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71
* * *
화르, 화르르-.
거센 화마(火魔)가 마을을 덮쳤다.
비명 소리로 가득 찬 마을.
다급한 뜀박질로 불길로부터 도망치는 인파 가운데, 붉은 머리의 여인이 서 있었다.
“얼른 가라, 이 버러지들아. 니들이 죽으면 패널티가 생기니.”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향긋한 꽃 내음을 들이마시듯 시커먼 연기를 맡는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불길 가운데 어서 그 풍경을 감상했다.
“꽃이 아름답게 피었구나.”
비명 소리에 묻혀, 누구도 듣지 못했지만.
“불꽃이 말이야.”
이 불꽃이야말로, 그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원천이었다.
“수르야아아-!”
화아아아-!
그때, 불길이 좌우로 갈라지며 주홍빛의 불꽃이 수르야를 덮쳤다.
퍼어엉-!
서로 다른 방향에서 맞부딪쳐 부서지는 불꽃의 파도.
수르야는 씩 웃으며 제일 먼저 눈앞에 나타난 자신의 오랜 동료를 향해 인사했다.
“역시 네가 제일 먼저 왔네, 아그니.”
“이게 무슨 짓이냐, 수르야!”
주홍빛의 머리카락을 위로 말아 올린 남자.
아그니는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수르야를 노려보았다.
불꽃을 다스리는 하이랭커인 아그니는 불꽃이 존재하는 어디든 보고, 느낄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불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고 말이다.
“네가 왜!”
“설명할 필요 있겠어? 어차피 우린 이제 적인데.”
“정말로…….”
화르르르-.
분노는 불을 강하게 만든다.
그게 바로 불을 다루는 자들의 특성이었다.
“지금 데바를 배신했다고 말하는 거냐!”
“어.”
푸화아아-!
부딪치는 두 사람.
“그렇게 말하는 거야.”
펑, 퍼퍼퍼펑-!
화르르르-!
하늘 위에서 축제처럼 불꽃이 터지며 수르야와 아그니가 부딪쳤다.
화아아-!
아그니의 불길이 수르야의 불길을 집어삼키고, 반대로 수르야의 불길이 아그니의 불길을 휘감으며 싸움이 이어진다.
같은 속성의 마력을 다루는 둘.
더군다나 서로에 대해서 잘 아는 상황.
‘쉽게 제압할 수 없다.’
제아무리 아그니라 해도 상대는 수르야였다.
185위.
랭킹만 놓고 보면 아그니보다 몇 개 정도 위에 있었다.
그녀보다 실력이 떨어진다 생각하지는 않지만, 데바에서 수르야를 따르는 세력이 더 큰 까닭이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아.’
패널티를 의식한 탓일까.
수르야의 불길에 휘말려 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불길이 갑자기 올라온 게 아니라 대피가 가능하도록 서서히 피어오른 탓이었다.
더군다나 대로 한복판, 수르야는 일부러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기까지 했으니.
‘뭘 노린 거지?’
그 사실을 알아차린 아그니는 문득 묘한 위압감을 느꼈다.
처음부터 마을을 노린 게 아니라면 대체.
“넌 눈치가 없어, 아그니.”
수르야의 말에 아그니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이제 눈치챘냐?”
“설마 너-.”
“처음부터 널 부른 거야.”
마을에 불이 나면 가장 먼저 눈치챌 사람은 아그니였다.
수르야가 그걸 모르지는 않을 터.
처음부터 그녀의 목적은 마을 따위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움직임을 멈춘 채,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수르야.
“이제 곧 다른 녀석들도 오겠지.”
구오오오오-.
화마로 붉게 물든 하늘이 벌어진다.
하늘 위, 데바의 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럭키.”
딱-.
수르야가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해를 가리고 있던 구름 하나가 쩍 갈라지며, 거대한 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에 숨어서?’
대체 언제부터 저기에 숨어 있었던 걸까.
무언가 번쩍 떠오른 아그니의 시선이 땅 아래로 향했다.
불타는 마을.
불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
아그니는 수르야가 불태운 마을에 나타났고, 그 아래로는 데바의 함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는 건.
“오지 마!”
아그니의 외침에 아래로 내려오던 데바의 배들이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무리 아그니의 명령이라 해도 데바를 배신하고, 마을을 불태운 수르야를 그냥 내버려 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말을 듣지 않는 배를 보며 아그니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오지 말라고-!”
공허한 외침.
데바는 그의 외침을 들었어야 했다.
“늦었어, 아그니.”
위이이이이-.
거대한 함선을 통해 막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포격을 준비하듯, 함선 아래로는 마력을 뿜어 낼 준비를 끝낸 함포가 보였다.
이 상황을 미리 준비한 수르야는 망설임 없이 손을 움직였다.
“쏴.”
* * *
번쩍-!
하늘 아래로 빛이 뿜어졌다.
수르야가 준비한 거대한 함선은 급하게 모습을 드러낸 다른 함선들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포화가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박살 나는 데바의 함선들.
아그니는 피해를 막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수르야에게 가로막혀 버렸다.
이내 함선이 쏘아낸 포화가 끝난 후에 모습을 드러낸 건 폐허가 된 마을과 만신창이가 된 아그니의 모습이었다.
“수르야아아아-!”
“넌 오늘 끝이야, 아그니.”
아그니를 비웃는 수르야.
그녀의 머리 위로는 함선에서 밖으로 나온 수르야를 따르는 랭커들이 무리를 지어 도열해 있었다.
치이이이-.
아그니의 몸에서 증기가 끓었다.
데바에서 온 지원군은 방금 전의 포격으로 모두 소멸해 버렸다.
이제 남은 건, 포격을 막기 위해 피해를 감수했던 아그니 혼자뿐.
‘살아남아야 한다.’
지금의 데바에는 비슈누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썩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금, 자신의 죽음은 자칫 베다의 멸망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일일 터.
지금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다.
화르르-!
아그니의 몸에서 불길이 솟았다.
수르야에 의해 불바다가 된 마을로 스며드는 아그니.
수르야는 그런 아그니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녀도 마찬가지로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놓칠 거 같아?”
화아악-!
붉은 불길이 아그니의 몸을 휩쓸었다.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던 아그니가 어깨에 화상을 입은 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크으…….”
기이이잉-.
그러고 난 직후,쏟아지는 포격.
콰아아앗-!
포격의 범위로부터 도망치며 수르야의 수하들이 쏘아내는 창과 스킬을 피해 낸다.
기동성이라면 자신이 있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아그니는 관리자들에게 가담한 세력이 이렇게 클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대체 데바가 언제부터 이렇게 썩었던 거지?’
콰우우우-!
그 순간, 아그니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포격.
피할 수 없다 판단한 아그니는 팔을 크게 휘저어 불길을 일으켰다.
하르르-.
퍼어엉-!
위로 솟아오른 불길이 포화를 막아 냈다.
하지만 그렇게 단 한 번, 다른 데 한눈을 판 순간.
‘잡았다, 아그니.”
“……!”
화아악-!
퍼퍼퍼퍼펑-!
미리부터 함정을 파 놓았던 건지, 아그니가 도착한 장소에서 거대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붉은 불길이 아그니의 몸에 휘감겨 있던 불길을 밀어냈다.
그렇지 않아도 도망치는 데 급급하던 아그니로서는 미리부터 스킬을 준비해 두고 있던 수르야를 당해 낼 수 없었다.
치이이이-.
한 차례 불길이 지나가고 난 자리.
새빨갛게 익은 몸의 아그니가 축 늘어진 몸으로 비틀거렸다.
“너무 억울해 하진 마, 아그니.”
저벅, 저벅-.
수르야와 아그니의 거리가 좁혀지자 자연스레 포격은 멈추었다.
“원래부터 이 탑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었어. 그들이 자리를 내주어, 잠시 빌렸던 것뿐이지.”
“……관리자가 무서운 거냐?”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주제에, 아그니의 눈빛은 여전히 주홍빛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쉽게 기세가 꺾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정신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수르야는 속으로 아그니를 인정하며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조건을 걸었지. 비슈누를 죽여 보라고. 그럼 기꺼이 당신들 편에 서겠다고.”
“수르야……!”
“난 확신이 필요했거든. 비슈누나 제우스, 헤라클레스나 제천대성 같은 괴물들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말이야.”
그녀의 요구대로 관리자는 기꺼이 비슈누를 흙으로 만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수르야가 관리자의 편에 서기로 결정하게 된 게.
“어차피 저 녀석들이야 내 말에 따라 움직이는 개들이고. 문제는 너나, 야마 같은 녀석들인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아그니에게 손을 뻗는 수르야.
“어때, 아그니? 혹시 같이할 생각 있어?”
“같이라고?”
씩 웃어 보인 아그니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이거나 처먹어.”
“아쉽네. 같이하겠다고 하면, 더 놀려 주고 죽이려고 했는데.”
수르야는 아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날카롭게 곤두선 붉은 손톱.
이내, 목젖을 향해 손을 뻗은 그녀가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그럼 안녕, 아그니.”
슈아아악-!
터업-.
아그니의 눈앞에서 멈춘 손.
힘없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은 아그니는 자신과 수르야의 중간에 끼어 든 전사를 바라보았다.
“조금 빨리 도와주면 어디가 덧나나.”
“생명의 은인에게 말이 너무 야박하군요.”
꽈아아악-.
수르야의 손목을 움켜잡은 손.
싸움을 방해받은 수르야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곳은 데바의 영역.
만약 싸움에 끼어 든 이가 다른 데바의 랭커였다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테나, 당신이 왜…….”
“아버지의 명령을 받았다.”
고오오오-.
그때, 수르야의 함선의 위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마차 하나.
“지금부터 올림포스는 데바를 엄호한다.”
태양마차를 타고 곧장 날아온 아테나와 올림포스의 전사들이, 데바의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쿠릉,쿠르르-.
먹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
천둥번개가 치고 거센 바람으로 먼지가 날리는 골짜기를 걸으며, 네 명의 관리자들이 대화를 나눴다.
“너무 얕본 모양이야.”
“쉬운 싸움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천계와 제천대성을 너무 얕본 게 잘못이었어.”
“벌써 넷이나 죽었다라…….”
천계를 무너뜨리기 위한 작전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태상노군이라는 패는 사라졌고, 관리자들 중 넷이 죽었다.
손해가 막심했다.
비슈누를 죽여, 승리를 확신하던 차에 벌어진 일이라 더 그랬다.
어쩌면 질지도 모른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피었다.
더군다나.
“하나가 더 있지 않았나?”
이번에는 그들이 보유한 랭킹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변수까지 끼어 있었다.
“김유훈이라는 녀석 말이냐?”
“그래.”
“혹시 파악한 녀석 있나?”
“…….”
침묵.
김유훈이라는 의문의 플레이어에 대해 아는 관리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언제 튜토리얼을 치렀고, 지금껏 어디에 있었는지까지도 말이다.
척-.
나란히 걷던 네 명의 관리자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지금은 그런 녀석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크르르르-.
서서히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
어두운 골자기 끝자락, 어둠 속에서 붉은 파충류의 찢어진 눈동자가 빛을 뿜어냈다.
“오래 기다렸군, 브리트라.”
브리트라.
이 탑에서 가장 오래 된 괴물 중 하나.
용종의 정점에 위치해 있으며, 인드라와의 싸움이 끝난 직후부터 줄곧 잠들어 있던 존재.
-관리자가 여긴 무슨 일이지?
쿠릉-!
그의 질문에 관리자는 천둥이 치는 하늘을 을려다보며, 최강이라 불리는 용종의 이름을 언급했 다.
“아난타를 만나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