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54
* * *
세 관리자의 등장에 경기장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과, 관리자?”
“관리자가 왜 여기에?”
참가자들의 동요에 관리자들은 이빨을 드러냈다.
대기 중의 마력이 날카로운 송곳니로 변하며 모습을 나타냈다.
목줄을 옭아오는 기운에 몇몇 랭커들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건 천계의 랭커들 역시 마찬가지.
이랑진군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이 사태의 시작점인 태상노군을 바라보았다.
“‘우리’와 함께 하자는 건, 관리자들과 손을 잡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잘 알아들었구나.”
“……천계를 배신하신 겁니까?”
“배신이 아니란다, 양아야.”
태상노군은 이랑진군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설득했다.
“이제 곧 탑은 원래의 주인을 찾게 될 거다. 그 격동하는 폭풍에서 천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와 함께해야 해.”
태상노군의 말에 이랑진군의 시선이 세 명의 관리자들에게로 향했다.
탑의 절대적인 지배자들.
압도적인 힘을 지녔으면서도 지금껏 힘을 행사하지 않던 그들이었다.
각 층의 플레이어들과 길드는 그런 관리자들의 침묵을 어느 순간부터인가 당연히 여겨왔 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순간, 탑의 질서가 무너지게 될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천계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이랑진군은 천계의 수장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천계의 수호와 번영이었다.
그걸 위해 지금껏 살아왔다.
선택의 순간.
지금 이 한 번의 선택으로 인해 천계는 부흥할 수도, 몰락할 수도 있었다.
‘난, 여기서 어떻게 해야…….’
“덕분에 좋은 걸 알았다.”
저벅-.
관리자들의 등장에 모두가 침묵하고 있던 그때였다.
“여기저기 길드를 돌아다니면서 껄떡거리고 있나 봐?”
긴장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이랑진군의 시선이 참가자들 사이에서 태상노군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누구지?’
본선에 올라온 64명의 참가자들 중 한 명.
얼굴은 어딘가 낯이 익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리 유명하지 않은 랭커 중 한 명인 듯했다.
그런데 겁도 없이 나서다니.
화아아-!
그 생각이 드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일이 벌어졌다.
숨을 답답하게 조여 오던 마력이 조금 편안하게 풀어졌다.
[‘마나의 주인’이 주위의 마나를 다스립니다.]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같은 내용의 메시지.
이랑진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관리자들에게 허락된 힘이 저 참가자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졌다.
“저 자식, 역시…….”
하르간은 미소를 지었다.
김유훈이라는 이름 없는 플레이어.
처음 봤을 때부터 녀석에게 뭔가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이 자리에 관리자들에 나타날 걸 예상한 것도 그렇고, 그에게는 무언가 범상치 않은 느낌이 풍겼다.
그런데 혹시나가 역시나.
그는, 자신들에게 없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다.
“넌 누구지?”
태상노군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유원을 노려보았다.
유원에게서 풍기는 익숙한 마나의 흐름에 세 명의 관리자들 역시 그를 집중했다.
대체 그가 누구이기에 관리자들과 같은 스킬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김유훈.”
“김유훈? 처음 듣는 랭커로군.”
“이제부터 유명해질 예정이라서.”
유원은 어깨를 으쏙이며 하늘에 떠 있는 관리자들을 바라보았다.
“저것들을 다 잡고 말이야.”
관리자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느 누구도 감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저런 배짱을 부리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건만.
지금껏 관리자인 자신들에게 이런 식으로 도발을 해 온 플레이어는 한 명도 없었다.
“건방이 조금 과하군.”
“우리가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는 모양이야.”
“아니면 혹시…… 우리 정도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관리자들은 유원을 비웃으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참가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 위로 향했다.
관리자가 가리킨 맑은 하늘 위에는 두껍고 하얀 구름이 끼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화아아-.
하늘에 끼어 있던 뭉게구름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흩어진 구름 속, 조용히 숨어 있던 수많은 심부름꾼.
“낄, 낄낄낄-.”
“싸운다, 싸운다.”
“플레이어들. 날벌레들.”
“센 놈도 있어.”
숫자를 다 세기 어려울 정도의 숫자였다.
구름 속에 숨어 있던 심부름꾼들은 얼핏 가늠해 보아도 족히 만 단위는 넘어 보였다.
“으아, 으아아아…….”
“저, 저게 다 뭐야?”
“심부름꾼들이 저렇게 많이?”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고, 쪽수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있다.
탑에서는 그리 통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비슈누나 손오공, 제우스가 그러하듯 이 세계에는 절대 다수를 압도하는 위대한 랭커들이 존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압도적인 숫자가 지닌 위압감은 개인의 절대적인 강함과는 결이 다른 법이었다.
절대적인 힘을 지닌 세 명의 관리자들.
그들에 더해, 만 단위에 이르는 심부름꾼들이 등장하자 이랑진군은 순간 온 몸을 잠식하고 있던 긴장감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이길 수 없다.
아수라와 츠쿠요미, 이예와 함께 관리자들과 맞서 싸운다 해도 저 많은 심부름꾼들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 숫자를 앞에 두고도 유원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재미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갑자기 조용해지지 않았어?”
“뭐?”
“아까까지만 해도 축제처럼 시끄러웠는데 말이야.”
유원의 말에 관리자들은 어떤 이질감을 느꼈다.
확실히 그랬다.
아무리 관리자들이 등장했다지만 이상하리만치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단순히 소리가 줄어들었다는 느낌만이 아니었다.
무수히 많던 인기척.
그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혹시-.”
관리자들, 그리고 참가자들의 시선이 모두 주위를 훑었다.
관중석.
경기장의 가장자리, 수만 명의 플레이어들과 거주민들로 이루어져 있던 관중들의 소리가 일제히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던 신기루처럼.
그들은 여전히 소리와 기척 없이 경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후우우-.
후욱-.
바람에 흩어진 가벼운 먼지나 안개처럼, 관중들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름 없는 안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이 모습을 드러냅니다.]보랏빛의 안개가 경기장 주위를 감쌌다.
천계대전의 경기장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함.
물리적인 실체를 지니며,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꾸는 안개.
그것의 등장에 관리자들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설마-.”
“니요그-.”
쿠르르-.
하늘에서 울리는 천둥소리.
관리자들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잠시 안개에 한눈이 팔린 사이, 맑게 개어 있던 하늘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사라졌던 구름이 다시 나타났다
.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까만 먹구름이었다.
그 먹구름을 올려다보며 유원은 짧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성격은 재수 없긴 하지만-.”
이제 이 경기장 내에, 랭커가 아닌 거주민이나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실력은 최고지.”
이 탑에서 가장 멀리 창을 날릴 수 있는 자.
다수와의 싸움에서 그 누구보다 특화되어 있는, 최강의 벼락을 지닌 존재.
제우스.
콰릉-!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올림포스의 뇌전이, 심부름꾼들의 머리 위에 떨어져 내렸다.
* * *
치지, 치지지-.
창을 던진 후에도 손에 마력이 남아 맴돌았다.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이렇게 있는 힘껏 벼락을 던진 게.
“조금 피곤하군.”
위력은 둘째치고, 거리가 너무 멀었다.
몇 개의 층을 넘어 정해진 장소로 창을 던지는 건 제아무리 제우스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리부터 준비를 하고, 과녁을 조준할 시간과 한참이나 먼 거리를 뛰어넘을 만큼 막대한 마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일이었다.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알고, 그 주위로 휘말릴 플레이어나 거주민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
그렇기에 제우스는 움직이는 상대를 향해서는 이런 식으로 창을 던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쨌거나 해냈군.”
그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었다.
확실한 건 이번 일에 하르간이 개입한 건 없었다.
녀석이 개입한 거라고는 하나의 말을 자신에게 전한 것뿐이었다.
김유훈이라는 자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윽-.
제우스는 있는 힘껏 창을 던지느라 뻐근한 팔을 주무르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신전에는 때마침 한 명의 손님이 찾아와 있었다.
“관리자 나으리.”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
거인처럼 큰 키와 덩치를 가진, 거지 행색의 관리자.
탑에서는 흔히 0층이라 불리는, 튜토리얼의 관리자였다.
“이상하군.”
“이상해?”
“비상하기도 하고…….”
그는 곱슬곱슬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벼락이 떨어진 천계대전의 풍경을 비춘 수정구는 황금색의 빛을 연신 뿜어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아수라장이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단순히 머리가 좋은 정도가 아닌 것 같구먼.”
“그럼?”
“우리들에 대해 잘 알고 있거나, 예지안처럼 미래를 파악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납득하기 어려워.”
차마 그는 둘 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둘 중 하나만 하더라도 선뜻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관리자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도, 이름 없는 랭커가 예지안과 같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관리자는 말을 꺼내다 말고 침묵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벼락의 여파로 환하게 반짝이는 수정구에 고정되어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마지막 순간.
어렴풋하게 보인 풍경으로, 보라색을 띈 안개를 본 것 같았다.
‘그들은 사라졌다.’
아우터 갓.
오래전부터 자신들과 대적해 오던, 세상의 반대편에 선 존재들.
그들의 힘과 이름은 10년 전의 싸움으로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걸 확인하였기에 관리자들은 오랜 침묵을 깨고 움직이기 시작한 게 아니던가?
한편, 갑작스러운 관리자의 침묵에 제우스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물었다.
“무엇보다?”
“아니, 아니야.”
“……그래?”
눈치 빠르기로는 탑에서 제일가는 게 바로 제우스였다.
제우스는 단순히 이상하다거나 비상하다는 수식어보다도 방금 전 관리자의 반응이 훨씬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렇단 말이지…….”
“뭔가 음흉한 표정이로군.”
“그 표현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 정도 표현은 감수하게. 그대가 우리 쪽 애들을 끌어들였던 과거는 변하지 않으니 말이야.”
오래전, 제우스는 튜토리얼의 심부름꾼들을 포섭해 재능 있는 플레이어들을 미리 끌어들인 적이 있었다.
그 이후 튜토리얼의 관리자는 올림포스라면 이를 갈았으나, 지금은 관계가 조금 달랐다.
“그때 일은 서로 잊자고 하지 않았나? 쩨쩨하기는.”
“글쎄. ‘서로’라고 하기에는 나 혼자 너무 억울해서 말이지.”
“보기보다 속이 좁군.”
짧은 말다툼을 끝으로 제우스는 신경을 돌렸다.
벼락의 여파가 끝났는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한 수정구 속.
이 반응을 통해 제우스는 전보다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김유훈이라…….”
김유훈.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군.”
만약 그가 살아남는다면, 꼭 한 번 만나 봐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