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80
* * *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커억-.”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야마가 눈을 떴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컴컴한 하늘과 땅.
혹시나 싶어 야마는 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장님이라도 된 걸까.
“일어났습니다.”
고개를 불쑥 들이미는 바루나의 얼굴에 야마는 겨우 안도했다.
“저승은 아니군.”
“갑자기 저승은 왜?”
바루나의 물음에 야마는 고개를 돌려 유원을 찾았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건지, 느긋이 책을 읽고 있는 유원의 모습에 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죽는 줄 알았다.”
아마 유원이 하려 했으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다시 눈을 뜬 야마의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이 세계에 가득 차 있던 망령들도.
무한에 가까워 보였던 거대한 마력의 바다도.
모든 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라진 게 아니야.’
그들은 분명 이곳에 존재했다.
단지, 유원의 뜻에 따라 보이거나 느껴지는 게 다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원은 일부러 야마에게 이곳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야마는 금세 눈치채고는 유원에게 다가갔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야마의 모습에 유원은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야마는 유원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야마는 유원을 기억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믿을 수 있다.
‘이런 힘을 다루는 자라면…….’
타르타로스의 힘을 다스리는 자.
이 하나만으로도 그는 최상위 하이랭커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힘을 가진 거나 다름없었다.
야마의 인사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씩이나 할 일은 아니었어.”
“이래야 제 마음이 편합니다.”
야마와 유원의 얼굴을 번갈아보는 바루나.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하는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뭔 일 있었습니까?”
“아니. 아무 일도.”
턱-.
야마는 바루나의 어깨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명하기도 입 아프고, 유원을 의심하지 않는 바루나에게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한 시간 정도.”
“다행히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군.”
혹시 큰 민폐를 끼쳤을까 봐 걱정하던 야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 시간.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아직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그래도 서두르자고. 연락할 곳이 많으니까.”
“혹시 형님, 늦으면 형수님한테 혼날까 봐 그러신 건…….”
“너도 기절할래?”
유원의 눈초리에 바루나가 입을 다물었다.
제아무리 눈치가 없다 해도 그는 야마가 갑자기 정신을 잃은 이유가 유원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관리자의 눈을 피해 온 장소.
야마는 드디어 거리낄 것 없이 말을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절 노리는 눈이 많아졌습니다.”
“심부름꾼들?”
“예, 제가 조심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요.”
비슈누가 죽던 자리에 함께 있던 야마.
어느 누구보다도 비슈누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그였다.
또한, 비슈누를 제외하면 데바에서 가장 높은 랭킹을 보유하고 있기도 했다.
당연히 관리자들의 눈에는 그런 야마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좋네, 그럼. 미끼가 둘이나 되 니.”
“예, 그렇지요.”
“연락처들은 다 알지?”
“알긴 압니다만…….”
야마는 바루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건 이 녀석이 하는 게 나을 겁니다. 전 평생 비슈누 님의 그림자로만 살아왔으니.”
“그래, 그럼. 누가 연락하든 상관은 없으니.”
“그리고 혹시 절 미끼로 쓰실 거라면…….”
잠시 고민하던 야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두 팔 걷고 한 번,열심히 낫 을 휘둘러 보겠습니다.”
야마의 눈동자가 검게 불타올랐다.
비슈누의 죽음 이후, 그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아닌 한 명의 전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리 열심히 할 필요는 없어. 필요한 건 낫이 아니라 이름이랑 얼굴이니까.”
“예?”
“미끼라고 했지, 언제 말로 쓰겠다고 했나?”
유원의 머릿속에 야마의 활약은 없었다.
“일단 미끼부터 뿌려.”
어리둥절한 표정의 야마로부터 눈을 돌린 유원은 바루나에게 지시했다.
“비슈누가 살아 있다고 말이야.”
거짓인 걸 알아도 물 수밖에 없는.
비슈누라는 이름은, 그런 미끼였다.
* * *
뽀얀 피부에 비단처럼 곱고 푸른 머릿결을 어깨까지 기른 여인이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온 것인데, 심란한 마음 탓인지 소리는 귓가로 흘러 지나갈 뿐이었다.
“비슈누 님이…….”
그녀는 바루나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바루나 : 비슈누 님이 살아 계셔.]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비슈누는 죽었다.
그건 랭킹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왜?
[바루나 : 열흘 후 정오까지 모두 메시지에 전송된 장소로 모여.]친절하게 약속 시간과 장소까지.
어떻게 된 일이냐며 메시지를 남겨도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다.
“미쳤나, 이게?”
구겨지는 소마의 표정.
데바의 하이랭커 중 한 명인 그녀는 바루나의 돌발 행동에 황당함을 보였다.
갑자기 비슈누의 이름을 들먹이더니, 데바의 하이랭커들을 소집했다.
비록 그가 데바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오는 하이랭커라 해도 이건 조금 도가 지나쳤다.
그렇다는 건 즉.
‘정말, 비슈누 님이 살아 있다는 건가?’
바루나가 미친 게 아니라면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게 된다.
비슈누의 생존 소식에 소마가 혼란스러워 하던 때였다.
스스스스-.
소마가 서 있는 모래사장 아래.
개미지옥처럼 모래가 아래로 빨려 들어가며, 그 속에서 예상 못한 손님이 나타났다.
“소식 들었냐, 소마?”
갈색 머리와 털로 몸이 뒤덮인 남자.
야수처럼 생긴 눈동자와 원숭이를 닮은 외향 탓에 그는 보급형 제천대성이라며 놀림 받는 랭커, 하누만이었다.
“그래. 들었다.”
“바루나 이 자식, 진짠가?”
“연락을 안 받아.”
키트를 빤히 바라보던 소마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뭔가 있긴 있어.”
“정말일까? 비슈누 님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는 하누만.
소마는 그런 하누만의 반응을 살피다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진짜인지, 아닌지.”
“랭킹에서는 사라지셨잖아?”
“관리자에게 돌아가셨으니까. 그 랭킹을 관리하는 것도 관리자들 휘하의 관리국이고.”
“그럼…… 랭킹이 사라진 게 비슈누 님이 돌아가셔서가 아니라…….”
“그래……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말한 소마는 키트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으로서는 모일 수밖에 없어. 비슈누 님의 이름이 걸린 문제니까, 이건.”
비슈누.
데바에서 그 이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새삼 다시 느껴졌다.
이 이름 하나로 데바의 하이랭커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계산된 건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 이름이 문자에 들어 있는 이상 자신들은 바루나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야마도,, 올까?”
조심스러운 하누만의 질문.
그에 바다를 향해 몸을 돌리고 있던 소마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 녀석, 비슈누 님의 장례식 이후로 행적을 감췄잖아?”
야마는 비슈누의 그림자였다.
비슈누 다음으로 랭킹이 높지만 데바의 운영에는 조금도 관여하지 않던 그는, 비슈누의 장례 이후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그와 친분이 있는 몇몇 랭커들이 야마를 찾아 나서기도 했었지만 소식은 알 수 없었다.
“오겠지. 반드시.”
소마는 확신하듯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야마는 반드시 을 거다.
그는 비슈누에 관한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
잠시 뜸을 들이던 하누만은 소마와 마찬가지로 바다를 돌아보았다.
“역시, 참석해야겠지?”
아마 이 메시지를 받고 움직이지 않을 데바의 랭커는 없을 것이다.
야마와 바루나는 물론이거니와 소마와 하누만, 드루바, 데바후티, 가젠드라…….
데바에 이름을 올린 수많은 랭커들이 한 자리에 모일 게 분명했다.
“진짜든, 아니든.”
그리고 그 시각.
바루나에게 메시지를 받은 수많은 랭커들이 비슷한 대화를 나누며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슈누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정반대거나.
* * *
“비슈누가 살아 있다라…….”
71층의 관리국.
탑처럼 세워진 거대한 건축물의 꼭대기에서 관리자는 데바에 일어난 징조를 살폈다.
“진짜일까?”
관리자의 앞에 선 심부름꾼, 하얀손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겠지. 어떤 놈들이 처리했는데.”
앙상한 얼굴의 관리자는 고민에 빠진 듯 이마에 주름을 만들었다.
“하지만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상대는 비슈누였다.
그 오랜 세월, 탑을 주름잡은 최강의 랭커.
비록 제우스에게 밀려 1위의 자리를 내주었다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가장 오랫동안 최고를 누려 온 존재였다.
“살아 계실 거라 생각하십니까?”
“만일의 경우에는.”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여부를 밝히기 위해 바루나를 찾으려 했으나, 어째서인지 그럴 수도 없었다.
자취를 감춘 바루나.
야마와 마찬가지로 그는 심부름꾼들의 눈을 벗어나 있었다.
‘비슈누 짓인가.’
그라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다.
심부름꾼들의 눈을 피하는 일쯤이야 비슈누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만약이긴 하지만, 정말 그런 거라면…….”
관리자의 눈에 시퍼런 안광이 흘렀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숨통을 끊어야겠지.”
관리자는 하얀손을 통해 어떻게든 비슈누와 바루나를 찾아낼 것을 지시했다.
또한, 야마가 사라진 것과 비슈누의 관계를 밝혀내라는 것도 함께였다.
그렇게 관리국의 꼭대기에서 비슈누로 인한 이야기가 한창일 때.
“흥, 흐흥,흥-.”
관리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흥겨운 콧노래.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관리자의 시선이 콧노래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하얀손의 뒤편.
언제부터 있던 건지,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누가 감히-.”
피잇-.
남자를 발견한 심부름꾼, 하얀 손이 역정을 내려는 그 순간.
푸화악-!
목에 붉은 선이 그어진 하얀손이 피를 뿜으며 자리에 쓰러졌다.
하얀손.
그는 71층의 심부름꾼들의 총괄 이었다.
즉, 71층에서는 관리자 다음가는 직위를 가진 자.
그런 그가, 순식간에 숨통이 끊어진 것이다.
콰득, 콰드득-.
하얀손의 시체를 먹어치우는 이빨.
남자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과 길게 찢어진 눈동자에 관리자는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아난…… 타?”
봉인에서 풀려나, 제천대성과 제우스에게서 도망쳤다고 알려진 그가 대체 왜 이곳에 나타난 건지.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지? 약속과는 다르지 않나?”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에요.”
저벅-.
아난타가 관리자를 향해 다가왔다.
“당신들 뜻대로 움직일 필요가 없겠더란 말입니다.”
관리자들은 랭커에게 대적하기 위해 아난타의 봉인을 풀어 주었다.
괴물왕 아난타.
그의 힘이라면 분명, 올림포스까지도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믿고 말이다.
그런데.
“제일 맛있는 게 그쪽들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했던 아난타의 이빨이, 자신들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