣불리 인드라에게 덤비지 않았다.
녀석은 인드라에게 이길 수 있는 싸움을 계획하고, 그걸 위한 판을 만들었다.
미래에서도 그랬다.
인드라는 유원의 개입이 아니었어도 결국 아수라에게 패할 운명이었다.
‘눈치도 있고, 머리도 있다. 가끔 선을 넘는 게 문제지만.’
다른 놈들이라면 몰라도 녀석은 눈치챌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멋지게 도와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예지안’이 비활성화됩니다.]스르르-.
유원의 눈에서 뿜어지던 황금색 빛이 사라지며, 스킬의 활성화가 풀렸다.
지끈-.
그간 예지안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일까.
오랜만에 두통이 밀려왔다.
다른 스킬과는 달리, 예지안은 마력보다는 정신력을 더 많이 필요로 했다.
‘미래를 모르는 게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유원은 꽤 오랫동안 미래의 정보를 바탕으로 한 이점들을 누려 왔다.
그 시간이 꽤 길어, 사실상 유원은 예지안을 사용할 만한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원래 미래에는 없던 일이었다.
‘그래도 뭐…….’
유원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경기장 위에 나타난 태상노군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변수는 다 찾았으니까.’
태상노군.
갑작스레 경기장에 난입한 그야말로, 이번 천계대전에서 일어나게 될 싸움의 핵심이었다.
“태상노군……?”
“태상노군이 여긴 왜?”
참가자들 사이에서 혼란이 일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모습을 드러 내지 않았던 태상노군이 복귀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가 갑작스레 천계대전에 난입했다.
돌발 상황에 다른 참가자들이 당황해하는 사이.
유원은 옆에 있는 츠쿠요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
“준비됐지?”
유원의 눈치에 츠쿠요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신호에 츠쿠요미는 생각했다.
이제 시작이라고.
* * *
스캇-.
검집에 들어갔던 아수라의 칼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태상노군의 등장에 아수라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의외긴 하군.”
쏴아아-.
아수라의 마력이 태상노군을 향해 쏟아졌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녀석은 무조건 베려고 했는데. 그게 당신이라니.”
살기를 드러내는 아수라.
그런 아수라의 행동에 이예는 중간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경기장에 난입했다지만 상대는 태상노군이었다.
옥황상제의 스승이자, 천계의 또 다른 지존인 자.
그런 태상노군에게 살기를 드러낸다는 건 제아무리 아수라라 해도 도를 넘어선 행동인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눈치채신 건가?”
태상노군은 그런 아수라의 행동을 무례하다 꼬집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흥미롭다는 눈으로 아수라를 바라보았다.
“악취가 난다.”
아수라는 두 자루의 칼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태상노군의 얼굴을 교차해 보았다.
“전쟁터의 냄새가 나.”
“전쟁터?”
“살기와 적의가 진해지면 피 냄새 같은 게 느껴지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건 기척과는 달리 숨길 수 없는 것들이다.”
태상노군은 감탄했다.
내심 참가자들을 무시하던 마음이 지금 이 순간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전장을 찾는 감지력은 실로 신기에 닿아 있구려.”
쉬이잇-.
쩡-!
태상노군의 손과 아수라의 칼이 부딪쳤다.
그 충격으로 인한 마력의 파동이 주위로 퍼져 나갔다.
이예는 두 팔로 머리를 보호하며 뒤로 밀려 나갔다.
‘갑자기 왜……?’
이건 정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천계의 우두머리인 태상노군.
그를 향해 칼을 휘두른 건, 천계대전이 즉각 중단될 정도로 중대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아수라.
한 자릿수의 하이랭커인 그는 혼자서 천계와 대적할 정도의 힘을 가진 실력자였다.
카각, 카가-.
아수라의 칼은 태상노군에게 닿지 못했다.
그의 손에서 방출된 마력이 칼을 밀어내며, 아수라와 힘겨루기를 시작한 것이다.
“뒤의 관리자들은 아직 나오지 않을 생각인가?”
“그것까지 눈치챈 건가?”
“애초에 기다리던 건 그쪽이었다.”
스카앗-.
아수라의 칼이 교차하며 태상노군의 목을 노렸다.
“……!”
“네놈도 그놈들과 한패인 것 같기는 하다만.”
스캇-.
쩌저저저-!
경기장이 십자가 모양을 그리며 크게 베어졌다.
태상노군의 목에 가느다란 선혈 자국이 생겨났다.
손바닥을 튕겨 아수라를 밀어내며 거리를 벌리는 태상노군.
하지만 아수라는 밀려 날아가는 대신, 조금 균형을 잃는 게 전부였다.
“……칼이 맵군.”
목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태상노군이 아수라를 노려보았다.
“어찌 알았는가?”
“관리자들에게서는 다른 냄새가 난다.”
태상노군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
코끝으로 느껴지는 그 미세한 차이에 아수라는 인벤토리 속에서 또 다른 무기를 꺼내 들었다.
“똑같은 마력이어도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달라.”
기다란 붉은 창.
보통의 창보다 몇 뼘은 더 길고, 손가락처럼 얇은 창이었다.
“지금 네게 느껴지는 것과 똑같이 말이지.”
부웅, 붕, 부우웅-.
아수라의 손에서 창이 빠르게 움직였다.
거센 바람과 함께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창.
모든 종류의 무기를 다룬다는 아수라답게, 그는 칼보다는 창이 태상노군을 상대로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가?”
태상노군은 오히려 흐뭇하게 웃었다.
그는 손을 들어 올렸다.
마력이 한 점에 집중된 그의 손이 향하는 곳은, 아수라가 아닌 다른 방향이었다.
“이걸 두고 그들은 ‘마나의 주인’이라 부르더군.”
기이잉-.
마나포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위력적인.
‘발경?’
파앗-.
아수라가 서둘러 태상노군을 향해 뛰어들었다.
빠르게 좁혀지는 거리.
하지만 참가자들이 있는 방향은 아수라가 서 있는 방향과 정반대였다.
“잘 지켜보게.”
제아무리 아수라라고 해도, 태상노군의 반대편에 있는 참가자들을 막아서기에는 한 발 늦은 상태.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쩌어엉-!
태상노군의 발경이 쏘아졌다.
콰아아아-!
일그러진 마력이 실체화된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수십 명의 참가자들을 덮쳐갔다.
부딪치는 순간, 온몸이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릴 일격이었다.
‘늦었-.’
츠팟-.
그리고 그와 동시에.
쩍, 쩌저저저-.
수백, 수천 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얼음의 거울이 참가자들의 앞에 펼쳐졌다.
쩌억-!
거울에 가로막힌 발경.
쩍쩍 금이 간 거울에서는 시리디시린 한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거울의 꼭대기에 서 있는 랭커.
“츠쿠요미, 이년…….”
“오랜만입니다. 태상노군.”
츠쿠요미가 태상노군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이 시합은 벌써 망했군.”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아무 이유 없이 공격을 받은 이상 그냥 있을 순 없지.”
경기장 위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참가자들.
천계 소속의 랭커, 태상노군의 개입으로 인해 이미 천계대전의 룰은 엉망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츠쿠요미와 하르간, 이성윤을 비롯한 수많은 랭커들이 태상노군의 주위를 둘러쌌다.
뿐만 아니라.
“설명을 들어야겠습니다.”
키히히히힝-!
우렁창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이랑진군을 비롯한 천계의 장군들이 하늘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대회에 개입한 것도. 참가자들을 공격한 것도. 모두 말입니다.”
“저자가 나를 먼저 공격했네만.”
“그 전에 어르신께서 먼저 경기에 개입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을 공격할 명분은 없지 않습니까?”
“허허. 그렇긴 하군.”
너털웃음을 흘리는 태상노군.
하지만 그의 시선은 정작 이랑진군이 아닌, 자신의 발경을 막아 낸 츠쿠요미에게로 향해 있었다.
웃음소리에 감춰진 눈빛에는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녀가 자신의 발경을 막아 낸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수라와 태상노군을 연행해라.”
“예!”
이랑진군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조심스레 아수라와 태상노군에게 다가갔다.
하이랭커도 구속할 수 있는 단단한 포승줄이 있다지만, 그걸 두 사람이 간단히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다.
꿀꺽-.
그렇게 천천히 아수라와 태상노 군에게 다가가는 병사들.
“히, 히이익!”
아수라와 눈이 마주친 병사가 놀라 뒤로 자빠졌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지만, 일개 병사인 그는 감히 아수라를 포박할 담이 없었다.
그리고 한편.
“수고하는구나.”
태상노군에게 다가간 병사는 아수라와는 전혀 다른 포근함을 느꼈다.
다행이라는 표정과 함께, 병사는 태상노군의 손을 향해 포승줄을 가져갔다.
“가, 감사합…….”
툭-.
그리고 그때.
푸슛-!
태상노군의 손가락이 맞닿은 병사의 머리에 구멍이 뚫리며, 그 뒤쪽으로 피가 뿜어졌다.
“어르신!”
이랑진군의 노호성.
이랑진군이 언월도를 손에 쥔 채 태상노군의 앞으로 달려왔다.
그는 쓰러진 병사와 태상노군을 번갈아보더니 분노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
“양아야.”
긴장을 녹이는 목소리.
저 목소리에 속지 않기 위해 이랑진군은 온몸의 긴장을 다스려야 했다.
“너도, 그리고 천계도.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느냐?”
“우리라니 무슨 말입니까?”
전후 사정을 모르는 이랑진군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
거기에 대한 설명은 뜻밖에도 아수라에게서 나왔다.
“관리자다.”
“관리자?”
“저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은, 관리자와 비슷하게 닮아 있다. 그리고…….”
아수라의 눈이 이랑진군과 함께 나타난 천계의 장군들 사이를 훑었다.
“관리자, 그 녀석들이 여기에도 몇 명 섞여 있고 말이지.”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마나의 주인’이 주위의 마나를 다스립니다.]쏴아아아-!
대기 중의 마력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손발처럼 자유롭게 음직 이던 마력들이 흩어지며, 처음 걸음마를 뗄 때처럼 다루기가 어렵게 느껴졌다.
“수, 숨이…….”
“안…… 쉬어…….”
마력의 공급이 차단됨과 동시에 숨마저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몇 번 숨을 고르던 랭커들은 곧, 자연스럽게 손발처럼 움직이던 마력을 억지로 움직여 호흡을 가다듬었다.
대기 중의 마력이 제 주인을 만났다.
천계의 병사들 사아 하나둘, 그 마력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가 천계인가.”
“제법 공기가 맑군. 다른 세계에 온 건 오랜만이야.”
“오래도 해 먹었지. 주인 없는 집에서 개들이 주인 노릇을.”
고고한 힘을 드러내며, 마력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
유원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관리자들의 숫자를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역시 세 명인가.’
천계를 비롯해 천계대전의 참가자들까지 상대해야 하니, 한 명은 아닐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예지안으로 확인한 관리자들의 숫자는 모두 셋.
지금 눈앞에 나타난 숫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일단 셋.’
저벅-.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익숙한 얼굴들을 보며, 유원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이 적의를 드러냅니다.]‘시작으로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