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63
신과 함께 레벨업 외전 37화
* * *
판도라가 사라진 난간 위.
그녀와 함께 아수라의 기척이 사라진 걸 눈치챈 유원은 금방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게 그렇게 약 올랐나…….”
상대는 아수라였다.
자존심 강하기로는 손오공과 쌍벽을 이루는 녀석.
아수라는 자신과 싸우는 상대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걸 용납할 녀석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판도라를 데려간 건 유원의 진심을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팟-.
유원은 아수라와 판도라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길.
다행히도 전투의 흔적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괜히 저항하거나 하진 않은 것 같고…….”
판도라도 만만치 않았다.
제아무리 상대가 아수라라 해도, 그녀를 순식간에 제압할 순 없었다.
그렇다는 건 하나.
그녀는 순순히 아수라를 따라갔다는 뜻이었다.
“하아-.”
절로 나오는 한숨.
저항하지 않고 따라간 건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괜히 싸웠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도저히 화를 다스릴 자신이 없었다.
‘그 녀석 성격은 알겠다만…….’
꾸욱-.
아수라가 지나간 길을 빠르게 달리며, 유원은 눈으로 욕을 했다.
‘이번엔 선을 좀 넘었어.’
* * *
38층의 세계는 온통 나무로 뒤덮여져 있었다.
아수라는 태양 마차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싸움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달리던 중.
아수라는 나무들이 온통 베어져 있는 넓은 공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군.”
발을 멈춘 아수라는 판도라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혈도를 짚어 움직임을 봉인한 후, 그녀를 바닥에 앉혔다.
“꼼짝 말고 있어라.”
무어라 말을 하려던 판도라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자신의 입에 깜짝 놀랐다.
아수라를 노려보는 판도라.
저항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듯, 아수라는 이미 칼을 뽑고 서 있었다.
그러던 중.
“재밌는 구경거리로군.”
쿵-.
공터의 가장자리.
나무 하나가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아수라는 또 다른 인기척을 눈치챘다.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한 숲속.
아수라는 온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존재감에 고개를 돌렸다.
“……헤라클레스?”
거리가 제법 있었으나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거인족이 아니고서야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거구.
어깨에 짊어진 큼지막한 도끼와 머리에 쓴 사자의 탈.
절로 감탄을 자아내는 오밀조밀하고 탄탄한 근육질의 몸.
그를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잊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아수라 역시 헤라클레스와 함께 전장에 선 적이 있으니 마찬가지였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여긴 내 집이다.”
“네 집?”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있다. 천 년도 전부터 난 여기에 터를 잡고 있었지.”
38층은 버려진 세계였다.
9할이 숲으로 뒤덮이고 남은 1할은 사막으로 변해 버린 황무지.
이 세계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이런 세계에 딱 하나, 장점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나무가 많다는 것뿐.
그렇기에 38층에는 벌목꾼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곤봉이 아닌 도끼라…….’
헤라클레스의 곤봉은 이그드라실로 만들어졌다.
그것을 쥔 헤라클레스의 힘은 몇 배로 강해져, 아버지인 제우스나 손오공, 비슈누가 아니면 상대가 없다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곤봉이 아닌 도끼라니.
한 눈에 봐도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천하의 헤라클레스가 벌목꾼 따위나 하고 있었던 건가.”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법이지.”
“저리 비켜 있어라.”
“아까 말하지 않았나? 여긴 내 집이라고.”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헤라클레스의 말대로라면 불청객은 아수라였다.
자리를 비키려 거든 그건 자신이어야 이치에 맞는다.
말로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보통 이럴 때 아수라가 하는 행동은 하나.
무력 행사였다.
하지만.
‘곧 김유훈이 온다. 거기에 헤라클레스라…….’
당장 유원을 상대하는 것만도 벅찬 아수라로서는 그를 적으로 돌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겉으로는 나무를 캐는 덩치 좋은 벌목꾼이었지만, 헤라클레스의 랭킹은 2위.
그는 이 넓은 탑에서 두 번째로 강인한 사나이였다.
“지켜보기만 할 거냐?”
“일단은.”
“일단?”
“네가 데리고 온 그쪽 말이야.”
온화하던 헤라클레스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내 친구거든.”
“…….”
살기가 띤 눈빛.
표정만으로 상대에게 압도되는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자신의 목표였던 인드라와의 싸움에서도 이런 위압감을 느껴 보지는 않았다.
‘강하다.’
어지간하면 싸워 보기도 전에 상대를 인정하지는 않건만.
‘나보다도 더.’
이번에는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쏴아아-.
그때,나무가 우거진 숲 너머에서 살벌한 기운이 쏟아졌다.
뀌이이익-!
푸더더덕-.
산짐승들이 뛰쳐 나오고, 새들이 하늘로 비상했다.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유원의 존재감에 아수라는 칼을 그러쥐었다.
“오는군.”
잘그락-.
지금까지는 자신의 칼을 훤히 읽어 내는 유원에게 말려, 쉽게 패배했다.
하지만 바로 지난번의 싸움에서 아수라는 이길 수 있는 길을 엿보았다.
유원의 볼을 베었을 때.
열 번이 넘는 패배로, 아수라는 드디어 유원의 검을 파훼할 방법을 찾아낸 상태였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그 다짐이 끝남과 동시에.
쿠르르르-.
하늘 위에 먹구름이 드리우며, 환한 대낮에 밤이 찾아왔다.
치지, 치지지-.
저 멀리 다가오는 유원의 몸에서 황금색 전격이 흘러나왔다.
“여기서 보네, 친구.”
아수라의 뒤에서 헤라클레스가 유원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런 헤라클레스의 반응에 아수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 다.
‘친구?’
처음 헤라클레스가 판도라를 친구라 말했을 때에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별다른 활동은커녕, 어디 사는지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판도라와 헤라클레스가 친분이 있다니.
그런데 더 이상한 건 바로 눈앞에 있는 저 녀석.
김유훈이라는 놈이었다.
‘제천대성과도 친분이 있었다. 판도라와도. 그리고 지금은 헤라클레스와도…….’
치지, 치지지-.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며 유원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이 저릿하게 다가왔다.
이 느낌은 낯설지 않았다.
마치 숲에 퍼져 있는 모든 마력들이 그를 따르는 것만 같았다.
유원의 주위에 있는 마력은 마치 그의 환심을 사 보이려는 듯 스스로 증폭되고, 파생하여 충성을 증명하고 있었다.
‘태상노군.’
녀석은 저 힘에 도취되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잃어버렸다.
하나 유원은 달랐다.
지난 열 번의 패배로 아수라는 그가 누구보다도 뛰어난 검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넌 대체 뭐지?”
바로 며칠 전, 태양 마차 위에서 했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설령 같은 질문이라도 아수라는 또다시 묻고 싶었다.
넌 대체 뭐냐고.
“어지간히 화난 모양인데…….”
헤라클레스는 난감하다는 듯 아수라를 돌아보았다.
뚱한 표정으로 점혈된 판도라를 보니 유원이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는지는 알 만했다.
“지금이라도 싹싹 비는 게 좋아. 그럼 아마 하나 남은 머리는 부지할 수 있을 테니.”
“충고 고맙군.”
대답은 그리하긴 했지만.
“……말이 안 통하는군.”
헤라클레스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수라의 입가에 걸려 있는 웃음.
저 광기에 찬 웃음을 보면 아수라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어먹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긴.
아마도 아수라는 유원의 이런 반응을 훨씬 반길 것이다.
애초에 그에게 피와 죽음 같은 것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닐 테니까.
“뭐…….”
칼을 쥔 채 유원을 향해 다가가는 아수라의 뒷모습을 보며, 헤라클레스는 팔짱을 낀 채 이후에 벌어질 재미있는 상황을 관전했다.
‘덕분에 오공이 녀석이 겪었다는 걸 눈으로 볼 수 있겠군.’
* * *
『기회는 한 번이다.』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목소리가 울렸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지 벌써 몇 번이나 경고하고, 또 경고하는 목소리에 아수라는 속으로 대답했다.
『나도 알아.』
잔소리 좀 그만 하라는 말이었지만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저 녀석의 검은 ‘우리’를 닮았어.』
『첫 수에 심장을 꿰뚫어라. 다시 일어날 수 없도록.』
『명심해. 우리는 저 녀석보다 약하다. 화가 난 지금은 더 그렇지. 하지만 이길 수 있는 기회는 있어.』
빠직, 빠직-.
짜증에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알고 있다.
자신은 저 눈앞에 있는 녀석보다 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아수라는 패배자로 남아 있을 생각은 없었다.
설령 자신이 상대보다 약하다 하더라도 이겨 낼 것이다.
“나는 아수라다.”
아수라의 팔이 여섯 개로 나누어졌다.
두 자루의 단창과 금강저, 칼까지.
총 여섯 개의 무기를 교차시켰다.
눈을 감은 채, 표정이 없는 두 개의 머리와 함께.
그는 유원을 향해 경공을 펼쳐 날아갔다.
“차라리 자는 틈을 노리지 그랬냐.”
차분한 눈빛과 목소리.
유원의 손에 쥐어진 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건 용서해 줄 수 있었는데.”
스으으-.
역시나 칼끝이 익숙한 궤적을 그리며 움직인다.
이 한순간을 제대로 보기 위해, 아수라는 열두 번의 패배와 수백 번이 넘는 복기를 거쳤다.
『지금이다.』
세 명의 아수라가 함께 움직였다.
여섯 자루의 무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과 같은 잔영이 펼쳐지며, 길게 뻗어진 창 한 자루가 만들어졌다.
[육결파천예(大結破天例)]오래전.
무림계(武林界)에서 얻은 비급을 통해 배우고 익힌 무예.
정파의 창을 익힌 그는 이내 마교에 투신하여 자신만의 창을 완성해 냈다.
고대의 랭커인지, 아니면 무림계가 그 기틀을 다지기 전인지, 아니면 탑의 바깥에서 넘어온 비급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그것을 배우고 익힌 아수라가, 자신의 절초로 삼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은 그 기예.
기이이잉-.
붉은 기운을 머금으며 발현된 창끝의 마력이 복잡한 기류를 만들어 내며 빠르게 회전했다.
한 자루로 합쳐진 창, 갑작스럽게 늘어난 거리.
휘둘러지던 유원의 칼보다 먼저, 아수라의 육결파천예가 유원의 가슴에 가까워졌다.
‘성공이다.’
육결파천예는 아수라의 기술 중 가장 관통력이 높고, 파괴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순간이었다.
옷과 살가죽 속에 가려진 심장이 꿰뚫리는 건.
그렇게 펼쳐진 초식이, 유원의 가슴을 찌르려던 순간.
“결국 생각해 낸 게 육결파천예인가.”
스팟-.
“……!”
유원이 몸을 비틀자, 아수라가 쏘아 낸 육결파천예는 무의미하게 허공을 관통했다.
콰아아아아-!
우지끈, 콰드드-.
창끝에서 쏘아진 마력이 일직선상에 위치한 나무들을 쓰러뜨렸다.
하늘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면 녹색의 바탕 위에 하나의 붉은 선이 그려지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그걸 피했어?’
좌아아아-!
아수라의 가슴을 가르는 검.
순간, 아수라는 자신의 지척까지 다가와 칼을 휘두른 유원과 눈을 마주쳤다.
‘화안금정?’
적안(赤眼)과 금안(金眼)으로 이루어진 오드아이.
저 눈을 상징하는 스킬은 오직, 제천대성만이 가지고 있다 알려진 화안금정뿐이었다.
그런데 어찌.
저 녀석에게 저 눈이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꾸득-.
부풀어 오르는 유원의 팔뚝.
거인 학살자의 상징이자, 헤라클레스를 대표하는 스킬인 거인화가 유원의 손에서 펼쳐졌다.
콰앙-!
“꺽…….”
안면을 강타하는 묵직한 주먹에 아수라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으로 열세 번째다.”
평소와는 달리, 싸움이 끝났음에도 유원의 기세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남은 여든일곱 번.”
서서히 희미해지는 의식 속.
“여기서 다 끝내자.”
사형선고와도 같은 그 말에, 아수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