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66
* * *
유원은 손에 검을 쥐었다.
검을 쥐고 그냥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건가?’
미동이 없는 상대를 보며, 아테나는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어디 한 번 베어 봐라 하고 도발하는 듯했다.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자신이 있다면 있는 대로 좋다.’
어차피 이 싸움은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상대에 대한 확인.
그것이야말로 이 싸움의 진짜 목적이었다.
‘그럼 어디…….’
파앗-.
자신이 있다는데, 봐 줄 필요는 없었다.
‘확인해 볼까.’
콰아앗-!
아테나의 검이 유원의 몸을 반으로 베어 냈다.
시야에 보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손끝에 감각이 없었다.
츠-.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모습.
칼에 베어진 유원의 모습이 아이기스에 비춰져 보였다.
어느새 자신의 뒤로 돌아온 유원의 속도에 아테나가 눈을 빛냈다.
‘빠르다.’
뒤를 잡혔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상대의 실력에 한계를 두고 있지 않았으니, 놀랄 건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아테나의 진정한 힘은, 검 따위가 아니었다.
‘빠른 건 문제가 되지 않아.’
그녀가 진짜 강한 이유는 바로.
기이이잉-.
[‘아이기스의 방패’가 시동됩니다.] [대상의 ‘둔화’를 시작합니다.] [대상의 ‘석화’를 시작합니다.]둔화와 석화.
그것은 아이기스에 내장되어 있는 능력이었다.
아이기스.
탑 최고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낸 역작 중 하나.
한 번 부서진 이후, 아테나는 헤파이스토스에게 아이기스를 좀 더 강화해 달라 부탁했다.
아이기스는 ‘메두사’라는 괴물의 머리를 이용해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낸 시동형 아이템이었다.
그 힘은 어지간한 하이랭커의 몸마저도 돌로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무엇보다.
‘이건 피할 수 없을 거다.’
아이기스의 힘이 미치는 범위는 아이기스에 비춰진 범위 내의 전부였다.
지이이잉-!
아이기스의 영향력이 전장의 모든 범위를 휩쓸었다.
쩍, 쩌저저-!
돌로 굳어지는 풀과 나무들.
멀리 떨어져 있던 아테나의 수족들마저도 그 힘에 휘말려 몸이 주춤 굳어졌다.
‘아테나 님께서 아이기스를?’
‘이 정도 위력이면 완전 시동이다.’
‘그만큼 상대가 위험하다고 판단하신 건가.’
그들은 아테나가 처음 랭커가 되었을 때부터 그녀의 옆을 보필해 온 수족들이었다.
아이기스는 적아를 가리지 않는 방패.
아테나는 어지간한 일에는 아이템의 힘을 빌리려 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지론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테나는 지난 전쟁 이후 처음으로 아이기스를 시동시켰다.
그렇다는 건.
까드드-.
이 싸움에서 아테나는, 올림포스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겼군.”
“저 정도 거리에서 아이기스의 석화에 맞았으면…….”
몇 년 정도는 굳어져 있을지도 모르겠어.”
잿빛으로 굳어진 유원의 모습.
승리를 확신한 올림포스의 전사들은 곧 긴장을 풀어 버렸다.
한 번 아이기스에 의해 돌이 된 사람이 자력으로 원래대로 돌아온 사례는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쩍-.
분명 돌이 됐을 유원의 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설마?’
아차 싶은 순간, 아테나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서둘러 돌이 되어 굳어져 있는 유원의 가슴을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혹시라도 석화가 풀려나고 있는 것이라면, 풀려나기 전에 결정타를 넣어야 한다는 본능적인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콰드득-!
쩡-!
“……!”
순식간에 석화를 깨뜨린 유원의 검이, 아테나의 검을 튕겨 냈다.
저릿, 저릿-.
검과 검의 힘 대결에서 밀렸다.
경솔했다.
아직 몸이 굳어져 있다고 생각해, 검을 쥔 손에 힘을 제대로 주지 않은 자신의 실수였다.
아니.
그런 걸 다 제쳐 놓고 생각하더라도.
‘스탯이 나보다 높다.’
꽈악-.
튕겨져 나간 검을 다시 꽉 잡고, 아테나는 유원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아이기스를 통한 방어를, 검을 통한 공격을.
공수의 밸런스야말로 아테나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콰앗, 콰괏-.
부우웅-.
있는 힘껏 휘두른 검은 매번 허공을 갈랐다.
애먼 나무를 베어 내던 아테나는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방어를 굳히고 있던 아이기스를 들어 올렸다.
“흐읍-!”
그녀의 팔뚝에 핏줄이 솟으며 아이기스에 마력이 깃들었다.
심상치 않은 양의 마력.
싸움을 지켜보던 헤라클레스는 설마 싶은 생각에 눈을 크게 키웠다.
“누이? 설마…….”
헤라클레스가 설마 하는 그 잠깐 사이.
그녀는 더 이상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 방패를 있는 힘껏 땅에 내리찍었다.
구우우웅-!
쩌어어어-!
땅이 움푹 내려앉았다.
아이기스로 인한 충격은 땅을 뒤집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헤라클레스의 집까지 집어삼켜 버렸다.
졸지에 땅바닥에 나앉게 된 헤라클레스가 위로 높게 뛰어오르며 비명을 지르는 사이.
아테나는 아이기스에 비춰진 유원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마지막 시동을 읊었다.
“내 부름에 답하거라-.”
사아아아-.
전장 가득 퍼지는 뱀의 울음소리.
땀을 흠뻑 흘리며 아테나는 아이기스에 깃든 괴물의 봉인을 풀어냈다.
“메두사.”
[‘아이기스의 방패’가 시동됩니다.] [‘메두사’가 당신의 부름에 답합니다.]쫘아아아-!
아이기스에 나타난 뱀 머리의 문양.
그 문양을 통해 밖으로 쏟아져 나온, 수백 마리에 달하는 뱀들.
“메두사다-!”
“모두 눈 감아!”
그 괴물의 머리카락이 등장하자, 아테나의 전사들은 모두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돌렸다.
자칫 저 뱀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치거나 이빨에 물리게 되면 영영 석화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면 후회할 건 없겠네.”
유원은 인벤토리 속에 칼을 집어넣고 메두사의 뱀들에 정면으로 맞서 섰다.
메두사의 머리는 아이기스의 본체와 같았다.
석화의 능력은 단순한 시동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터.
자칫 눈이 마주치는 걸 넘어, 저들의 이빨에 물리기라도 하면 제아무리 삼신이라 한들 무사하기는 어려웠다.
“자신감이 과하군.”
위험하다는 생각에 메두사를 멈추려던 아테나는 곧 결심을 굳혔다.
고작 자만 따위로 목숨을 잃을 녀석이라면 애초에 제우스가 관심을 보일 가치조차 없었다는 뜻.
메두사를 멈추는 건 그에 대한 시험으로는 적절치 않았다.
그런데.
치지, 치-.
유원의 손에 채워진 반지를 통해 황금빛의 전격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익숙한 마력의 흐름.
아테나가 알기로 저 힘을 가진 사람은 이 광활한 탑에 단 세 명밖에 없었다.
‘저자가 어떻게-.’
벼락.
제우스와 그의 핏줄을 이어받은 헤라클레스, 하르간만이 지니고 있어야 할 힘.
콰우우웅-!
그 힘이 유원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간.
캬아아아아-!
쉬이이익一.
수백에 달하는 뱀들의 몸과 머리가 갈기갈기 찢기거나 터져 나갔다.
아테나의 주위를 가득 메우는 황금빛 전격의 물결.
광활한 범위를 자랑하는 전격 속성의 마력이, 유원이 찬 반지를 통해 전장을 휩쓸었다.
“네가 어떻게 그걸-!”
“아니, 그 녀석 것과는 좀 다르지.”
치지, 치지지지-.
황금빛 물결의 전격을 가르며 유원이 아테나를 향해 걸어왔다.
“이게 진짜 오리지널이니까.”
제우스에게 남아 있는 건 벼락이 아닌, 오랫동안 벼락을 지니고 있었기에 남아 있던 벼락의 잔재일 뿐이었다.
그러니 올림포스가 알고 있는 진짜 벼락의 힘은 지금.
유원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힘에 더 가까웠다.
꾸득, 꾸득-.
“물론, 이것도 가짜는 아니야.”
유원의 주먹이 앞으로 뻗어졌다.
느릿하게 뻗어 오는 주먹.
마치 일부러 피할 시간을 주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거인화?’
이 순간, 아테나는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굳어져 피할 수가 없었다.
유원의 팔에 깃든 힘.
그건 제우스와 함께 올림포스를 대표하는 하이랭커, 헤라클레스를 상징하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꽈아앙-!
급히 아이기스를 들어 올린 아테나의 몸이 위로 붕 떠올랐다.
방패 위로 전해진 묵직한 충격.
빠득, 빠드득-.
방패를 움켜잡은 손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힘에서 밀린다.
단순히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수리비는 제우스한테 청구해.”
방패 너머로 들려온 유원의 목소리.
우지끈-!
유원의 주먹이 박힌 아이기스가 구겨지고.
콰앙-!
방패와 함께, 아테나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그다음부터 기억나는 건 없었다.
* * *
아테나가 다시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삼십 분.
구겨진 아이기스와 함께 쓰러졌던 아테나가 정신을 차리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일어나셨습니까?”
나무 그늘 아래.
천천히 눈을 뜬 아테나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걱정 가득한 수하들의 얼굴을 발견했다.
조금 멍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는 아테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의 표정에 구겨진 아이기스를 들고 있던 수하가 입을 열었다.
“걱정했습니다. 갑자기 정신을 잃으셔서.”
“내가 진 건가?”
“예. 아쉽게도…….”
수하가 덧붙인 사족에 아테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쉬울 게 있나. 실력 차이가 이리 나는데.”
마지막 순간.
유원의 손에 펼쳐진 거인화와 벼락의 힘은, 아테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장 눈앞에 구겨져 있는 아이기스만 봐도 그랬다.
방어력이라면 탑에서 한 손에 꼽히는 아이템이 단번에 찌그러졌다.
만약 유원이 마지막에 힘을 빼지 않았다면 단순히 기절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석화를 풀어낸 것만 봐도 그렇다.’
지금껏 아테나는 숱한 강자들과 싸워 왔다.
그중에는 아이기스를 시험해 보고 싶다며 자신을 찾아 온 포세이돈도 있었고, 거인족의 기간테스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애초에 석화 자체가 통하질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유원은 석화에 굳이 저항하지 않았다.
석화에 걸리더라도 능히 풀어낼 수 있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벅-.
아테나를 향해 유원이 천천히 다가왔다.
한쪽 무릎을 굽히고 바닥에 앉아서 쉬고 있는 아테나와 시선을 맞춘 그는 구겨진 아이기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바로 움직일 수 있겠어?”
“……덕분입니다.”
아테나는 고개를 숙였다.
“배려 감사합니다.”
“아, 아테나 님?”
“어찌-.”
달라진 아테나의 반응에 주위의 전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존칭과 함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아테나라니.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올림포스 내에서도 단 두 명밖에 없었다.
하데스.
그리고 제우스.
아테나는 지금, 유원에게 그들 두 사람과 같은 태도를 취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수하들의 호들갑에도 아테나는 아랑곳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유원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확인이 끝난 지금, 그녀는 지금부터 유원을 대해야 할 태도를 처음과는 달리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가긴 가는데, 태도는 좀 달라져야겠거든.”
유원은 처음부터 올림포스에 볼 일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 그는 자신을 대하는 아테나의 태도를 문제로 삼았다.
딱히 그가 격식이나 허례허식을 따지는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원은 ‘태도’를 언급하며 아테나에게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 보였다.
애초에 그는 이렇게 무례하게 대할 상대가 아니었다.
“왕께서 당신을 올림포스에 초대하셨습니다.”
처음과는 달리 정중한 모습으로.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아테나는 유원에게 올림포스로의 초대장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