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05
* * *
‘……키도 조금 컸나.’
작은 옥좌에 앉은 단풍의 키는 오랜만에 본 만큼 더 커져 있었다.
전보다 훨씬, 힘은 잃었지만.
한 뼘 남짓한 크기였던 단풍은 전보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더 자라 있었다.
그래도 아직 작은 꼬마인 건 변함이 없었지만 말이다.
‘아직도 손바닥 정도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 녀석도 조금씩은 컸던 것 같았다.
물론.
키가 큰 것과 별개로, 녀석이 가진 힘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작아져 있었지만 말이다.
스윽-.
유원은 몸을 숙여 단풍에게 가까이 시선을 맞췄다.
앞으로 뻗으려던 손이 잠시 멈칫거렸다.
순간.
자신이 녀석의 이름을 지우고, 지금 앉아 있는 옥좌를 부쉈을 때가 떠올랐다.
“늦었네.”
[“웅.”]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모두 힘이 없다.
순간, 가슴 언저리가 욱신거렸다.
지금 녀석을 이 꼴로 만든 건 자신이었다.
“……미안해.”
[“괘아나.”]괜찮다.
[“아바, 잘모업어.”]이 작은 녀석이 자신을 위로한다.
단풍은 자신과 연결되어 있었다.
녀석은 무정형의 혼돈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름 중 하나였다.
그런 만큼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유원이 무슨 생각으로 옥좌를 부수었는지.
“왜 여기 있어?”
[“펴내.”]“편하다고?”
[“웅.”]아자토스는 탑의 바깥에 있던 존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츠쿠요미가 몸을 떨던 이곳의 공기는 그에게 있어서 숨쉬기 가장 편했다.
털썩-.
유원은 단풍의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눈높이가 얼추 맞추고는 본심을 꺼냈다.
“무섭더라. 아자토스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유원은 분명 그가 되었었다.
백분의 일이나마 그가 가진 힘을 가졌고.
십분의 일이나마, 옥좌를 부수고 그가 가진 힘을 재현해 냈다.
그리고.
그가 가진 기억을 통해, 십 년 전의 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니알라 토텝.
굶주리고 병들었던 아이가 말했다.
아자토스.
당신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방치했다고.
하지만 모르는 말이었다.
유원은 잠시나마 세계를 멸망으 로 이끌었던 그의 분노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여겼다.
[[“나처럼 이 세계를 방치하지 않겠다고 했느냐?”]]모든 진실을 알고.
[[“네가 그토록 아끼던 그 세계를 그렇게 만든 게 나다, 니알라야.”]]니알라 토텝은 분노했고, 유원은 두려움을 느꼈다.
이 황폐한 세계가 이리된 것도.
그리고 십 년 전의 전쟁이 벌어진 것도 모두, 원죄는 아자토스에게 있었다.
“내가 다시 그가 되지 않을까. 내가 변심하지 않을까, 하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던 유원이 다시 눈을 떴다.
눈앞에는 단풍이 어느새 또렷해진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너도, 언젠가 어른이 될 거고.”
[[“한낱 미물인 불사조조차 불이 꺼진 재 속에서 다시 부활한다.”]]녀석은 아자토스가 죽고, 다시 태어난 무정형의 혼돈이다.
하늘을 환하게 밝히던 불사조가 죽고, 알에서 다시 태어나 병아리가 된 것과 다름이 없다.
아마 이대로 거둬들인다면, 언젠간 아자토스가 될 수도 있다.
그게 자신이 될지.
아니면 자신이 아자토스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턱-.
유원은 모험을 해 보기로 했다.
“잘 부탁한다.”
단풍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신력을 불어넣는다.
[‘무■형(無■形)의 혼■’에 신력을 부여합니다.] [‘무■형(無■形)의 혼■’이 회복을 시작합니다.]* * *
하얗게 질려 있던 단풍의 얼굴색이 돌아왔다.
부서져 있던 작은 옥좌가 서서히 복원되어 간다.
신력은 아우터들의 힘이고, 모든 아우터들의 힘은 아자토스로부터 나온 것들이었다.
유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력을 단풍에게 주입했다.
파스락-.
복원된 옥좌는 그리 크지 않았다.
현재 유원이 가진 힘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똑-.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온 몸이 땀에 절여지고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더 이상은 쥐어 짜낼 신력이 남아 있질 않았다.
[“바아-!”]처음보다는 조금 힘이 돌아온 것인지, 단풍은 전처럼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무정형(無定形)의 혼■’을 획득하였습니다.]알림과 함께, 아직은 다 회복되지 않은 이름이 메시지로 떠오른다.
그와 함께.
“다시 잘 부탁한다.”
턱-.
유원은 단풍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피곤한지 금방 잠에 드는 녀석.
지친 얼굴로 그런 단풍을 한 손으로 받으며 한숨을 쉬었다.
‘잘하는 짓인지…….’
아자토스의 이름은 사라졌다.
진명(眞名)은 사라졌다지만 아직 그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단풍이 앉아 있던, 다 무너진 작은 옥좌가 바로 그 증거였다.
무정형의 혼돈.
아자토스가 태초에 깨어난 무(無).
그것으로 인해 또다시 아자토스가 탄생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새액, 색-.
편안한 듯 잠에 든 단풍.
유원은 그런 녀석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정말, 나도 같이 사라져 주마.”
유원의 몸이 천천히 옆으로 넘어갔다.
곧이어, 깊은 잠에 들듯 세상이 암전된다.
* * *
깊은 무저갱 속.
유원은 뒤돌아 홀로 앉아 있는 단풍을 보았다.
‘크다.’
동그란 뒷모습은 단풍이 확실했다.
다른 게 있다면,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훨씬 많이 자랐다는 것이다.
손바닥만 하던 녀석이 어린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단풍의 크기를 보고 유원은 이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아자토스의 이름이 사라지기 전이었다.
[[“나는 아자토스다.”]]누군가 말을 한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그게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다.
유원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단풍의 눈앞으로.
김유원이 아닌, 아자토스가 뒷짐을 진 채 말을 잇는다.
[[“나는 무정형(無定形)의 혼돈 속에서 옥좌에 앉아 대혼란을 준비하는 불경스러운 왕.”]]이 순간이 언제인지.
아마 100년, 1,000년이 지나도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나보다 위대한 이름은 없느니라.”]]‘이 녀석의 이름을 없애던 순간이다.’
이 순간.
유원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그리고 모든 문제의 시작인 아자토스라는 이름을 없애기 위해 힘을 사용했다.
[[“모든 이름은 아자토스로부터 나왔다.”]] [[“그럼, 내가 안고 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유원은 아자토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단풍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저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스윽-.
아자토스가 몸을 돌린다.
그는 뒤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있던 단풍을 향해 말했다.
[[“도와주거라.”]]츠츠츠-.
단풍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하며 서서히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아자토스는 그런 단풍을 안타까운 듯 바라보았다.
[“……웅.”]단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라써-.”]태어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름이 대답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단풍은 점점 이곳에서 힘을 잃고 사라지고 있었다.
자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원, 유원-.’
작은 목소리.
한 번 들리기 시작한 목소리에 이내,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유원-!”
팟-.
깜짝 놀란 사람처럼 유원이 눈을 떴다.
환해진 시야의 좌우로 주황색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보인다.
그리고 바로 코앞.
코끝이 맞닿을 만한 거리에 판도라의 뽀얀 얼굴이 들어왔다.
“깼어?”
“……어.”
스윽-.
판도라가 고개를 들었다.
뻐근한 몸을 일으키며 유원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많이 걱정한 모양.
“얼마나 잤어?”
“하루.”
“……하루?”
그렇게나 오래?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생각에 유원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스사노오는 사라지고, 츠쿠요미와 판도라 둘만 남아 있었다.
‘마력이 끊길 정도로 깊게 잠에 들었던 건가.’
하루씩이나 잠에 들었다는 생각에 유원이 놀라 물었다.
“밥은?”
“배 안 고파.”
“그럴 리가.”
“……나 돼지 아니야.”
단정적인 유원의 말에 판도라가 눈을 부릅떴다.
평소 식사량도, 간식을 먹는 빈도도 높은 그녀였다.
자신을 걱정하느라 하루 종일 굶었다니.
배고픔 정도야 참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왠지 마음이 쓰였다.
“돌아가면 맛있는 거부터 먹자.”
“응.”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판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런 둘 사이로.
“눈꼴 시리니깐, 연애질은 돌아가서 너네끼리 할래?”
옆구리가 시린 츠쿠요미가 날카롭게 곤두선 목소리로 말했다.
“찾을 건? 찾은 거야?”
“어.”
유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옆자리에 누워 있는 단풍을 돌아보았다.
“……찾긴 찾았지.”
“그 녀석이 단풍이?”
잠에 든 작은 꼬마 아이.
‘단풍’이라는 이름에 귀여운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제법 이름을 잘 지었다 싶었다.
“귀엽게 생기긴 했네.”
그래도 아직 머릿속에 남은 의문은 다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저 녀석을 찾으러 온 건가?’
손바닥보다 작은, 요정처럼 보이는 꼬마 아이.
이런 녀석이 왜 탑 밖에 있는지는 몰라도 이 녀석 하나 찾자고 이 먼 거리를 움직이니 황당하긴 했다.
“그럼 이제 돌아가는 건가?”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탑 밖에 있는 지금 이 순간, 일분일초가 모두 숨이 막혔다.
“아니.”
“그럼?”
유원의 반대에 츠쿠요미가 아쉬운 듯 물었다.
고개를 저은 유원은 자신들이 있는 거대한 공동을 둘러보았다.
“한 가지, 알아볼 게 있어서.”
“그게 뭔데?”
“놈들이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는 지.”
판도라는 잠에 든 단풍을 신기하게 보더니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렸다.
머리카락 위가 푹신했는지 단풍은 몸을 뒤집어 하늘을 향해 배를 보이며 더 깊게 잠에 빠져들었다.
스윽-.
유원의 시선이 벽에 걸려 있는 아자토스의 시신으로 향했다.
‘다 먹어치운 줄 알았는데, 껍질은 남겨 두고 있던 건가.’
저런 작은 몸에 아자토스를 다 품을 순 없었다.
녀석들이 먹어치운 건 아자토스가 가지고 있던 이름들 뿐.
모든 것들의 아버지인 아자토스는 그렇게 이름과 진명을 모두 잃고, 껍데기만이 이곳에 남아 있었다.
‘이상한 건 왜 굳이 껍데기를 지키고 있었나는 건데…….’
팟-.
판도라에게 단풍을 맡긴 유원이 위로 높게 뛰어올랐다.
푹-.
아자토스의 몸을 고정시켜 놓은 날붙이를 뽑았다.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내리던 아자토스의 시신을 받아 들어, 아래로 내려왔다.
유원의 행동에 츠쿠요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 죽은 시체는 왜……?”
숨이 붙어 있지 않은 시신.
이미 찾으려던 걸 찾았으면서 저기에는 왜 흥미를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유원이 이곳에서 살았던 아자토스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걸 모르고 있었다.
유원은 아자토스의 시신을 바로 눕혔다.
죽은 지 오래된 것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깨끗한 시신.
만약, 아자토스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면 그냥 지나칠 만큼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었다.
‘여기에 부서진 단풍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거기서 날 불렀던 거고.’
유원은 아자토스의 시신을 살폈다.
‘단순한 모조품은 아닐 터.’
묘한 불쾌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요그 소토스가 수많은 이름으로 지키고 있던 이곳에 단풍의 이름이 흘러 들어왔다.
절대 우연일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망할 소토스가.”
아자토스의 시신을 살피던 유원은 이내, 그가 무엇을 준비하던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감히, 뭘 만들려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