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59
* * *
조금 전까지 유원은 관중석 구석에 앉아 가만히 싸움을 지켜보았다.
한 명의 관리자와 자신이 만든 팀이 싸우고 있었다.
츠쿠요미가 만든 삼신기의 힘은 놀랍게도 관리자의 마력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쉽게 갈 수도 있었겠군.’
이자나기.
삼신기가 결합된 이자나기의 성능은 유원조차 탐이 날 정도였다.
무려 관리자들의 전유물인 ‘마나의 주인’에 대적할 수 있는 아이템.
유원은 이 싸움이 생각보다 쉽게 끝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츠쿠요미가 눈을 감싸며 자리에 쓰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곤란한데.”
이제 사실상 남은 전력은 판도라뿐이었다.
물론 싸울 여력은 아직 남아 있다지만 문제는 마음이 꺾인 것.
저들은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
저 망할 관리자의 실체가, 사실 그리 대단할 게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어?”
판도라가 무식하게 관리자를 향해 돌진하는 게 보였다.
알고는 있었다.
저게 정답이라는 걸.
손 하나, 혹은 팔 하나쯤 날려 버리는 한이 있어도…….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저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유원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 * *
“그냥 보고 있으려 했는데 생각보다 그게 힘드네.”
“유원?”
판도라는 놀란 눈을 깜박이며 유원을 을려다보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목이 유원에게로 집중되었다.
아직까지 유원과 판도라의 관계를 모르는 이들은 판도라를 품에 안고 있는 유원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생각보다 훨씬 잘했어. 경험을 쌓으라고 했던 건데, 여기까지 몰아붙일 수 있을 줄이야.”
유원은 진심으로 대견했다.
검은 숲으로 셋이 아닌 둘을 데려갔던 건, 혼자 셋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앞으로 관리자와 싸울 일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이 있을 순 없었다.
몇 명이서 팀을 이루더라도 하이랭커들이 관리자를 상대할 수 있어야 했다.
천계대전에서 관리자와 싸울 팀을 만들고, 이 싸움에서 관리자 한 명을 남겨 놓은 건 그걸 위한 첫 걸음이었다.
그런데.
유원이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그들은 첫 번째 싸움을 훌륭하게 해냈다.
[왜 네가 혼자 돌아온 거지?]유원의 등장에 관리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사라진 두 명의 관리자들이.
그들은 어디로 가고 돌아온 건 유원뿐이었다.
[정말…… 그대가 검은 숲의 주인이었던 건가.]두 명의 관리자가 사라지기 직전 본 것은, 검은 숲이었다.
설마 아닐 거라 생각하며, 그저 닮기만 한 장소가 아닐까 했건만.
“야, 네가 먼저 나서는 게 어디 있어?”
쿵-.
그때.
경기장 위로 또 다른 존재감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구름을 타고, 관리자의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하얀 머리의 남자.
[……제천대성?]손오공의 얼굴을 확인한 관리자의 음성이 흔들렸다.
심지어 그의 손에는 25층의 관리자가 정신을 잃은 채 붙잡혀 있었다.
두 명의 관리자를 제치고 나타난 유원에 이어 다른 관리자를 제압한 손오공까지.
짧은 순간에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지켜보고만 있으라며?”
“그러려고 했지. 처음엔.”
“그대로 있었으면 저 자식, 끝장났을 건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손오공.
그는 유원과 그의 품에 안겨 있는 판도라를 번갈아보더니 놀리듯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너도 못 본 새 팔불출이 다 됐다?”
유원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손오공의 말에 판도라는 기분이 좋은지 실실 웃었다.
다른 상황도 아닌 전투 상황에서, 자신이 이런 불합리한 선택을 하게 될 줄이야.
관리자와의 싸움으로 다친 판도라를 바닥에 앉히며 유원은 그녀의 몸을 훑어보았다.
‘다쳤네.’
싸우면 다치는 건 당연했다.
그걸 염두에 두지 않고 그녀를 전장으로 끌어들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혹시.
정말 혹시나 하는 생각에 유원은 서둘러 두 명의 관리자를 제압하고 기척을 죽인 채 그녀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것도 꽤 많이.’
사실, 그렇게까지 많이 다친 건 아니었다.
바람에 긁히고 베어진 상처들.
바람 속성의 마력을 다루는 상대와 싸우면 으레 그렇듯, 표면의 상처는 많지만 그 깊이는 그리 깊지 않았다.
다행히도 치명적인 상처는 없어 보였다. 판도라의 육체가 단단한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많이 다친 것처럼 보였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쉬고 있어.”
“……이길 수 있어.”
“내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이겼을 거 알아. 그러니까 이긴 셈 쳐.”
유원은 벌떡 일어나려는 판도라의 이마를 짚어 그녀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싱글벙글 웃으며 근두운을 타고 유원의 옆으로 날아오는 손오공.
유원은 그의 손에 붙잡혀 있는 관리자를 보며 물었다.
“죽었냐?”
“숨통은 안 끊었어.”
“죽은 거 같은데.”
“오는 길에 몇 번 다시 깨어나더라고. 목숨 줄 한 번 더럽게 질겨.”
“그럼 다행이고.”
순간, 손오공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가위, 바위…….”
화륵-.
화안금정으로 유원의 눈을 들여다보며 손오공이 손바닥을 펼쳤다.
“보!”
가위와 보.
보자기를 낸 손오공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야, 이건 반칙 아니야? 가위바위보에 예지안을 쓰는 게 어디 있어?”
“스킬을 쓴 건 너나 나나 똑같잖아. 억지 부리지 말고 받아들여.”
손오공은 그 뒤로 한동안 바닥을 뒹굴었다.
제법 많이 싸우고 왔을 텐데도 녀석은 아직까지 굶주린 모양이었다.
하긴.
십 년 동안 제대로 된 싸움을 하지 못해, 아무리 싸워도 싸움이 고플 것이다.
[가위바위보로 나와 싸울 상대를 정한 거냐?]관리자는 자신의 앞으로 나서는 유원을 보며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둘이 함께 덤비는 게 아니라 혼자, 그것도 제천대성도 아닌 다른 녀석이 앞으로 나서다니.
유원은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위를 낸 자신의 손을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그래. 내가 이겼다.”
손오공은 확실히 바보였다.
다른 게임도 아니고 가위바위보라니.
화안금정을 믿고 한 것이겠지만 자신에겐 예지안이 있었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도 아니고 당장 다음에 손오공이 무엇을 낼지를 알아맞히는 정도야,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다른 둘은 어떻게 됐지?]“다곤이랑 이호트 말이냐?”
[그 이름을 어떻게?]당황하는 관리자.
관리자 외에 또 다른 누군가 관리자들의 이름을 알고 있을 리 없었다.
그 이름을 아는 건 극소수.
오래전, 탑에 뿌리를 내리고 존재해 온 고대의 관리자들과……..
[설마?]관리자가 아닌 또 다른 존재.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관리자, 하스터의 마력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래도 넌 눈치는 있네, 하스터.”
자신의 이름까지 알아맞히자 설마 하던 생각이 확신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것은 관리자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었다.
[말도 안 된다. 그는 분명-]“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잖아?”
쫘아아-!
화륵, 화르르-!
거대한 불꽃이 유원과 하스터의 주위를 감쌌다.
불꽃에 감싸여진 하스터가 주춤거리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보라색으로 변하는 불꽃.
그 속에, 거대한 눈동자 하나가 하스터를 들여다보았다.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 [죽음과 부패의 불꽃]불꽃의 거대함에 질식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하스터의 시선이 유원의 손에 쥐어진 검으로 향했다.
유원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신경 쓰이던 아이템.
마치 존재 자체만으로도 자신들을 부정하고, 위협하는 맹수의 이빨과 같은 그것.
“아, 이거?”
유원은 텅 빈 로브 속에 감춰진 하스터의 시선을 느꼈다.
“나도 생각 못했어. 그때는 저 밖에 있는 놈들과 싸우는 데 급급했으니까.”
이계검.
이 아이템은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낸 최고의 역작이었다.
미래의 헤파이스토스, 그가 자신의 망치를 희생해 만든 무기를, 현재의 헤파이스토스에게 전해 주어 가공한 아이템.
이 검은 아우터들의 천적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계검의 역할은 아우터와의 싸움에서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너희도 마찬가지더라고. 저 밖에서 온 건 말이야.”
[설마 당신, 진짜로-.]“지금은 아니야. 지금 내게 남은 건 기억뿐이니까. 하지만 웃기게도 너희는 아자토스만 기억하고 난 잊어버렸더라고.”
저벅, 저벅-.
유원은 천천히 하스터를 향해 다가갔다.
“뭐, 나로서는 잘된 일이지만.”
칙-.
하스터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이미 그는 싸울 의지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다.
하나 그럴 수 없었다.
화륵, 화르르-!
주위에서 매섭게 타오르는 불길.
닿는 순간 온몸이 까만 재가 되어 타 버릴 것만 같은 불꽃이었다.
차마 그 불꽃을 무시하고 움직일 수 없어, 하스터는 뒷걸음질을 치다 말고 고개를 돌려 유원을 바라보았다.
“웃기는 일이지. 관리자랍시고 신처럼 행세하면서, 너희가 불러 온 플레이어들에게 패배해 바닥에 끌려 내려오다니.”
화르륵-.
유원의 눈에 불꽃이 타올랐다.
화안금정에 비춰진 하스터의 안쪽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때문에 이랑진군도, 츠쿠요미도, 이예도, 하르간도.
실체가 없는 하스터를 상대로 점차 싸울 의욕을 잃어 갔다.
하지만 그들은 틀리지 않았다.
불꽃 속에서 펄럭이는 넝마가 된 하스터의 로브.
그것이야말로 녀석의 본체이며, 다곤이나 이호트처럼 변화된 진짜 모습이었다.
“너도 알지? 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넌 판도라에게 죽은 목숨이었던 거.”
유원은 판도라의 무모한 행동을 탓하지 않았다.
무작정 달려든 건지, 아니면 무언가를 눈치챘던 건지, 아니면 단순한 감이었던 건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행동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천계와 여러 하이랭커와의 싸움으로 인해 넝마가 된 로브.
하스터의 본체를 향해 그녀는 마지막 일격을 먹이려 시도했다.
그 결과는 아마 판도라의 손이나 팔이 날아가고, 하스터는 숨통이 끊어지는 것이겠지만.
유원은 그 모습을 차마 그냥 지켜볼 수가 없었다.
만약, 상대가 아수라처럼 포기를 모르는 미친놈이었다면 싸움은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넌…… 넌 대체 뭐냐?]하스터는 유원의 본질에 대해 물었다.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그는 유원이 아자토스가 절대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다.
아자토스.
그는 탑과 그 밖, 모든 세계를 아우르며 형태나 공간을 개의치 않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탑을 순식간에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존재.
관리자들이 두려워하던 슈브 니구라스나 요그 소토스, 니알라 토템과 같은 아우터 갓들마저 두려워했던 유일한 존재가 바로 아자토스였다.
하지만 지금의 유원에게서는 그런 아자토스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말했잖아. ‘지금은’ 아니라고.”
화륵, 화르르-!
불꽃은 점차 거리를 좁혀 왔다.
“예전에는 잠시 그가 됐었다. 기억도, 힘도, 이름도 가졌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힘이나 이름은 잃었어.”
하스터의 주위에 둘러진 바람이 유원의 몸을 빗겨 갔다.
“그래도 남은 이름은 있지.”
[이름……?]그러고 보니 이름을 듣지 못했다.
아자토스라는 거대한 이름에 가려져 있던 이름.
“김유원.”
그 세 글자에 관리자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