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85
* * *
아우터.
101명의 관리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탑 바깥, 불가해의 존재들.
관리자들은 그들의 존재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몇몇.
관리자들이 더욱 두려워하던 이름이 있었다.
메에-.
메에에-.
검은 숲에는 그녀가 있었다.
그녀가 지닌 이름에 따라 수많은 산양들이 검은 숲을 거닐며, 산 자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분명 십 년 전의 싸움에서 그 이름은 사라졌어야 할 터.
“어째서…….”
콱-.
차토구아는 자신의 어깨를 물어 뜯는 산양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어째서 이 이름이…….”
우득, 우드득-.
산양의 머리가 일그러졌다.
차토구아의 손끝에서 발현된 힘은, 응축된 마력으로 인해 모든 걸 부수고 파괴시켰다.
퍼억-!
터져 나가는 산양의 머리.
스으으-.
죽음과 동시에 산양의 몸이 보랏빛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그렇게 차토구아의 손에 사라진 한 마리의 산양.
메에에-.
메에에에-.
동료의 머리가 터져 나갔음에도 다른 산양들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차토구아를 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으로 보듯, 군침을 흘리며 배고픈 울음소리를 더하고 있었다.
“누구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한 명이.”
그러거나 말거나 유원은 차토구아에게 비슈누를 죽인 다른 한 명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유원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최소한 한 명이 더 있다고.
그리고 그건, 적어도 눈앞에 있는 차토구아는 아닐 거라고 말이다.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저 녀석이 슈브 니구라스가 되는 건 아니야. 아직 놈은 이름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슈브 니구라스의 이름을 가지고 나타난 유원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빠르게 굴러가는 눈동자.
그녀는 주위에 있는 산양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고작해야 백 마리 정도다.’
백 마리.
본래 슈브 니구라스를 대표하는 이름은 ‘천 마리의 산양을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였다.
천 마리.
지금 나타난 산양들의 숫자는 그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숫자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차토구아는 속으로 승리 여부를 가늠했다.
‘김유원이 무슨 수로 그들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여기서 처리해야만 해.’
일단 자리를 벗어나 더 많은 관리자들을 모아 오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를 보내 언제 어떻게 커 버릴지 모르는 이상, 차토구아는 이 자리에서 끝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좀 더 숨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기이이잉-.
차토구아의 손끝에 마력이 맺혔다.
“안 그래요? 김유원 씨.”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의 마력이었다.
대기 중의 마력을 모두 자신의 것처럼 다루는 그녀에게, 공간이나 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유원은 그런 그녀의 기술에는 별반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제 기억났나?”
“예, 전부는 아니지만요. 왜 잊고 있었을까요? 당신 같은 사람을.”
기억이 일부 돌아온 아직까지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더 생각하다 보면 날 것도 같았지만 지금은 전투 중.
이유 따위는 나중에 찾아도 늦지 않았다.
그 전에.
“당신에게 더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건 확실히 알겠어요.”
그녀는 일단, 눈앞에 있는 유원의 숨통부터 끊어 놓을 작정이었다.
구구구구-.
주위의 산양들이 울부짖었다.
거대한 마력의 압박.
하늘이 점차 가까워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몸이 짓눌리는 감각에 산양들이 무릎을 꿇었다.
세계라는 거대한 괴물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야마를 비롯한 데바의 랭커들이 싸움을 멈추었다.
“무슨 마력이…….”
“관리자 짓인가?”
“비슈누 님은 이런 녀석과…….”
관리자가 뿜어내는 거대한 마력에 굳어진 랭커들.
야마 또한 멀리서 차토구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세상의 마력이 다 자기 거라도 된다는 건가.”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마력을 깨닫고 그것을 몸의 일부처럼 다뤄 온 랭커라면, 이런 힘을 느낀 순간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낫을 쥔 야마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지금은 두렵다고 멈춰 있을 때가 아니었다.
“……도망치자.”
처음에는 작게 나온 목소리.
그 말에 가까이 있던 몇몇 동료들이 그를 바라보자, 야마는 고개를 휙 돌리며 소리쳤다.
“최대한, 멀리-!”
파앗, 팟-.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데바의 랭커들은 차타구아의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이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파이며 거대한 나무의 가지가 꺾여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퍼억, 퍼억-!
비슈누가 만들어 낸 나무들이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어떤 건 짓이겨지고, 또 다른 건 폭발했다.
불규칙한 마력의 흐름은 어떤 형태로 힘이 발현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콰드득-.
산양들의 몸이 짓이겨졌다.
차토구아를 향해 울부짖던 산양들이 하나둘 보랏빛 연기가 되어 흩어져 갔다.
“요란하기는.”
유원은 그런 차토구아를 지켜보다 중얼거렸다.
“그래도…… 저런 게 터지면 좀 곤란하겠어.”
힐끗, 유원의 시선이 향한 곳은 멀리 도망치고 있는 데바의 랭커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빨리 움직였군.’
다들 꽤 멀어졌다.
하지만 안정권에 들어서려면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 녀석 이름은 별로 쓰기 싫었는데…….’
여러 능력이나 이름 중,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
유원은 그 이름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혼자 올 걸 그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사용할 거라면 괜한 고집으로 피해를 늘릴 이유가 없었다.
츠츠츠-.
유원의 발밑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류.
그렇게 결심을 한 순간.
“잘 가세요, 김유원.”
쿠오-.
차토구아를 중심으로, 세계가 하얗게 변했다.
* * *
모든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색깔을 지니지 않은 마력의 입자들이 대기를 집어삼켰다.
거대한 힘을 지닌 마력은 지나가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갔다.
“하아, 하-.”
그 새하얀 마력의 입자 사이에서 차토구아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많은 마력을 한 번에 움직인 건 오랜 시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너무 과했나.”
몸을 회복하려면 최소 몇 달은 잠에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아마 그때쯤이면 이미 회복을 끝낸 자타쿠아가 자신을 비웃고 있을 테지.
픽-.
“그래도 다행히, 화근은 없앴-.”
츠츠츠-.
그 순간.
새하얀 마력의 입자 가운데에 새로운 색이 입혀졌다.
마력을 집어삼키는 검은 기류.
작은 점에서 시작한 그것은, 빠르게 커져 갔다.
“뭐, 뭐야?”
화아아아-!
검은 기류는 마력의 입자와 충돌해 더 이상 마력이 범위를 넓혀 가는 것을 막아 냈다.
아니.
단순히 막아 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먹어 치우고 있다. 이 세계의 마력을 전부.’
마력을 먹어 치우는 성질의 힘.
그런 힘이 흔할 리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아는 지식 내에서 관리자의 권능을 뛰어넘는 스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내, 그 검은 기류의 정체를 확인한 차토구아의 눈이 크게 떠 졌다.
“설마…….”
[‘어리석은 혼돈’이 ‘차토구아’의 마력을 집어삼킴니다.]“……혼돈?”
어리석은 혼돈.
‘아자토스’에 가장 가까운 니알라 토텝의 이름.
저건 분명 이 세계에서 사라졌어야 하는 이름이었다.
아니.
그것은 다른 이름과는 달리, 허락되지 않은 이가 사용할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렇다는 건…….
지끈-.
머리가 다시 아파 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김유원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억이 더 또렷해져 왔다.
그리고 그 순간.
치치치치-!
검은 기류 한가운데.
어리석은 혼돈의 이름을 다스린 유원이 기다란 창 한 자루를 손에 쥐고 있는 게 보였다.
“어떻게 궁니르가-!”
유원의 손에 들린 게 궁니르가 아니라는 건 뒤늦게 깨달았다.
애초에 그건, 오딘의 아들인 토르의 손에 쥐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번쩍-!
차타구아의 마력을 꿰뚫으며 날아오는 거대한 창.
콰웅-!
“커어어…….”
차토구아의 가슴과 배를 관통하는 큰 구멍.
그녀의 몸을 꿰뚫은 창은 짙은 어둠 속성의 마력을 품고 있었다.
니르.
궁니르를 본 따서 만들어진, 빛과는 정반대되는 속성의 아이템.
분명 도깨비들에게 있어야 할 그 아이템이 유원의 손에 있었다.
“쿨럭, 컥…….”
몸에 큰 구멍이 뚫린 차토구아는 힘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느덧 그녀가 만들어 낸 기술은 혼돈에 먹혀 사라져, 주위는 온통 어리석은 혼돈의 기운만 가득 차 있었다.
평범한 랭커였다면 즉사했을 정도의 상처.
하지만 명색이 관리자인 그녀는 즉사하지 않고 어떻게든 몸을 회복하려 애썼다.
투둑, 투두둑-.
바닥에 쏟아져 내리는 핏물.
서서히 흐려지는 의식 속, 차토구아는 유원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슈브 니구라스의 이름을 다루지 못하는 게 아니었어.’
스멀, 스멀-.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혼돈.
만약 유원이 마음만 먹는다면 저것은 일제히 자신을 덮쳐, 혼돈을 더 키우기 위한 양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혼돈의 이름을 이 정도로 다룰 수 있는 자가, 고작 슈브 니구라스의 이름을 다루지 못할 리 없었다.
게다가.
‘이름뿐만이 아니야. 우리들의 권능에 화안금정, 천마령, 니르까지.’
간신히 고개를 든 차토구아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유원을 올려다보았다.
‘완벽하다.’
그는 마치 누군가 이 날을 위해 조각해낸 존재 같았다.
약점이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플레이어.
오딘이나 제천대성, 제우스와 같이 탑을 지배하는 여러 하이랭커들의 장점을 합쳐 만들어진 완전체.
죽음에 문턱에 선 그 순간, 차토구아는 떠올랐다.
“그가 부활했다.”
십여 년 전, 관리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그날.
그들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을 꺼냈다.
“아자토스가.”
그 이름이 거론된 순간, 관리자들은 한 명을 주목했다.
튜토리얼의 관리자.
아자토스의 이름이 깃들어 있던 알을 가지고 있던 자.
“넌 대체 그걸 어디서 구한 거지?”
기억났다.
전부 다.
“……사라진 게 아니었어.”
김유원.
그는 알을 얻었다.
아자토스의 진명이 깃든 알을 부화시켜 이름을 얻고, 또한 판도라에 깃들어 있는 아자토스의 기억을 얻었다.
그렇게 그는 아자토스가 되었다.
“이제 다 기억났나 보네.”
스윽-.
무릎을 굽혀 유원이 눈높이를 맞추자, 차토구아는 고개를 수그렸다.
그녀는 차마 유원과 눈을 마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이름을 잃었다고는 해도 그는 분명 아자토스였다.
이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
또한, 모든 이름의 주인이었던 자.
그런 존재로부터 두려움을 느끼는 건 관리자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유원은 그렇게 고개를 숙인 차토구아를 노려보며 황금색으로 이글거리는 눈을 불태웠다.
“100층에 있는 게, 내가 아는 그 녀석이냐?”
흠칫-.
차토구아의 어깨가 떨렸다.
그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유원이 묻는 ‘그 녀석’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덜, 덜덜-.
‘알려야 해.’
고개를 숙인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모두에게 알려야 해.’
전쟁이 끝나고, 관리자들은 결정했다.
탑을 지배하는 거대 길드를 몰아내고, 이 세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 주자고.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 녀석이 살아 있다고.’
자신들이 누구를 잊고 있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