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72
* * *
유원과 제우스는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제우스는 관리자들에 대한 정보를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동향이나 데바 내부의 배신자들, 그리고 곳곳에 퍼져 있는 관리자의 검은 손까지도 말이다.
‘꽤 바쁘게 움직인 모양이군.’
지난 십 년, 유원은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모두에게 잊힌 덕분에, 정말 바라 마지않던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제우스는 멈추지 않았다.
최고가 되어, 최강의 길드를 다스렸다.
거대 길드의 주축이 되었고, 관리자들의 움직임에도 눈을 떼지 않았다.
길게 이어진 대화.
대화가 지루했는지 판도라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헤라클레스는 제대로 대화에는 끼지 못한 채 눈동자만 좌우로 움직일 뿐이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제우스에게서 흘러나온 정보에 유원은 확신했다.
“누가 도왔지?”
“말해 줘야 하나?”
“말할 생각이 없나 보네.”
“잘 아는군.”
네가 감추는 게 있으니 나도 하나쯤은 감추겠다는 심보.
유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제우스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관리자들 중 한 명이겠지.”
“그렇겠지, 아마도.”
긍정도, 부정도 않는 말.
몇 번 두드린다고 해서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관리자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연결고리.
제우스는 그걸 자신 혼자서만 독차지할 생각으로 보였다.
‘쉽게는 안 넘어오겠군.’
유원과 제우스는 엄밀히 말해 동료 같은 관계는 아니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둘은 단지 같은 목표를 향할 뿐.
그걸 위해 서로에게 필요한 걸 드러내고, 숨기는 건 각자의 역량이었다.
유원은 다 식은 찻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제우스를 통해 알게 된 정보들 중, 신경 쓰이는 건 딱 하나.
‘아난타라…….’
아난타.
데바의 오랜 숙적이자 그 비슈누가 끝끝내 죽이지 못하고 봉인할 수밖에 없던 존재.
‘곤란한 녀석과 손을 잡았군.’
관리자들이 그 녀석을 끌어들인다면 싸움은 더 복잡해진다.
“오래 끌면 안 되겠어.”
유원의 중얼거림에 제우스가 입을 열었다.
“아난타 말이냐?”
“그래.”
“……?”
여전히 헤라클레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유원이나 제우스와는 달리, 그는 아난타라는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그가 누구기에 그러냐?”
오랜 역사 속에 잊혀 있던 이름인 만큼 헤라클레스가 아난타를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그 이름이 계속 이어지는 건 비슈누와 가까운 데바의 하이랭커들 정도뿐.
더욱이 헤라클레스는 하이랭커들 중에서는 나이가 꽤 젊은 편이었다.
“비슈누가 오래전에 봉인했던 괴물이다.”
“비슈누뿐만 아니라 고대의 랭커들 여럿이 달라붙었지. 우마왕도, 오딘도 거기 포함되어 있었고.”
“넌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냐? 가장 최근에 탑에 들어온 녀석이.”
제우스의 질문에 유원은 금빛을 발하는 눈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적절한 때 들어온 적절한 질문이었다.
“겪어 봤거든.”
“겪어 봐……?”
“…….”
바로 맞은편에 있는 제우스는 바닥이 드러난 차를 따르고 있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는 것 같으나, 아주 잠깐.
유원의 눈썰미에 걸리는 미미한 눈썹의 꿈틀거림 하나가 있었다.
“……화안금정까지 사용하면서 표정을 살피는 건 좀 반칙이군.”
화륵-.
제우스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 사용한 화안금정.
아주 미세한 상대의 표정의 변화는 물론, 그 속에 들어 있는 거짓과 진실까지도 파악하는 화안금정 덕분에 제우스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뭐, 수지타산이 맞겠군. 내게 정보를 준 건 튜토리얼의 관리자다.”
튜토리얼.
오래전에 만났던 덩치 큰 거지 행색의 관리자를 떠을리며, 유원은 눈을 빛냈다.
“그자가 내게 와서 관리자들의 정보를 풀었다. 자신은 이 싸움의 승패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길 바란다면서.”
“원래는 우리가 질 거라 생각했다는 건가?”
“그랬겠지. 물론…….”
유원의 얼굴을 마주 보며, 제우스는 말하기 껄끄러운 말을 뱉었다.
“그 녀석도 널 잊고 있었겠지만.”
튜토리얼의 관리자는 특별하다.
하위 층계를 관리하는 관리자일수록 격이 낮고 약하다지만 그는 예외였다.
튜토리얼.
탑의 가장 낮은 곳이자, 모든 세계가 탑으로 모여드는 장소.
‘그 녀석에 대한 기억은 나한테도 없어.’
그렇지 않아도 찝찝하던 차였다.
아자토스의 기억 속에 없던 한 명의 관리자.
그가 마침 제우스를 찾아와 관리자들의 정보를 넘겨주었다니.
“이제 너도 말해라. 아난타를 겪어 봤다고?”
튜토리얼의 관리자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둘 필요가 있는 정보였다.
하나를 받았으니 이제 하나를 주어야 할 차례.
유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우스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 그래. 그랬지.”
“어떻게?”
“내가 어디서 왔는진 알 텐데?”
드르륵-.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한 유원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제우스가 눈살을 조금 찌푸리자, 유원은 헤라클레스를 향해 일어나라 손짓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조금 서둘러야겠다.”
“제대로 대답도 않고 바로 움직이려는 거냐?”
“아까 말했잖아?”
자신의 기억대로라면 아난타가 깨어난 지 꽤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무엇보다 봉인을 관리하던 비슈누가 죽은 게 바로 얼마 전.
“오래 끌면 안 된다고.”
지금부터 시간은, 우리들의 적이었다.
* * *
쿵, 쿵-.
브리트라가 발을 움직일 때마다 골짜기가 흔들렸다.
네 명의 관리자들은 브리트라를 따라 길게 이어진 골짜기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쪼르르르-.
골짜기의 안에는 물이 흘렀다.
풀 내음이 나기 시작할 즈음, 앞장서 가던 브리트라가 고개를 돌려 관리자들을 돌아보았다.
-만약 허튼짓을 하려는 거면, 그땐 너희들부터 불살라 버릴 테니 명심해라.
“걱정하지 마라. 목적이 같은 만큼 지금 여기서 너희를 배신할 리는 없을 테니.”
그르르르-.
잠시간 관리자들을 노려보며 다시금 경고한 브리트라는 몸을 옆으로 비키며 활짝 펼쳐 둔 날개를 접었다.
그러자 드러난 광경.
“나무?”
“비슈누의 스킬인가?”
나무로 둘러싸인 노란색의 거대한 용 하나.
아니.
용은 하나가 아니었다.
“야마타노 오로치가 울고 가겠군.”
“머리가 몇 개야?”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머리를 가진 용.
여러 머리를 가진 히드라나 야마타노 오로치 같은 괴물은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숫자였다.
아난타.
‘무한’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저 괴물은, 야마타노 오로치나 브리트라와 같은 괴물들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존재였다.
그르르르-.
그르르-.
초대하지 않은 손님 때문일까.
아난타의 머리들이 조금씩 입을 벌리며 위협적인 울음을 흘렸다.
그 소리에 눈감고 있던 아난타의 머리가 하나둘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는 나무에 속박당한 채, 자신을 찾아온 네 명의 관리자들을 노려보았다.
『위대하신 관리자들께서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하는 태도와는 달리 아난타의 음성은 차분하고 정중했다.
마치 몸과 머리가 다른 존재인 것만 같은 모습에 다른 관리자들이 몸을 떠는 사이, 네 명 중 가장 높은 층의 관리자가 앞으로 나섰다.
“봉인을 풀어 줄 테니 우릴 돕게.”
『봉인이라면 이미 풀려 있습니다. 지금은 차분히 쉬고 있을 뿐이지요.』
“눈을 뜬 이상 네 힘이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강제로 그 봉인을 깨면, 그만큼 너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거다.”
아난타를 봉인한 비슈누의 나무는 강력했다.
단지 그의 몸을 겉에서 속박한 것만이 아닌, 백 개에 달하는 아난타의 심장 전부에 박혀 있었다.
눈을 떴다고 해서 그 봉인을 강제로 깨려 한다면 자칫 다시 긴 수면기에 들지도 모르는 일.
“우리가 도와주지. 대신, 너도 우리를 도와라. 아난타.”
관리자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들이 계획하는 일을 설명했다.
본래 자신들의 세상이었던 탑을 다시 가져오며, 플레이어라는 존재들을 몰아내는 구상을 말이다.
그러자.
『할 수 있다면 어디 해 보십시오. 기대해 보겠습니다.』
꽤 나쁘지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후우-.”
“일단은 잘된 것 같군.”
아난타의 대답에 관리자들은 아난타를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이 점점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대체 어느 정도였다는 건지.’
‘이런 녀석을 그 녀석들이 봉인했다는 건가.’
‘서두르길 잘했어. 더 늦었다간 우리가 잡아먹혔을 거다.’
관리자들은 봉인을 풀기 위해 아난타에게 달라붙었다.
기이잉-.
관리자들의 손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녹색의 빛.
비슈누의 봉인을 풀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 * *
아난타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는 조용히 관리자들이 자신의 봉인을 풀어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하고도 반나절.
적잖은 시간 동안 관리자들은 아난타의 봉인을 풀기 위해 애를 썼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상상도 못했군.”
정말로 약해진 봉인인 건가?
뿌득, 뿌드득-.
아난타의 심장에 박힌 나무들이 뒤틀리며, 천천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주 천천히, 무엇보다 조심스럽게.
봉인이 풀리는 속도는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더디기만 했다.
“비슈누의 나무만이 전부가 아니군.”
“그래. 그 녀석 혼자서 이 정도 위력의 봉인은 어림도 없지.”
“몇 명이 더 있다. 게다가-.”
51층의 관리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들의 힘에 저항하는 가장 껄끄러운 힘을 살폈다.
“비슈누 녀석의 봉인보다 훨씬 더 귀찮은 게 섞여 있어.”
이건 단순한 봉인과는 달랐다.
만약, 마력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종류의 봉인이 전부였다면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리 없었다.
또한, 그게 전부였다면 진즉에 아난타 혼자서라도 봉인을 풀어 냈을 것이다.
“아마 쉽지 않을 걸세.”
저벅-.
봉인에 대한 의문이 증폭될 즈음.
“그건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주술이니 말이야.”
“주술?”
휙-.
처음 듣는 목소리에 관리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골짜기 너머로 걸어오는 두 사람.
저벅, 저벅-.
“간다르바 녀석이 설치는 게 심상치 않더라니만. 정말 이쪽을 노리고 있었군.”
머리에 두 개의 뿔을 달고 손에는 검은 몽둥이를 움켜쥔 장신의 남자와.
“역시 형님이랑 있으면 재밌는 일이 많단 말이요.”
즐거움을 감출 수 없는 표정으로 여의봉을 어깨에 걸친 채 걸어오는 손오공까지.
오래전, 단둘이서 천계와 싸움을 벌인 평천대성(平天大聖)과 제천대성(齊天大聖)이 아난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르르르-.
우마왕을 발견한 브리트라가 이빨을 드러내며 길게 찢어진 붉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우마왕.
비슈누와 함께 강력한 주술로 괴물들의 왕, 아난타를 봉인한 존재.
-우마왕, 네놈이 어찌 여길-!
그렇게 브리트라의 외침이 골짜기를 뒤흔드는 순간.
턱-.
어느새 브리트라의 머리가 있는 곳까지 뛰어오른 우마왕의 손이 그의 이빨을 움켜잡았다.
“시끄러우니 먼저, 그 냄새나는 입부터 닫아야겠구나.”
콰앙-!
이빨을 움켜잡은 채 있는 힘껏 브리트라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는 우마왕.
오랜만에 그와 함께 싸움에 참여한 손오공은 화끈한 형님의 행동에 씩 미소를 지었다.
“아직 살아 있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