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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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르르르르-.
찻잔이 채워졌다.
방금 전까지의 어수선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가한 티타임 자리가 만들어졌다.
직접 차를 우려내 따르는 제우스를 보며 헤라클레스는 연이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마시거라.”
“차를…… 좋아하셨습니까? 술을 더 즐기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술은 그리 즐기지 않는다. 그건 필요해서 마시는 거지, 좋아서 마시는 건 아니야.”
차향을 음미하는 제우스라니.
직접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비좁은 의자에 앉아 손을 뻗어 찻잔을 집었다.
손가락으로 집어든 찻잔.
꼭 미니어처로 만든 장난감처럼 보일 따름이라 헤라클레스는 다시 찻잔을 내려놓았다.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자신 외에 다른 세 사람 중 어느 누구 한 명 차를 마시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안 마시나? 향이 좋은데.”
“독이라도 탔을까 봐.”
“잔이 작습니다.”
“퉤.”
소심하게 침 뱉는 시늉을 하는 판도라를 마지막으로 제우스는 자신도 찻잔을 내려놓았다.
“차라리 술을 가져올 걸 그랬군.”
“맞은 자리는 괜찮습니까?”
헤라클레스가 묻자 제우스는 유원에게 얻어맞은 자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피가 좀 나긴 했지만 괜찮다. 기분은 썩 좋지 않지만.”
“솔직히 의욉니다. 대노하실 줄 알았는데.”
“한 대 정도면 나쁘지 않은 장사다. 저런 녀석을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백 배 천 배 낫지.”
난데없는 주먹질에도 제우스가 분노하지 않은 이유.
그건 바로 판도라가 가진 자신의 증오와 유원의 화를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계산적인 사람이었다.
수지타산과 이해득실을 따지고,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감정을 제어했다.
판도라와 함께 나타난 유원.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한 제우스는 생각했다.
한 대 정도 순순히 맞아 주어, 유원의 분노를 삭일 수 있다면 그건 나쁘지 않겠다고 말이다.
제우스의 대답에 헤라클레스는 판도라의 잔에 들어 있는 차를 바닥에 쏟아버리는 유원을 바라보았다.
이런 거 먹지 말라며, 대신 인벤토리에 들고 다니던 초콜릿을 손에 쥐어 주며 말이다.
‘그만큼 이 녀석을 인정한다는 건가.’
누구보다 패도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던 제우스조차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자.
올림포스의 왕이었던 제우스를 유일하게 땅으로 끌어내렸던 존재.
‘하긴.’
납득 못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자존심에 조금 금이 가고, 구겨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적으로 돌릴 만큼 제우스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헤라클레스가 있었다. 제천대성도 있었고, 판도라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원은 헤라클레스가 아는 누구보다도 강했다.
올림포스 전체가 움직이더라도 그를 어찌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만큼이나.
한 대.
고작 한 대였다.
그 정도로 유원의 기분이 풀린다면 제우스는 기꺼이 맞아 줄 사람이었다.
물론, 유원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마음 놓고 주먹을 휘둘렀던 것이고.
“손님 대접 같은 건 됐다. 날 부른 용건이나 말해.”
“너도 날 찾아온 용건이 있는 거 아니었나?”
유원과 제우스의 말이 부딪쳤다.
서로가 서로에게 용건이 있는 상황.
잠시 대화가 멈추자 유원은 결국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순서가 중요한 건 아니지. 먼저 해라.”
“관리자에 대해 얼마나 알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들어온 질문.
기다렸다는 듯한 그 반응에 유원은 표정을 찡그렸다.
“뭘 이리 갑자기 흑 들어와?”
“넌 분명 알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먼저 모습을 드러낼 리 없으니.”
다 안다는 듯한 말투에 감출 수가 없었다.
“알고 있지.”
물론, 그렇다고 다 드러내 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 녀석들이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것 정도는.”
“감출 생각인가?”
“너나 나나, 서로 팀으로 움직일 성격은 아니니까. 필요한 정보는 주겠지만 다 풀 생각은 없어.”
제우스는 위험한 존재다.
그것도 어지간한 관리자 서넛보 다도 훨씬 더.
다른 누구도 아닌 미미르조차도 그의 머릿속을 다 알 수 없다 평가했을 정도니, 경계해서 나쁠 건 없었다.
“제일 중요한 건 역시…… 그 녀석들이 가진 마력의 성질이겠지.”
“성질?”
“오래전, 관리자들은 한 존재와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그들은 마나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지.”
도합 백한 명의 관리자들.
그들은 이 탑으로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였으며, 시스템을 이용해 그들을 탑의 더 높은 곳으로 끌어을렸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존재를 마치 신처럼 여겼다.
하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관리자란 존재는 그리 특별할 게 없어. 그저 보통의 랭커들보다 조금 더 강한 게 전부일 뿐이지.”
신 따위가 아니다.
아니.
각자의 신화(神話)를 이루어 신격(神格)과 신위(神威)를 얻은 존재는, 모두 신(神)이라 봐야 할 터.
그렇다면 이미 탑의 랭커들은 관리자와 동등한 위치에 올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게 문제일 거다. 녀석들에게는.”
“그렇군.”
“……?”
“……?”
어리둥절한 표정의 헤라클레스와 판도라.
두 사람은 ‘그렇군’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제우스가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뭐가 그렇다는 거야?’
한 번에 말을 못 알아듣는 두 사람을 위해, 제우스가 찻잔을 내려 놓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플레이어들의 힘은 점점 강해졌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관리자가 그리 무섭지 않으니, 그놈들도 그걸 느끼고 있는 거겠지.”
“아…….”
그 설명에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가 관리자들을 뛰어넘고 있다…….”
지금껏 자신들의 밑으로 보고 있던 존재들이 위협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장 헤라클레스 본인만 해도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헤라클레스는 하늘처럼 느껴졌던 관리자라는 존재가 그리 대단치 않게 여겨졌다.
“공략법은 따로 있나?”
“아예 없지는 않지. 어쨌거나 그 녀석들이 가진 능력도 결국 스킬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나도 가지고 있거든, 그거.”
기이이잉-.
펼쳐진 유원의 손바닥 위, 연한 하늘색을 띤 마나의 구슬이 떠올랐다.
매끈한 유리구슬처럼 단단하게 뭉쳐진 마력.
[마나포]이제 와서 보이기에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스킬이었다.
이성윤이 그랬듯, 마나포는 재능 있는 플레이어라면 튜토리얼에서부터 익히는 경우도 있었 니까.
하지만 지금 유원이 보이려고 한 건, 단순한 마나포가 아니었다.
“연한 하늘색. 마나의 가장 기본적인 색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마나포는 마력의 성질에 따라 어떤 속성으로든 변화할 수 있지.”
화르르-.
불꽃처럼 타오르는 마력의 구체.
“불이든.”
치지지지-!
불 위에 덧씌워지는 전격.
“전격이든.”
고오오오-.
뽀글-.
“어둠이든, 물이든 말이야.”
“헐…….”
“이쁘다-.”
눈을 반짝이는 판도라와는 달리, 헤라클레스와 제우스는 다른 이유에서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벌렸다.
네 가지 속성의 마력이 뒤섞인 마나포라니.
두 가지만 하더라도 놀랄 일인데, 서로 섞일 수 없는 네 가지 속성의 마력이 뒤섞였다.
‘물과 불이 서로 섞일 수 있는 속성이던가?’
다른 랭커들과는 달리, 헤라클레스는 마력의 속성에 그리 조예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헤라클레스조차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파앙-.
마나포가 터지며 네 가지 속성의 마력이 흩어져 하늘 위로 올라갔다.
제우스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
“대충 이런 거다. 물론, 이걸 평생 다뤄 온 저들보다는 숙련도가 훨씬 낮겠지만 말이야.”
보통의 랭커들은 제아무리 많아도 두 가지 속성의 마력을 다루는 게 고작이었다.
게다가 그조차도 효율이 좋지 못해, 제우스나 수르트처럼 한 가지 속성의 마력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원은 몇 가지나 되는 속성의 마력을 최상위 하이랭커 수준으로 구사해 왔다.
“그 많은 속성의 마력을 어떻게 다 다루나 했더니…… 이제 좀 납득이 되는군.”
관리자들이 사용하는 마력.
그것을 구사할 줄 안다면 지금껏 유원이 보여 준 마력에 대한 이해도나 컨트롤도 납득할 수 있었다.
“스킬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니 분명 한계는 있다. 지난번의 싸움으로 그것도 확인을 했고.”
“지난번의 싸움이라면, 천계에서?”
“그래.”
“그래서? 뭘 확인했지?”
“무기나 육체를 강화하는 형태의 스킬이 더 유효해. 밖으로 마력을 직접적으로 방출시켜서 쏘아내는 건 효과가 반감될 거다. 그리고 그건 즉.”
유원의 시선이 헤라클레스와 판도라에게로 향했다.
“근접전이 녀석들과의 싸움에서는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뜻이지.”
그 말에 헤라클레스는 놀란 표정을 감추며 제우스를 돌아보았다.
‘마력을 직접 쏘아 내는 형태가 불리하다면 아버지에게는 천적이다.’
제우스의 포지션은 창지기였다.
그는 누구보다 멀리서, 누구보다 강력한 창을 던질 수 있는 하이 랭커였다.
반면 헤라클레스는 그 누구보다 강력한 근접전이 가능했다.
‘이 녀석이 천계에서의 전투 후에 바로 날 찾은 이유가 있었군.’
어쨌거나 제우스에게는 그리 좋지 않은 소식.
하지만 예상외로 제우스의 반응은 꽤 담담했다.
“좋은 정보군. 전달해 놓도록 하지.”
“올림포스만 공유하지 말고 다른 길드에도 다 전달해 놔.”
“어련히 알아서 할까. 그보다, 이런 건 어떻게 안 거지?”
“직접 부딪쳐 보고 알았지.”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든가.”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유원의 태도에 제우스는 씩 웃었다.
“역시 넌 이런 점이 짜증나서 마음에 들어.”
올림포스의 왕으로 군림하며 제우스는 숱한 랭커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그중에는 분명 제우스와 동등한 위치에서 말과 행동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들이 있었다.
오딘이나 비슈누와 같은, 위대한 존재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유원과 같은 느낌을 풍기지는 않았다.
‘역시 넌 다르다.’
동류.
제우스가 유원에게서 받는 느낌이었다.
그와 대화를 하면 답답하지 않았다.
말이 통한다는 느낌을 받은 건 오딘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 세계의 모두가 인형처럼 느껴졌다.
무식하고 같잖다.
지능과 자아가 떨어지는 괴물들과 탑의 정상에 선 랭커들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을 할 줄 안다는 걸 제외하면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래서 제우스는 자신의 씨를 뿌렸다.
이 탑에 자신이 세운 위대한 왕국.
올림포스라는 이름을 이어받을 후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들.
헤라클레스, 그리고 하르간.
하지만 그들보다도 더, 뛰어난 작품이 눈앞에 있었다.
‘딱 하나. 부족한 게 있군.’
제우스의 시선이 유원의 옆에 꼭 붙어 있는 판도라에게로 향했다.
자신과 유원의 다른 점.
그걸 채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잠시 제우스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이제 네 차례다.”
이번에는 유원이 이곳까지 찾아 온 용건을 말했다.
“얼마든지.”
“질문보다는 부탁을 좀 하자.”
“부탁?”
“올림포스의 정보망을 좀 써야겠다.”
“관리자가 심은 배신자들 때문인가?”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얄밉게 웃는 제우스.
“그거라면 걱정할 것 없다. 이미 꽤 파악을 해 둔 상태이니.”
“데바에도 말이냐?”
비슈누.
다른 무엇보다 유원은 그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먼저 파헤칠 생각이었다.
“그쪽이라면 빠삭하지.”
그리고 그 질문까지도 알고 있었다는 듯.
“너 때문에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겠군.”
제우스는 이미, 자신의 손발을 움직여 놓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