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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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던 아수라는 어느 순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유원은 녀석이 다른 마음을 먹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녀석은 자신과의 내기에서 패배했으니 말이다.
“나한테 지면 내 허락 없이 함부로 살생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백 번 정도는 도전을 받아 줄 테니까.”
자존심이라면 손오공 저리가라 할 녀석이 바로 아수라였다.
유원이 아는 아수라는 약속의 대가가 자신의 목숨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내놓는 녀석이었다.
그러니 아마,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사라진 건 의외군. 내 허락 없이 살생할 수 없으니, 당분간 동행하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자취를 감춘 아수라가 어디로 갔을지는 짐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목적지 정도는 짐작되는 곳이 있었다.
‘수행인가.’
녀석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마음이 꺾여 도전을 포기했다.
그것은 곧 최종적인 패배였으나, 녀석은 수라도(修羅道)를 걷는 자.
배우고 강해지는 데 있어 끝이 없는 녀석이니 이 싸움에서도 깨닫는 게 있었을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츠츠츠츠-.
갈라지는 하늘.
새벽 공기를 마시러 밖에 나온 것인데,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이하게 됐다.
“소식 한 번 빠르군.”
새벽녘의 어두운 하늘을 가르며 새하얀 빛무리가 아래로 쏟아졌다.
태양 마차를 타고 나타난 올림포스의 랭커들.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나타난, 전쟁과 지혜의 권좌에 앉은 전사.
아테나.
유원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를 보러 온 건가? 아니면 나를?’
그녀의 목적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대동한 랭커들의 숫자를 보면 딱히 싸우거나 할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딱히 적의도 없어 보이고 말이지.’
다만.
유원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적잖은 의구심을 느꼈다.
‘아무것도 모르고 온 건 아닌 것 같고.’
쿵, 쿵-.
뒤쪽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발소 리.
헤라클레스와 함께 그의 옆으로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판도라가 보였다.
“이렇게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 것도 처음이군.”
“졸려…….”
선 채로 꾸벅꾸벅 졸던 판도라가 유원의 품에 기댔다.
기댈 곳이 생겨 편해졌는지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이 시끄러운 와중에 말이다.
헤라클레스는 뻐근한 몸을 풀며 고개를 들어 아테나를 바라보았다.
“내려오십시오, 누이.”
헤라클레스의 말에 유원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놀란 표정을 짓는 유원을 보며, 헤라클레스가 물었다.
“왜?”
“맞다. 누나였지.”
“그걸 이제 알았나?”
“아니. 원래 알고 있었다. 액면가 때문에 잠깐 까먹은 거지.”
구겨지는 표정.
헤라클레스도 알고 있었다.
아프로디테나 아테나를 비롯한 다른 형제들에 비해 자신의 얼굴이 늙어 보인다는 걸 말이다.
친한 듯 보이는 두 사람.
아테나는 잠시 그들 두 사람을 내려다보다 타고 있던 말의 고삐를 쥐어 아래로 내려왔다.
“찾는 데 애 좀 먹었다.”
아테나는 주위의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빼곡히 들어선 나무로 가득 찬 38층의 세계.
그곳에서 헤라클레스를 찾기란 모래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어려웠다.
피곤한 안색은 아마 그 때문일 터.
“여기까진 왜 오신 겁니까?”
헤라클레스의 시선이 아테나의 뒤쪽에 도열한 랭커들에게로 향했다.
“저리 무장한 여인들까지 끌고.”
아테나의 수족들.
그들은 올림포스 내에서 아스가르드의 발키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전사들로 구성된 무력 집단.
비록 숫자는 적을지라도 그들이 움직였다는 사실은 꽤 중한 일이라는 걸 뜻했다.
“저들 때문인가 보구나. 네가 이리 경계를 하는 이유가.”
“누이 혼자만 오셨으면 반겼을 겁니다. 알다시피, 제가 올림포스에서 워낙 내놓은 자식이다 보니.”
“걱정 말거라. 너와 싸울 생각이었으면 저 녀석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직접 오셨을 테니.”
“오시면.”
치지-.
헤라클레스의 눈매에 황금색 기운이 깃들었다.
“오시면요?”
제우스.
그 이름에 유독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헤라클레스였다.
그리고 그런 헤라클레스의 살기에 아테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 했다.
“……아직도 화해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화해가 아니라 용서하는 중입니다. 노력하는 중이니, 재촉하지 마시고요.”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알크메네.
그는 오래전 제우스의 계략에 목숨을 잃어버렸다.
비록 그 이유가 헤라클레스라는 완성체를 만들어 내기 위함이라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관여된 이상 그는 제우스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화해가 아닌 용서.
그마저도 노력해야 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게 바로 제우스와 헤라클레스였다.
“그래. 이해하마. 대신할 수만 있다면 사과도 하고.”
“직접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아테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렇게 귀를 의심하기는 얼마만이던가.
그만큼 헤라클레스의 말은 믿기가 어려웠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우스.
그가 제 아들에게 사과 같은 걸 하다니.
“안 그랬으면, 제가 어디 올림포스에 붙어 있기나 했겠습니까?”
“하긴. 그렇겠구나.”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누이께서 이 구석까지 웬일이십니까?”
“웃으면서 말하기는 글렀네.”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는 아테나.
손님 대접은 아니어도 조금은 반겨 줄 줄 알았건만 첫 만남부터 틀어지고 말았다.
혼자 오지 않은 것과, 괜히 제우스의 이름을 들먹인 게 실수였던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아버지께서 부르신다.”
지금부터 나을 말은, 헤라클레스를 더 크게 자극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자도 함께.”
아테나가 자신과 함께 유원을 가리키자, 헤라클레스의 흥분은 더 커져 갔다.
치지, 치지지-.
“이 친구는 왜 말입니까?”
“친구?”
단순한 호칭처럼 느껴지지는 않 았다.
방금 전, 유원과 나눈 대화만 해도 그랬다.
친구라고는 없이 산속에서 나무를 해 오던 헤라클레스가, 그를 너무나도 편안한 사람처럼 대했다.
더군다나.
“진정하거라.”
치지, 치지지-.
쿠르르르-.
그를 찾는다는 한 마디에 이리 흥분하는 모습이라니.
“그럴 수 없겠습니다. 전 오늘부로 나무꾼이 아니라 전사거든요.”
“오늘부로?”
유원에게로 옮겨지는 시선.
그 시선에 유원은 이마를 탁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뭐,숨겨 주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자신을 찾는 아테나와 제우스의 반응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고마웠다.
그만큼 자신을 생각해 주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방금 전 헤라클레스의 말은, 유원으로 인해 그만큼 영향을 받았다는 걸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럴 필요 없다.”
유원은 손을 뻗어 자신과 아테나의 사이를 가로막고 서 있는 헤라클레스의 어깨를 짚었다.
“어차피 가려고 했어.”
“어딜?”
“올림포스에.”
헤라클레스를 찾아온 건 비단, 그의 힘을 빌리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제우스 그 녀석 얼굴 좀 봐야지.”
올림포스 내에서 제우스 다음으로 입지가 높은 헤라클레스.
아무래도 하르간보다는 헤라클레스와 함께 올림포스에 입성하는 게 자신의 발언권을 높이는 데에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제우스? 그 녀석?”
아테나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유원의 입에서 언급된 단어들이 귀에 거슬렸다.
이 세계의 왕이나 다름없는 자신들의 아버지.
제우스를 함부로 말하는 걸 그냥 넘긴다면, 그건 더 이상 아테나가 아니었다.
“말을 조금 함부로 하는구나.”
아테나의 지적에 유원은 그녀의 눈을 노려보았다.
“넌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러지?”
“글쎄. 이름을 별로 들어 보지 못해서.”
“그건 이제 많이 듣게 될 거고.”
가늘게 좁혀진 눈으로 유원을 노려보는 아테나.
유원은 그런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다 물었다.
“의심 많기는 아버지나 딸이나 마찬가지군.”
“뭘 말이냐?”
“됐다. 입 아프게 말을 길게 해서 뭐 할까. 근데…….”
뚜둑-.
손가락 마디를 풀며 인벤토리 속에 손을 넣는다.
“어차피 가긴 가는데, 태도는 좀 달라져야겠거든.”
그런 유원의 반응에 맞춰, 아테나 역시 아이기스를 꺼내 들었다.
“그건 이쪽에서 할 말이 아닌가 싶군.”
그와 함께 아테나는 헤라클레스를 돌아보았다.
이 싸움에는 다른 누구보다도 그의 허락이 먼저 필요했다.
제아무리 올림포스 내에서 삼신의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테나라 해도 헤라클레스의 앞에서 함부로 무기를 꺼내 들 순 없었다.
그는,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절대자였으니까.
“마음대로 하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는 헤라클레스.
이내 아테나가 주위의 전사들을 물리고 유원과 대치를 시작하자,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 * *
유원과 대치하고 선 아테나.
그녀는 자신의 장기인 아이기스의 방패를 위로 들어 을렸다.
‘정말 이자인가. 김유훈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대단할 건 없어 보였다.
역시나 직접 보아도 떠오르는 얼굴은 없었다.
이전까지의 행적을 살펴보아도 마땅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테나는 눈앞에 있는 사내의 소식을 듣고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랭킹 외의 랭커. 아니, 랭커조차 아닐지도 모른다.’
랭킹이라는 게 존재하는 탑에서 이처럼 신비에 감싸여진 상대는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제우스는 더더욱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소문이 돌더구나.”
처음 하르간에게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단지 비상한 녀석이겠구나 싶었다.
천계대전에 관리자들이 나타날 거라고. 그래서 제우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 위에, 벼락을 떨어뜨려 달라고.
제우스는 그런 무모함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랭커란 비범하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존재였지만, 제우스는 그런 랭커들을 발에 채일 만큼 무수히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그 어떤 랭커도 감히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제우스는 그를 더 알고자 했다.
그런데.
“그가 하위층계긴 해도 관리자들을 쓰러뜨렸다고. 웃기지 않으냐. 랭킹에서도 찾을 수 없는 녀석이 말이야.”
처음 생각과는 달리, 옥석에 불과해 보였던 녀석은 이미 완성된 별이나 다름없었다.
관리자를 쓰러뜨렸다.
그것도 무려 셋이나.
하르간의 목격담까지 있었지만 제우스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게 아니고서는 그걸 믿지 않았다.
“관리자인지, 아니면 아우터일지. 그도 아니면 관리국에서도 찾지 못한 랭커 중 한 명일지…… 아니면 모든 게 다 헛소문일지.”
녀석의 정체를 알아야겠다.
그래서 제우스는 아테나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김유훈이라는 녀석을 찾아라. 하르간의 말대로라면, 녀석의 다음 목적지는 38층일 거다.”
“가서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여기로 데려 와.”
직접 김유훈을 보겠다.
아테나는 도통 제우스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손님으로 말입니까? 아니면…….”
“방법이나 대우는 상관없다. 네 판단에 맡기지.”
그리고 꼭.
제우스는 마지막에 가서야 자신의 진짜 본심을 드러내곤 했다.
“소문이 진짜인지 알아볼 수 있으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