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77
* * *
하늘 높게 솟은 푸르고 노란 전격의 기둥.
까맣게 타들어 간 바위가 가루가 되어 소멸하고, 구름을 반듯하게 잘라 낸 듯 동그란 구멍이 생겨났다.
한동안 모든 시야와 소리가 벼락에 삼켜졌다.
천둥이 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 제우스는 그 속에 서서 아난타가 땅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걸 지켜보았다.
치지, 치지지-.
치지지-.
천벌이 떨어지고 난 다음의 골짜기는 원래의 형태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주위의 지형이 바뀌었다.
거대한 구덩이는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었고, 범위는 도시 몇 개를 지도상에서 지워 버릴 정도로 넓었다.
손오공의 근두운을 타고 서둘러 하늘 위로 피한 일행들.
유원은 아래에 난 구멍을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팀 생각 안 하는 건 여전하군.”
유원이 헤라클레스가 아닌 제우스를 먼저 전면에 세운 게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인드라의 힘이 아난타의 상극이 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그는 누군가와 팀을 이루어 싸우는 성격이 아니었다.
전격은 여러 종류의 속성 중 가장 범위가 넓었다.
더군다나 제우스는 그런 전격에 있어서 탑의 정점에 선 존재.
평소처럼 컨트롤이 완벽할 때라면 모를까, 인드라의 마력을 사용할 때에는 범위를 조절하는 게 불가능했다.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
근두운 위에서 뒤바뀐 지형을 내려다본 우마왕의 감상이었다.
“저 녀석, 대체 몇 개의 신화를 쓴 거지?”
제우스가 이룬 신화는 손으로 헤아릴 수도 없다.
랭킹 1위.
그가 이 탑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모두, 지금 눈앞에 보인 저 압도적인 힘 덕분이었다.
“아마 다 셀 수도 없을 겁니다. 저 녀석은 저걸 위해 살아왔으니.”
유원의 대답에 우마왕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
“우리, 구면이던가?”
“그런 셈 칩시다. 상황이 이러니.”
“하긴. 팀으로 움직이려면 그러는 편이 낫긴 하겠군.”
손오공과 꽤 안면이 있어 보이는 사이.
더군다나 유원은 제우스와 헤라클레스와 함께 이곳에 나타났다.
실력이 부족하다면 애초에 이 판에 끼어들지도 못할 터.
“믿어 보도록 하지.”
제우스가 시간을 끌어 주는 사이, 제법 몸이 회복된 우마왕은 근두운 위에서 다리를 뻗고 자리에 섰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어딘가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오공이 녀석을 만났을 때랑 비슷하군.’
마음이 가고, 믿음이 가는 녀석.
어째서인지 절대 질 것 같지 않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미 끝났을지도 모르겠어. 저런 걸 정통으로 맞았으니.”
제우스의 스킬을 눈으로 확인한 헤라클레스의 말이었다.
천벌.
제우스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중, 가장 위력적인 기술.
무엇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천벌은 지금껏 헤라클레스가 보아 온 천벌 중 최고였다.
저런 걸 맞고 살아 있을 리가.
“안 끝났어.”
“안 끝났느니라.”
동시에 대답하는 유원과 우마왕.
이에 헤라클레스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낄낄 웃는 손오공이 말을 보탰다.
“저 정도로 끝날 거면, 내가 이 고생도 안 했지.”
절대 끝나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세 사람.
아니나 다를까.
캬아아아-!
저릿, 저릿-.
아난타의 울음소리가, 거대한 구덩이 아래에서 들려왔다.
팟-.
‘슬슬 시작이군.’
키트를 슬쩍 확인하며, 유원은 근두운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쪽도 말이야.’
* * *
츠으-.
츠츠, 츠-.
제우스의 몸에 전격이 흘렀다.
제어가 되지 않고 남은 힘들이 발현되는 현상.
표정은 달라진 게 없지만 제우스의 이마에는 땀 한 방울이 흘러 턱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펄럭-.
날개를 펼쳐 날아오른 아난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 개에 달하던 머리 중에는 드문드문 빈 곳이 보였다.
천벌로 인해 소멸된 머리들이었다.
“장기라고 내세울 게 고작 맷집뿐이더냐.”
『설마 그럴 리가요.』
기유웅-.
아난타가 날개를 접고 몸을 웅크렸다.
『지금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난타의 황금색 눈동자 위에 붉은 핏줄이 곤두섰다.
웅크린 몸이 빠르게 줄어들며, 거대한 몸체를 이루고 있던 마력이 응집되어 갔다.
“어딜.”
피싯-.
무얼 하려는진 몰라도 그걸 그냥 두고 볼 제우스가 아니었다.
창을 만들어 쏘아낼 시간도 아까운지 그는 두 개의 손가락을 세워 아난타를 향해 푸른 전격을 빠르게 쏘아냈다.
지금 그에게 남아 있는 마력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말이다.
콰릉-!
지상에서 천둥이 치듯, 푸른 전격이 아난타의 몸을 휩쓸었다.
그리고 이내.
“성격 한번 급하십니다.”
뚜둑, 뚝-.
눈을 가릴 듯이 기른 노란 머리에 구릿빛 피부.
훤칠한 키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
갑작스레 나타난 남자를 보며, 제우스는 눈살을 구겼다.
“아난타인가.”
“눈치 빠르시네요.”
서글서글 웃는 얼굴은 방금 전까지 싸우던 괴물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덕분에 아까운 머리들을 잃었습니다.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어요.”
제우스의 천벌이 떨어지고 잃어버린 머리들이 백을 넘었다.
아난타의 머리는 그가 지닌 힘의 크기를 상징하기도 했으니, 그만큼 큰 피해를 입은 셈이었다.
물론, 방금 전의 일격으로 끝을 보려고 했던 제우스로서는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쪽이 본모습인가?”
“글쎄요.”
“……하긴. 상관없나.”
스윽-
제우스가 몸을 돌렸다.
갑작스레 등을 내보이는 제우스를 보며, 아난타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뭘 하지는-.”
부우웅-.
그 순간 날아오는 주먹.
콰웅-!
눈앞에서 터진 전격의 폭발에 아난타의 몸이 뒤로 밀려 날아갔다.
지이익-.
발로 지면을 밟아 멈춘 아난타가 자신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 남자를 노려보았다.
“몸집은 작아졌어도 아직 무겁군.”
오랜만에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러 뻐근해진 손목을 꺾는 헤라클레스.
이내 아난타의 뒤쪽으로 근두운 위에서 뛰어내린 손오공과 우마왕이 도착했다.
“회복 완료다, 이 자식아.”
아난타를 노려보며 투기를 끌어 올리는 손오공.
그는 망설임 없이 아난타를 향해 돌진하며 여의봉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좀 더 누워 계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파짓-.
손오공의 머리 위를 잡은 아난타.
화안금정으로도 쫓아갈 수 없는 속도에 손오공이 놀라 고개를 든 순간, 아난타의 손바닥이 그의 얼굴을 덮었다.
쩡-!
동시에 날아가는 아난타.
손오공의 옆에 있던 우마왕의 혼철곤이 아난타를 후려친 것이다.
“그리운 상황 아니더냐?”
혼철곤을 어깨에 툭 올린 우마왕이 아난타를 노려보았다.
“넌 이번에도 봉인될 거다, 아난타.”
“절 봉인하려거든, 그때처럼 백만 명은 데려왔어야지요.”
자신만만한 표정의 아난타.
그는 망설임 없이 손오공과 우마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릉, 쾅-!
아난타의 주먹이 뻗어질 때마다 천둥소리가 터져 나왔다.
손오공과 우마왕.
그리고 헤라클레스가 가세하여, 아난타를 몰아붙였다.
거기에 더해.
콰웅-!
멀리서 들려온 천둥소리와 함께, 한 줄기 푸른 전격이 아난타의 어깨를 꿰뚫었다.
“열 명도 필요 없느니라.”
제우스.
그는 다시 자신의 포지션으로 돌아가 거리를 벌린 채 창지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비록 팀을 이루어 싸우는 만큼 전처럼 큰 위력의 벼락을 쏘아낼 수는 없지만.
그 위력을 알고 있는 아난타로서는, 제우스의 창을 조심하느라 움직임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상관없습니다.”
정면에서 가로막고 있는 헤라클레스를 향해 달려드는 아난타.
몸에 박힌 창을 무시한 채 달려드는 아난타를 보며, 헤라클레스는 혀를 찼다.
“어리석기는.”
근접전에서 펼쳐지는 육탄전은 헤라클레스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거인의 힘이 전신에 깃듭니다.] [‘기간토마키아’의 힘이 몸에 깃듭니다.]헤라클레스의 몸에 깃든 마력.
기간토마키아의 힘이 말아 쥔 주먹에 담기며, 아난타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콰웅-.
치지지지-!
“……!”
헤라클레스와 아난타의 사이에서 폭발하는 전격.
밀려 날아가지 않는 아난타의 주먹에 헤라클레스는 눈을 부릅떴다.
‘이 녀석, 힘이…….’
자신에게도 정면에서 밀리지 않는 힘.
헤라클레스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속아 잠시 잊고 있었다.
상대는 아난타.
천 마리 용의 머리를 한 거대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텅-!
헤라클레스와 주먹을 부딪친 순간, 하늘 높이 뛰어오르는 아난타.
펄럭-.
이내 그의 등 뒤로 날개가 펼쳐졌다.
“뭣…….”
“도망치려는 건가?”
설마하니 아난타가 싸움이 아닌 도망을 선택하다니.
예상 밖의 상황에 손오공과 우마왕이 빠르게 움직였다.
서둘러 하늘 위로 뛰어올라 아난타를 쫓으려 했으나.
펄럭-.
손오공과 우마왕의 앞을 가로막는 날개.
손오공에 의해 제압되었던 브리트라가 깨어나 둘의 앞을 막아섰다.
-갈 수 없다.
그르르르-.
남은 힘을 쥐어짜 이빨을 드러내며 불길을 키우는 브리트라.
함부로 그를 넘어설 수 없어, 우마왕은 손오공을 돌아보며 질책했다.
“숨통을 끊은 게 아니었던 거냐?”
“못 싸우게 된 놈한텐 관심이 없어서…….”
“너한테 맡긴 내 잘못이구나.”
우마왕이 한숨을 푹 쉬었다.
제아무리 빨리 브리트라를 제압한다 해도 이제 와서 작정하고 도주를 택한 아난타를 쫓는 건 어려웠다.
그렇게 아난타가 전장을 벗어나려는 때.
쫘아악-.
아난타의 정면에서 공간이 갈라지며, 검은 세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짜증 나게 하는군.”
끝난 줄 알았던 아난타가 눈살을 찌푸렸다.
“……한 명이 더 있었나.”
검은 머리의 사내.
유원의 손에는 풀어진 회색 머리의 소년이 붙잡혀 있었다.
‘간다르바?’
아난타를 따르는 충신.
그 누구도 잡을 수 없어 지금껏 신기루처럼 여겨지던 안개.
간다르바가 유원의 손에 붙잡힌 것이다.
“못 지나간다.”
오른손에 찬 반지, ‘우라노스의 심장’에서 검은빛이 뿜어졌다.
“이 녀석도, 너도.”
화아아아-!
그러자 유원이 있던 공간.
‘타르타로스’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아난타의 주위를 감쌌다.
[‘타르타로스의 감옥’이 대상을 속박합니다.]유원에게서 흘러나온 힘에 아난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순간, 오래전.
타르타로스와 벼락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한 위대한 랭커의 얼굴이 그의 얼굴 위로 겹쳐져 보였다.
“……당신이었습니까. 이 판을 만든 게.”
진짜 우라노스의 힘을 가진 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제우스는 몸통일 뿐이었다.
그 몸통을 움직이는 진짜 머리는, 눈앞에 있는 저 흑발의 사내였다.
파지지지-!
아난타는 온몸에 전격을 휘감으며 황금색으로 물든 눈을 빛냈다.
퍼엉-!
타르타로스의 감옥 속으로 뛰어 들어온 아난타.
두꺼운 어둠이 아난타의 몸을 속박했다.
환한 전격이 어둠을 밝히고, 서로 다른 꼭짓점에 있는 두 가지 속성이 부딪쳤다.
치지, 치지지지-!
화아아아-.
단숨에 뚫고 나가는 건 실패였다.
뒤쪽에서는 브리트라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마 멀지 않아 손오공을 비롯한 랭커들이 도착할 터.
“여유롭게 싸울 순 없겠습니 다.”
브리트라가 벌어 줄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1분 남짓.
아난타는 칼을 빼어 드는 유원을 보며 결심을 굳혔다.
‘머리 몇 개 정도는 주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