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56
* * *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꾸욱-.
이예는 활을 꽉 움켜잡았다.
수천 년 동안 랭커로서 활동해 왔었지만 지금 같은 위기는 없었다.
위로는 관리자와 천여 명의 심부름꾼과.
바로 코앞엔 아수라와 태상노군이.
그야말로 살얼음판이 따로 없었다.
그러던 중.
“야, 거기.”
아수라의 부름에 이예는 화들짝 놀라며 그를 돌아보았다.
“넌 저쪽에 붙어라.”
“저쪽?”
이예는 아수라가 가리키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곳엔 관리자를 향해 다가가는 김유훈과 어느새 하나둘 팀을 이루고 있는 츠쿠요미와 판도라, 하르간.
그리고 합류를 시작한 이랑진군과 천계의 랭커들.
그들은 이미 관리자와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럼…….’
이예는 가까이서 아수라와 대치하고 있는 태상노군을 바라보았다.
제우스의 벼락으로 인해 시작이 꼬인 탓인지 그는 처음과는 달리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 녀석은 내가 잡는다.”
아수라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태상노군이라는 상대와의 본격적인 싸움을 앞두고, 그는 만전을 기하며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기세에 이예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 물러났다.
팟-.
태상노군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이예.
하지만 태상노군은 이예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수 없었다.
“꼬마 녀석이 제법 풋내기 티는 벗었구나.”
“당신 시대는 끝났어, 늙은이.”
창끝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마력을 머금은 아수라의 등 뒤로 두 개의 머리와 네 개의 팔이 형상화되며, 진정한 수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묻어 주마.”
* * *
처음 관리자들의 목적은 탑에서도 손꼽히는 거대 길드 천계에 있었다.
거대 길드의 포섭, 천계대전은 그걸 위한 꽤 나쁘지 않은 무대였다.
그런데.
“분명 이름 없는 안개였다.”
“아직 그들이 다 사라진 게 아니었던 건가?”
“니요그 소텝은 소멸했다. 슈브 니구라스도 마찬가지고.”
“그럼 어떻게…….”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관중들로 위장하고 있던 안개였다.
세 명의 관리자들이 모두 잘못 봤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금방 나타났던 안개는 정말 니요그 소텝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가진 주인은 다름 아닌.
“뭘 그리 궁시렁거리고 있어?”
지금 이 순간.
세 명의 관리자들의 사이에 나타난 이름 없는 플레이어였다.
스팟-.
제법 빠른 발검술.
하지만 검술의 위력보다도 더 치명적인 건, 검이 가진 기이한 성질이었다.
츳, 츳츳-.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검을 피해 내는 관리자들.
그들은 유원이 휘두른 칼을 보며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오싹, 오싹-.
온몸이 난도질되는 듯한 불길한 느낌에 관리자들의 시선이 유원의 칼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쁘게 나눠졌네.”
콰아앗-.
두 명의 관리자들의 주위로, 검은 숲이 펼쳐졌다.
“뭣…….”
“이건 설마…….”
이름 없는 안개가 등장한 마당에 눈앞에 펼쳐진 숲을 보며 떠올릴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두 명의 관리자를 집어삼키는 어두컴컴한 풍경.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검은 숲의 염소’가 당신들을 초대합니다.]두 명의 관리자를 집어삼킨 숲으로 함께 들어가며, 유원이 인사했다.
“어서 와라.”
쑤우욱-.
두 명의 관리자와 유원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일순간 나타났던 검은 숲은 그들 셋을 집어삼키는 순간, 곧바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남아 있는 건 한 명.
유원이 갈라놓은 앙상한 몸에 로브를 입은 관리자뿐이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군.”
이름 없는 안개와 검은 숲의 등장.
사라졌어야 할 이름들이 되돌아왔다.
‘당장이라도 돌아가야겠지만…….’
철그럭-.
관리자의 눈앞에 말을 타고 나타난 대장군.
하늘을 나는 천마(天馬)를 타고, 천계의 병사들과 함께 이랑진군이 관리자를 포위하고 있었다.
“……대답은 거절인가?”
관리자의 물음에 이랑진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이나마 흔들렸던 내 자신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팟-.
천마에 올라타 있던 이랑진군의 몸이 하늘 위로 뛰어오르며, 그의 손에 쥐어진 언월도가 푸른 선을 그렸다.
그렇게.
콰아앗-!
이랑진군의 언월도가, 관리자의 몸을 반으로 갈라냈다.
“목숨을 걸고 그대들과 싸우겠소.”
이랑진군의 가슴속, 꺼졌던 투기가 다시 타오르는 순간이었다.
* * *
그 시각.
천계대전의 경기장과 거리가 꽤 떨어진 곳에는, 무수히 많은 관중들이 모여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아수라와 츠쿠요미가 싸우고 있었는데…….”
“여긴 어디야?”
마치 경기를 보고 있던 것처럼, 그들은 큰 공터에 둘러앉아 있었다.
분명 익숙한 길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콜로세움처럼 거대한 경기장을 못 찾을 리 없었고, 좌석표를 확인하고 제대로 자리에 안착했다.
그런데 웬걸.
갑작스레 눈앞에 펼쳐져 있던 경기장의 풍경이 모두 사라졌다.
아수라와 츠쿠요미의 화끈한 싸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넓은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는 그들 중 일부는 천계대전을 직관하기 위해 큰돈을 들여 온 랭커였다.
“이게 뭐야! 우리 다 사기라도 당한 거야?”
“츠쿠요미는 어디 갔어! 우리 아름다운 츠쿠요미!”
“예선전도 다 사기였던 거 아니야, 이거?”
공터에 모여 있던 관중들이 분개했다.
이름 없는 안개가 사라지며 나타난 현실에 그들은 천계대전 자체가 처음부터 거짓이 아니었을까 의심할 정도였다.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멀리까지 와 많은 돈을 퍼부었으니 화가 나는 건 당연한 일.
그중, 한 관중이 본래 경기가 펼쳐졌어야 할 무대의 중앙으로 튀어나왔다.
“다 같이 천계로 갑시다! 따질 건 제대로 따져야-.”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 치던 남자의 시선이 조금씩 위로 을라갔다.
“따져야…….”
말끝이 흐려졌다.
하늘 위.
점처럼 작게 보였던 무언가 빠르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쐐애애액-!
그것은 이내, 경기장 중앙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으아아아악!”
그래도 나름 랭커 출신이었던 남자는 빠르게 몸을 날려 피해냈다.
그가 있던 자리엔, 자욱한 먼지가 하늘 위로 피어올랐다.
뿌연 연기 속, 땅 위로 떨어진 물체의 정체가 흔들려 보였다.
꿀꺽-.
제일 가까이서 그 정체를 확인한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 제, 제…… 제제…….”
서서히 연기가 걷히고.
화륵-.
붉게 타오르는 한쪽의 붉은 눈을 밝히며, 구름에 을라탄 손오공이 한 손에 축 늘어진 관리자의 멱살을 잡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제천대성?”
투구가 반쯤 깨진 채 정신을 잃 은 관리자.
그리고 손오공의 어깨에 올라타 바들바들 떨고 있는 꼬마 아이.
손오공은 한 손으로는 관리자의 멱살을 달달 흔들며, 다른 한 손으로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여기가 아닌가?”
* * *
어두컴컴한 숲속.
두 명의 관리자가 주위를 감싼 검은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정말 검은 숲이다.”
“그녀의 이름이 아직 남아 있었나?”
검은 숲을 다스리는 존재.
슈브 니구라스.
아우터 갓 안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그녀는, 아자토스로부터 검은 숲을 다스릴 힘을 지닌 이름을 부여받았다.
바로.
메에에에-.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라는 이름을.
“들었나?”
“그래. 이젠 놀랍지도 않다.”
방심 따위는 진즉에 버렸다.
이름 없는 안개가 나타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아우터와 싸울 마음가짐을 갖춘 상태였다.
저벅-.
발자국 소리.
팟-.
두 관리자들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검은 숲 한가운데, 수많은 눈과 발들이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왔군.”
“이름 없는 플레이어.”
검은 숲의 산양들에게 둘러싸인 양치기, 유원이 있었다.
“이름이 없다니. 엄연히 김유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산양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유원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 맞다. 이제 막 시작했지.”
메에에-.
유원의 말을 호응하듯 산양이 울부짖었다.
산양들의 숫자는 얼핏 세어도 수십.
아마 이 넓은 숲에는 지금 눈앞에 있는 산양들보다 훨씬 많은 숫자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이름은 아나? 김유원이라고.”
“김유원?”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관리자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지만 그들은 끝내 유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 반응에서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똑바로 이름을 듣고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관리자들 중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자는 없는 모양이었다.
‘이것까지 확인했으면 됐다.’
이제 더 이상 저들과 말을 섞을 필요는 없었다.
볼 일은 끝났다.
유원은 손짓으로 산양들을 움직였다.
메에에에-.
두 관리자의 주위를 감싸는 산양들.
유원의 신력을 잡아먹고 덩치를 불려 가는 산양들의 위압감에 관리자들은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드-.
불룩-.
본래의 모습을 보이는 두 관리자들.
녹색 비늘로 뒤덮인, 아귀를 닮은 관리자와 수십 개의 눈과 얇은 다리가 뻗은 거대한 구체로 이루어진 관리자.
그들은 몸집을 크게 부풀려 유원과 산양들을 내려다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네가 어떻게 그 이름들을 가지고 있는 거냐?] [너도 아우터에 속한 자인가?]
그들이 유원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하나.
그가 가지고 있는 ‘이름 없는 안개’와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유원이 가진 이름은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걸.
“다곤. 이호트.”
유원이 언급한 이름에 두 관리자들이 주춤거렸다.
다곤, 그리고 이호트.
그 이름은 17층과 21층의 관리자인 두 사람의 진짜 이름이었다.
[네가 어떻게-.] [우리 이름을?]당황하는 관리자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이 탑 안에, 자신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유원이 탑에 남아 있는 아우터의 잔재라고 생각했지만.
단순히 아우터 갓 중 하나만이라면 자신들의 이름을 알 리가 없었다.
“애초에 이너(Inner)와 아우터(Outer)의 구분을 왜 너희들이 결정하는 거지?”
이너(Inner)와 아우터(Outer).
그것은 오래전, 아우터와의 싸움이 장기화될 무렵부터 쓰여 온 단어였다.
당시 탑의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을 이너라 칭했다.
그 당시 이너라는 말은 아우터의 반대말 개념으로 사용되었고, 그 단어는 짧고 굵은 역사와 함께 탑은 아우터에 의해 멸망의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훨씬 먼저.
이너라는 말을 사용하던 존재들이 있었다.
“애초에 겁먹고 숨어든 주제에 탑의 주인을 자처하다니.”
스윽-.
메에에에-.
유원이 다가온 산양의 털을 쓰다듬으며 두 명의 관리자를 비웃었다.
“안 쪽팔리냐?”
탑의 주인은 자신들이라는 오만함에서부터 비롯된 이름.
이너(Inner).
그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 건, 관리자가 아닌 플레이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