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04
* * *
쩌저적-.
츠쿠요미가 걸어 움직이는 발밑이 온통 얼어붙었다.
시리디시린 한기.
이름의 조각들이 공중에서 얼어붙어 바닥에 떨어지고, 그걸 스사노오가 베어 냈다.
콰앗-.
“둘이 움직이는 건 오랜만이네.”
-옛날 생각이라도 하나?
“조금. 그때랑 지금이랑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지. 아예 탑 밖으로 나와 버렸으니.
퀴잇-.
스사노오의 칼은 매서웠다.
그가 휘두르는 칼을 보면서도 츠쿠요미는 매번 감탄했다.
전성기보다 월등한 실력.
언데드 소환수는 소환사의 영향을 받는다더니, 아무래도 그 덕분인 모양이었다.
‘여기서 뭔가를 찾고 있었어.’
스사노오가 길을 뚫어 내는 사이, 조금 여유가 생긴 츠쿠요미가 눈을 활성화시켰다.
[‘이자나기’가 활성화됩니다.]기이잉-.
시야가 활짝 열리며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이름의 파편들 너머, 끄트머리의 무언가가 보였다.
“……뭐지?”
동굴의 끝.
시체처럼 벽에 걸려 있는 사람이 있다.
로브에 몸과 얼굴이 가려져 있었지만 언뜻 드러난 턱선을 보면 남자 같았다.
두근-.
심장이 뛰며 주변의 감각이 바뀐다.
시끄럽던 아우터들의 소리가 모두 차단되었다.
소름 끼치던 놈 들의 존재감이 무(無)가 되며, 태양처럼 거대한 존재가 시야에 담긴다.
“뭐야…… 이거…….”
벽에 걸린 남자를 보던 츠쿠요미가 주춤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함께 있던 스사노오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는 이곳에 없었다.
이자나기를 활성화한 눈에 보이는 건 오직, 수많은 아우터들이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존재감의 시체뿐이었다.
꿀꺽-.
‘저런 게 있다고?’
카아아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공허.
비명 소리.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가 죽어, 힘을 잃은 것만 같았다.
대체 살아생전 무엇이었기에 죽어서도 저런 존재감을 지니는 것인지.
덜, 덜덜-.
죽은 시체에게 경외심과 공포를 느끼다니.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일이다.
원래였다면 이 틈을 노려 이자나기가 다시 츠쿠요미의 정신을 노리고 움직였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자나기조차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 역시 두려운 것이다.
-……미.
흔들-.
어깨를 잡아 흔드는 느낌에 조금씩 정신이 돌아온다.
-요미-!
귀가 떨어질 만큼 큰 소리.
그제야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 스사노오의 얼굴이 꽉 차게 들어와 있었다.
-괜찮은 거냐?
“어. 어어?”
-정신 차려라. 뭣 때문에 그러는 거냐?
덜, 덜덜덜-.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오한이 밀려들었다.
바깥으로 넘어온 후 자주 한기를 느꼈으나, 지금은 정도가 조금 심했다.
안 그래도 하얗던 얼굴이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리고,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츠쿠요미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정의할 수 있었다.
공포다.
“뭐, 뭔갈 봤어.”
-뭘?
“죽은 시체…….”
-시체?
츠쿠요미는 자신이 본 걸 설명했다.
시체가 매달려 있고, 그걸 아우터들이 지키듯이 둘러싸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스사노오는 확신했다.
-그거다.
“그거라니?”
-우리가 찾던 거 말이다. 단풍.
“……단풍? 그게?”
츠쿠요미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냐는 표정.
그녀는 순간, 스사노오가 자신의 설명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세상 모든 것의 위에 존재할 것 같던 그것에 고작 ‘단풍’이라는 이름이 붙을 리 없지 않은가.
-무슨 생각인지 알아. 나도 사실 황당해. 그래도 주인 놈 작명이 좀 특이해야지.
그 역시 뒤늦게 알았다.
단풍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작은 생명체가 어떤 녀석이었는지.
“그럼…… 찾던 게 정말 저거라고? 단풍이?”
보는 순간 알 수 있을 거라더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저런 거면, 눈에 안 들어올 수가 없잖아.’
눈에 안 보이기에는 너무 크다.
개미들 사이에 공룡이 섞여 있으니 못 찾을 리가 없었다.
반대로 눈에 들어오더라도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유는 뻔했다.
‘저런 거에 대체 이름이 단풍이 뭐냐고.’
황당함에 입이 벌어지길 잠시.
-온다.
뒤쪽을 돌아온 스사노오는 유원의 기운을 느꼈다.
자신들이 뚫고 들어온 길을 통해.
유원이 급한 얼굴로 날아오고 있었다.
* * *
[‘이계의 대적자’가 ‘이름의 파편’에 대적합니다.] [‘이계검(異界劍)’에 ‘타르타로스’가 깃듭니다.]쩌억-!
정교함 없이 칼을 휘둘렀다.
다급한 마음만큼이나 칼끝은 투박했지만, 대신 힘을 낭비한 만큼이나 길을 뚫어 내는 속도는 빨랐다.
뒤따라가는 츠쿠요미는 혀를 내둘렀다.
할 일이 없어진 판도라는 아예 뒷짐을 지고 있었다.
“후우우-.”
가로막고 있던 이름의 조각들을 모두 없애고 나서야 유원은 숨을 골랐다.
고개를 들어 벽 위에 걸려 있는 남자를 보았다.
얼굴을 보는 순간.
유원의 눈빛이 흔들렸다.
“진짜…… 있었나.”
그 순간.
유원은 방금 전, 츠쿠요미가 보았던 것과 같은 걸 볼 수 있었다.
무한한 공허와 혼돈.
부서진 옥좌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남자.
익숙한 얼굴이었다.
과연 저 얼굴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기억 속의 그는 분명, 처음부터 끝까지 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자토스.’
그는 작은 오두막에서 생을 마감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었던 그가.
어째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았는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유원은 알고 있었다.
‘인간처럼 되고 싶었지.’
지금도 간혹 헷갈렸다.
자신이 아자토스인지, 김유원인지.
만약.
그가 가지고 있던 이름을 모두 버리고, 옥좌를 폐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정체성을 잃어버렸을지도 몰랐다.
[메에에에-.] [메에에-.]산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정신을 차려 보니 검은 숲에 와 있었다.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가 ‘무■형(無■形)의 혼■’을 마주합니다.] [‘불꽃과 춤추는 무희’가 ‘무■형(無■形)의 혼■’을 마주합니다.]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이 ‘무■형(無■形)의 혼■’을 마주합니다.] [‘이름 없는 안개’가…….]이름들이 마구 날뛴다.
산양들은 유원이 아닌, 텅 빈 숲을 보며 울었다.
그런데.
이름이 깨져 있다.
하지만 깨져 있다고 해서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단풍이의 이름이다.’
아자토스의 근간이 되는 이름.
모든 이름의 시작이자, 모든 이름을 잡아먹는 혼돈.
그 이름에 반응해 유원이 가진 이름들이 격동했다.
울컥-.
토악질이 나올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녀석을 만나러 가야 했다.
저벅-.
산양들을 거느리며 유원은 이름이 있는 곳으로 걸었다.
불안정한 상태로 흔들리는 검은 숲의 혼돈이 유원에게 손짓했다.
어서 이쪽으로 오라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저벅-.
가는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저 힘이 자신에게 있을 때는 몰랐다.
저토록 위험한 느낌이었구나.
스멀-.
어둠 사이로 이가 빠진 수많은 이빨이 보인다.
몇몇 눈들이 유원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녀석의 감정이었다.
[“바아-.”]힘없이 늘어지는, 익숙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따라 숲을 가로질러 걸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 채. 계속.
검은 숲의 끝을 보려는 듯, 유원은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 끝에.
유원을 기다리고 있는 건, 밑이 보이지 않는 공허와 다 부서진 옥좌였다.
[“바-?”]팔걸이가 부서지고 다리가 꺾여 기울여진 옥좌.
폐위된 왕을 상징하는 듯한 그 자리 위에, 단풍이 멀뚱히 앉아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무■형(無■形)의 혼■’이 ‘김유■’을 마주합니다.] [‘무■형(無■形)의 혼■’이 ‘김유■’을 경계합니다.]스륵, 스르-.
이빨들이 유원의 주위를 둘러싼다.
눈들은 유원을 경계하여 노려보았고, 섬뜩한 느낌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내 이름을 메시지로 보는 건 처음이네.’
메시지를 통해 본 자신의 이름의 한 글자가 부서져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 있더라니, 이 이름이 원래대로 돌아와야 기억도 함께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스멀-.
무정형의 괴물들이 유원에게 다가왔다.
경계하면 안 된다.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그걸 알고 있지만, 쉽게 마음처럼 되진 않았다.
[‘이계의 대적자’가 ‘무■형(無■形)의 혼■’에 대적합니다.] [‘이계검(異界劍)’이 ‘무■형(無■形)의 혼■’에 저항합니다.]유원의 신격과 손에 쥔 검이 가장 먼저 이계의 힘에 저항했다.
스스로 발동되는 종류의 힘이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무섭네.’
곁에 있을 때는 몰랐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게 이름이 부서진 상태라니.
완전한 상태에서는 대체, 어떤 느낌이었던 걸까.
저벅-.
유원은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혼돈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금방이라도 저 이빨들이 자신의 온몸을 물어뜯을 것만 같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기껏 녀석을 찾으러 여기까지 왔으니, 어떻게든 다가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유원은 단풍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미안하다.”
막상 녀석을 가까이서 다시 만나고 나니 후회가 밀려들었다.
소토스의 이름을 빼앗은 니알라 토텝.
녀석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그리고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 유원은 아자토스의 이름을 버리는 선택을 했다.
그로 인해 단풍은 유원의 속에서 사라졌다.
녀석을 다시 찾기까지 마음먹는 데에 너무 오래 걸려 버렸다.
다시 찾게 되면.
또다시, 언젠가 10년 전과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척-.
성처럼 거대한 옥좌가, 아래로 내려다볼 정도로 작아졌다.
처음 이 옥좌에 앉아 있는 단풍을 봤을 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크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지금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바아…….”]작은 목소리를 내며 단풍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순간.
콰득-.
이빨 하나가 유원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어깨가 통째로 뜯겨져 나갈 걸 각오했다.
아니, 어쩌면 이대로 저 이빨에 먹혀 그대로 무정형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까드득-.
무정형의 이빨은 유원의 어깨를 뜯어내지 않았다.
되레 그것은 자신의 공격적인 행동에 미안한 듯, 천천히 어깨를 물어뜯은 이빨을 놓으며 눈치를 보았다.
끼잉-.
유원은 자신의 어깨를 살폈다.
‘안 다쳤어.’
세계의 왕이었던 아자토스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이름인 무정형의 혼돈은 이빨이 다 빠져 있었다.
유원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수많은 이빨들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꼬마아이.
[“바아…….”]단풍은 유원을 올려다보며 해맑게 웃었다.
[“와따-.”]흠칫-.
단풍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유원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늘 알아듣기 어려운 말만 하던 녀석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말을 했다.
발음은 잔뜩 뭉개졌고,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분명하게 들렸다.
왔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