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01
* * *
벽을 향해 뻗은 손은 중간에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츠츳-.
쉽게 뚫리지 않는 벽.
눈살을 찌푸리던 유원은 다른 한 손을 더 뻗었다.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열 생각이었다.
[‘이름 없는 벽’이 대상을 판별합니다.]벽은 쉽게 통로를 허락하지 않았다.
애초에 바깥과 안을 오갈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니 당연했다.
아우터들 역시 이것을 열기 위해 꽤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야 했다.
탑의 안에 있는 랭커들도, 이 정체 모를 벽을 뚫어 내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지만 결국 뚫어 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벽이다.’
지금 이 순간.
유원은 자신이 버렸던 이름과 옥좌를 떠올리며 벽을 향해 뻗은 두 손을 움직였다.
‘그러니, 당장 열어.’
[‘이름 없는 벽’이 혼란을 느낍니다.] [‘이름 없는 벽’이 길을 만듭니다.]지이이익-.
두 손으로 종이를 찢듯 쭈욱, 벽을 가른다.
벽을 통과할 때는 조건이 있었다.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했다.
지금의 자신은 김유원이 아니라.
이 벽을 만들고 또 저 바깥 세상을 만든, 만물의 아버지, 아자토스라고 말이다.
웅, 웅, 웅웅웅-.
보랏빛으로 반짝이며 끊임없이 울리는 저편.
유원은 판도라와 츠쿠요미를 돌아보았다.
“됐다.”
따라오라며 고갯짓하자 판도라가 제일 먼저 한 걸음 성큼 움직였다.
츠쿠요미는 잠시 걸음을 멈칫하며 유원과 벽 너머를 번갈아보았다.
‘분명, 아까 전에…….’
아주 잠깐이었다.
저 벽이 열리는 그 순간,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그녀는 유원의 모습 위로 또 다른 누군가가 겹쳐져 보였다.
로브를 몸에 두르고.
후드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남자.
평범한 모습과는 달리, 츠쿠요미의 눈에 들어온 그는 마치 이 세계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것보다도 더 크게 느껴졌다.
‘잘못 본 건가? 아니, 그런 걸 잘못 볼 수 있는 거야?’
우우웅-.
아직까지 열려져 있는 벽.
츠쿠요미는 침을 삼켰다.
‘저걸, 어떻게 연 거지?’
아무도 열지 못한, 아니 부숴 보지도 못한 벽이었다.
심지어는 아우터들 역시 저 벽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간단히 열다니.
“너…… 대체 뭐야?”
그렇게 물으며 츠쿠요미는 스사노오를 돌아보았다.
너는 아느냐는 듯한 눈치.
그 눈치에 스사노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내가 저 녀석을 왜 ‘주인’으로 부르겠어?
오래전, 스사노오는 처음 유원에게 종속될 때 말했다.
자신을 뛰어넘으면 너를 주인으로 인정하겠노라고.
실제로 유원은 결국 스사노오를 뛰어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면 유원을 대하는 스사노오의 태도가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가 더 있다는 건가?’
유원을 기억해 내는 데 성공한 츠쿠요미였지만.
그녀는 헤라클레스와 손오공과는 달리, 유원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바로 옆에 있는 판도라나 종속이 되어 있는 스사노오를 제외한다면 아마, 유원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벅-.
유원과 판도라.
두 사람이 먼저 벽을 건너 걸어갔다.
유원이 벽을 넘어가자 그의 종속인 스사노오의 모습이 빠르게 열어졌다.
그렇게 혼자 남게 된 츠쿠요미 역시 더 이상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었다.
‘가자, 일단.’
* * *
‘벽’을 넘어가는 느낌은 유원도 처음이었다.
위대한 아버지였던 아자토스는 벽을 만들기만 했지, 직접 그 벽을 넘어갔던 적은 없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었다.
그래도 꽤 긴 시간 동안 길을 걸은 느낌은 있었다.
화아아-.
그렇게 판도라와 나란히 걸어 넘어온 벽의 바깥에서.
유원은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차가운 공기를 맡을 수 있었다.
휘이이잉-.
바람이 꽤 거세게 부는 사막.
신기하게도 모래는 날리지 않았다.
하늘은 검은빛을 띤 보라색이었고, 문명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대해(大海) 대신, 황폐한 사막이 자리 잡아 있는 것 같았다.
“와아-.”
휘둥그레진 눈의 판도라가 감탄사를 뱉었다.
이렇게 큰 사막은 아마 처음 보는 모양.
뒤늦게 터벅터벅 걸어 들어온 츠쿠요미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와아-.”
“복붙하지 말고 따라오기나 해라.”
사박-.
모래 위를 걸으며 유원은 츠쿠요미를 돌아보았다.
“발 밑 조심하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푸화악-!
모래사장을 헤집으며 위로 올라 온 길고 거대한 입.
아아아아아이-!
파하악-.
츠쿠요미의 앞으로 튀어 올랐던 입은, 바다 위로 튀어 오른 돌고래처럼 다시 모래 아래로 빠져들었다.
그 진귀한 광경에 츠쿠요미가 눈을 부릅떴다.
“……별게 다 있네.”
“여기선 흔히 볼 수 있는 거다. 일일이 놀라면 안 돼.”
별생각 없이 뱉은 설명에 츠쿠요미가 놀라 물었다.
“넌 여길 알아?”
“조금은.”
“어떻게?”
“살았던 기억이 있거든.”
기억이 있다.
기억과 경험은 달랐지만 보통 듣는 사람에게는 같은 말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츠쿠요미는 유원이 이 바깥에 대해 잘 안다는 말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서야? 이렇게 빨리 랭커가 될 수 있었던 게?”
그녀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유원이 탑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 바깥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그래서 그토록 빠른 속도로 탑을 오르고, 랭커가 되어 아우터와 맞서 싸울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건 아니긴 한데…….’
굳이 착각을 바꿔야 할까.
결과적으로 아우터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단풍이 자신을 견인한 것도 사실.
유원은 굳이 부정하기보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해.”
저벅-.
유원은 그렇게 대답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평선처럼 길게 펼쳐진 사막.
군데군데에서 이름 모를 존재들이 뛰어오르는 그곳에서 네 사람이 움직였다.
* * *
콰릉-!
벼락의 신전에는 몇 달 내내 천둥이 쳤다.
신전의 주변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번쩍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문을 열었다.
“또 시작이로군.”
“언제까지 저러는 건지, 원.”
“쉿, 듣겠네.”
처음에는 다시 전쟁이라도 난 게 아닌가 하던 사람들이었다.
제우스의 벼락은 여간 볼 수 있는 게 아니었고, 그가 벼락을 쥐었다는 건 그만큼 큰 사단이 났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게 하루를 넘어 이틀.
사흘, 나흘을 넘어 개월 단위로 넘어가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익숙해진 것이다.
터벅-.
그리고 그런 신전의 계단을 오르는 헤라클레스는.
콰릉-!
제우스가 하늘을 향해 던진 벼락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화가 나신 건가.”
아버지로서 그를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헤라클레스는 제우스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존심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 자존심이, 이번 아난타와의 싸움에서 금이 갔다.
그걸 생각하면 이런 제우스의 반응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터벅, 터벅-.
헤라클레스는 존재감을 키우며 천천히 신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중간에 이방인인 줄 알고 가로막으려고 다가온 신전의 랭커들이 헤라클레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길을 비켰다.
하데스라 할지라도 감히 벼락의 신전에 제우스의 허락 없이는 발을 들일 수 없을 테지만.
그들은 전부터 헤라클레스를 막지 말라는 명을 받았다.
콰릉-!
“언제까지 청승 떨고 있을 겁니까?”
땀을 뻘뻘 흘리며 하늘을 향해 벼락을 던지는 제우스.
그를 보며 헤라클레스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 싸움은 이제 끝났습니다.”
그 순간.
번쩍-!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는 전격.
꽈릉-!
굉음이 귀를 울렸다.
부서진 전격이 헤라클레스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뚝뚝 땀을 바닥에 흘리며 제우스가 몸을 돌렸다.
“그 녀석 때문이 아니다.”
“믿을 만한 변명을 하셔야-.”
“나 때문이지.”
스윽-.
헤라클레스가 오고 물려 둔 시종이 놓고 간 수건을 집어 든다.
땀을 닦으면서도 제우스는 이글거리는 눈을 빛냈다.
“랭킹을 더 높일 곳이 없다고 해서 너무 게을렀다.”
치지-.
손안에 황금색 전격의 힘이 맴돈다.
다시 창을 쥐어 내던지고 싶은 욕구에 휩싸였다.
꽈악-.
그러나 그런 추한 모습을 헤라클레스의 앞에서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하지만 전력을 다하면 될 뿐이었다.
게다가.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한 명이 더 있었다.
“물론, 창이 무뎌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만.”
제우스의 그 말에 헤라클레스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김유원.
제우스는 그를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창이 무뎌졌다는 건 아마, 그를 말하는 것이리라.
“안 그래도 그 녀석 때문에 온 겁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럴 거라니요?”
“네가 나와 부자지간의 정을 쌓자며 온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정곡을 찌르는 말.
그리고 어딘가 가슴이 아리는 말이었다.
드륵-.
채 몸을 씻고 올 시간도 아깝다는 듯 의자를 내주는 제우스.
그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헤라클레스에게 앉으라 손짓했다.
“이야기해 보거라. 부자간의 정이야, 이런 걸로나마 천천히 쌓으면 될 테지.”
무미건조한 말에 헤라클레스는 속으로 물었다.
쌓을 생각은 있으십니까? 라고.
“그 녀석이 벽을 열었습니다.”
“벽을?”
드물게 제우스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모르는 누군가 본다면 뭐 그리 놀란 거냐고 할 테지만, 이 정도면 꽤 큰 반응이었다.
그만큼 헤라클레스가 꺼낸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열 수 있었던 건가?”
아우터들조차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열고 넘어온 벽이다.
그런 걸 유원이 스스로 열고 나가다니.
더는 놀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은 그에 대해서 또 한 번 놀랄 일이었다.
“글쎄요. 하지만 이제 와서 시도한 걸 보면, 지금까지는 열 필요가 없었다는 거겠죠.”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은 열 필요가 있다는 거겠지.”
벽을 열고 나가야 할 이유가 있다.
제우스는 그 말의 뜻을 이렇게 해석했다.
“그 녀석도 나름대로 답을 찾고 있다는 거다.”
자신과 마찬가지다.
관리자들과의 싸움에서.
그리고 아난타와의 싸움에서.
유원은 지난 10년의 공백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헤라클레스 역시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었다.
“예. 조금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정확한 기점은 아난타와의 첫 번째 싸움 직후였다.
10년 전처럼 날카롭게 변한 분위기.
유원은 다시 그때의 그 느낌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늘 헤라클레스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이던 그때처럼.
[유원 : 잠시 바깥에 다녀와야겠어.]유원은 스스로 벽을 열어 바깥으로 나갔다.
“정신을 차렸다니 다행이군. 관리자와의 싸움에선 그 녀석이 얼마만큼의 역할을 해 주느냐가 관건일 테니.”
“예. 그런데 또 하나…….”
헤라클레스는 손에 구슬처럼 작게 보이는 키트를 쥐고는 말을 이었다.
“이걸 이 녀석이 어떻게 알았는진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뭘 말이지?”
“이거 보시죠.”
스윽-.
그렇게 말하며 헤라클레스는 유원에게 온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유원 : 근데 저 바깥에선 시간이 좀 다를 거다.]그 뒤로.
유원은 혹시라도 헤라클레스가 반대로 이해할까,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유원 : 늦는다고,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