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06
* * *
모든 것들의 본질은 이름에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품기 위해서는 그걸 담을 그릇이 필요했다.
[“바우…….”]지금 판도라의 머리 위에서 단잠을 자고 있는 단풍이 바로 그 그릇 중 하나였다.
무정형의 혼돈.
아자토스를 이루고 있는 여러 이름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태초의 이름.
그걸 담은 그릇이 바로 단풍이라는 존재였다.
그리고 아자토스.
그 이름을 담았던 그릇이 바로 유원이었고 말이다.
“감히, 뭘 만들려 한 거야?”
빠득-.
눈앞에 있는 아자토스의 시신은 만들어 낸 게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빈껍데기라고는 하나, 진짜 아자토스의 그릇이었다.
그리고 소토스는, 이 그릇을 다시 채우려 했다.
[‘■■의 ■늘’이 깃들어 있습니다.] [‘■■■ 종결■’가 깃들어 있습니다.] [‘■■의 ■■를 거■린 ■■’가 깃들어 있습니다.] [‘풍■의 여■’이 깃들어 있습니다.] [‘■■■■■’가…….] […….]다 깨어지고 망가진 이름들.
언뜻언뜻 느껴지는 이름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유원이 알고 있는 모든 이름이 조금씩, 이 안에 뒤섞여 있었다.
정확하겐, 쪼개진 이름이 안에 들어 있었다.
소토스만이 아니라 꽤 많은 놈들이 이 계획에 동참했다는 뜻이었다.
‘단풍이 여기에 깃들어 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나.’
이 그릇은 이름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이름은 아자토스로부터 나왔고, 아자토스의 시신은 그 모든 이름을 품고 있던 최고의 그릇이었다.
그 그릇에 이끌려 단풍은 이곳까지 온 것이다.
‘이름들을 조금씩 긁어모아 그릇에 하나로 모은다. 그걸로 만들 만한 거라면 하나…….’
아자토스의 시신을 바라보던 유원의 눈이 깊게 파였다.
‘아자토스의 복제품인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에게 아자토스의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은 녀석을 없애지 못해서 안달인데, 놈들은 기껏 사라진 녀석을 다시 만들어 보겠다고 난리라니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
“응? 뭐가?”
유원의 중얼거림에 츠쿠요미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뜸 뭘 모른다는 거며, 누구에게 하는 말인 건지.
유원은 츠쿠요미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익숙한 이름을 불러냈다.
“오랜만이네, 이거.”
[‘무정형(無定形)의 혼■’이 이빨을 드러냅니다.]쩌억-.
쩌어억-.
수많은 이빨이 모습을 드러낸다.
“귀아나…….”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단풍이 다시 판도라의 머리 위에 섰다.
“뭐, 뭐야 또 이것들은?”
보라색의 기운과 함께 나타난 이빨들에 츠쿠요미가 당황하는 것도 잠시.
콰직-!
콰득, 콰드득-.
무정형의 이빨들이 아자토스의 시체를 씹어먹기 시작했다.
아자토스의 그릇이 수많은 이빨에 집어삼켜졌다.
아자토스의 그릇은 그 안에서 씹고 뜯겨지며, 수많은 이름을 빼앗겼다.
[‘■■의 ■늘’을 획득하였습니다.] [‘■■■ 종결■’을 획득하였습니다.] [‘■■의 ■■를 거■린 ■■’을 획득하였습니다.] [‘풍■의 여■’을…….] […….]아자토스의 그릇과 함께 수많은 이름이 들어온다.
무정형의 이빨은 오랫동안 굶주린 것처럼 게걸스럽게 아자토스 속에 들어 있는 이름을 먹어 치웠다.
[신력을 5 획득하였습니다.] [‘■■■■의 그릇’을 획득하였습니다.] [손상된 ‘무정형(無定形)의 혼■’이 일부 복구됩니다.]생각보다 많은 이름들이 들어있던 것인지 신력이 꽤 올랐다.
덕분에 손상되었던 단풍의 이름도 조금 복구되었다.
스르르-.
무정형의 혼돈 속에서 아자토스의 그릇이 다시 밖으로 나온다.
모든 이름을 빼앗겨.
피부가 검게 죽고, 갈라진 채로 말이다.
“죽어서도 편히 쉬지도 못하고.”
화륵-.
유원은 검게 죽은 아자토스의 시신을 내려다보다 그의 몸에 불을 지폈다.
[‘죽음과 부패의 불꽃’이 눈물을 흘립니다.] [‘불꽃과 춤추는 무희’가 죽은 자를 위해 춤을 춥니다.]화륵-.
보라색의 불꽃이 아자토스의 시신 위로 타오른다.
한없이 작은 불꽃에 수분 하나 없던 메마른 몸뚱이는 장작처럼 쉽게 타올랐다.
“이제 진짜 좀 쉬십시오.”
단풍을 찾아온 곳에서 아자토스의 시신을 발견했다.
막상 눈으로 보고 나니 그의 최후가 썩 좋지만은 않아 보였다.
이제 그에게는 진명도, 그릇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남은 건 오직 하나.
여기 있는 단풍이를 비롯한 몇몇 이름뿐이었다.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리 없다.
유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자토스가 자신의 몸을 빌려, 슈브 니구라스에게 했던 말.
그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타닥, 타닥-.
시체를 불태우던 불꽃은 장작이 사라지며 빠르게 꺼져 갔다.
부디 그가 이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안식하기를 기도하며.
유원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유원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 * *
불꽃으로 이글거리는 땅, 무스펠하임.
척박한 환경 탓에 터전으로 인기가 없는 그곳은 현재, ‘마왕’의 땅으로 자리 잡아 있었다.
“빨리 빨리!”
“좀 뛰어! 꾸물거리지 말고!”
거리에는 악마들이 돌아다녔다.
그들은 한 손님을 맞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
악마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가 거리를 활보했다.
“쯧. 그 녀석은 왜 여기까지 온다고 해 가지고.”
“처음 아닙니까? 디아블로 님이 여기 오는 건.”
마왕 소속의 상위 랭커이자, 베에모트의 동료인 그레고리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존재감에 침을 삼켰다.
천천히 걸어오는 건데도 땅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저리 존재감을 키우는 걸 보면, 단순히 놀러 온 건 아닌 듯했다.
“무스펠하임은 이제 내 땅이다.”
“예. 베에모트 님의 땅이죠.”
“설마, 저놈이 여기까지 탐내려는 건 아니겠지?”
디아블로.
그는 마왕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길드를 운영하는 길드장으로서 아무런 능력도 보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디아블로를 대신해 마왕을 운영하는 건 베에모트였다.
빠득-.
베에모트가 이를 갈았다.
“길드는 버려 두고 칼잡이 놀이나 하던 놈이…….”
“쉿. 듣겠습니다.”
“들을 테면 들으라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콧방귀를 끼는 베에모트.
착각이 었을까.
그 순간 베에모트는 멀리서 걸어오는 디아블로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받았다.
저벅-.
악마들 무리 사이를 지나쳐 디아블로가 무스펠하임의 심장부에 도착했다.
불타는 건물들.
그 속에서 제일 잘 어울리는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여기 애들 인상은 왜 이렇게 더럽냐?”
동네 건달을 연상케 하는 목소리.
“우리 동네보다 더하네.”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디아블로는 베에모트를 노려보았다.
“잘 지냈냐?”
“십 년밖에 안 됐으면서 뭘 물어?”
“하긴. 별로 안 되긴 했네.”
십 년.
분명 디아블로나 베에모트처럼 수천 년의 시간을 산 랭커들에게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간의 십 년은 다른 때의 수백, 수천 년만큼이나 탑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평소보다도 더,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데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네. 내 착각인가?”
두 악마는 오랜만에 만났다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눌 만한 사이도 아니었다.
악마란 늘 싸우고, 경쟁하여 서열을 올리는 존재들.
오죽하면 공식적인 랭킹 외에도 악마들 간의 랭킹이 따로 존재할 만큼, 그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여겼다.
하물며 같은 마왕들이야 오죽할까.
“당신이 길드 운영을 팽개쳐 두고 놀러나 다녔으니, 곱게 보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스윽-.
디아블로의 시선이 베에모트의 옆에 서 있는 그레고리에게로 향했다.
“이름.”
“예?”
“이름 대라고. 난 너 같은 하급 악마는 몰라.”
그레고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 역시 랭커에 오른, 나름대로 마왕 내에서 입지가 있는 악마였음에도 디아블로는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레고리…… 입니다.”
“베에모트의 다음 장난감이 너구나?”
장난감?
그레고리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런 그레고리의 표정에 디아블로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저 녀석은 취향이 조금 독특해서 말이지. 돼지 같은 게, 잘 키운 심복을 나중에는 꼭 지가 처먹더라고.”
“무슨 그런…….”
“다른 마왕들보다 저놈이 유독 수하들을 자주 갈아치우는 이유가 그거지. 뭐,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알아서 잘 살아남아 봐. 쓸 만하면 그래도 한 몇백 년은 살려 두긴 하더만.”
그레고리가 충격으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때.
베에모트는 불쾌함 가득한 얼굴로 디아블로를 노려보았다.
“갑자기 와서 남의 비밀이나 들추고. 이건 너무 예의가 없는 거 아닌가?”
“예의? 그런 걸 나한테 찾다니, 제정신이냐?”
코웃음을 친 디아블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딴 걸 말할 입이 있으면, 이놈들부터 치우지?”
주위의 악마들이 흠칫 놀랐다.
디아블로의 손은 어느새 등 뒤에 걸치고 있는 대검으로 향해 있었다.
“내가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아. 그러던 통에, 제우스 그 망할 놈한테 망할 소식을 들어서 말이지.”
그렇게 디아를로가 말을 내뱉는 순간.
고오오오-.
주위의 악마들이 디아블로를 향해 일제히 살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명백한 적의.
수만 마리의 악마들이 쏟아 내는 살기에 디아블로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다들 눈치는 있네.”
“너무 오래 해 먹었다, 디아블로.”
쿵-.
베에모트가 한 걸음, 발을 뗐다.
가장 거대한 생명체라는 별명답게, 그의 걸음에 땅이 흔들린다.
“이젠 뒤질 때도 됐지.”
“뒷감당은 어쩌려고, 쪽수만 믿고 나대는 건 아닐 거고…….”
카앗-.
대검이 붉은 선을 그었다.
“믿는 거라면 역시, 그놈들이려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느긋하게 휘두른 일격에, 전방에 서 있던 악마들의 위로 피분수가 뿜어졌다.
쫘아악-.
좌아아아-!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핏물.
단칼에 천 명에 달하는 악마들이 베어졌다.
베에모트의 이마에 붉은 선이 그어지며 눈동자에 핏물이 흘러내렸다.
‘뭘 한 거지?’
보이지 않았다.
최근 천무진이라는 이상한 인간에게서 칼을 배우고 있다 해서, 놀러만 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십 년. 그리 오래 비운 것도 아니야. 그런데 이리 썩어빠졌다라…….”
디아블로는 대검의 손잡이 부분으로 미간을 꾹꾹 누르며 중얼거 다.
“그래. 물갈이를 한 번 할 때가 되긴 했지.”
디아블로를 잡기 위해 모인 악마들이 주춤거린다.
일격으로 분위기를 뒤바꾼 디아블로는 웃는 얼굴임에도 어딘가 화가 나 보였다.
“야, 너.”
저벅-.
마을 한가득 모인 악마들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며.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디아블로는 베에모트를 향해 말을 이었다.
“금방 목 따러 갈 테니까.”
그리고 그 시각.
탑의 여러 길드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