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67
* * *
비슈누의 장례가 끝난 후의 데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로 고양되어 있는 상태였다.
올림포스에 제우스를 비롯한 삼신(드神)이 있다면 데바에도 역시 그들만의 삼신이 있었다.
비슈누, 브라흐마, 시바.
그들은 오래전부터 데바를 이끌어온 신이었으며 그중 비슈누는 가장 활동 기간이 짧았지만 데바의 하이랭커들이 기대는 정신적인 지주였다.
더군다나 십여 년 전, 사실 그들이 ‘비슈누’라는 하나에서 탄생한 셋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이번 비슈누의 죽음은 곧 데바의 모든 신들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복수해야 한다.
데바의 몇몇 하이랭커들은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관리자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리자와의 전쟁.
자칫 데바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 일에, 데바가 오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바루나.”
비슈누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본 유일한 측근.
“넌 알고 있지?”
야마의 질문에 바루나가 몸을 움찔 떨었다.
“뭐, 뭘?”
“김유원이 누구인지.”
“내가 그걸…….”
“네 표정이나 근래의 반응을 보면 안다. 넌 그리 거짓말에 능하지 않아.”
얼마 전, 야마는 바유와 함께 바루나에게 ‘김유원’이라는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야마는 두 사람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김유원이라는 이름을 한 귀로 듣고 흘린 바유와는 달리, 바루나는 유독 혼자만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때 이후로 뭔가 고민하고 있지? 그게 뭐냐?”
“난…….”
“비슈누 님의 마지막 말이었다, 바루나.”
콱-.
야마의 손이 바루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자를 찾아야 한다. 관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야. 간다르바도, 브리트라도, 아크샤도, 아난타도! 모두 우리를 노리고 있다.”
“……아난타까지?”
아난타.
오랜 시간 탑의 상층과 하층을 오르내리는 괴물이자, 데바의 오랜 숙적과도 같은 존재.
야마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바루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녀석이 언제 깨어난 거지?”
“꽤 오래 된 일이다.”
“그럼 왜 지금까지는 잠잠했던 건데?”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만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겠지. 비슈누 님도 건재하셨고.”
시간, 그리고 비슈누의 존재.
두 가지 문제 모두 지금은 의미가 없었다.
시간은 이미 충분히 오래되었다 했고, 비슈누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데바의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장난하는 거지?”
“정말이다. 그것도 꽤 위쪽에 있는 녀석이야. 비슈누 님이 관리자를 만나러 가는 걸 알고 있을 정도니.”
“진짜야?”
데바에 배신자가 있다.
그 말은 다른 이야기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데바의 하이랭커들 중에는 어느 누구도 비슈누에게 은혜를 입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런데 배신을 하다니.
‘그러고 보니 천계에서도 태상 노군이 변심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
수차례 혼란에 빠지는 바루나에게 야마는 마지막 설득을 이어갔다.
“비슈누 님의 복수만이 문제가 아니야. 이건 생존의 문제다. 데바가 영원히 사라질지도 몰라, 바루나.”
바루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약속한 게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유원과의 약속이 비슈누의 유언보다, 그리고 데바의 생존보다도 더 중요하지는 않았다.
“사실…… 알고 있다.”
바루나의 그 대답에 야마는 안도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자력만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건만.
다행히도 비슈누가 찾던 그자를, 바루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난 그를 모르지만…… 부디 그가 데바의 운명을 인도해 주길 바라야겠군.”
“아마 그렇게 될 거다. 내가 아는 그는,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이니까.”
“그 정도냐?”
“사실 너도 알고 있는 사람이야.”
단지 잊어버린 것일 뿐.
그리고 지금은 전혀 다른 이름으로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김유훈이라고…….”
바로 천계를 구한 영웅으로 말이다.
* * *
아테나가 준비해 온 태양 마차는 유원이 평소 타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 만큼 규모가 컸다.
탑승 인원만 놓고 봐도 족히 오백 명은 넘게 태울 수 있을 만한 규모.
그만한 태양 마차 위에 올라탄 건 고작 유원과 헤라클레스, 판도라를 비롯한 십여 명 정도가 전부였다.
“이 정도면 원본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군.”
이런 규모의 태양 마차는 유원도 처음이었다.
아폴론이 보유한 진짜 태양 마차를 타 보면 타 봤지, 고작 레플리카 버전 주제에 이 정도 규모라니.
“성능도 마찬가집니다. 아폴론이 가지고 있는 태양 마차의 7할 정도까지 속력을 낼 수 있습니다.”
“그래?”
“올림포스에도 단 3대뿐인 기종입니다만, 오늘은 아무래도 특별히…….”
말끝을 흐리며 슬쩍 헤라클레스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아테나.
유원만 있다면 모를까 아무래도 모셔야 할 사람이 헤라클레스이다 보니 각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 뭐야?”
유원의 물음에 아테나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말하기 어려운 게 있으니까 번거롭게 이런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는 거 아닌가?”
“눈치가 빠르십니다.”
“그쪽 표정이 워낙 뻔히 보여서.”
“김유훈 님의 정보를 아버지께 보고드렸습니다.”
아테나의 말에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나 ‘제우스’라는 말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다운 반응이었다.
“기분 나쁘셔도 됩니다. 그러시다면 머리 숙여서 사과드리겠습니다.”
“별로.”
“괜찮으신 겁니까?”
“제우스의 자식들이 아는 건 모두 제우스가 알게 되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그러시다면 다행입니…… 다.”
아테나의 말끝이 조금씩 흐려졌다.
헤라클레스에게 다가가는 유원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아테나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안도하면서 동시에 드는 의문.
대체 이자는 누군데, 올림포스의 생리를 이리도 잘 아는 건지.
화기애애해 보이는 유원과 판도라, 그리고 헤라클레스.
세 사람의 관계를 천천히 살피며, 아테나는 다시 키트를 꺼내 제우스에게 연락을 취했다.
* * *
꼬박 하루.
태양 마차가 올림포스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아테나를 선두로, 유원과 헤라클레스는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몸을 돌린 아테나.
그녀는 유원과 헤라클레스를 향해 양해를 구했다.
“죄송하지만 전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세 분만 따로 뵙고 싶어 하셔서.”
고개를 숙여 마지막으로 인사하고는 자리를 벗어나는 아테나.
헤라클레스는 한동안 올림포스의 거대한 신전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헤라클레스.
유원은 정신 차리라며 그의 옆구리를 툭 치며 물었다.
“괜찮은 거냐?”
“어. 꽤 많이.”
“여긴 얼마 만인데?”
“전쟁 이후 처음이다.”
“꽤 오래간만이네, 그럼.”
“오면 어머니 생각 날 거 같아서. 그래서 안 왔다.”
“돌아갈래?”
“아니. 아니야. 그냥 진작 올 걸 그랬어서 그랬다.”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하고 있던 자신의 표정을 자각하고는 픽 웃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네.”
그 말과 함께 헤라클레스는 신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올림포스의 하이랭커들이 보유하고 있는 신전 중 하나.
‘올림포스’이자 ‘하늘의 신전’이라 불리는 왕국 같은 신전.
구름 위까지 이어진 높은 계단을 오르자, ‘올림포스’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신전의 입구에서.
“왔네, 우리 막내.”
“얼마 만이지, 이게?”
“뒤에는 누구지?”
“판도라 아니야?”
“…….”
유원은 기다란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여섯 명의 랭커들을 볼 수 있었다.
‘아프로디테, 디오니소스, 아르테미스, 헤르메스, 하데스, 그리 고…….”
드르륵-.
“환영한다, 친구!”
언제 봐도 열정이 넘치는 모습.
하르간은 어느새 올림포스의 한 권좌에 앉아, 신전을 방문한 유원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빨리도 왔네.’
다른 올림포스의 하이랭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하르간.
유원은 그런 하르간의 모습이 퍽 낯설게 느껴졌다.
저 자리에 앉은 건 하르간이 아마 최단 기간이 아닐까 싶었다.
유원과 하르간은 튜토리얼 동기였다.
비록 그 사이에 제우스의 벼락을 얻는 기연이 있었다지만 그의 재능은 실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하르간과 아는 사인가 본데?”
“그럼 저 녀석이 김유훈?”
“역시 처음 보는 얼굴이야.”
유원을 살피는 올림포스의 랭커들.
그들 중 헤르메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유원이 신고 있는 신발이었다.
“저거, 내 신발 아니야?”
가죽으로 만들어진 평범한 신발.
하나 그 신발의 원래 주인이었던 헤르메스는 신발의 정체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다각, 다각-.
가벼운 나막신을 신고 유원에게 다가온 헤르메스.
그는 유원이 신고 있는 신발을 가까이서 살피다 확신을 가졌다.
자신이 신었던 신발이 맞다고 말이다.
“친구야? 혹시 그 신발 어디서 났니?”
“11층의 시험에서 얻었다.”
“11층에서? 아아, 맞다. 그러고 보니 그거, 관리국에 포인트를 받고 팔아넘겼었-.”
말을 잇던 중, 헤르메스는 오래 전에 있던 일을 떠올리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대체 그 시험을 몇 점으로 통과한 거냐?”
헤르메스는 오래전, 11층의 시험 보상으로 포인트를 받고 자신의 신발을 팔아넘긴 적이 있었다.
물론 후배 양성을 위한다든가 하는 대의 같은 건 없었다.
도박에 흥청망청 돈을 쓴 나머지 주머니가 비어, 큰돈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11층.
그곳은 올림포스의 랭커, 히프노스가 시험 감독관으로 있던 세계였다.
그런 만큼 호기심에 자신의 신발이 누구의 손에 들어갈까 싶어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거라면 아마 세상 밖으로 나오긴 힘들 겁니다.”
그에 대한 히프노스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마 아버지가 다시 치르신다고 해도 어려울걸요?”
이후 히프노스는 자신이 주관하는 시험의 룰을 설명했다.
깃발을 쟁취하는 공적치 싸움.
그 싸움에서 깃발을 모아 공적치를 쌓고, 그걸 점수로 변환하여 보상을 선택한다.
헤르메스는 그 룰과 자신이 관리국에 판매한 신발의 가격을 듣고는 그것을 영영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거 나한테 다시 팔 생각 없냐?”
오래전, 제우스가 자신에게 선물했던 그 아이템을 다시 만나니 헤르메스는 눈을 반짝일 수밖에 없었다.
돈이 급해 팔아 버리긴 했지만 역시, 저만한 아이템을 어디 가서 구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없다.”
“왜? 가격은 잘 쳐 줄게. 여차 하면 여기, 디오니소-.”
“포인트라면 나도 넘치게 있어. 그리고 이거, 나도 꽤 마음에 들어서.”
헤르메스의 발걸음.
그건 신발의 형태를 한 아이템들 중, 유원에게 가장 상성이 잘 맞는 종류의 아이템이었다.
공중에서 마력의 도움 없이도 도약이 가능한 스킬이 붙어 있는 아이템.
거기다 사용자의 발을 가볍게 만들어 일상생활에서도 꽤 편리했다.
그런 이유에서 헤르메스 역시 관리국에 팔아넘긴 후 땅을 치고 후회했던 것이고 말이다.
“이익-.”
유원의 거절에 헤르메스는 잠시 이를 악물며 유원의 발을 노려보았다.
이후, 그의 발에 날개가 달리며.
유원의 머리 뒤로 날아든 헤르메스.
“호잇.”
이내, 유원의 어깨에 헤르메스의 손바닥에 맞닿자 스킬로 인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헤르메스’가 ‘헤르메스의 발걸음’을 강탈합니다.] [‘헤르메스의 발걸음’의 소유권 이 헤르메스에게-]콱-.
그리고 그 순간.
“올림포스는 손님 접대가 꽤 엉망이네.”
유원의 어깨를 짚은 헤르메스의 손목이 붙잡히며, 스킬의 발동이 강제로 취소되었다.
“듣던 대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