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62
* * *
우지끈-!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진 벽이 부서지며 아수라가 밖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비척비척 일어서다 그 자리, 그대로 축 처지는 아수라.
부서진 벽을 뚫고, 유원이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베였네, 이번엔.”
볼에서 흘러내리는 피 한 방울을 닦아 내며 유원이 아수라를 내려다보았다.
“질기긴 더럽게 질기네.”
이번이 열한 번째던가, 열두 번째던가.
아수라는 점점 유원과 싸우는 데 적응하고 있었다.
제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이번엔 작은 생채기까지 생겼다.
비슈누도 그랬다.
녀석과 백 번째로 싸웠을 때가 가장 어려웠다고.
“난장판이로군.”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랑진군이 유원에게 다가왔다.
“왜 또 싸우는 건가?”
“그러게 말입니다.”
“아수라가 계속 달려드는 것 같던데. 이 정도면 정당 방위 아닌가?”
“왜 안 죽이냐, 그걸 묻는 겁니까?”
“그래.”
아수라는 세력이 없다. 즉, 그를 죽이더라도 보복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원은 계속해서 달려드는 아수라를 죽이지 않고 살려 두고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언젠가 자신이 되레 당할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이러다 보면 정신 차릴 겁니다.”
“그쪽도 다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칼만 쓰느라.”
아수라는 유원에게 다양한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칼, 그다음에는 창, 그 다음에는 금강저와 단창, 심지어는 활까지.
무기술의 달인인 아수라에게 유원은 그에게 배운 검술로 응수했다.
차이는 꽤 컸다.
애초에 유원은 미래에서도 아수라보다 랭킹이 더 높았고,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강해져 있었다.
“그래도 너무 여기서 싸우지는 말아 주게. 건물을 보수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안 그래도 슬슬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 여기 머물 수는 없었다.
판도라의 부상이야 진즉에 나았고, 천계는 뒷수습을 마친 상태였다.
다음 목적지도 정해졌다.
손오공은 이미 지루하다며 천계를 떠난 후였다.
이제 유원도 슬슬 움직여야 할 차례였다.
그러기 전에.
“혹시.”
“응?”
“김유원이라는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그 질문만 벌써 네 번째군.”
유원은 이 질문을 관리자와의 싸움이 끝난 직후에 했었다.
당연하게도 이랑진군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그래도 혹시나 했다.
몇 번 더 물어보다 보면,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이가 없더군. 이상하리만치 이름은 익숙한 것 같다만.”
“……그렇습니까?”
적잖은 시간 동안 여기 머무른 이유가 바로 이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다.
과연 그는 유원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인가를 말이다.
‘손오공이나 헤라클레스처럼 아주 오랫동안 보거나. 바루나나 하스터처럼 죽을 정도로 몰아붙이거나…… 인가.’
평범한 상황에서는 자신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 며칠간의 시간은 꽤 의미가 있었다.
‘그럼 어쩐다…….’
유원의 시선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수라에게로 향했다.
‘이 녀석에게도 알려 줘야 하나.’
* * *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
아수라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자신과 같은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과 함께, 아수라는 의식 깊은 아래에서 유원과의 싸움을 복기했다.
『상대가 너무 강해.』
『벌써 열한 번이나 패했다.』
『아니. 열두 번째다.』
『그게 중요해?』
『그럼, 언제 우리가 그렇게 패배에 익숙해졌지?』
둘은 아수라의 머릿속에서 싸웠다.
그러던 중.
조금씩 의식이 깨어난 아수라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그럼?』
『녀석은 우리를 알고 있다.』
아수라는 유원과의 싸움을 복기했다.
처음에는 너무 빨리 끝나 어떻게 된 건지도 기억나질 않았다.
태상노군과의 싸움으로 지친 아수라는 유원의 손에 한순간에 제압당해 버렸다.
그다음도 비슷했다.
유원은 마치 아수라의 칼을 알고 있는 듯했다.
『확실히. 그 녀석이 쓰는 칼은 우리들과 비슷하다.』
『아니. 더 수준이 높아.』
『우리들의 칼보다 더 보완되어 있다. 우리들도 변화가 필요해.』
그들 셋은 매일같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 것인가.
무엇이 부족한 것인가.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모든 과정들을 거쳐, 그들은 ‘아수라’가 되었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었다.
『그 녀석은 아직 가진 걸 다 보인 게 아니야.』
『-맞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
아수라는 유원과의 싸움에서 벽을 느꼈다.
처음에는 넘어설 수 있으리라 여겼던 벽이었다.
안 된다고 해도 어떻게든 넘어설 거라 다짐했 다.
하지만 조금씩 그 벽에 더 가까이 다가설 때마다 벽은 더 크고 두터워졌다.
『그래서? 포기하자고?』
『설마.』
『‘우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질문이 이상하군.』
당연하게도 아수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포기할 거라면, 애초에 복수도 진즉에 포기했을 것이다.
진짜 벽은 그때 느꼈다.
『그럼, 어떡할 거지?』
『당연한 걸 묻는군.』
아수라들의 대답은 뻔했다.
『다음번에는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어야지.』
* * *
아수라는 눈을 떴다.
맑은 하늘, 빠르게 지나치는 바람이 코끝을 간질였다.
이렇게 기절했다 다시 일어나는 게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몸을 일으킨 아수라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번에 일어난 자리는 천계의 객실이 아니었다.
‘마차 위인가.’
태양 마차.
탑을 오르내릴 때 자주 사용되는 이동 수단이었다.
레플리카 버전의 태양 마차 사업은 올림포스의 배를 불리는 데 1등 공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일어났네?”
“일어났어.”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수라는 고개를 돌렸다.
유원과 판도라.
두 사람이 그를 내려다보며 난간에 앉아 있었다.
“또 덤빌 거냐?”
절그럭-.
유원은 옆에 놓아둔 칼집을 손에 쥐며 물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 허리춤에 있는 자신의 칼을 매만지던 아수라.
눈빛이 매섭게 타오르던 아수라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이내, 그는 살기와 투기를 거두며 대답했다.
“아무리 나라도 마차 위에서 싸울 생각은 없다.”
“하긴. 장소가 협소하긴 하지.”
“돈이 많나 보군.”
“그건 왜?”
“여긴 너희밖에 없다. 태양 마차 하나를 통째로 빌린 거겠지.”
칼에서 손을 떼니 처음으로 궁금증이 들었다.
“넌 대체 뭐지?”
대체 이자는 뭘까.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을 내려다보는 유원과 판도라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제압할 무력도 있었고, 태양 마차 하나쯤은 통째로 빌려도 아무렇지 않을 재력도 있었다.
이런 자가 대체 왜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단 말인가.
제아무리 세상사에 까막눈인 아수라라 해도 이상하다는 걸 못 느낄 수가 없었다.
“그 질문을 빨리도 하는군.”
“너무 늦었나?”
“다들 한 번씩은 했으니까.”
유원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잠에서 깨어난 아수라가 자신을 보고도 이렇게 잠잠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열두 번.
아수라가 유원에게 패해 쓰러진 횟수였다.
“이제 열두 번째다.”
아수라가 깨어난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태양 마차의 방 안으로 향했다.
“백 번째가 되면, 알지?”
“그게 뭐?”
“그 전에 한 번이라도 이기면 알려 주마.”
빠직-.
아수라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신경을 자극하는 말에 아수라의 눈빛이 다시 붉게 타올랐다.
“제대로 할 생각은 있고?”
“글쎄다.”
어깨를 으쓱이며, 유원은 태양 마차 안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혹시라도 아수라가 깨어나 태양 마차 위에서 날뛰면 어쩌나 해서 기다리고 있었을 뿐.
똑같이 쉴 거면 바람 부는 난간보다는 안쪽의 방 안이 훨씬 쉬기는 나았다.
그렇게 유원과 판도라가 자리를 벗어난 직후.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아수라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 * *
‘이상한데.’
태양 마차의 안쪽에 위치한 작은 방 안.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운 유원은 아수라와의 대화를 떠을렸다.
짧은 대화였지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과 대화를 하는 느낌 말이다.
‘아수라들 중 남은 건 하나뿐이다. 분명 그랬을 건데…….’
아수라는 세 명의 머리 중 인드라와의 싸움에서 하나를.
그리고 아우터와의 싸움에서 남은 하나를 잃었다.
그렇게 세 명의 아수라들 중 살아남은 건 한 명뿐.
분명 그랬어야만 했다.
그런데.
‘나사가 하나 빠진 건가?’
아수라는 꼭, 세 사람처럼 행동했다.
불안했다.
물론, 평소에도 아수라는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드라에게 가족과도 같던 사람들을 모두 잃고 난 후, 녀석은 싸움과 피에 미친 자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짝 더 삐뚤어졌다니.
쿵-.
그때, 태양 마차가 땅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이틀가량의 이동.
유원은 누워 있던 자리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도착했나 보군.’
엉덩이를 떼지 않고 자리에 앉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판도라는 난간에 바람을 쐬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한동안 돌아오지 않아 의아해하고 있던 중.
“설마.”
한 가지 짚이는 게 있어, 유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쉬이이이-!
아수라의 신형이 나무들 사이를 가르며 지나갔다.
태양 마차가 땅에 도착한 직후.
아수라는 난간에 서서 바람을 쐬고 있던 판도라를 잡아, 그대로 있는 힘껏 뛰기 시작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판도라.
그녀는 자신을 한 팔로 들고 옆구리에 끼고 있는 아수라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디 가?”
“어디든 가는 중이다.”
“왜?”
“네 옆에 있던 놈을 자극할 생각이니까.”
아수라의 대답에 판도라는 눈을 몇 번 깜박이며 물었다.
“나로?”
“그래. 너로.”
“죽이려고?”
“난 나랑 싸울 상대가 아니면 안 죽인다.”
아수라는 싸움광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죽이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대, 혹은 강한 상대와의 싸움을 곧잘 즐겼다.
그리고 지금.
아수라의 관심은 온통 유원에게 꽂혀 있었다.
“물론, 반항하면 죽일 수도 있고.”
“왜 나야?”
“그 녀석이 아끼는 게 너밖에 없는 것 같더군.”
“아끼는 거…….”
아수라의 손에 붙잡혀 대롱거리던 판도라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유원이 유일하게 아끼는 게 자신뿐이라는 그 말이 퍽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좋아. 할게.”
“한다고?”
“응. 내가 할게, 그거.”
그거란 ‘아끼는 거’를 말하는 것이었으나 아수라에게는 의미가 조금 다르게 들렸다.
‘인질을 자처하겠다는 건가.’
이상하긴 해도 아수라의 입장에서는 그리 나쁠 것 없는 태도였다.
어쨌거나 아수라도 판도라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렸다.
만약 그녀가 작정하고 저항한다면 쉽게 유원에게 따라잡힐 것이다.
‘인질을 해 주겠다면 나쁠 건 없다. 그 녀석의 유일한 약점이 여기 있는 이상, 이번에는 화를 내겠지.’
분노.
그것이야말로 유원의 진심을 이끌어 내기 가장 알맞은 양념이었다.
이번에야말로 그의 진심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진심이 된 유원의 목을, 자신의 칼로 베어 낼 것이다.
그렇게 아수라가 다짐하는 순간.
“재밌겠다…….”
정작 그 ‘인질’이 된 판도라는 놀이라도 하듯,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