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89
* * *
유원의 대답에 천무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게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대답인지.
천무진은 유원을 알지 못했다.
이름은 물론, 얼굴을 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디서 본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분일 뿐, 하이랭커인 천무진의 기억 내에서 유원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뻔뻔한 대답이로군.”
“사실이니까요.”
“난 그대를 처음 보네만.”
“전 처음이 아닙니다. 당신이 절 기억하지 못하는 거겠죠.”
천무진의 표정이 계속해서 일그러졌다.
기억을 잃어버린 그의 입장에서 유원의 말은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무진은 그 말을 마냥 거짓말이라 치부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상한 느낌이군.’
상대가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천무진은 오랜 세월을 살며 진실과 거짓 정도는 구별할 줄 안다고 자부했다.
유원이 천마령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탑에서 천마령을 익힌 자는 자신뿐이고, 그것을 전해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 또한 자신뿐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이 느낌.
묘한 기시감이야말로 천무진이 유원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래도 느낌만으로 넘어갈 문제는 아니지.’
천마령은 천마신교의 상징과도 같은 것.
그런 걸 단지 느낌이 묘하다는 근거만으로 넘길 순 없는 노릇이었다.
“증명할 수 있겠나?”
“딱히 그럴 방법은 없습니다. 저도 있으면 좋겠네요.”
천무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방법이 없다니. 그렇다면 천무진 역시 유원의 말을 믿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애초에 증명 같은 걸 할 생각이 없습니다. 전 제 볼일이 있어서 여기 온 거니까요.”
“나에게 볼일이 있던 게 아니었나?”
“예. 그러니 비켜 주십시오. 전 거길 지나가야겠습니다.”
천마령을 본 그의 반응에 따라 일이 쉬워질지도, 혹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 외에 천마령을 지닌 유원의 존재를 반긴다면 일은 쉬울 테고 그게 아니라면 조금 귀찮아지게 될 터.
분명한 건 천무진을 설득하거나 그의 기억을 되돌려 놓을 방법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이었다.
“……막무가내로군.”
“자격은 있을 겁니다.”
[‘천마신교 소교주’가 ‘천마신교 교주’, 천무진을 마주합니다.]번쩍 뜨이는 천무진의 눈동자.
천마신교 소교주.
그 칭호가 발현되자, 그는 다시 한번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만하면 자격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천마령에, 소교주라…….”
혼란스러웠다.
천마령도 그렇고 천마신교의 소교주 자리 역시 자신이 내어 줄 수밖에 없는 것.
기억에 없을 뿐이지 유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확실히 탐이 나는군.’
천무진은 다시 유원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가 단 하루라도 천마신교에 몸을 담았다면, 정말로 그에게 소교주 자리를 내주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에서 기억이 지워졌건 그가 천마신교의 2인자라는 근거는 차고 넘쳤다.
‘어쩌면 진짜일지도…….’
그렇게 천무진의 마음이 흔들리던 때.
“뭘 그리 빙빙 돌아가는지 모르겠군.”
쿵, 쿵-.
천산을 뒤흔드는 존재감.
높은 천산의 위로 붉은 하늘이 드리우며, 붉은 기운이 위로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일단 죽지 않을 만큼만 베어 보면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디아블로는 포유류의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유원을 노려보았다.
그 눈을 마주하며, 유원은 귀찮게 됐다고 생각했다.
‘역시 저 녀석이었나.’
천산의 봉우리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기.
마왕의 우두머리이자 천무진에게 검을 쓰는 법을 배운 그는 순식간에 랭킹을 높였다.
랭킹 6위.
마왕 디아블로.
그가 현 천마신교의 우두머리, 천무진의 제자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게. 어쩌면 저자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니.”
“미안한데 스승, 이번엔 나도 용건이 좀 생겨서 말이야.”
스릉-.
디아블로의 대검이 유원에게로 향했다.
“너, 혹시 악마냐?”
“……?”
그의 말에 천무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악마냐니.
멀쩡한 인간을 눈앞에 두고 하는 질문이라기에는 어딘가 이상했다.
악마라면 필시 뿔을 지니거나 마기를 몸에 두르고 있어야 하거늘, 유원에게서는 그 어떤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내 눈은 못 속여. 너, 마기를 숨기고 있잖아?”
“하아-.”
다 안다는 듯한 디아블로의 말에 유원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숨긴다고 숨긴 건데. 저 녀석은 못 속이나.’
마기.
그건 유원이 지닌 스탯 중 하나였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가질 수 없는, 악마족만이 지니고 있는 스탯.
그것은 마력을 대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종류의 스탯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가진 자를 악마라 오해하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슈아아-.
유원의 손바닥 위로 붉은 마력의 구체가 만들어졌다.
아니.
그것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체가 아니었다.
“이걸 말하는 거냐?”
마기로 이루어진 구체.
그것을 발견한 디아블로의 눈동자가 가늘게 좁혀졌다.
“역시 넌…….”
[‘칭호 : 12번째 마왕’이 ‘칭호 – 첫 번째 마왕’을 마주합니다.] [12번째 마왕의 서열이 낮습니다.] [12번째 마왕이 첫 번째 마왕에게 저항합니다.] [12번째 마왕이 첫 번째 마왕에 대한 공포심을 이겨 냅니다.]씨익-.
디아블로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졌다.
“마왕이구나. 나와 같은.”
흉포해진 눈빛과 표정.
거대한 투기가 천산을 뒤덮었다.
천무진이 중간에 천마령을 꺼내 가로막지 않았다면 천산 전체를 뒤집었을지도 모를 무게가 산을 짓눌렀다.
한 번 이렇게 된 디아블로는 막을 수 없었다.
“넌 대체 뭐냐? 천마령의 계승자이면서 천마신교의 소교주에, 마기를 가졌으면서 12번째 마왕이라니.”
그 역시 천무진과 같이 유원이 지나 온 시간을 잊어 버리고 있었다.
“너 같은 놈이 왜 알려지지 않은 거지? 대체 왜?”
“귀찮게 진짜-.”
유원은 짜증스레 머리를 긁었다.
좋게 말로 설득해서 을라가고 싶었건만, 하필 이때 디아블로가 천산에 머물고 있다니.
‘천마라면 모를까 저 녀석을 말로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
본래 디아블로는 누구와도 섞이지 않는 존재였다.
그가 천무진의 옆에 붙어 있는 것 역시 더 강해지기 위함일 뿐, 특별한 동료애 같은 게 있어서는 아닐 터.
그의 본능에 새겨진 욕구는 오직 더 강해져 더 강한 존재와 싸워 피를 보는 것뿐이었다.
“……교주님.”
고민을 끝낸 유원은 먼저 천무진에게 허락을 구했다.
“여기서 싸워도 되겠습니까?”
디아블로와 한 판 붙겠다는 포부에 천무진은 잠시 놀란 눈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대체 이번이 몇 번째 놀라는 건지.
이제 슬슬 눈앞에 있는 사내에게 적응을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가능하면 좀 옮겨 주게.”
이 천산에서 디아블로가 1분만 제대로 날뛰어도 문제였다.
아마 천산은 금세 쑥대밭이 되어 버릴 터.
그리고 그건 천마신교의 주인인 천무진이 바라는 그림이 아니었다.
“난 좋다. 어차피 여기선 다른 놈들 때문에 제대로 싸우기도 어려우니.”
잔뜩 흥분했다지만 디아블로는 서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사람 많은 천산에서는 휘말리는 플레이어들에 대한 페널티로 제대로 싸울 수도 없었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다지만 열두 번째 마왕의 칭호를 가진 유원과는 제대로 붙어 보고 싶었다.
“옮기자고. 가능한 멀리.”
* * *
네 사람이 천산을 내려와 향한 곳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막이었다.
무림과 천산의 사이에 위치한 넓고 황폐한 사막.
그 흔한 나무 한 그루조차 볼 수 없는 사막은 마음 놓고 싸우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이 정도 왔으면 되지 않았나?”
역시 마음이 더 급한 건 디아를로 쪽이었다.
참을성 없는 그는 천산이 슬슬 보이지 않게 되었을 즈음, 유원에게 멈추라 신호했다.
앞장서 가던 유원은 몸을 돌렸다.
이미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디아블로는 천산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내내 조금도 투기를 가라앉히지 않고 있었다.
“그런가?”
주위를 둘러보던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리가 제법 멀어졌다.
싸움이 길어져 장소를 계속 옮기면서 싸우면 모를까, 니르를 던지지 않는 이상 당장 피해가 천산에까지 미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뭐…… 그러자고.”
“그 전에 잠깐.”
천무진은 몸을 돌려 디아블로를 바라보던 유원을 멈춰 세웠다.
“너무 늦은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만 묻지.”
“뭡니까?”
“천산에서 찾던 게 뭐였나?”
이곳까지 오는 내내 천무진은 생각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유원의 정체가 너무 불투명한 나머지, 그의 정체만 생각했을 뿐 목적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더욱이 그는 천마신교의 소교주뿐만 아니라 12번째 마왕이라는 칭호까지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가, 대체 이제 와서 무슨 연유로 천마신교를 찾는단 말인가.
“찾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
“단풍이요.”
“단풍……?”
천무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가을이 되면 볼 수 있을 텐데?”
“아, 그 단풍은 아닙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거 하나 찾자고 천산의 봉우리까지 오르는 미친 자는 없을 테니.”
“그렇겠지요.”
유원은 쓰게 웃었다.
사실, 여기서 녀석을 찾는 데에 확신은 없었다.
단지 단서를 찾기 위한 걸음일 뿐.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이곳은 처음 아우터의 단서를 얻었던 장소였다.
툴차의 불꽃이 있던 장소.
그리고 단풍의 존재는 아우터의 힘과 이름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을수록 발견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그때 사라지긴 했어도…….’
단풍은 아우터의 근원인 아자토스로부터 탄생한 존재였다.
아자토스를 상징하는 옥좌에 앉아 있던 작디작은 꼬마 아이. 그게 바로 단풍이었다.
비록 아자토스라는 이름은 완전히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렸다지만.
‘그 녀석의 이름은 내가 지어 주었다.’
유원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
단풍이.
그 유치한 이름이, 녀석의 본질이 되어 있기를 말이다.
“사실 아직도 고민이긴 합니다. 그 녀석을 찾는 게 맞는 건지는.”
아자토스는 기껏 사라진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지울 수 있는 건 오직 같은 이름인 아자토스뿐이었다.
아자토스.
그 이름은 위험했다.
단순히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의 본질이 그랬다.
어찌 보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관리자들과의 싸움 역시 그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하지만.
“……그래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꼭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단풍은 자신이 지어 준 이름이었다.
녀석은 단순히 아자토스의 파편만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존재였다.
그랬던 녀석을 다시 찾는 일을, 아자토스라는 이름에 지레 겁을 먹어 유원은 하지 않고 있었다.
10년이면 충분히 고민했다.
관리자들이 걸어온 싸움은 단지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던 저울추에 가벼운 한 스푼을 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뭔가 중요한 걸 찾는 모양이군.”
“예.”
사박-.
유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막의 모래 위를 걸었다.
디아를로에게 한 걸음 가까워지는 거리.
한 번 기울기 시작한 저울추는 완전히 한쪽으로 쏠려 버렸다.
“그래서, 이 싸움은 오래 끌 생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