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82
* * *
3000년 전.
이제 막 플레이어가 된 바유는 상처 입고, 반쯤 발가벗은 채 거리를 활보했다.
탑에 새로 들어온 플레이어를 노리는 승냥이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망할 놈들…….”
털썩-.
결국 바유는 주저앉았다.
배에 난 상처가 점점 벌어졌다.
서둘러 지혈하고, 약을 바르고, 오랫동안 상처를 치료해야만 했다.
하지만.
“저쪽이다-!”
“저쪽으로 도망쳤다-!”
“놓치지 마!”
후환을 남기지 않겠다는 듯, 바유의 모든 것을 빼앗은 기존의 플레이어들은 그를 집요하게 쫓아왔다.
“젠장, 젠장, 젠장-!”
이런 몸으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악에 받쳐 정신력만으로 다리를 움직이는 건 여기까지였다.
억울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그 지옥 같은 튜토리얼을, 어떻게 통과했는데!
‘왜 건물이…… 울렁이는 건데…….’
흐릿해지는 시야.
자리에 주저앉은 바유의 눈빛에 초점이 사라져 갔다.
자신을 뒤쫓는 추적자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더는 가망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지 않으냐?”
스윽-.
흐릿한 시야에 누군가 나타났다, 그의 손길이 닿자, 어딘가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바유의 앞에 나타난 남자.
비슈누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바유의 눈을 덮었다.
“한숨 푹 자고 나면, 모든 게 좋아져 있을 거란다.”
그날.
그렇게 바유는 비슈누에게 구원받았다.
* * *
쏴아아아-.
살벌한 살기가 장내를 뒤덮었다.
바유를 향한 무수히 많은 눈들.
한 명 한 명은 바유보다 강한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다들 진정 좀 해 봐. 숨 막히게.”
“바유-!”
“네가 무슨 낯짝으로 여길-!”
소리를 지르는 동료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바유는 품 안에서 부채를 꺼내 휘둘렀다.
푸화아아-!
맹렬한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딱히 살기를 담지도 않았고, 이 자리에 모인 랭커들에게는 위협적인 수준의 바람도 아니었다.
바람이 품고 있는 의미는 명확했다.
좀 조용히 해 보라는 뜻이었다.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라는 걸 해 봐라, 이 머저리들아.”
쯧, 혀를 차는 바유.
그의 말은 급하게 진정시킨 불길에 기름을 들이 부은 격이었다.
“뭐……?”
“머저리?”
“지금 말 다 했냐, 바유!”
다시 불같이 화를 내는 데바의 랭커들.
하지만 처음과 같이 섣부르게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노련한 랭커들이었다.
현재 데바의 공적인 바유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건, 분명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는 뜻일 터.
“그래, 니들은 머저리들이다.”
바유는 단언하듯 말했다.
그 순간,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야마와 바루나가 있는 곳이었다.
“생각을 해 봐라. 지금 살아남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
“데바를 배신해서 관리자들에게 붙어야 한다 이거냐?”
분노한 하누만의 외침.
그는 성큼 바유를 향해 다가갔다.
하누만이 딛고 선 나무가 쩍쩍 말라비틀어지며, 그의 분노가 표출되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바유는 침착했다.
“배신이 아니다.”
“무슨 헛소리냐?”
“어차피 우린 다 비슈누 님을 중심으로 뭉쳐 있던 것뿐 아니었나? 비슈누 님이 돌아가신 지금, 우리끼리 데바라는 이름으로 뭉쳐 있는 게 무슨 의미지?”
더는 못 들어 주겠다는 듯, 하누만은 팔을 크게 휘저으며 소리쳤다.
“그게 배신이다, 바유!”
쏴아아-.
말라비틀어진 나무에서 모래가 솟아올랐다.
바유의 주위를 휘감는 모래 더미. 마력을 끌어올린 하누만은 목에 핏대를 세웠다.
“비슈누 님은 관리자들의 손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관리자들에게 붙어서-!”
그 순간.
쩌저저적-.
바유를 덮쳐 가던 모래가 얼어붙었다.
단단하게 묶인 모래. 그리고 하누만에게 대항하는 익숙한 성질의 마력.
“좀 닥쳐 봐, 하누만. 얘기 좀 듣게.”
하누만은 자신을 막아선 여인을 바라보았다.
“소마……?”
“바유가 말하고 있잖아?”
그녀는 바유의 앞을 막아섰다.
비단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머뭇거리는 동료들.
아니, 동료라고 생각했던 자들.
“바유와 수르야만이 아니었군.”
구구, 구구구-.
하누만의 분노에 나무가 흔들렸다.
그는 데바의 하이랭커. 비록 바유보다는 랭킹이 낮을지언정 웬만한 랭커들 수십 명 이상의 힘을 가진 존재였다.
하나 그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데바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썩어 있는지 함부로 재단할 수 없었기에.
“그래. 들어 주마. 어디 지껄여 봐라.”
“고마워, 하누만.”
서글서글 웃는 얼굴에 당장이라도 주먹을 꽂아 버리고 싶었다.
하나 그럴 순 없었다.
자신 혼자서 어떻게 해볼 상황 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 다.
지금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힐끔-.
하누만의 시선이 가만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야마에게로 향했다.
‘왜 움직이지 않는 거냐, 야마.’
비슈누가 없는 지금, 그는 데바의 랭커들 중 단연 독보적인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두 자릿수의 랭킹을 지닌 하이랭커.
그의 힘이라면 바유와 소마는 물론이고, 열 명가량의 하이랭커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도 가능했다.
무엇보다 그는 하누만이 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비슈누에게 진심이었다.
한평생 비슈누의 그림자로 살아온 야마.
그라면 분명 바유의 등장과 함께 분노를 터뜨릴 거라 생각했건만.
‘혹시 야마, 너도?’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함부로 판단할 순 없었다.
애초에 데바가 이 지경이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동료라고 생각했던 모두가, 어쩌면 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누만이 침묵하는 사이, 바유가 말을 이어 갔다.
“비슈누 님은 돌아오지 않아. 우린 선택해야 한다. 살아갈지, 말지.”
“관리자와 싸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누군가의 질문에 바유는 냉소를 지었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딘 왕은 죽었고, 비슈누 님도 죽었다. 그밖에 수많은 랭커들이 목숨을 잃었지.”
“승산이 없다?”
“그래. 그리고 지금은 더 그래. 나를 비롯한 여러 랭커들이 관리자들에게 붙었으니까.”
“비겁한 말을 당당히도 하는구나, 바유.”
으르렁거리는 하누만의 말에 바유는 그를 돌아보았다.
“어쩔 수 없어, 하누만. 비슈누 님께는 죄송하지만 난 좀 더 살아야겠다.”
“비슈누 님께 받은 은혜를 어찌-.”
“비슈누, 비슈누, 비슈누-!”
화아아아-!
바유의 외침에 그의 주위로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살기로 가득한 바람.
눈이 뒤집힌 바유는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그런 거에 언제까지 묶여 있어야 하는 건데? 목숨 한두 번 구해 줬다고, 내 목숨이 어디 비슈누 거냐고!”
하누만에게서 눈을 돌려, 바루나를 바라보는 바유.
평소 알고 지내던 바유와는 완전 상반되는 살기 띤 얼굴에 바루나는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잘들 생각해.”
고오오오-.
그리고 그 순간.
“지금 여기, 누가 와 있는지 생각들 하고.”
하늘 위.
구름이 걷힌 하늘 위.
까르르, 까르르-.
까르르르-.
그 위에서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수천 명에 달하는 수많은 광대들.
“심부름꾼……?”
하늘을 부유하며 심부름꾼들이 데바의 랭커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체 저만한 숫자가 머리 위에 있었는데, 왜 지금껏 눈치를 채지 못했던 건지.
‘설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한 번 맞춰 볼까?”
불안한 하누만의 표정에 바유가 퀴즈를 풀듯 또박또박 말했다.
“여기, 관리자도 온 건가?”
고오오오-.
그 말에 대답하듯, 데바의 랭커들의 몸을 짓누르는 마력.
“정답이다, 하누만.”
오싹한 느낌이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본능에 새겨진 공포와 경외심.
하누만은 스스로 무릎을 꿇으려는 자신의 나약한 정신을 붙잡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게…… 관리자……?’
앞장서서 바유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던 하누만의 기가 꺾였다.
수천 명에 달하는 심부름꾼들은 물론, 그들 사이에 모습을 드러내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며 하누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싸운다.
그런 상상조차 들지 않는 상대가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젠장.’
퍼억-!
하누만은 떨리는 자신의 다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아릿하게 퍼지는 통증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아무리 관리자가 나타났다지만 비슈누의 원수를 눈앞에 두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공포에 떨다니.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다들 잘 생각해.”
어느덧 데바의 바유가 아닌, 관리자의 대변인이 된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죽어 버린 비슈누에게 목숨을 맡길지. 아니면 살아남을지.”
“…….”
“…….”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복잡한 생각들이 표정 위에 떠올랐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중에는 몇몇, 결정을 내린 듯 확신에 찬 표정을 짓는 자들도 있었다.
당황한 하누만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들 뭐야.’
제아무리 목숨을 담보로 한 협박이라지만.
“니들 정말, 저 개소리에 넘어갈 거냐?”
이상했다.
아무리 목숨이 아까워도 그렇지, 많은 이들이 너무 쉽게 흔들리고 있었다.
생사의 고비를 넘어 랭커가 되고, 그중에서도 상위에 속한 데바의 랭커들이 말이다.
“미안해, 하누만.”
저벅-.
그때, 처음 결단을 내린 사람이 나타났다.
“이해해 줘. 이건 우리들의 결정이니까.”
소마.
그녀는 바유의 옆으로 다가가며, 자신이 누구의 편인지를 전했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척, 척, 척-.
바유의 주변으로 우르르 모여드는 데바의 랭커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하누만은 소마가 한 말을 곱씹었다.
“‘우리’라고……?”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한 듯한 그녀의 말에, 하누만은 전부터 느끼던 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뿌득-.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이곳에 오기 전부터 넘어가 있던 자들.
데바는 이미 오래전부터 썩고, 또 썩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자들도.
“이래선 방법이 없겠는데.”
“관리자까지 나선 마당에야…….”
“죽든가, 신념을 지키든가. 둘 중 하난가.”
이젠, 선택을 해야 할 때였다.
죽을지, 말지를.
“야마! 무슨 말이라도 해 봐!”
하누만은 야마를 돌아보았다.
그 누구보다 비슈누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던 그라면.
조금이라도 이 상황에 분노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야마?”
야마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팔짱을 끼고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무언가 고민이라도 하듯이 숨을 죽인 채로.
‘설마 야마, 너까지?’
동료라 생각했던 이들을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어 버린 지금.
야마라고 해서 데바를 배신했다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어쩌면 이 자리를 만든 바루나까지도 말이다.
“후우-.”
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심부름꾼들이 웃고 떠드는 하늘 위.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관리자의 시선을 마주하며, 야마는 이를 뿌득 갈았다.
그리고 그때.
저벅-.
움직이기 시작한 또 한 명.
“……참고 있기 힘들었습니다.”
그가 움직이자, 야마는 그제야 팔짱을 풀고 눈을 떴다.
“이제 움직여도 되는 겁니까?”
“그래.”
화륵-.
눈을 붉게 불태우며 유원이 바유를 향해 다가갔다.
“이제 안 참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